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 7. 동부전역 - e. 2차 불런 전투 본문

History/American Civil War

남북전쟁 7. 동부전역 - e. 2차 불런 전투

아르미셸 2009.07.03 17:04

반도작전에서 리는 맥클랠런을 후퇴시키기는 했지만 북군은 아직 리치몬드를 노릴만한 위치에 있었고 지원군이 남하하고 있었다. 남군은 7일 전투에서 승리했으나 각 부대의 연계부족으로 너무 큰 희생을 치러야 했던 점을 고려해 북 버지니아 군 55,000 병력을 2개 군단으로 편성했다. 우익은 제임스 롱 스트리트, 좌익은 스톤월 잭슨이 지휘를 맡아 보다 효율적으로 지휘구조를 개편했다. 북군도 섀넌도어와 버지니아 반도에서의 작전 실패는 지휘체계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해 기존의 버지니아 주둔 북군을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프레몬트의 마운틴 군, 어빈 맥도웰의 라파해넉 군, 나타니엘 뱅크스의 섀넌도어 군, 워싱턴의 새뮤얼 여단, 웨스트 버지니아의 제이콥 D 콕스 사단 등을 통합해 새롭게 버지니아 군을 구성해 맥클랠런의 포토맥 군에게 가해지는 압력을 덜어주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로써 북군이 2개군으로 리치몬드에 압력을 가하는 상황에서 리는 양군을 각개 격파하고 여세를 몰아 북부의 메릴랜드로 침공할 계획을 세운다.

"본관은 제군들이 특출함을 획득할 기회를 갈망하고 있다고 확신하며 그 기회를 제공하려 한다. 그와 함께 제군들이 마음속에서 공허함을 몰아내기를 원한다. 본관은 계속해서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하고 그걸 지키며, 후퇴로를 구축하고 보급선을 구성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 생각을 버려라. 병사들이 얻기를 갈망해야 하는 것은 적을 향해 전진할 수 있는 길이다. 적의 후퇴로를 연구하고 그들에게 신경을 쓰도록 하라." - 존 포프.

버지니아 군

반도 작전에서 맥클랠런의 소극적인 지휘에 실망한 링컨 대통령은 북군 총사령관 직에 할렉을 임명했다. 신생 버지니아 군의 지휘관으로 링컨은 맥클랠런보다 공격적인 성향의 장군을 찾고 있었고 서부전선에서 몇차례 성과를 거둔 포프에게 기대를 걸었다. 버지니아 군은 5만 병력을 3개 군단으로 구성한 대군으로 포프는 이 군대를 지휘해서 워싱턴과 섀넌도어 계곡을 보호하며, 고든스빌 쪽으로 기동해서 맥클랠런을 포위하고 있는 남군을 끌어내는 두가지 임무를 받는다. 포프는 남군을 끌어내기 위해 고든스빌과 샤를로테빌, 린치버그 등에 기병대를 파견해 철도를 파괴하고 리치먼드의 보급선을 차단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나 그러나 분산배치된 기병대가 집결해 파견되었을 때에는 이미 스톤월 잭슨이 14,000명이 넘는 병력으로 고든스빌을 점령한 상태였다. 리는 맥클랠런과의 대치를 통해 그가 더이상 위협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해 병력을 전부 리치몬드 방어에만 묶어둘 것이 아니라 버지니아 군에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나아가 리는 북군이 맥클랠런과 포프가 지휘하는 두 부대로 멀리 떨어져 있는 동안 먼저 포프를 격파하고 나중에 맥클랠런을 쫓아내는 적극적인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남군과 북군의 기동. 교통의 요지인 고든스빌 공략에 나선 북군은 남군의 기동작전에 말려 불런까지 후퇴하게 된다.

기병의 정찰로 앰브로즈 번사이드가 지휘하는 3군단이 햄튼 로드에 있다는 것을 파악한 리는 이 부대가 포프의 증원군이라고 판단해 북군이 합류하기 전에 먼저 공세에 나서야 한다고 판단해 A.P. 힐 소장에게 12,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잭슨과 합류하도록 했다. 7월 29일 포프는 세더 산 근처로 병력을 이동시켜 고든스빌 공격의 거점을 마련하려 하고 잭슨은 8월 7일 포프가 병력을 집중하기 전에 교전하기 위해 컬페퍼로 전진하던 중 9일에 나타니엘 뱅크스의 병력에게 공격을 당했다. A.P. 힐의 가세로 뱅크스를 세더 크리크 너머로 몰아내었으나 이 시점에서 잭슨은 포프의 병력이 모두 집결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각개격파 작전을 포기하고 8월 12일까지 위치를 유지하다가 고든스빌로 후퇴한다.

