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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노 소호, 기성 아마노 소호(天野宗歩) 1816 ~ 1859년 6월 13일. 에도 말기의 장기 기사. 내력 일본장기의 본가인 오오하시 가의 "아마노 소호 신분류(天野宗歩身分留)" 라는 고문서에는 무사시 출신이라고 되어 있으며 아명은 류지로. 당시는 세습 명인제로 종가인 오오하시나 이토 가문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명인이 되지는 못했고 7단으로 끝났지만 명인보다 강한 실력이라 하여 ‘실력 13단’이라고 불리웠고, 나중에는 기성으로 추종받았다. 1952년에 11대 오오하시 소케이의 주선으로 쇼군 앞에서 장기를 선보였다. 장기 실력은 뛰어났지만 내기 장기를 했었다는 기록이 있고 1859년에 42세의 나이로 죽었지만 공식적으로는 병사라고 막부의 관리에 신고했다 라는 말이 있어 실제의 사인은 다른 것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다수의.. 더보기
세가와 슈지, 후수로 사는 법 세가와 슈지(瀬川晶司, 1970년 3월 23일 ~ ) "회사원 출신 프로기사"라는 것으로 유명하며, 아마추어로는 최고 수준의 기력을 보였다. 카나가와 현 요코하마 출신. 카나카와 대학 법대 졸업. 기사번호 259번. 프로입문까지의 이력 프로 입문이 좌절되고 나서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나중에 프로 기사가 되었다는, 지극히 이색적인 경력이 있는 인물이다. 일본장기를 처음 접한 계기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반에서 유행하는 것을 배우기 시작한 것으로 초등학교 졸업문집에는 프로기사가 되고 싶다고 적었다. 1983년, 장려회 입회 시험에 떨어졌지만, 1984년 전국 중학생 선발 장기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여 6급으로 장려회에 들어갔다. 그리고 8년에 걸쳐서 조금씩 진급, 프로 일보 직전인 장려회 3단리그까지 진출하여.. 더보기
나이토 쿠니오, 노래하는 코베조의 금 나이토 쿠니오 (内藤國雄, 1939년 11월 15일 ~ ) 기사번호 77. 효고현 코베 출신. 후지우치 킨고(藤内金吾) 8단 문하. 제자로 칸키 히로미츠 등이 있다. 특징 느긋하고 평안한 기풍에 앉은비차, 몰이비차 등으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다양한 전법을 구사해서 ‘자재류’라는 별칭이 있다. 특히 ‘공중전’에 능숙해서 횡보잡기 3三각 전법으로 장기대상에 1994년 신설된 "마쓰다 고조 상"의 제1회 수상자가 되었으며 이것이 후일 횡보잡기 8五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전적 1958년 프로에 입문해 8년만에 A급으로 승격했고 60년대 중반 수많은 기전에서 우승하며 활약했다. 첫타이틀전인 1968년도 왕장전 7번국에서는 당시 3관왕이었던 오오야마 야스하루에게 4-0으로 일축당했지만 1969년 제15기 기성전.. 더보기
