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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이 타케시, 시스템 혁명가

藤井猛 (1970.09.29 ~ ) 기사 번호 198. 일본의 군마현 누마타 출신. 니시무라 카즈요시 9단 문하.

전적

일본장기를 처음 배운 것이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고 재미를 붙인 것은 초등학교 6학년 1학기의 일이라고 한다. 장려회 시험에 한번 떨어졌지만 연수회에서 편입하는 형식으로 1986년 장려회에 가입했다. 가입후 6년만인 1991년 4단으로 프로기사가 된 소위 하부 세대의 한명이다. 하부 요시하루, 사토 야스미츠, 모리우치 토시유키, 무라야마 사토시 등의 조숙한 기사들 (당시는 차일드 브랜드라고 불렸다.)과는 달리 마루야마 타다히사 등과 함께 약간 나중에 합류한 그룹에 속한다.

1995년 12월 22일, 제54기 B급 순위전에서 이노우에 케이를 상대로 대 앉은비차 혈웅 후지이 시스템을 처음으로 선보이며 불과 47수만에 상대를 투료에 몰아넣었다.

1996년에는 신인왕전에서 우승, 그 이듬해인 1997년에도 같은 기전에서 우승하고 용왕위에 재위중이던 1999년에도 우승, 1997년의 제16회 속기장기신예전에서도 우승하면서 젊은 기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전에서 4번 우승을 거머쥐었다. 1996년에는 모든 기사가 참가하는 대형기전인 아사히 오픈 선수권에서 결승까지 진출했지만 야시키 노부유키에게 패배.

1998년 제11기 용왕전에서 4조 우승을 차지하고(조결승 상대는 후카우라 코이치) 본선 토너먼트에서 스즈키 다이스케(3조 2위), 미나미 요시카즈(1조 우승), 야시키 노부유키(1조 3위)를 누르고 도전자 결정전에서는 하부 요시하루(1조 2위)를 상대로 1패 후 2연승을 거두며 처음으로 타이틀전에 도전했다. 타니가와 코지 용왕을 상대로 결승전에서 후지이 시스템을 사용해 4-0 스트레이트 승을 거두며 우승, 첫 타이틀을 획득했다. 당시 ‘장기계’ 표지에는 ‘후지이 시스템이 일본장기계를 석권’이라고 나왔다. 또 같은해에는 43승을 거두어 다승 1위에 올랐다.

첫 방어전인 제12기 용왕전에서는 같은 몰이비차 파의 스즈키 다이스케를 도전자로 맞이했다. 스즈키는 도전권을 얻었을 당시 인터뷰에서 ‘모두 몰이비차로 싸우겠다’고 선언했으나 후지이는 몰이비차를 봉인하고 모든 대국에서 앉은비차 를 사용해 4-1로 방어에 성공, 자신이 앉은비차로도 충분히 싸울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같은해에는 속기장기선수권에서도 우승, 타이틀전 이외에 전기사가 참가한 기전에서 첫번째 우승을 거머쥐었다.

2000년에는 제48기 왕좌전에 하부에게 도전하고 그와 함께 제13기 용왕전에서는 하부의 도전을 받는 ‘12번 대국’이 이루어졌다. 왕좌전에서는 2-3으로 패했지만 ‘이겨도 져도 풀세트까지’라는 말을 실현했고 용왕전에서도 4-3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용왕전 사상 첫 3연패를 달성(나중에 와타나베 아키라 가 갱신했다.) 서로가 자신있어하는 타이틀을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 참고로 하부의 도전을 꺽고 타이틀을 지켜낸 것은 타니가와에 이은 2번째.

제59기 B급 1조 순위전에서 후지이와 승급을 다투고 있던 고다 마사타카가 마지막에 설마하던 2연패를 당하고 후지이가 2 연승을 거두며 드라마틱하게 A급으로 승급했다. 전년도에 이은 2년 연속 승격이었다.

기풍

종래의 사간비차가 주특기지만 혁신적인 사간비차 전법 후지이 시스템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초반에 옥을 방어하는 울타리를 생략하고 바로 공격적인 포진에 들어가 앉은비차 혈웅이나 왼쪽 미노를 공략하는 이 전법은 현대의 몰이비차 전법의 서반에, 더 나아가 일본장기계에 혁명을 가져왔다고 할만큼 중요한 발견으로 평가되어 1996년 마쓰다 고조 상을 수상했다.

종반에는 대담하게 큰말을 던져넣어 노골적으로 상대의 왕을 노리는 기풍은 "가지가지류"라는 닉네임도 있다. 또 거비차 혈웅이나 왼쪽 미노에는 선공방식을 주로 하기 때문에 앉은비차감각의 몰이비차라고도 한다.

사간비차를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자신을 장어요리집에 비유해서 ‘장어 요리만 내놓는 집에서 패밀리 레스토랑(올라운더를 의미함)의 장어요리에 질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2007년에는 대국에서 ‘고키겐 중비차’를 사용해 젊은 기사들을 놀래켰다. 본인은 ‘이제는 장어요리만 할 때가 아니라 다각 경영을 꾸려야 한다’는 말을 남기는가 하면 2008년에는 연구회와 공식전에서 앉은비차 망루 울타리를 사용하기도 했다. 2009년 9월에는 ‘장기계’에서 나는 후지이 시스템을 버렸다라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2008년 중반부터 앉은비차를 채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본인은 ‘전법을 다각화 해보고 싶은데 서로 몰이비차 전형의 경험을 가장 잘 살릴수 있는 것이 서로 망루 전법이다’라고 대답했다. 이것이 기존의 망루 울타리와는 다르게 먼저 울타리를 짜고 공격한다는 적극적인 행마로 이어져 같은 해에 모리우치 토시유키나 사토 야스미츠가 실전에서 채용하는 등, 다른 기사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인물

‘맹렬하다’는 의미의 이름은 권투선수 후지 타케시에게서 따온 것이다.

어긋난 각 전법을 상대한다면 90% 이상 승리할 수 있다고 공언하고 있다.

1998년, 타니가와와 용왕전에서 겨룰 때 NHK에서 후지이 시스템의 강좌를 맡은 직후였다.

2005년을 전후해서 막판에 어이없는 역전을 당하는 일이 잦아졌다. 2006년 A급 순위전에서 하부 요시하루를 상대로 대국할 때 중반까지 필승의 구도라던 장기에서 악수를 둬 막판에 설마하던 대 역전패를 당했다. 후지이는 결국 받침대에 있던 말을 장기판에 내던지면서 투료했는데 생애 최악의 역전패였다고 술회했다.

http://ja.wikipedia.org/wiki/%E8%97%A4%E4%BA%95%E7%8C%9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