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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카우라 코이치, 불운해도 괜찮아

아르미셸 2008.03.28 00:00

후카우라 코이치(深浦康市, 1972년 2월 14일 ~ ) 기사 번호 201. 나가사키 사세보 출신. 하나무라 모토지 9단 문하.

기력

1984년에 장려회에 입회, 5급으로 승급하는데 1년이 걸렸지만 이후 순조롭게 승단해서 1991년 10월 1일, 19세의 나이로 프로에 데뷔했다. 이때부터 두각을 나타내어 1993년 전일본 프로 장기 토너먼트 결승에서 요네나가 쿠니오를 꺽고 우승했다. 1993년, 조지명 신예전에서도 우승해서 같은 해 조지명 장기 선수권 출장자격을 얻었으며 여기서도 우승(결승전 상대는 하부 요시하루)해서 텔레비젼 도쿄의 양 기전을 같은해에 재패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4단인 채로 연간 3회 우승이라는 발군의 성적을 거두어 그 해의 장기 대상 신인상과 감투상을 동시 수상해서 동료 기사들은 아직도 4단이냐고 농담했을 정도라고.

1996년, 왕위전에서 하부 요시하루를 상대로 첫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1승 4패로 물러났다. 이때 제1국에서 ▲9六보(맨끝의 보)에서 중비차라는 지극히 드문 전법을 사용해 화제가 되었다. 또 약혼자와 그 부모님을 대국장에 초대한다는 세련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약혼자는 감기로 입원해 있을 적에 간호사로 만나 동향이라는 인연으로 사귀게 되었다.

1999년, 2001년, 조지명 신예전에서 3연패 달성하고 2003년에는 준타이틀전 [각주:1]  인 아사히 오픈 장기 선수권에서 호리구치 카즈시자에게 도전해서 3-1로 승리, 아사히 선수권자가 되었다. (다음해 하부 요시하루에게 뺏김)

2007년, 왕위전에서 하부 요시하루에게 도전하여 11년전과 같은 타이틀 전이 되었다. 제7번국에서 서반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역전에 성공, 4-3으로 첫번째 타이틀을 획득해, ‘큐슈에 타이틀을 갖고 돌아가겠다’라는 대회전의 선언을 현실화했다. 큐슈 출신의 기사가 타이틀을 획득한 것은 1984년 가토 히후미 이래 23년만으로 재미있게도 둘다 왕위를 획득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이때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에서 하부가 선수차례였던 3번은 모두 망루 울타리였고, 후카우라가 선수차례였던 4국은 1수 손해 각행교환이 2번 중비차 2번으로, 통상의 각행교환이 된 1번을 제외하면 후카우라는 하부에게 작전의 주도권을 갖도록 하는 전법으로 시종일관했으며 특히 최종국에서 하부가 중비차를 사용한 대국은 해설을 맡은 사토 야스미츠가 ‘역사적인 명국’이라고 극찬할 정도로 명승부로 인정받아 장기대상에서 하부 요시하루와 명국상을 함께 수상했다.

2008년의 첫 타이틀 방어인 제49기 왕위전에서 하부 요시하루와의 리턴매치를 역시 풀세트 끝에 물리치고 2연패, 동시에 아사히 오픈을 포함해 3회 우승 경력으로 9단에 올랐다.

2009년 제50기 왕위전에서는 키무라 카즈키를 상대로 3연패를 당한뒤 4연승을 올리며 [각주:2] 을 거두며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이 대국의 4국째는 본인의 고향인 사세보에서 열렸는데 나중의 인터뷰에서 ‘내용면에서는 참담했지만 어떻게든 고향에서 패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힘을 낸 덕분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순위전의 불운

