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도박과 같아서 시작하기는 쉬운데 그만두기가 힘들다. 이스라엘은 PLO가 국제적인 승인을 받으며 레바논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군비를 확충하고 있음을 전재로 전쟁을 시작했고, 시리아와 PLO가 레바논에서 축출되면서 물러날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문제는 어떻게 전쟁을 끝내냐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이 전쟁을 시작하기 전 계획했던 종전 작업은 레바논에 마론파 기독교 팔랑헤당의 젊은 지도자 바시르 제마엘을 내세워 친이스라엘 정권을 수립한다는 것이었다. 계획대로 1982년 8월 23일 바시르 제마엘은 단독후보로 출마해서 레바논 대통령이 되었고 그가 레바논 군을 재조직하여 시리아와 PLO? 세력을 몰아낸다면 리쿠드 당이 약속했던 40년간의 평화도 멀지 않을듯 했다.
바시르 제마엘. 팔랑헤당의 창립자인 피에르 제마엘의 아들로 경쟁조직들을 무자비하게 제압하며 레바논 대통령까지 올랐다.
아민 제마엘. 바시르 제마엘의 형. 동생과 달리 사업가로 활약하고 있었지만 동생이 암살되면서 레바논 대통령이 되었다. 온건파로 분류되었지만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이슬람계에 불리한 정책을 펼쳐 레바논의 혼란을 초래했다. 그의 아들 피에르 제마엘은 2000년에 최연소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산업장관 재직중인 2006년 괴한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그러나 1982년 9월 14일, 바시르 제마엘은 팔랑헤당 회합에 참석했다가 시리아의 비밀요원 하비브 사르투니에게 암살당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이루어낸 성과는 일순간에 쓰래기가 되었다. 계획이 틀어지자 이스라엘은 테러의 책임을 PLO에 돌렸고 미국과의 구두약속을 파기하여 서베이루트를 침공하며 사브라와 샤틸라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일어난 팔랑헤당의 학살을 방관했다. 일련의 사건으로 이스라엘은 국제사회로부터 강력한 비난을 받았다. 이스라엘은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고자 뒤를 이어 레바논 대통령이 된?바시르의 형 아민 제마엘을 지지하고 그와 "’이스라엘-레바논 평화조약’조인 및 국회 가결을 요구했지만 아민 제마엘은 바시르를 대신할 수 없었다.
사브라 샤틸라 학살
바시르 제마엘은 잔인하기는 했지만 혼란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높은 추진력과 결단력이 있었다. 아민 제마엘은 온건했지만 정치력에서는 동생과 비교될 수가 없었다. 레바논은 다시금 혼란에 빠져들었고 이스라엘도 정치적 추진력을 상실했다. 국제적 압력에 밀려 사브라-샤틸라 학살사건의 자체조사에 들어간 이스라엘은 국방장관 샤론과 참모총장 라파엘 에이탄, 이갈 얄론에게 책임을 물어 각기 현직에서 해임시켰고 83년 메나햄 베긴은 공식적으로 사임했다.
이스라엘 군은 여론의 악화에 의해 1983년 9월 부터 철수했다. PLO 축출이라는 대의에는 시아파도 동조하고 있었지만 레바논 남부는 이스라엘의 영향력에 두려는 의도가 드러나자 레바논의 각 정파도 적대감을 드러냈으며 1983년 10월 16일 레바논 남부의 나바티야에서 이스라엘군이 시아파 민간인에게 총격을 가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스라엘군은 격렬한 저항에 시달렸다. 매복공격, 차량을 이용한 자살폭탄공격, 폭탄테러 등등 수단과 장소를 가리지 않은 테러앞에 이스라엘 군은 끝이없는 수렁에 빠져들었다.
이스라엘군이 빠져나간 자리를 미국을 핵심으로 하는 프랑스, 이탈리아 군이 메웠지만 그들도 침략자로 비친것은 마찬가지였다. 미군은 레바논 대통령 아민 제마엘의 요청에 의해 레바논 정부군의 재건에 나섰지만 아민은 그러한 지원을 자국의 재건이 아니라 적대 세력의 탄압에 사용했다. 1983년 10월?5,400kg의 다이너마이트를 적재한 트럭이 미해병대의 베이루트 사령부에 돌진, 241명이 폭사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계속되는 자살폭탄테러에 시달리는 미군도 영향력을 상실하면서 1984년 이후 레바논은 통제불가능한 상황에 빠져들었다.
1983년 미해병대 막사 폭탄테러 사건.
1990년 집권 마론파가 세력변동을 반영한 헌법 개정에 동의하면서 레바논 정국은 다소 안정되었지만 1978년부터 1990년까지 이어진 레바논 내전은 15만명의 희생자를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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