타니가와 코지, 신속의 공격 타니가와 코지(谷川浩司) (1962년 4월 6일 ~ ) 기사 번호131. 17세 명인. 통산타이틀 획득수 역대 4위. 와카마츠 마사카즈7단 문하. 효고현 코베 시 스마 출신. 일본장기연맹 기사협회 초대회장. 프로데뷔까지 5살 무렵, 5살 터울 형과 자주 싸우다 보니 아버지가 일본장기와 체스를 가르쳐서 처음 일본장기를 배웠다. 규칙은 백과사전에서 찾아보았다고 하며 효고현 대회에 나가면서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덧붙여서 장기를 배운뒤에도 형제간의 싸움은 더 심해졌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형인 도시아키도 프로기사는 아니지만 동경대 재학시에 장기부에 있었고 졸업후에도 명문인 리코 장기부에 재적하면서 아마츄어 일본장기계의 타이틀을 수차례 획득한 강호다. 잡지의 기획대국에도 가끔 나오고 4단시절 하부 요시하루를 평수.. 더보기
후타카미 타츠야, 북해의 미검사 후타카미 타츠야(二上達也, 1932년 1월 2일 ~ ) 1990년에 은퇴. 제 12대 일본장기연맹회장 역임. 기사 번호 57번. 홋카이도 하코다테 출신. 와타나베 도이치 명예 9단 문하. 홋카이도 도립 하코다테 고교(현 하코다테 중부 고교) 졸업 기력 전성기의 오오야마 야스하루를 상대로 고군분투한 기사로 가토 히후미 등 다른 톱클래스 기사들에게 호각이나 그 이상으로 상대했지만 대 오오야마 전적만은 45-116 정도로 안좋다. 1959년 제10기 십단전 에서 오오야마 야스하루를 상대로 첫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4-3으로 패배, 직후인 제9기 왕장전에서도 오오야마에게 도전했지만 역시 패했다. 이후 제10기 왕장전, 제12기 10단전, 제21기 명인전에서 4관왕에 오른 오오야마에게 모두 패했지만 1962년 제1.. 더보기
야마다 미찌요시, 반위에 지다. 야마다 미찌요시(山田道美, 1933년 12월 11일 ~ 1970년 6월 18일) 아이치현 나고야 출신. 카네코 긴고로 문하. 기력 1964년 처음 참가한 A급 순위전에서 우승, 제24기 명인전에서 오오야마 야스하루에게 도전했다. 오오야마 타도에 투지를 불태웠지만 1-4로 패배, 또 다시 오오야마에게 도전한 제15기 왕장전에서도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끝에 아쉽게 패했다. 3번째로 도전한 1967년 제10기 기성전에서 드디어 오오야마를 꺽고 첫번째 타이틀을 획득. 반년후인 제11기 기성전에서도 나카하라 마코토의 도전을 꺽고 방위에 성공했지만 다음 분기에 도전한 나카하라에게 기성위를 내주었다. 이것이 공교롭게도 한시대를 열어간 나카하라의 첫번째 타이틀이고 야마다에게는 생애 마지막 타이틀이 되었다. 1970년 현.. 더보기
스즈키 다이스케, 호쾌 진비차 스즈키 다이스케(鈴木大介, 1974년 7월 11일 ~ ) 기사 번호 213. 도쿄 마치다 출신. 오오우치 노부유키 문하. 전적 1994년 프로기사(4단)로 데뷔하고 그 해 용왕전에 처음 참가해서 5기 연속 승급을 거듭해 1999년에는 1조에서 용왕 도전권을 획득했다. 제12기 용왕전에서 당시 용왕이었던 후지이 타케시에게 도전(타이틀 첫도전)했는데, 당시 인터뷰에서 7번의 대국에서 모두 몰이비차로 맞서겠다고 선언해 화제를 모았다. 상대인 후지이도 몰이비차의 대가로 유명했기에 서로 몰이비차를 사용하는 대결이 기대되었지만 후지이는 매번 앉은비차로 대응해 결과적으로 스즈키 다이스케는 1승 4패로 패퇴했다. 하지만 같은해의 NHK배 결승에서 고다 마사타카를 꺽고 우승, 전 기사가 참가하는 대회에서 첫 우승을 거머.. 더보기
