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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Drama

기독교와 로스트

기독교 신학에서 자유의지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이다. 기독교의 세계관에서 창조주인 신은 전지전능하며, 무소부재하고 완전히 선한 존재이다. 문제는 그런 존재가 만들어낸 세계에 악이 존재한다는 데 있다. 신이 창조한 세상에 악이 있다면 그것을 만들어낸 신에게도 악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게다가 신은 무소부재하고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자신이 만들어낸 세계에서 악이 존재하고,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기독교 신학자들은 어째서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지를 설명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고민을 해야했다. (기실, 논리적으로만 따진다면 전지하다는 것과 전능하다는 것 부터가 상충되지만, 그 바로 다음에 전능하다와 선하다는 개념의 충돌은 세계에 만연해 있는 수많은 악때문에 보다 실체적인 문제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세상에 존재하는 악에 대해서 신이 존재가 부족한 곳에 악이 존재한다는 논리로 설명을 시도했지만 이런 논리에는 수많은 헛점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악의 존재를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설명하기 위한 가장 유력한 해결책 중 하나가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지의 남용’에 관련된 이론이다. 신은 인간을 사랑해서 자유의지라는 것을 주었고 이는 인간이 존귀한 근본적 이유인데, 이것이 악용되면서 세계에 악이 들어왔다는 것으로 해결하는 이 논리에도 헛점은 있으나 C. S. 루이스 이후로 아직 선과 악의 문제에 속시원한 답을 제시한 기독교 이론가가 없는 이상은 가장 애용되는 설명이기도 하다.

기실 기독교의 경전을 읽어보면 그 중에는 수많은 실패담들로 가득하다. 아담은 사과를 따먹었고, 아브라함은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다. 이삭은 아이를 못낳았고, 야곱은 사기꾼이며 유다는 살인자요 며느리와 불륜을 저질렀다.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해방된 기쁨을 만끽할 새도 없이 금송아지를 숭배하고, 가나안 정복은 완수되지 못했으며 기드온은 우상을 숭배했다. 삼손은 머리가 잘리웠고 입다는 딸을 죽였으며 사울은 순종하지 않고 다윗은 살인자이고 솔로몬은 우상을 숭배했다. 그가 죽은뒤로 왕국은 분열되었고 제국들에게 점령되어 다시 노예로 끌려갔다가 돌아오기 까지, 기독교 경전은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비통하게 실패의 역사를 구구절절이 늘어놓고 있다. 영광을 맞이한 듯한 순간은 잠시 잠깐이요 인간은 줄기차게 그것이 본성인 듯 신이 원하던 방향을 어긋나게 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은 이런 수많은 실패들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상황, 에덴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급기야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결단으로 나아간다. 바로 이 때문에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에 맞춰지는 것이다. 예수는 그의 생애를 다룬 4권의 책에서 가장 중시되는 생의 마지막 3년, 흔히 공생애라고 부르는 시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광야에서 고행을 했고, 그 마지막 부분에 사단의 시험을 받았다는 기사를 주목해보자.

여기서 그의 적대자인 사단은 예수에게 빵을 돌로 만들고, 산에서 뛰어내릴 것을 요구하지만 예수는 모두 거절한다. 그의 생애를 다룬 책들에는 그가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수많은 사람에게 먹을 것을 제공했다는 내용이 적혀있고, 여러가지 병을 앓는 사람들 심지어는 죽은 사람까지도 살려냈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므로 문맥상 그가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이를 거절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세번째 유혹에 있다. 예수의 적대자는 그에게 자신에게 절을 하기만 하면, 세상을 다스릴 권세를 주겠다고 말을 하지만 예수는 이번에도 거절한다. 여기에서 기독교가 설명하고자 하는 내용은, 인간이 경배를 할 상대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 의지의 능력, 자유의지가 세상의 어떠한 부, 건강, 권력보다도 중요하다는 부분이다. 과연 예수는 마지막까지도 자신에게 있는 수많은 초자연적 능력들을 사용하지 않고 죽기까지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기로 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자유의지라는 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듯이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신의 자기희생으로 필멸의 운명은 변경되어 인간에게는 '구원'의 길이 생겼고 궁극적으로는 경전의 마지막 부분에서 묘사되듯이 세상의 모든 것이 본래대로 회복되리라는 희망을 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세계의 흐름을 보면 지구상에 선이 완전히 구현되려면 앞으로 가야할 길이 한참 남은 것 같다.

