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론의 고전인 손자병법에서는 먼저 이겨놓고 그 뒤에 싸우라고 강조한다. 이렇게 이미 이겨놓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손자는 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여기서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나왔다. 손자병법은 남을 알기 위한 방법으로 용간편에서 첩보활동의 필요성, 간첩의 유형, 운용과 첩보방법의 요령을 설명하고, 지혜로운 이를 첩자로 활용해서 남을 알게 된다면 반드시 큰 공을 이룰 것이라면서 첩보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오늘날 같은 정보화 사회에서도 인적 정보의 질과 중요성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스파이라는 활동이 실제로는 007이 그렇듯 항상 흥미진진할 수는 없고 그 내역면에서도 여러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보다는 스스로를 은폐하며 빠르게 사라져 버리는 관계로 첩보에 대한 깊은 내막들을 살펴보기는 쉽지 않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첩보작전의 인적정보원, 스파이들이 20세기의 현대사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23건의 주요한 첩보작전을 통해 돌아보며 역사의 어두운 한켠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들려준다. 흔히 접하기 힘들지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분야이기도 하거니와 저자인 어니스트 볼크먼의 전문 분야다보니 그의 독특한 화술이 빛을 발하고 보는 내내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목차
제1부 기만작전 : 사상 최대의 속임수
1.반혁명세력을 제거하라 : 트러스트 작전 1921~1924 - 가상조직을 만들어 서방세계를 속인 소련
2.CIA가 쿠바를 위해 일하다 : 쿠바의 이중간첩 1961~1987 - 카스트로에게 역이용당한 CIA
3.서부전선 이상 없다 : 보디가드 작전 1943-1944 - 2차대전의 D데이를 놓친 독일군
4.독일 스파이 A3725의 변신 : 더블크로스 작전 1940~1945 - 영국 최고의 스파이가 된 독일 첩보원
5.잘못된 선택이 불러온 대재앙 : 트램프 작전 1939~1941 - 독일 정보기관 압베르의 괴멸
제2부 암호와 감청 전쟁 : 보이지 않는 스파이들
6.에니그마를 정복하라 : 울트라 작전 1939~1945 - 독일 암호작성기의 비밀을 푼 연합군
7.미국의 손바닥 위에 놓인 도쿄 : 매직 작전 1936~1945 - 일본을 궁지에 빠뜨린 암호의 마술사들
8.레베카를 찾아라 : 콘도르 작전 1942 - 사막의 여우 롬멜을 눈멀게 한 영국
1부와 2부에서는 역사의 중요장면들, 2차대전이나 냉전 초기 등에 활약했던 첩보작전을 중심으로 전쟁에서 정보가 어느 정도로 중요한지를 강조해서 보여준다.
제3부 반역작전 : 내부의 적을 색출하라
9.조국을 위해 조국을 배반하다 : 그리핀 작전 1937~1945 -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을 저지한 독일 과학자
10.어부지리로 얻은 세기의 기밀 : 캔디 작전 1941~1945 - 소련에 원자폭탄 기밀을 건넨 미국 과학자
11.미국을 날려버려라 : 독일의 파괴공작 1915~1917 - 미국 내 이민자들이 참여한 폭파 사건
12.끝까지 소련인이고자 한 이중간첩 : 톱해트 작전 1959~1985 - 소련 장성을 통해 모스크바에 침투한 CIA
제4부 두더지작전 : 미로 속의 첩보 게임
13.CIA 내 이중간첩을 찾아라 : CIA와 KGB의 암투 1961~1974 - 냉전의 희생자가 된 소련 전향간첩
14.스웨덴판 쉰들러 리스트 : 발렌베리 사건 1944~1990 - 7만 유대인을 구한 스웨덴 외교관의 죽음
15.어지러운 첩보의 회전목마 : 베를린의 삼중간첩 1966~1989 - 4개국의 첩보기관을 농락한 부부 스파이
16.두 마리 토끼를 잡아라 : 미국의 기밀을 훔친 사나이 1939~1941 - 영국의 표적이 된 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
3부와 4부는 첩보작전의 보다 어두운 내막인 2중 간첩, 금전적 이익보다 정치적 사상이나 양심에 의한 스파이 활동을 다룬다.
제5부 실패한 작전 : 첩보역사상의 대실수들
17.진주만의 승자는 과연 누구인가 : Z 작전 1932~1941 - 진주만 공습을 둘러씬 미ㆍ일의 실수
18.철의 장막에서의 패배 : CIA의 지하전쟁 1947~1956 - 동유럽의 공산화를 막지 못한 미국
19.그 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위임통치령에서의 스파이 작전 1922~1937 - 미국의 실패가 앗아간 두 사람의 목숨
제6부 성공한 작전 : 대규모 작전의 눈부신 성과들
20.케임브리지 코민테른 : 5인조 스파이 1934~1951 - 영국의 스탈린 추종자들의 활약상
21.미국은 소련 스파이의 천국 : 워커 일가의 간첩활동 1967~1985 - 18년간 활동한 최고의 스파이 가족
22.텔아비브의 해적 : 플럼뱃 작전 1965~1968 - 핵무기 개발을 위해 우라늄을 빼돌린 이스라엘
제7부 무의미한 작전 : 첩보역사상 최대의 코미디
23.코미디로 전락한 첩보작전 : 콘플레이크 작전 1944~1945 - 무위로 끝난 미국의 독일민심분열작전
5부에서 7부까지는 작전들을 성공과 실패 사례를 중심으로 속개해준다.
아쉬운 점
이상에서 볼 수 있듯 볼크먼이 들려주는 소설보다 더 매혹적인 스파이 이야기는 역사적 대사건의 이면에 숨겨져 있던 또 다른 측면을 부각시켜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하지만 그런 첩보작전의 실질적인 영향은 어디까지이고 그 한계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는 잘 나오지 않지만 첩보망은 자국을 지키기 위해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국민을 감시하고 옭아매기 위해서도 사용되는 일이 왕왕 있다는 것은 좁게는 우리나라의 역사만 돌이켜 보면 결코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프락치 등을 이용해서 국가가 국민들을 장악하려고 할때, 국가가 가진 첩보라는 칼날이 적이 아닌 국민을 상대로 돌려질때 발생할 수 있는 위협에 대해서 논하기에는 정치적 논란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을까. 첩보의 흥미로운 면을 강조하다보니 심도가 떨어지는 면이 있긴 하지만 첨단 장비와 방대한 지원을 받는 첩보집단들의 자만이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는 우리의 상황에서 귀담아 들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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