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hogi/Player

센자키 마나부, 수필가 기사는 무뢰류

센자키 마나부(先崎学) (1970년 6월 22일 ~ ) 기사 번호185. 아오모리 출신. 요네나가 쿠니오 영세기성 문하. 하부 세대의 한명. 타이틀 전의 경험은 없지만 모든 기사가 참가하는 대회에서의 우승 경력은 하부 요시하루, 모리우치 토시유키 다음이다.

기력

프로 입문 이전

1981년 가을 장려회에 입회했다. 장기계에는 어릴적부터 정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초등학교 5학년 입회는 빠른편. 게다가 6급이 아니라 5급 신인으로 입회 이전부터 요네나가 쿠니오 문하에서 하야시바 나오코 등과 더부살이 직속제자로 사사받고 있었다. 하야시바와 둘이서 신주쿠 장기센터에 다니곤 했는데 둘다 놀기 좋아하는 성격이었던 듯. 동년배인 하부 요시하루, 모리우치 토시유키, 고다 마사타카 등은 센자키 보다 1년 뒤에 입회했다. 센자키 마나부는 소년부 일본장기 대회 시절의 최강자였는데 그가 5학년때 장려회에 들어가 초등학교 대회에 출장하지 않게되면서 하부가 우승을 휩쓴다.

입회 10개월만에 초등학생인 상태로 2급까지 승격해 ‘천재, ‘천재 마나부’라는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여기서 2승 8패로 강등되면서 3번이나 강등하며 고전하다가 1급까지 오르는 데 2년이 걸리는 동안 하부 등에게 추월당했다. 당시 장기매거진에서 하부 요시하루의 4단 승단 기사를 실으며 하부에게는 "천재" 센자키에게는 "과거의 천재? 센자키 초단”이라는 코멘트가 있던 것 때문에 쇼크를 받았다고.

센자키가 3단이던 시절에 3단 리그 제도가 부활되어 4단으로의 승단은 반년에 2명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제1회 3단리그에서 12승 4패로 2위를 차지해 1위인 나카가와 다이스케와 동시에 프로에 데뷔했다. 당시 17세.

프로 입단 이후

1990년도 NHK배 우승. 이해에 통산 100승으로 승단했으며 연간 30승 이상의 페이스를 유지해 ‘천재 센자키’의 기세를 보여주었으나 순위전 최초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C급 2조에서 1조로 승격하는데 8년이 걸렸다. 8승 2패가 3회 정도 있어서 아까운 기회를 몇번 놓쳤지만 1995년에는 9승1패의 성적으로 마침내 첫 승급이 결정되었다. 2년후인 1997년에는 3기 연속 승급으로 단번에 A급 8단이 되었지만 2기 재적한 후에 B급 2조까지 강급된다. 이후 꾸준히 승단하며 제56기 순위전에서는 3기 연속승급으로 A급 8단에 올랐다. 하지만 2000년과 2001년에는 프로 데뷔 이래 처음으로 승률이 40%정도에 머물며 B급으로 강등되었다. 용왕전과 왕위전에서 도전자 결정전까지 진출한 경력은 있지만 타이틀 도전은 없고 모두 사토 야스미츠에게 패했다.

에피소드

인물

별명은 센짱. 기풍은 "무뢰류"라고하여 데이터에 의지하지 않으면서 국면에 대한 감각을 중시하는 스타일.

부인은 바둑의 여류기사인 호사카 마유. 결혼을 허가받기 위해 초등학생 명인 타카사키 잇세이 입회하에 아내가 될 사람과 대국을 갖는 시험을 치렀다.

젊은 시절부터 안경을 쓰고 다녔는데 2002년 바둑기사인 친구의 권유로 라식 수술로 시력을 교정했다.

소년시절에는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었다. 다나카 가쿠에이(일본의 전 수상)이 말더듬이를 낭곡(일본의 옛날 노래)을 불러서 극복했다는 것을 듣고, 끊어가면서 말을 해 보았는데 말더듬이가 고쳐졌다고 한다. 본인의 저서에서 다나카 수상을 은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집필활동

자유기고가로도 알려져 있다(주간 후미마루에서 칼럼을 연재한다.) 특히 사토 야스미츠나 하부 요시하루를 소재로 글을 기고하는데, 유명기사의 뜻밖의 일면을 알게 될 때가 많고 재미있기로 유명하다. 또, 2007년 4월의 "파칭코 필승가이드 NEO" 에도 기사 연재 중

가와구치 토시히코가 ‘장기 매거진’, ‘장기 세계’에서 약 30년간 맡아오던 ‘대국 일지’ 연재를 중단하자 이를 물려받아 센자키 버전 대국일지라고 할 수 있는 ‘센다가야 시장’(千駄ヶ谷市場)을 연재했다.

