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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gi/Strategy

사간비차의 역사 2

8. 급전 정석의 체계화

야마다 정석, 사기노미야 정석, 왼쪽은, 조융통은, 오른쪽은을 비롯한 현대적 정석들이 모두 정리된 것이 90년대로, 몰이비차 측이 ▲7八은(△32은)과 ▲6七은(△43은)이라는 두개 형태를 상대할 전법이 어느정도 정비되면서 이후의 체계화도 진행되었다. 특히 ▲5七은 왼쪽(△5三은 왼쪽) 급전에서 현저해졌지만 하나하나의 수가 의미를 갖게 되어 앉은비차 측의 전법에 좌우되지 않는 정석화가 이루어졌다.

이 체계화는 92년 "하부의 두뇌"이 간행되면서 이루어졌고 이 책의 1, 2권에서는 오른쪽 은, 왼쪽 은, 빠른 사기노미야 정석, 봉은이 선수, 후수인 경우를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필할 것은 후수 앉은비차 급전측이 △4二금을 기다려서 사간비차의 전법을 보고 전략을 바꾸는 수가 정리된 것이었다. 이 생각 자체는 그때까지 막연히 하나의 관념으로 존재하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전법을 정리한 것은 이것이 최초였다.

이 전법은 아오노 테루이치 저 "신 사기노미야 정석"에도 계승되고 있으며 완성된 전법인지는 확실하지 않더라도 지침으로서의 평가는 높다. 손을 데어본다는 것이 몰이비차 정석에 도입된 것은 이것이 처음이며 이에 의해 사간비차 정석은 최초의 1보를 내딛게 된 것이다.

9. 시대의 총아, 후지이 타케시

고바야시 켄지가 소생시킨 사간비차였지만 여전히 앉은비차 측에 있어 거비차 혈웅과 왼쪽 미노는 유력한 대책이던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후지이 타케시를 중심으로 하는 신세대의 몰이비차 파들로, 이들은 차례차례 새로운 대응책을 제시했다.

후지이 타케시는 왼쪽 미노를 목표로 90년대초에 즈음해서 ▲8七옥을 기본으로 하는 이른바 천수각 미노가 주류가 되어 있는 왼쪽 미노에 대하여 당시에는 대책에 불과했던 △7一옥에 주목했다. 그리고 연구와 실전을 거듭하면서 완성도를 높인 끝에 드디어 왼쪽 미노를 확실히 격파할 수 있게 되었고 대 왼쪽 미노전법의 결정판이라고 불리는 형태, 후지이 시스템을 창안했다.

천수각 미노가 옥두에 약하다는 것은 벌써 인지되고 있어서 오오야마 같은 기사는 실전에 활용하고 있었지만 이것은 종반에 사용하는 전법이었는데, 후지이는 이를 개량하여 초반부터 옥두를 노린다는 과격한 발상을 근간에 두어 왼쪽 미노의 새로운 대응책을 만들어내었고 이 후지이 시스템은 그 완성도의 높음때문에 형태만 갖추어도 완승을 거둘 수 있다 하여 왼쪽 미노의 결정판으로 불리며 마침내 왼쪽 미노를 프로장기계에서 일축해 버렸다.

이 형태의 연구에는 스기모토 마사타카(1968-)를 비롯한 다른 신예 몰이비차 기사들도 많이 관여했지만 이 전법에 가장 정통했고 많은 성공을 거둔 것은 후지이로 그의 이름이 붙게 되었다.

10. 새로운 사간비차, 타테이시 류.

90년대 초에는 새로운 형태의 사간비차가 두가지 탄생했다. 타테이시 류 사간비차는 아마츄어 타테이시 씨가 개발한 전법으로, 그 자신이 이 전법을 구사해서 아마 장기계에서 대활약을 거두었으며 ▲7六보 ▲7五보 ▲6八비로 이어지는 의외성 전법이지만 마쓰다식 이시다류의 연구를 이어받아 앉은비차 측의 급습에는 모두 호각 이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며 거비차 측에서 공격해오지 않는다면 자진을 정비해서 중반에는 본격적인 정식 전법으로 변화하는 것이 전법의 골자였다.

기존에는 꺼리고 있었던 앉은비차 와의 차처 교환, 각행 교환을 오히려 환영하는 새로운 기념의 사간비차가 등장하자 밸런스 중심의 장기에서 앉은비차는 혈웅을 짤 수 없기 때문에 그 대책으로 각광을 받았을 뿐 아니라 고바야시 켄지 9단은 이 전법을 구사해서 94년에 조지명식 선수권전에서 훌륭히 우승을 거두었다.

또, 이때부터 앉은비차 혈웅의 대책으로 사간비차 혈웅이 주목받으면서 스즈키 다이스케나 고바야시 켄지의 연구로 급속히 정석이 정비되어 힘장기 형태가 되기 쉬운 서로 동굴곰에서 정석의 세밀한 정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서서히 퍼져나갔다.

11. 초반 전술의 혁신, 거옥 후지이 시스템

왼쪽 미노를 공략해낸 후지이가 다음 목표로 결정한 것은 앉은비차 혈웅이었다. 당시 몰이비차 측을 압도해온 거비차 혈웅에 대해서 이렇다할 대책이 없었던 상황에서 후지이는 빠르게 옥을 방어해가는 앉은비차에 대해 속공을 걸 수 없을지 궁리했고 그 결과물이 95년 12월 22일 B급 2조 순위전 후지이-이노우에 전에 출연했다.