- 1994년, 3번째 C급 2조 순위전(제53기)에서 9승 1패로 4위(차점). 이때의 승급자는 쿠보 토시아키(10-0), 미우라 히로유키(9-1), 나카가와 다이스케(9-1).
- 1999년, (제58기), B급 2조 순위전에서 9승 1패로 3위(차점). 이 때의 승급자는 후지이 타케시와 미우라 히로유키(둘다 9-1)로, 9승 1패의 좋은 성적을 거두고도 두번이나 승급을 놓친 기사는 순위전의 오랜 역사속에서 후카우라 1명 뿐이다.
- 2003년, (제62기), B급 1조 순위전에서 발군의 힘을 발휘해, 최종국까지 2국 남긴 상태에서 처음으로 A급 승급이 결정되었다.(최종 성적은 11승 1패로 1위).
- 2004년, (제63기), 처음 참가한 A급 순위전에서 타니가와 코지, 마루야마 타다히사, 미우라 히로유키, 스즈키 다이스케 까지 총 5명이 4승 5패의 성적을 올렸는데 승급 직후라 리그표에서 하위인 관계로 다시 B급 1조에 강등되었다.
- 2005년, (제64기), B급 1조 순위전에서 또 다시 발군의 힘을 발휘해, 최종국까지 2국 남긴 상황에서 1기만에 A급 복귀를 결정지었다. (최종 성적은 10승 2패로 1위).
- 2006년, (제65기), 2번째의 A급 순위전에서 사토 야스미츠, 마루야마 타다히사, 후지이 타케시, 쿠보 토시아키, 미우라 히로유키와 함께 6명이 4승 5패의 성적을 내어 이번에도 리그표에서 하위라는 이유로 B급 1조에 강등되었다. (최종국에 임할 때에는 이미 강급이 결정되었다. 아베 타카시에게 후카우라가 승리하더라도 같은 3승 5패였던 쿠보 토시아키와 사토 야스미츠, 마루야마 타다히사, 고다 마사타카(고다는 최종국을 기다리지 않고 명인 도전이 결정되었음)는 각각 승리한 상태였기 때문) 덧붙여, A급 순위전에서 4승하고 강급되었다는 경험을 2번한 기사는 순위전의 오랜 역사속에서도 후카우라 1명 뿐이다.
- 2007년, (제66기), B급 1조 순위전에서 3번째로, 발군의 힘을 발휘해서, 최종국까지 2국 남기고 또다시 A급 복귀를 결정한다 (최종 성적은 9승 3패로 2위).
- 2008년, (제67기), 3번째 A급 순위전에서 미우라 히로유키, 스즈키 다이스케와 공동 최하위(3승 6패)를 기록해 이번에도 리그표 서열상 스즈키와 함께 강등되었다. 이번에는 A급 재적중인 타이틀 보유자가 B급 1조로 강등된다는 사상 최초의 기록을 덤으로 얻었다. 6년 연속 A급 B급 왕래.

기풍

신예시절부터 끈질긴 수비를 바탕으로 통산 7할대를 유지하는 안정적인 기풍. 방어로 유명하지만 큰무대에서 후카우라를 자주 상대한 하부 요시하루는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장기라고 평했다.

기본적으로는 앉은비차파의 기사이며, 망루 울타리나 각행교환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2006년 이후 부터는 몰이비차도 사용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되었다.

초반전의 연구로 유명해서 "이것이 최전선이다!", "최전선 이야기", "최전선 이야기2" 3부작은 호평을 받았다.

에피소드

축구를 좋아해서 일본장기연맹 축구부 "케세라세라" 초대부장을 맡았다.

1999년부터 장기만화 "아유무의 말"을 감수하고 있다.

2006년 7월 2일에 실시된 JT장기 일본시리즈의 대 마루야마 타다히사 9단전에서 도중 천일수(동일국면이 4회 이상 연속되는 것)가 성립했지만 대국자나 해설자, 시청자, 관객까지 그걸 알지 못하고 대국이 진행된 결과 후카우라가 승리했다.(투료 우선 룰을 준용).

NHK에서 매년 1월에 방송하는 "버라이어티 대역전장기"(사회는 칸키 히로미츠)에서 게스트가 프로에게 이길 수 있도록 하는 변칙룰 장기를 할 때, 아이디어 맨을 맡곤 한다.

아침 식사는 반드시 밥으로 먹어야 하고 날 달걀을 빠트리지 않는다고 한다.

하부 요시하루와 30국 이상을 겨룬 기사들 중에서 가장 대 하부전 승률이 높다. 왕위전에서 타이틀을 빼앗았고 이듬해에도 첫 방위전에서 승리하는 등 하부 킬러로서의 면모가 돋보인다. 동문인 모리시타 타쿠와는 전법을 공동으로 연구하는 사이라서 ‘하부 씨보다 모리시타 씨와의 대국이 더 까다롭다’라고 말했다. 모리시타는 이에 대해 ‘장려회나 20대 시절에 노력하는 기사는 많지만 30대가 되어서도 후카우라 만큼 연구하는 기사는 드물다.’면서 이 부분이 자신감의 근원이 아닌가라고 평했다.

그 외에 81다이버 18권 해설 참고

간혹 하부 세대의 한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하부 세대로 분류되는 기사들보다 1~2년 연하이다.

http://ja.wikipedia.org/wiki/%E6%B7%B1%E6%B5%A6%E5%BA%B7%E5%B8%82

  1. (a) 선수권자에게 도전하는 대국, (b) 직함이 ‘아사히’가 된다, (c) 기사중에서 서열이 용왕명인, 다른 타이틀에 바로 뒤를 잇는다 (d) 우승 상금이 고액 (e) 9단의 승단 규정이 ‘타이틀 3기’에서 ‘타이틀 또는 아사히 오픈 우승 3기’로 변경 되었다는 등의 이유로 실질적인 의미에서는 타이틀전 [본문으로]
  2. 2008년 용왕전에서 와타나베 아키라가 하부 요시하루를 상대로 달성한 사상 2번째 3연패후 4연승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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