郷田 真隆 (1971.03.17 ~ ) 기사 번호 195. 도쿄 네리마 출신. 고 오오토모 노보루 9단 문하. 유일한 사형이 모리 게지 9단. 이른바 하부 세대 유력 기사의 한명
전적
3살때 아버지에게 일본장기를 배워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82년 12월, 장려회 6급으로 시작했으나 한때는 성적 부진으로 7급으로 강등되었다.
1988년 3단리그에 들어가 이후 입상 5위 이내의 성적을 3기동안 보이다가 4기째에 14승 4패, 2위로 19세이던 1990년 4월 1일 프로에 데뷔했다. 그해에 동년배인 하부 요시하루는 이미 첫 용왕위에 오르던 시기였다.
프로 3년차인 1992년 타이틀 전에 3번 도전하여 매번 타니가와 코지를 만나(기성전 전, 후기, 왕위전) 왕위전에서 4:2로 승리를 거두면서 첫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사상최초로 4단으로 타이틀을 획득. (종전기록은 다카하시 미치오의 5단시절 왕위 획득) 또, 프로데뷔 2년 5개월만의 타이틀 획득기록도 야시키 노부유키에 이어 역대 2위에 해당하며 장기대상의 감투상과 신인상을 모두 수상했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왕위전 무대에서 하부 요시하루와 매번 대결했지만 모두 패배, 대신에 일본 시리즈에서 3연패를 달성하여 시리즈의 남자라고 불렸다. (1994~1996년에 타이틀 획득자가 아니라 전회 우승자로서 출장 자격이 주어졌다).
1997년의 속기장기선수권전 결승에서 하부를 물리치고 우승. 장고파는 속기에도 강하다는 속설을 입증했다. 같은해 기왕전에서도 하부에게 도전해 비록 패했지만 장기대상의 4개부문 중 3개(승률1위, 다승, 최다대국상)과 감투상을 수상했다.
1998년, 기성전에서 야시키 노부유키를 격파하고 기성위를 획득한다.(다음해 타니가와에게 빼앗김) 이듬해에는 A급 기사로 8단이 되었으나 첫 A급 순위전에서 시마 아키라와 동률을 이뤄 1기만에 B급으로 탈락, 다음번 기에 B급1조에서 차점으로 승격을 놓치고 2기만에 A급으로 복귀했으나 또 다시 4승5패로 순위차이 때문에 9위로 강등되어 다음번 기에는 B급 차점, 그 다음에 A급 승격이라는 3년짤 과정을 2번 반복했다.
2001년 8월 2일 , 기성전 최종 5번국에서 하부를 꺽으며 기성위를 획득 타이틀 통산 3기 획득으로 9단 승단(기성위는 다음해에 사토 야스미츠에게 빼앗긴다.) 2006년의 A급 순위전에서는 압도적인 기력으로 8연승, 9차전을 기다리기 전에 이미 명인 도전을 결정지었다. 이 도전이 결정된 대국일(2007.02.01) 아침, 고다의 부친이 사망했지만 소중한 일전을 치르는 중에 불필요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는 가족들의 배려로 본인에게는 대국이 종료될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 후에 기자가 취재하는 중에 어린 시절 일본장기 룰을 가르쳐 준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끝마칠 때는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힘을 발휘해서 힘껏 노력하겠다"라고 인터뷰를 마무리 했었다.
장기 연구 등에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2007년, 제1회 다이와증권배 인터넷 장기 최강전 결승에서 마루야마 타다히사 9단을 꺽고 초대 우승자가 된 것이 화제거리가 되었다.
기풍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기풍으로 알려져 있다. 본격적인 앉은비차파로 정도를 추구한다. 후수로 둘때 2수째에서(후수로는 첫번째 수) 각의 길을 여는 ▽3四보 대신 비차 앞의 보를 전진시키는 ▽8四보로 두는 경우가 많다. "1수손해 각행교환을 싫어한다."라고 텔레비전에서 발언한 적이 있다. 물러나기 보다는 돌입하는 것을 선택하는 기풍으로, 직선적인 상호공격 상황에서 강하다.
초반부터 장고에 들어가는 일이 많지만 그런만큼 시간이 없어서 초읽기에 들어가는 싸움에도 강하다. 가토 히후미 9단과 비슷한 부분.
인물, 에피소드
오오토모 문하의 기사는 2명 뿐으로 1992년에 사상 최초로 4단인 채 타이틀을 획득했을 때, 안경을 쓰지않은 깔끔한 용모가 눈에 띄어 단 오니로쿠가 "절세 미남"이라고 평한 적이 있다. 깔끔한 외모라고 볼 수 있지만 헤어스타일에 좀 문제가 있고 통통한 데 절세의 미남...?
PC나 E-메일등을 이용한 연구나 정보교환에는 부정적이고 무관심하다. 기보의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으며 2007년 제65기 명인전에 도전했을 때 잡지 ‘장기계’와의 인터뷰에 ‘컴퓨터 장기’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밝혔다. 앞서 말한 2007년의 제1회 다이와증권배 인터넷 장기대회 우승의 부상으로 컴퓨터를 받았을 때 ‘이제부터는 컴퓨터로도 장기를 해보려고 한다. 드디어 데뷔군요’라는 말을 남기기도.
http://ja.wikipedia.org/wiki/%E9%83%B7%E7%94%B0%E7%9C%9F%E9%9A%86
'Shogi > Play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미즈 이치요, 최강의 여류기사 (0) | 2008.03.27 |
---|---|
하야시바 나오코, femme fatale 또는 자유분방 (0) | 2008.03.27 |
와타나베 아키라, 마왕의 블로그 (0) | 2008.03.27 |
키무라 카즈키, 솔직한 앗짱 (0) | 2008.03.26 |
마루야마 타다히사, 싱글벙글 격신류 (0) | 2008.03.26 |
모리우치 토시유키, 철판류의 서러브레드 (0) | 2008.03.26 |
사카타 산키치, 이단아의 끝보찌르기 (0) | 2008.03.21 |
후지이 타케시, 시스템 혁명가 (0) | 2008.03.21 |
마쓰다 고조, 新手一生 (0) | 2008.03.21 |
오오야마 야스하루, 사상최강의 명인 (0) | 2008.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