후카우라 코이치, 불운해도 괜찮아 후카우라 코이치(深浦康市, 1972년 2월 14일 ~ ) 기사 번호 201. 나가사키 사세보 출신. 하나무라 모토지 9단 문하. 기력 1984년에 장려회에 입회, 5급으로 승급하는데 1년이 걸렸지만 이후 순조롭게 승단해서 1991년 10월 1일, 19세의 나이로 프로에 데뷔했다. 이때부터 두각을 나타내어 1993년 전일본 프로 장기 토너먼트 결승에서 요네나가 쿠니오를 꺽고 우승했다. 1993년, 조지명 신예전에서도 우승해서 같은 해 조지명 장기 선수권 출장자격을 얻었으며 여기서도 우승(결승전 상대는 하부 요시하루)해서 텔레비젼 도쿄의 양 기전을 같은해에 재패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4단인 채로 연간 3회 우승이라는 발군의 성적을 거두어 그 해의 장기 대상 신인상과 감투상을 동시 수상해서 동료 기사들은 아직.. 더보기
모리시타 타쿠, 예의바른 무관의 제왕 모리시타 타쿠(森下 卓, 1966년 7월 10일 ~ ) 기사 번호 161. 후쿠오카 현 키타큐슈 출신. 고 하나무라 모토지 9단 문하. 기력 10살때 아버지에게 배워서 일본장기를 시작해 불과 2년만인 1978년 장려회에 입회했다. 1983년 17세 9개월에 프로데뷔, 이후 하부 세대라고 불리는 동료 기사들과 함께 차일드 브랜드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1990년, 신인왕전 결승 3번국에서 오노 야이치오를 2-0으로 꺽고 우승 이듬해에는 전일본 프로 토너먼트 결승 5번국에서, 키리야마 키요시를 3-1로 꺽고 우승했다. 2007년에는 JT장기 일본시리즈에서 와타나베 아키라 용왕, 사토 야스미츠 기성, 모리우치 토시유키 명인을 연파하고 우승, 23, 24살 무렵에는 강하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노력하고 .. 더보기
나카이 히로에, 여류기사의 자존심 나카이 히로에(中井広恵), 1969년 6월 24일 ~ ) 홋카이도 왓카나이 출신. 사세 휴우지 명예 9단 문하. 일본장기연맹소속시 여류기사번호는 17번. 통산 타이틀 획득수 역대 2위. 인물 1990년대부터 2000년대에 걸쳐 여류일본장기계에서 시미즈 이치요와 함께 오랫동안 양강으로 군림했다. 1993년 여류명인전부터 2007년 쿠라시키 토오카전까지 모든 여자일본장기 타이틀 전에는 나카이나 시미즈 둘중 한명은 출장했다. 2002년 시미즈와 함께 여류 6단으로 승단해 2004년에는 시미즈와의 대국기록이 100회에 도달했다. 기록으로는 나카이의 40승 60패로, 여류기사 중에서는 최초의 기록. 여류기사 들 중에서 가장 남자 기사들에 근접한 장기라고 평가받는다. 1993년 12월, 용왕전에서 이케다 슈우이치 .. 더보기
쿠보 토시아키, 다루기의 아티스트 쿠보 토시아키(久保利明, 1975년 8월 27일 ~ ) 기사 번호 207. 효고 카코가와 출신. 아와지 히토시게 9단 문하. 전적 1986년, 초등학생 명인전에서 4강에 진출하여(준결승전에서 스즈키 다이스케를 만나 패배)했다. 같은해 장려회 입회하고 1993년 17세 4개월의 나이로 프로에 데뷔했다. 이후 약 10년간 꾸준히 승단해 2003년 A급 기사가 되었다. 원래는 칸사이 장려회 출신이었으나 프로 입문 후에 관동으로 옮겼다. 타이틀을 획득하면 관서로 돌아오겠다고 공언하고 있었지만 2006년 4월, 타이틀을 획득하지는 않은채로 복귀, ‘이제 관동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라고 말했다. 하부의 벽 2007년까지 4번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전부 하부 요시하루를 만났다. 또, 하부에게 걸림돌이 될만한 상대가 쿠.. 더보기