마작

격려회에 있던 중1시절부터 술집이나 마작장에 드나들다가 중학교를 자퇴했다.(중학교 2학년 정도까지만 다녔다)

제1회 마작 철인 결정전에서 프로와 아마추어 강호들을 누르고 종합 2위를 차지.

저서에서 ‘친치로 룰’ 등 간단한 마작 규칙이나 즐거움 등을 소개하고 있다.

배우인 하기와라 마사토와는 마작친구라고 한다.

기타 에피소드

하부 요시하루나 모리우치 토시유키를 상대로는 약하다. 데뷔후 10년간 대 모리우치 승률은 10% 수준.

젊은시절 모리 게지의 장기를 동경하고 있어서 처음으로 모리와 대국을 두게 되었을 때 삭발하고 시합했다고 한다. 모리는 가와구치 토시히코에게 그 이유를 듣게 될 때까지 스승인 요네나가의 설교를 듣고 마음을 다잡은 것인줄 알았다고 한다.

스승에게도 "요네나가!"라고 경칭을 생략해서 부른다. 요네나가에 대한 밀착 취재중인 텔레비전에 나왔다. 이것을 보던 칸키 히로미츠 6단은 "대단한 녀석이 있군..."이라며 감탄했다.

오오야마 야스하루 15세 명인의 장례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어 하부에게 "너랑 같은 금액으로 부의금을 내달라"고 부탁했는데, 하부가 수십만을 적어놓은 것 때문에 "저녀석 이상하다"라며 스승에게 하소연했다가 "오오야마 선생님의 장례에 참석하지 못할 정도의 용무가 뭐냐"는 질책을 받고 "이런 시시한 녀석"이라는 저서에서 소재가 되어버렸다. 그 보복으로 요네나가의 타이틀 전 해설을 할 때에 스승의 수를 "돼지같은 수"라고 평했다.)

사세 휴우지 문하가 될 예정이었지만 "유명인이 아니면 안된다"라고 고집을 부리다가 사세 휴우지 문하에서 가장 유명했던 요네나가에게 제자로 삼아달라고 졸랐다. 초등학생 이후부터 요네나가 쿠니오 문하에서 하야시바 나오코와 함께 더부살이 직속제자로 사사를 받았다. 당시에 요네나가는 ‘남자는 센자키가 여자는 하야시바가 천하를 잡는다.’라고 예측했다지만 하부 요시하루나 시미즈 이치요 등의 출현으로 ‘예상이 크게 빗나갔다’라고 말하고 있다. 직속제자 시절에 주된 일은 스승에게 신문 내용을 스크랩해서 모아주는 것("00의 주식은 값이 오를 것 같으니 사라"는 등등)이나 근처에 있던 동문, 이토 5단을 부르러 가는 것이었다.

사제가 되는 나카가와 다이스케는 동향 출신의 명인 나카하라 마코토가 있는데도 요네나가 문하를 선택한 것은 센자키가 있었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

한때 컬럼에서 ‘장기 복싱’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TV쇼에서 장기복싱을 해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2009년 3월 15일의 특집방송에서 전 세계챔피언과 대결해 장기에서는 우세했지만 KO패를 당했다. 관련 에피소드가 81다이버 등에서 소재로 사용되었다.

‘3월의 라이온’의 일본장기 관련 내용을 감수.

젊은 시절 아마추어를 상대로 말떼기 장기를 연습해 하부 세대 중에서는 드물게 많은 경험이 있다. 이 경험을 살려 상급자와 하급자의 입장에서 말떼기 장기에 사용할 만한 특수 전법을 정리해 ‘최강 말떼기 장기’를 낸적이 있다. 잡지 ‘장기세계’에서도 내용을 연재해 마지막기획으로 키무라 카즈키와 교대로 각행을 떼고두는 10초장기 10번 대국을 계획했지만 센자키가 각행 떼고 두기 장기에서 2번 패해 3승 7패로 졌다. 이 기획에 대한 사전 인터뷰에서 하부 요시하루는 10번으로는 비길 것이다, 후카우라 코이치는 어느쪽이든 이길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http://ja.wikipedia.org/wiki/%E5%85%88%E5%B4%8E%E5%AD%A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