근원적인 부분으로 돌아가서 신은 전지 전능한 존재이므로, 인간이 자유의지를 이용해서 선악과를 따먹을 것을 알았을 것이고, 그것이 불러올 수많은 파장에 대해서도 알았을 것이다. 그로 인해서 세상에 들어온 악이 그토록 싫었다면, 또 그것이 어떠한 고통을 가져올지 알았다면 자유의지를 주지 말았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만약 예수가 자유의지라는 것을 포기했다면 문맥상 우리는 밥을 먹기 위해서 고생해서 일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이런 저런 죽음의 위험에서도 해방되었을 것이며 세상 모든 일이 신의 뜻하는 바대로 흘러갔을 것이다. 그런데도 기독교의 신은 인간의 자유의지가 그 모든 것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들이 죽어가듯, 세계 곳곳에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무고한 생명이 수없이 죽어나가는 세상에서 지금까지 서술한 기독교적 세계관이 어느 정도의 설득력이 있는지는 논외로 하고, 이제 로스트와 기독교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로 되돌아가보자.(로스트와 기독교의 관계에 대해서는 http://gall.dcinside.com/list.php?id=lost&no=35853&page=258)

지금까지 언급한 자유의지와 선악의 문제가 로스트에서 핵심적인 주제들 중 하나라는 것은 시즌 5에서 거의 확실해졌다. 시즌 5 마지막 부분에서 수없이 거론되었지만 아직까지 정체가 모호했던 제이콥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적대자와 나타나 운명과 자유의지에 대해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눈다.

제이콥의 적대자(편의상 앞으로는 적대자라고 부르도록 하자.)는 제이콥을 죽이고 싶어하지만 아직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은 어떤 이유(루프홀)에서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인간에 대해서 대단히 부정적이고 운명론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적대자는 인간이 파괴적인 본성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제이콥의 ‘시도’에 대해서 냉소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편 제이콥은 대화를 통해서 과거에 한번 이상, 아마도 수많은 실패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부정적인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지막 부분에 벤과의 대화에서는 그가 자유의지를 얼마나 중시하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

벤은 제이콥에게 왜 당신은 나를 그토록 외면했느냐고 따져 묻는다. 제이콥은 그에 대해 대답하는 대신 다시 한번 자유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그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벤은 제이콥을 죽이는 선택을 한다. 왜 그 모든 것에 순종하고 따라왔는데도 불구하고, 당신은 나에게 얼굴은 커녕 목소리 조차 들려주지 않습니까. 왜 다른 사람들은 멀쩡한데 하필이면 나만 고통을 겪게 합니까? 왜 하필이면 나입니까? 구약이라고 알려져 있는 유대인 경전의 욥기에 나오는 주인공 욥은 신에게 자신이 겪는 고통의 이유를 알려달라고 요구한 끝에 신의 대답을 듣는다. 신은 고통의 문제에 대답하는 대신에 뜸금없이 자연계의 경이로움을 늘어놓는다. 로스트의 벤은 제이콥에게 자신이 겪은 무시의 이유를 알려달라고 요구한 끝에 제이콥의 대답을 듣는다. 그리고 제이콥은 벤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에 뜬금없이 자유의지의 소중함을 말한다. 유다는 스승인 예수가 원하던 형태의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에 실망하고 그를 배신한다. 벤은 충성을 다했던 제이콥이 로크(?)에게 대하는 차별적인 태도에 불만을 품고 그를 배신한다.

여기까지가 시즌 5의 전개라면 시즌 6의 전개는 어떻게 될까? 비록 로스트가 기독교 드라마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드라마의 기저에 기독교 사상의 일부가 들어있다는 것은 명백하고, 이 드라마가 방송되고 있는 미국 시청자들 중에 기독교 신자의 수가 어느정도인가를 고려해본다면 앞으로도 이러한 요소를 고려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벤은 자신의 자유의지(사실은 적대자에 의해서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로 제이콥을 죽였다. 제이콥이 상징하는 것, 다시말해 인류가 멸망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그대로 죽어버린 것을 방관할까? 그렇다면 TV용 드라마 대본이 되기 곤란할 정도의 허무극이 될 것이다. 따라서 제이콥이 그대로 살아나지는 않더라도 예수가 되살아나듯이 최소한 그의 의지는 계승될 것이고 어떻게 해서든 인류의 비극적 운명, 발렌제티 공식이 언도한 사형선고는 바뀌는 방향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리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P.S. 예수를 팔아넘긴 유다는 자살했다. 제이콥을 죽인 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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