하나무라 모토지, 진검사의 요도 하나무라 모토지(花村 元司, 1917년 11월 18일 ~ 1985년 5월 25일), 기사 번호 39. 시즈오카 현 하마마츠 출신. 키무라 요시오 14세 명인 문하. 인물 내기장기를 생업으로 하는 진검사 출신이라는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 상당한 실전파 기사로 내기장기 수입을 모아 도장을 경영하면서 고급 전통 일본옷을 맵시있게 입고 다녔다. 본인 말로는 ‘프로가 되지 않는 쪽이 더 돈벌이가 좋았다’고 말했을 정도. 도박에 재능이 뛰어나서 화투에도 고수였다고 한다. 마쓰다 고조와 반향떼기로 철야대국을 벌여 이길 정도의 실력이 높게 평가되어 후원자들의 천거로 이례적인 5단 시험을 치러 프로기사가 되었다. 장려회를 거치지 않고 프로가 된 최초의 예로 세가와 슈지가 2005년에 프로 편입시험을 보았을때 거론되던 .. 더보기
모리 게지, 종반의 마술사 모리 게지(森 雞二, 1946년 4월 6일 ~ ) 기사번호 100. 코지현 나카무라 시 출신. 오오토모 노보루 문하. 전 스모 장사 타마카이리키 츠요시가 조카. 에피소드 일본장기를 처음 배운것이 16세 무렵으로 프로기사 치고는 매우 늦게 시작한 경우지만 그 무렵부터 근처의 장기 도장에서 장기만 파고들기를 거의 반년, 아마 3단 수준까지 실력이 성장했다. 본인은 "이 시절에는 밤 11시까지 저녁식사도 안먹고 계속 장기를 두었다"고 회상하고 있다. 2차대전 이후의 기사들 중에서 이 정도로 늦깍이로 시작해 프로 기사가 되고 명인에 도전하거나 타이틀 보유자가 되었다는 점에서 초인적인 집중력을 반증한다. 종반에서 강한 힘을 발휘해, "종반의 마술사"라고도 불린다. 1978년, 제36기 명인전에서 나카하라 마코토에.. 더보기
시미즈 이치요, 최강의 여류기사 시미즈 이치요(清水市代, 1969년 1월 9일 ~ ) 도쿄 히가시무라야마 출신. 도쿄 도립 키요세 고교 졸업. 타카야나기 토시오 명예 9단 문하. 여류기사 번호 19. 통산 타이틀 획득수 1위. 기력 여류기사를 목표로 여류기사들 중에는 나카이 히로에, 하야시바 나오코, 야우치 리에코, 카이 토모미, 치바 료코 처럼 남녀의 구별없이 기사를 목표로 장려회를 다닌 경우가 많지만, 시미즈의 경우에는 장려회 경험이 없고 1983년 중학교 3학년때 제 15회 여류 아마 명인전에서 우승하면서 바로 타카야나기 명예 9단 문하에 입문했다. 입문할때 화장과 연애는 안된다, 어긴다면 즉각 파문이라고 주의를 받았을 정도로 엄격한 스승 밑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나이어린 제자를 귀여워 해서 다른 사람에게 지고 시무룩 할때는 용돈을.. 더보기
하야시바 나오코, femme fatale 또는 자유분방 하야시바 나오코(林葉直子, 1968.01.24. ~ ) 여류 장기기사, 탤런트, 작가, 타롯트 역술가. 다이이치 약대 중퇴, 일본 장기연맹에 소속되어있었던 시절에는 요네나가 쿠니오영세기성 문하. 여류기사번호 16번. 인물 1979년 11세에 여류 아마 명인전에서 우승하고 같은 해 장려회에 6급으로 입회하면서 첫 여성 장려 회원이 되었다. 초등학교 재학중에 요네나가 쿠니오 영세 기성 밑에서 직속제자로 사사를 받았는데 당시의 동료로 센자키 마나부 등이 있다. (센자키의 말로는 약간 연상인 하야시바가 많이 괴롭혔다고 한다.) 1980년에 여류 2급으로 프로가 되어 1982년에는 14세 4개월의 나이로 첫 타이틀, 여류 왕장을 획득하면서 이후 10연패를 달성했다. 이것은 여류 장기계 최고 기록으로, 당시에는 여.. 더보기
