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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Arab Israeli conflict

레바논 내전 5. 베카 계곡의 공중전

6월 9일, 시리아와 PLO는 전진하는 이스라엘 지상군을 레바논 중부의 방어 거점에서 저지하고 있었다. 자동차에 탑재한 Sagger 대전차 미사일(ATM) 팀에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이스라엘도 보병, 포병, 기갑에 의한 연계와 반응장갑을 활용하여 ATM 공격에 대응해 나갔다. 격렬한 지상전을 거듭하면서도 이스라엘 지상군이 베카 고원의 입구인 Joub Jannine을 장악하면서 시리아는 베이루트의 주둔군이 포위될 위기에 처했다. 이 시점까지 아직 시리아와 이스라엘은 전면전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지만 레바논 주둔군이 괴멸될 것을 우려한 아사드 대통령은 시리아 군의 지대공 미사일(SAM) 망을 베카 고원으로 전진배치하도록 지시했다. 지난 전쟁에서 맹위를 떨치며 이스라엘 공군을 괴롭혔던 시리아군 SAM과의 2라운드가 시작된 것이다.

시리아 군은 모르고 있었지만 이 시점에서 이스라엘은 시리아 군의 SAM배치망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 군이 도입한 무인정찰기(RPV)들은 이 지역의 병력 이동을 낱낱히 관측했고 지상관측부대와 정찰기의 정보는 통신망을 관활하는 E-2C 호크아이 조기 경보기에 전송되었다. 이런 압도적인 정보력을 바탕으로 이스라엘군은 전진배치된 SAM을 걷어내고 시리아 공군에게 타격을 목표로 6월 9일 오후 2시를 작전 시간으로 계획한다.?


이스라엘 공군의 Remote Pilot Vehicle

96기의 F-15, F-16, Kifr C-2S가 제공권을 장악한 가운데 RPV는 전파방해를 개시했고 F-4 전폭기들이 파상공세를 개시하자 전자장비가 마비된 시리아군 SAM기지는 혼란에 휩쌓였고 연이어 제2파 92기가 공격을 개시하고 지상군이 포격을 개시하자 SAM? 포대들은 차례차례 침묵했다. 불과 1시간 만에 19개소의 SAM기지중 17개소가 완파되었고 남은 기지도 심각한 타격을 입은 상황이었다. 이스라엘의 손실은 A-4 1기와 F-4 1기에 지나지 않았다.


F-4 팬텀. 제공권 임무를 수행하기에는 노후화되었지만 레바논 침공 당시에는 신뢰성 있는 지상공격기로 맹활약했다.


베카 공중전의 상징처럼 된 그림. F-16이 미그기를 추격하고 있다.


IDF/AF F-15 이글. 당대 최강의 제공전투기로 베카계곡 공중전의 주역이 되어 무적의 성능을 발휘했다.?


이스라엘 공군의 Kfir C-2. 프랑스제 데저트 미라쥬 V를 이스라엘이 재설계한 것으로 J79엔진을 장비하여 작전반경이나 작전능력이 개선되었다. 1982년에는 지상군지원임무(Close air Support CAS)를 주로 수행했다.

이스라엘군의 제2파가 공격을 개시함과 동시에 시리아 공군은 MiG-21, ?23, ?25 및 수호이 Su-7s을 대규모로 출격시켜 요격에 나섰으며 지상의 시리아군 대공포가 지켜보는 가운데 양측 합계 200기에 달하는 전투기들이 베카 계곡 상공에서 공중전을 벌였다. 하지만 시리아 공군기의 접근은 이스라엘 조기경보기에 완전히 파악되고 있었으며 상대는 당대 최강의 제공전투기 F-15로 무장한 이스라엘 공군이었고, 더욱 큰 문제는 시리아 공군의 훈련은 전적으로 지상 기지에서 통제를 받는것을 전제로 이루어졌다는 점이었다. 즉, 시리아 공군은 독립적인 체계가 아니라 지상의 통제를 받는 대공방어망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되어 있었고 그 통제를 해주어야 할 기지들이 눈과 귀를 잃은 상황에서 이스라엘 공군의 전파방해(ECM)에 걸려든 상황에서는 전혀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시리아 공군의 MiG-23 가변익기로 상당한 성능이 기대되었지만 베카 계곡에서는 참패를 겪었다.

이날 이스라엘군은 제1전에서만 29기의 MiG기를 격추시켰고 그날 밤까지 41기 이상의 시리아 공군기가 격추된 반면 이스라엘의 피해는 전무했다. 2차대전 이후 단일 교전에서 공중전으로 발생한 피해로는 최대규모였고 전례없는 일방적인 승리였다. 이스라엘기의 격추는 대부분 1976년에 새로 도입한 신형 AIM-9L 사이드와인더에 의한 것으로 기체의 마찰열을 감지해서 적기의 전방향에서도 공격이 가능한 이 미사일은 적기를 HUD에 넣기만 하면 적기가 어떻게 회피해도 록온을 걸 수 있었다. 반면 시리아 군의 경우에는 전반적으로 공대공 유도미사일에서 열세에 있었고 소련의 신형 Atoll 도 성능면에서 훨씬 뒤쳐져 있었다.

이날의 공중전으로 제공권을 장악한 이스라엘은 해안에서는 해군의 지원포화에 힘입어 다무르(Damour)를 점령했고 밤까지 해안의 이스라엘 군은 베이루트를 불과 10km 남겨둔 지점까지 전진했지만 중부집단과 합류를 위해 대기에 들어갔다. 한편 중부군은 베이루트-다마스커스간 고속도를 점령해 나갔으나 시리아군 사령부는 제진(Jezzine)북부의 술탄 야쿠브(Sultan Yakoub)에 1특공대대와 제58 기계와 여단의 전차 및 대전차화기를 결집해서 매복시킨 채 이스라엘 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간에 시리아 군이 도로를 따라 맹포격을 가했기 때문에 야간에 전진하던 이스라엘 군은 10일밤 기습을 당했다. 시리아 군은 포격을 가해서 튀어오른 자갈들과 먼지로 시야가 차단했고 시계 확보를 위해서 해치를 열고 몸을 내민 이스라엘 군 전차장들은 매복해있던 시리아군 저격수들의 좋은 먹이감이 되었다.


M60 패튼을 개량한 마가크 6. 오른쪽의 ^ 표시는 소속 표시.

새벽이 밝기까지 이스라엘 군은 혼란에 빠져있었지만 상황을 파악한 후방의 이스라엘 포병들이 인마살상탄으로 지원포격을 실시하면서 상황이 호전되었고 해가 뜰무렵에는 양측의 전차전이 벌어졌다. 시리아 군도 다마스커스-베이루트 고속도로를 통해 지원군을 보냈지만 이스라엘 공군은 증원을 방해하여 시리아군 제1기갑사단의 전차 절반이 이동중에 파괴되었다. 6시간이 넘는 전차전 끝에 시리아 군은 퇴각했고 이스라엘은 베카-제닌을 잇는 도로을 완전히 장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