이렇게 되자 8월 13일 리는 추가로 제임스 롱스트리트 소장을 보내 잭슨의 병력을 증원했고 맥클랠런이 버지니아 반도를 떠난 것을 확인하자 이튿날에는 2개 여단을 제외한 남군 전체를 포프에게 집중시켰다. 8월 15일에는 리 본인도 고든스빌에 도착해 지휘권을 장악해 맥클랠런이 도착해 포프와 합류하기 전에 배후의 교량을 파괴해 증원을 방해하고 북군의 좌측면과 배후를 공격하는 작전을 세웠으나 북군 기병이 리의 명령서 사본을 우연히 입수하게 되었다. 이를 보고 상황을 파악한 포프는 라파해넉 강까지 미리 군을 후퇴시켜 북 버지니아 군 전체를 상대하지 않고 시간을 끌며 포토맥 군의 증원을 얻어 2배의 병력으로 남군을 격파할 계획을 세운다.

8월 22일부터 25일 동안 라파해넉 강에서 일어난 일련의 교전으로 양군의 주의를 강쪽으로 집중된 가운데 물이 불어나 도강작전이 어렵게 되었고 8월 25일이 되자 포토맥 군의 3개 군단이 반도에서 도착해 포프의 군에 증원되었다. 리는 병력면에서 열세에 놓인 상황에서 강을 경계로 대치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우회기동 작전을 구상했다. 잭슨과 스튜어트에게 절반의 병력을 보내 포프의 통신선을 차단하고 오렌지와 알렉산드리아 철도를 파괴해 포프는 후퇴시키고 추격해서 격파한다는 작전안에 동의한 잭슨은 또다시 기동전의 대가다운 면모를 보여주게 된다. 8월 26일 저녁 포프의 우측면을 지나친 잭슨 군은 36시간에 걸쳐 50km이상을 연속으로 기동하면서 브리스토 역의 철도를 파괴하고 다음날 새벽에는 매너서스 교차점에 북군이 구축한 대규모 보급물자 집적소를 파괴하는 전과를 올린다. 기습을 당한 포프는 라파해넉 강의 방어선을 물러나 후퇴하면서 잭슨을 추격하는 상황에서 8월 27일~28일 밤 동안 잭슨은 계속 북쪽으로 이동해 작년에 싸웠던 불 런 근처의 전장까지 도착해 건설 중단된 철로를 따라 진지를 구축했다. 롱스트리트의 별동대도 북군 배후에서 트루페어 갭을 통과해 매너서스 교차점으로 향했고 리의 양익이 합류해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다.

2차 불런 전투


2차 불런 전투 전황도.

8월 28일, 잭슨이 포프의 군을 전투에 끌어내기 위해 북군에 공격을 명하면서 북 버지니아 작전 최대의 격전인 2차 불런전투가 시작된다. 수시간 동안 지속된 전투는 무승부로 끝을 맺었지만 포프는 잭슨이 함정에 걸려들었다고 생각하고 전병력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29일 포프는 잭슨의 진지에 맹렬한 공격을 수적인 우위를 이용해 큰 피해를 입혔지만 진지를 뺏는데는 실패했다. 기병대가 2개 보병군단에 전속되어 있어서 정찰능력이 제약되어 있던 포프는 롱스트리트의 위치를 모르는 듯 했고 롱스트리트도 잭슨이 고전하는 것을 보면서도 숲속에 위장되어 있는 자신의 부대를 투입해 지원하지 않았다. 8월 30일 포프는 공격을 재개했으나 전날 남군은 고지대에 배치를 마쳐둔 상태였고 포터가 이끄는 북군 5사단은 남군의 포격에 분쇄되었다. 이로써 북군의 좌측방이 붕괴되자 롱스트리트는 5개 사단 28,000명에 달하는 병력에게 일제 공격을 명해 북군의 측면을 강타했다. 남북전쟁 최대규모의 동시공격을 받은 북군 좌익은 괴멸되었고 버지니아 군은 불 런으로 후퇴했다. 해가 저물면서 후위가 효과적으로 지연시킨 덕에 1차 불런전투 같은 치욕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남군은 우세한 적을 상대로 완승을 거두었다. 리는 다음날 전군에게 추격을 명했고 잭슨은 북군의 후퇴를 차단하기 위해 측면으로 병력을 넓게 전개시킨 채 추격에 나섰다. 챈틸리 전투에서 잭슨은 북군 2개사단을 포착했으나 갑작스런 폭풍 속에서 벌어진 맹렬한 전투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포프는 아직 예비전력이 있었지만 패배에 압도되어 전군을 워싱턴으로 후퇴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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