와타나베 아키라, 마왕의 블로그 와타나베 아키라(渡辺明, 1984.04.23. ~ ) 기사 번호 235번. 영세용왕자격자. 도쿄 카츠시카 출신, 쇼시 카즈하루 문하. 기력 15세에 프로 데뷔 초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아마 5단이던 아버지에게 일본장기를 배웠다. 1994년 초등학교 4학년의 나이로 "초등학생 명인전"에서 우승(기록상으로는 3학년) 하면서 장려회에 6급으로 입문해 매년마다 승급하는 빠른 속도로 순위를 올리고 2000년 3월, 제26회 3단 리그에서 13승 5패로 1위를 차지해, 같은해 4월, 프로에 입문하면서 사상 4번째 중학생 기사가 되었다. 2003년 9월, 사상 3번째로 어린 나이에(19세) 타이틀 전에 첫도전. (제51기 왕좌전) 일본장기계의 최고봉 하부 요시하루에게 도전해 한때는 2-1로 앞섰지만 여기서 2연패를 .. 더보기
키무라 카즈키, 솔직한 앗짱 키무라 카즈키(木村 一基, 1973.06.23 ~ ) 기사 번호 222. 치바 출신. 사세 휴우지 명예 9단 문하. 전적 초등학교 6학년에 장려회에 입회해서 2단까지는 비교적 순조롭게 승급했지만 3단 승단까지 2년, 삼단리그를 벗어나는 데 6년 반이 걸려 총 장려회 재적기간이 12년, 23세에 데뷔한 늦깍이 기사에 들어간다. 하지만 프로입문 후에는 승률이 매우 높고 동료 기사들 사이에서는 "승률군"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통산 500국 이상 대국 하는 기사 중에서, 통산 승률이 7할을 넘는 것은 하부 요시하루와 키무라 카즈키 2명뿐인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1998년 처음으로 용왕전에 참가해 첫경기에서 패하기는 했지만 승급자 결정전(패자 부활전)에서 6연승을 거두며 5조로 승급했고 C조 순위전에서도 .. 더보기
마루야마 타다히사, 싱글벙글 격신류 丸山忠久 (1970.09.05 ~ ) 기사 번호 194. 치바현 키사라즈 출신. 사세 휴우지 명예 9단 문하. 이른바 하부 세대의 강호 중 한 명. 전적 프로입문과 학업 1984년 제9회 중학생 명인전에서 우승하고 장려회 입회시험에 도전했다. 하지만 2번 연속으로 떨어지고 ‘연수회’를 거쳐서 장려회에 들었다. 1986년, 고등학교 3학년때 3단리그에 처음 참가하고 졸업 후에 와세다 대학에 추천입학한 1989년의 2번째 삼단리그에서 14승 4패의 성적으로 대학교 2학년이 됨과 동시에 4단 프로기사가 되었다. 그런 와중에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유급없이 졸업했다. 프로입단 이후 1992, 1993 제14회 올스타 토너먼트전에서 6연승. 5승 이상은 우승 취급으로, 기전 첫 우승. 이 기전과는 궁합이 좋아서, 제.. 더보기
고다 마사타카, 절세의 미남기사 郷田 真隆 (1971.03.17 ~ ) 기사 번호 195. 도쿄 네리마 출신. 고 오오토모 노보루 9단 문하. 유일한 사형이 모리 게지 9단. 이른바 하부 세대 유력 기사의 한명 전적 3살때 아버지에게 일본장기를 배워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82년 12월, 장려회 6급으로 시작했으나 한때는 성적 부진으로 7급으로 강등되었다. 1988년 3단리그에 들어가 이후 입상 5위 이내의 성적을 3기동안 보이다가 4기째에 14승 4패, 2위로 19세이던 1990년 4월 1일 프로에 데뷔했다. 그해에 동년배인 하부 요시하루는 이미 첫 용왕위에 오르던 시기였다. 프로 3년차인 1992년 타이틀 전에 3번 도전하여 매번 타니가와 코지를 만나(기성전 전, 후기, 왕위전) 왕위전에서 4:2로 승리를 거두면서 첫 타이틀을 획득.. 더보기