이 일국은 47수만에 후지이가 압승을 거두면서 후지이 시스템의 우수함이 밝혀졌다. 후지이 시스템은 옥의 이동과 방어는 뒷전으로 공격을 서둘면서 앉은비차가 급전으로 나와도 대응할 수 있는 것이 특징으로 말의 이용도 독특하고 각의 공격을 살려서 오른쪽 계나 향차를 주축으로 하여 앉은비차의 옥이 불안정한 동안 공격하게 된다.

△4五보 ▲동계 △7七각 승격 ▲동계 △4四은 ▲6四보 △8六보 ▲7一각 △8四비 ▲6三보 승격 △8七보 승격

이 후지이 시스템은 일본장기계의 핵심이 되어 그후 연구를 거듭해서 선수차례 작전에 한정되었던 것이 후수 차례에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옥의 위치도 3九에서 4八, 5九 등으로 옮기면서 거옥에서의 전법도 진보해 나갔다. 원래는 왼쪽 미노 대책이었던 후지이 시스템이 점차 거옥 상태에서의 앉은비차 혈웅을 경계한 진형도 포함하는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초반에 움직임 하나하나에 연구를 통해 생명을 불어넣고 의미를 갖게 하면서 후지이 시스템은 사간비차의 역사를 크게 바꾸어낸 혁명으로 구전될 것이다.

12. 황금기의 재래

후지이의 활약에 의하여 장기계에는 오오야마 이후 처음으로 몰이비차의 붐이 다시 일게 되었다. 후지이 시스템이 원동력이 되어 후지이 타케시는 96년 신인왕을 차지했고 98년 도전자 결정전에서는 하부 요시하루를 꺽었으며 7번국에서는 타니가와 코지를 물리치고 장기계 최고봉인 용왕위를 차지하였다. 이로써 톱 프로기사들 중에도 사간비차를 두게 되어 하부, 타니가와를 중심으로 타이틀 전에서 사간비차를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났고 97년에는 하부의 3국 뿐이었던 타이틀 전 사간비차 채용수가 98년과 99년에는 7국이 되었고 2000년에는 24국, 2001년에는 15국까지 격증했다.

또, 후지이의 뒤를 쫓아 스즈키 다이스케도 사간비차로 99년 용왕위에 도전했고 쿠보 토시아키는 2000년과 2001년에 기왕전, 왕좌전에서 도전자가 되었다. 스기모토는 2002년 아사히 오픈에서 준우승을 거두었고 몰이비차가 다른 기사들에게도 침투하면서 서서히 채용율이 올라갔다.

몰이비차로는 강해질 수 없다는 시기까지 있었는데 사간비차는 교양에 포함되는 시기까지 발전한 것이다.

13. 후지이 시스템 대책과 스즈키 시스템

후지이 시스템의 쾌진격을 앉은비차 측에서 멍하니 보고있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 후지이 시스템은 무리한 공격이라고 보였지만 산만한 모습을 우습게 보면 안된다고 판단하여 다양한 연구를 거듭하게 되었고 그 첫번째 대책이 미우라 히로유키가 선보인 밀레니엄 울타리로, 앉은비차 혈웅을 대신할 ‘후지이 시스템에 강한 새 울타리’의 출현이었다.

각의 공격로를 피해 후지이 시스템의 강공을 미연에 막은 의미는 컸으며 후지이 시스템 측에서 △2二비로 돌게 할 수 있는 제약을 주는 수가 발견된 적이 있었다. 그 외에도 2002년 형이라는 빠른 ▲8六각으로 후지이 시스템을 견재하거나 빠른 △6四보를 노려 ▲5五로 나오는 전법 등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후지이 시스템의 속공은 항상 구사할 수는 없게 되었고 이전의 은관 대 앉은비차 혈웅 구도가 다시 주목되었으며 후지이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는 스즈키 다이스케가 계속 발전시켜 나온 것이었다. 스즈키 다이스케는 많은 연구를 통해서 앉은비차 혈웅의 움직임에 맞추어 유연한 포진을 구사할 수 있게 했고 이것은 스즈키 시스템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로써 앉은비차 혈웅은 초기에는 후지이 시스템의 속공을 경계해야 하고, 울타리를 짜더라도 이번에는 스즈키 시스템을 상대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전법이 되어 이러한 정세의 변화로 다시 급전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앉은비차 혈웅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고 여전히 앉은비차의 유력전법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14. 사간비차의 현재

일시적으로 장기계를 석권한 사간비차지만 현재는 약간 정체상태라고도 할 수 있다. 몰이비차 측의 타이틀 도전이 장기간 없었고 융성의 반동인지 최근의 흐름은 삼간비차와 고키겐 중비차로 옮겨가고 있다. 특히 삼간비차는 사토 야스미츠가 왕장전에서 채용해 순수 삼간비차 나카타 이사오를 격파하면서 그 우수함이 널리 인정되었고 고키겐 중비차는 스즈키 다이스케나 타무라 코스케가 우수성을 알리면서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또 마스다식 이시다류를 기본으로 하는 이시다류도 조용히 부흥의 조짐이 있으므로 사간비차를 기본으로 종합적인 몰이비차 붐이 이루어 졌고 서로 몰이비차도 새로운 흐름이 되었다.

이에 대응되는 앉은비차 혈웅이 다시 대대적으로 세력을 결집하지 않는 한 몰이비차는 장기계의 주류 전법으로 확실한 지위를 쌓았다고 할 수 있으며 그중에서도 대표가 되는 사간비차는 앞으로도 몰이비차와 장기계를 선도해 나갈 것이다.

www.geocities.co.jp/CollegeLife-Labo/4499/shogi/chronicl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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