모리우치 토시유키, 철판류의 서러브레드 森內俊之, (1970.10.10 ~ ) 기사번호 183, 가나카와 요코하마 출신. 마츠우라 오사무 9단 문하. 18세 명인 자격자. 전적 프로입단까지 초등학생 시절부터 이미 하부 요시하루와 라이벌 관계였다. 1982년 제7회 초등학생 일본장기명인전에서 3위. 이때의 우승자는 하부 요시하루로 같은해 12월에 장려회에 입문했을 때에도 동기였다. 장려회 3단이던 시절에 시마 아키라가 주재하던 연구회에서 하부 요시하루, 사토 야스미츠와 함께 실력을 닦았다. 1987년 05월 13일 프로에 입문, 3단리그가 창설되기 전의 장려회 제도로 4단이 된 마지막 기사다. 제22기 신인왕전(1987)에 장려회 3단으로 출전해서 도중에 4단으로 승단하고 우승. 타이틀 프로에서도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어 1988년, 제7회 전일.. 더보기
사카타 산키치, 이단아의 끝보찌르기 阪田三吉 (1870.07.01~1946.07.23) 오사카 근교 마츠무라 현 사카이 쿄와 마치 출신. 구 호적으로는 坂田三吉. (읽는 방법은 같다.) 인물 천민부락 출신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천민부락, 부라쿠민이란 일본 사회에서 최하층민으로 차별받고 있던 사람들이 모여살던 곳을 말한다.) 가업인 짚신 만들기를 도우면서 장기를 배웠다. 1886년에 니혼바시의 신발 도매상에 견습생으로 들어갔는데, 길가에서 이루어지는 장기에서 곧잘 어른을 이겨 조숙한 천재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장기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다른 사람을 부상시켜 해고당했다고 한다. 그 후에는 친가로 돌아가서 가업을 도우며 내기 장기로 솜씨를 연마했고, 아마츄어 기사로써 오사카에서는 유명해졌다. 1899년 경에 세키네 긴지로와 첫대결을 벌여.. 더보기
후지이 타케시, 시스템 혁명가 藤井猛 (1970.09.29 ~ ) 기사 번호 198. 일본의 군마현 누마타 출신. 니시무라 카즈요시 9단 문하. 전적 일본장기를 처음 배운 것이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고 재미를 붙인 것은 초등학교 6학년 1학기의 일이라고 한다. 장려회 시험에 한번 떨어졌지만 연수회에서 편입하는 형식으로 1986년 장려회에 가입했다. 가입후 6년만인 1991년 4단으로 프로기사가 된 소위 하부 세대의 한명이다. 하부 요시하루, 사토 야스미츠, 모리우치 토시유키, 무라야마 사토시 등의 조숙한 기사들 (당시는 차일드 브랜드라고 불렸다.)과는 달리 마루야마 타다히사 등과 함께 약간 나중에 합류한 그룹에 속한다. 1995년 12월 22일, 제54기 B급 순위전에서 이노우에 케이를 상대로 대 앉은비차 혈웅 후지이 시스템을 처음으.. 더보기
마쓰다 고조, 新手一生 升田幸三 (1918.03.21 ~ 1991.04.05) 기사번호 18. 히로시마 현 후타미 군 마리사카 쵸 출신. 실력제 4대 명인, 이름을 정확히 읽으려면 고소(こうそう, 일본어 표기법에 따르면 고소 지만 발음은 코오소오에 가깝다.)라고 해야 하지만 보통은 당대의 유명인이던 사람의 이름을 따서 고조라고들 읽었고 이것이 굳어졌다. 기미 킨지로 9단 문하. 3관왕 독점 등의 화려한 전적은 물론 그 독창적인 전법, 성격, 다양한 일화 등으로 일본장기계의 역사를 말할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인물 부친 마쓰다 에이치와 모친 가츠노의 사이에서 4남(이름을 보면 3남일 것 같지만 4남이다.)으로 태어났다. 1932년 7월에 일본 최고의 장기기사를 목표로 가출하면서 사랑하는 어머니가 사용하는 자의 뒷면에 먹물로 "이.. 더보기
오오야마 야스하루, 사상최강의 명인 오오야마 야스하루(大山康晴) 기사번호 26. 15세 명인. 영세 10단, 영세 기성, 영세 왕위, 영세 왕장. 일본장기기사로 수많은 대기록(공식 타이틀 획득 80기, 기전우승 44회, 통산 1433승 등등)을 수립했다. 일본장기연맹회장으로써 장기의 보급과 연맹의 운영에 많은 실적을 남긴바 있다. 1990년에는 장기계 최초로 문화공로자로 인정받아 정4위 훈2등훈장을 받았다. 제자로 아리요시 미치요, 나카다 이사오, 나메카와 히사시 가 있다. 생애 성장기 1923년 3월 13일, 오카야마 현 아사구치 군 가와우치죠 니시아치에서 태어났다. 5살부터 장기를 배우기 시작해 금방 두각을 나타내 1935년에는 오사카에서 기미 킨지로 9단의 직속제자로 입문했다. 순조롭게 승단을 거듭했으나 흔치 않은 중장기 기사이기도 .. 더보기
코이케 쥬메이, 최강의 진검사 코이케 쥬메이(小池重明) 본명은 코이케 시게아키(1947년 12월 24일 - 1992년 5월 1일) 아이치현 나고야 출신의 아마츄어 장기기사. 아마츄어 최강의 기사로 불리며 내기장기를 전문으로 하는 진검사로 전설적인 기력을 자랑했다. "신주쿠의 살인청부업자", "최후의 진검사", "프로 죽이기"등등 수많은 별명으로도 유명하다. 인물 출생 1947년, 나고야에서 태어났다. 말년의 기억에 의하면 부친은 건강한 신체가 있으면서도 상이군인을 가장해 구걸을 하거나 도박을 일삼았고 모친은 집에서 손님을 상대하는 창녀였다고 한다. 어느날 "남자라면 도박도 하나는 알아둬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장기에 열중하게 되면서 10대에 이미 근방에는 적이 없다고 할 정도 능숙해졌다. 진검사의 길로 코이케는 "장기로 생계를 꾸려.. 더보기
하부 요시하루, 최강의 기사 하부 요시하루(羽生善治) (1970년 9월 27일 ~ ) 후타카미 타츠야 9단 문하. 기사 번호 175. 1996년 일본장기계 최초로 7관왕에 올랐다. 개요 사이타마현 토코로자와 출생 (출신지는 도쿄 하치오지). 통산 타이틀 획득수는 오오야마 야스하루에 이어 역대 2위. 총 7개 타이틀 중 사상 최초의 영세 6관 칭호 자격 보유자. 하부 본인 외에도 비슷한 연배의 기사들 중에 실력자들이 집중되어 있어 이들을 ‘하부 세대’ 라고도 부른다. 프로 데뷔까지의 이력 초등학교 1학년 때 장기를 배워 그 이후에 하치오지의 장기 도장에 다니면서 실력이 부쩍 자랐다. 부모가 쇼핑을 할 때에는 장기 도장을 탁아소로 이용했다고. 초등학교 3학년때 아마 초단, 4학년에 4단, 5학년에 5단으로 장기실력이 급상승해 이때 이미.. 더보기
가토 히후미, 一二三 전설 가토 히후미(加藤一二三) (1940년 1월 1일 - ) 기사 번호 64. 후쿠오카현 카호 출신. 약력 현역 프로기사 생활 57년 이상. 통산 대국수, 통산 패전수 역대 1위.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에 순위전 A급에 등록한 적이 있는 유일한 기사. 사상 최연소(14세)로 프로기사가 된 기록은 50년 동안 깨지지 않았다. 오오야마 야스하루 15세 명인, 나카하라 마코토 16세 명인, 요네나가 쿠니오 영세 기성을 상대로 각각 100번 이상 대국. 인물 후쿠오카 출신으로 천주교 신자이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성 실베스트로 교황 기사단 훈장을 수여받았다. 일본 장기계 내외를 막론하고 강렬한 개성과 언동으로 많은 일화를 남겨 유명하다. 전적 진무 이.. 더보기
무라야마 사토시, 일본장기에 생명을 걸다 무라야마 사토시(村山聖) (1969년 6월 15일 - 1998년 8월 8일) 장기 기사. 혈액형 AB, 기사 번호180. 히로시마 현 아키 군 후츄우 출신. 모리 노부오 7단 문하. 하부 세대라고 불리는 기사들 중 한명. 인물 3남매 중 차남으로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다. 5살에 히로시마 시민병원에서 ‘네프로제’라는 신장계통 난치병에 걸린 것이 발견되어 죽기까지 병마와 싸웠다. 당시에는 이 병의 치료법이 안정을 취하는 것 뿐이라 소아병동에 입원해 이곳에서 친구들이 사망하기도 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입원중에 아버지에게 장기를 배웠고 몸에 지장을 준다는 주의를 받으면서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몰두했다. 이후에 눈에 띄게 두각을 드러내어, 쥬고쿠 어린이 명인전에서 4년 연속 우승, 타이틀 보유자인 모리야스 히로미츠(.. 더보기
사토 야스미츠, 1억3수의 天馬行空 사토 야스미츠 (佐藤康光) (1969년 10월 1일 - ), 장기기사. 기사번호 182. 교토 야와타시 출신, 고쿠가이인 고교 졸업. 다나카 가이슈 9단 문하. 통산 타이틀 획득수 6위. 통칭 하부 세대의 한명. 기력 프로입단이전 1981년 봄 6학년때 초등학교 장기 명인전에 출전해 3위를 차지했다. 이 대회에서 무라야마 사토시를 상대로 승리했으며 이 대회의 준우승은 나카이 히로에였고 하부 요시하루도 이 대회에 출전했다.(당시 5학년) 1982년 12월, 6급으로 오사카 장려회에 입회했다. 반년후 타니가와 코지가 사상 최연소로 명인이 되었다. 장려회원들과 머리를 싸매고 어려워하던 묘수풀이를 몇 초만에 해결해서 어린 마음에 ‘A급의 무서움’을 알았다고. 장려회에서는 입회 1년만에 2급으로 승급했으나 아버지.. 더보기
시마 아키라, 디지털 파이오니어 시마 아키라(島朗) (1963.02.19 ~ ) 기사번호 146. 도쿄 세타가야 타카야나기 토시오 명예 9단 문하 인물 - 1980년에 4단으로 승단한, "55년 동기"의 한명. - 젊은이들과의 연구회, PC에 의한 데이터 관리를 비롯하여 장기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고 평가된다. 그 중에서도 하부 요시하루, 사토 야스미츠, 모리우치 토시유키가 장려회 재적시에 시작한 "시마 연구회"는 전설적인 연구회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 일본 전통복장으로 임하는 것이 상식이었던 타이틀전에 브랜드 수트(아르마니)를 입고 나타나서 매스컴에 화제를 일으켰다. - 1988년에는 요네나가 쿠니오에게 4-0 스트레이트 승을 거두며 초대 용왕이 되었다. 장기계에서는 시마가 용왕이 되리라고는 거의 예상치 못했기에 "신데렐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