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모델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몇몇은 설계를 변경했으며 영국해군은 일부 74~64문 장비 전열함의 상부 갑판을 제거해서 ‘래지’라고 불리는 전열함과 프리깃의 중간급에 해당하는 선박을 만들었다. 이들은 분류상으로는 프리깃이었지만 성능면에서 우위에 있었다. 소설 혼블로우의 주인공이 사관생도 시절에 근무하던 선박인 에드워드 펠로우 경의 HMS 인디패티거블도 ‘래지’에 해당한다.
전열함은 후기로 갈수록 점차 대형화 되어 크림전쟁에서는 그때까지의 상식을 초월하는 대형 전열함들도 선을 보였다. 1829년 진수된 마흐무디예 호는 오스만 제국의 술탄 마흐무드 2세가 지시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전함’을 만들라는 명령에 따라 3층 갑판에 128문의 대포를 장비한 초대형 전열함으로 세바스토폴 포위전에서 위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전열함도 있었으니 역사상 최대의 전열함으로 이름을 남긴 것은 프랑스가 1847년에 건조한 발미(Valmy) 호이다. 발미호는 가능한한 많은 대포를 탑재하기 위해 각진 상자같은 형태가 되었고 이 때문에 안정성이 현저하게 낮아져 수선하부에 나무로 된 안정판을 추가해야 했다. 인력에 의해 조종되는 범선으로는 최대한의 크기에 달한 이 전열함도 크림전쟁에 참전했지만 조종성 문제로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발미호는 크림전쟁 이후, 현역을 물러나 프랑스 해군사관학교의 기숙사로 사용되었다.증기기관의 도입
증기기관 추진기는 전열함의 개념에 처음으로 핵심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1810년대에 증기력이 처음으로 군사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했으며 1820년대에 각국 해군들은 외부에 보조륜을 부착한 증기함을 실험했으며 일부는 아편전쟁에서 전열함들과 함께 사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외륜에 의해 추진력을 얻는 증기기관은 추진기가 포화에 바로 노출되고 측면에 함포를 설치하기 어렵다는 단점때문에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1840년대에 영국과 미군은 증기기관에 연결된 스크루 프로펠러로 추진력을 얻는 새로운 군함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영국과 프랑스 해군은 기존의 전열함에 증기추진기를 덧붙인 군함을 진수시키기 시작했다. 1845년 팔메스턴 후작은 증기기관의 도입이 영국과 프랑스간의 긴장관계에 영향을 주어 영국해협에 “증기 교량”을 만들어 프랑스의 침공을 허용할 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프랑스와의 전쟁을 우려한 영국해군은 1845년부터 구형 74문 전열함을 증기기관 60문 포함으로 개조해 항만지역을 방어하는데 사용했다. 이 포함은 비용대 효과가 뛰어나 크림전쟁에서도 높은 전과를 올렸다.하지만 프랑스 해군은 1850년 이런 수준을 넘어 90문 장착형 전열함 나폴레옹 호를 최초의 진정한 증기기관 스크류 추진 전함으로 건조했다. 나폴레옹 호는 전통적인 전열함 처럼 무장하고 있었지만 증기기관의 힘으로 풍향에 상관없이 12노트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고 이는 엄청난 이점이었다. 이후 10년간 라 나폴레옹 호의 자매함 8척이 진수되었지만 영국은 산업력의 우위를 살려 같은 프랑스가 10척의 증기추진 전함을 신조하고 28척의 구형 전함을 개조하는 동안 18척을 신조하고 41척을 개조해 수적 우위를 유지했다. 결과적으로는 영국과 프랑스 만이 증기추진 전함들로 함대를 구성할 정도로 군비경쟁을 벌였지만 러시아, 터키, 스웨덴, 나폴리, 프러시아, 덴마크, 오스트리아도 증기추진 전함들과 외륜 장착 프리깃을 혼합해 함대를 구성했다.
전열함 시대의 종언
19세기 중반 이후에 전열함은 외피에 철재를 두르고 증기기관에 추진되는 철갑선에 대체되었다. 목조 전함과 철갑함 모두 신형 대포를 장비할 수는 있었지만 남북전쟁 초기인 1862년 3월 8일, 햄튼 수로에서 남군의 CSS 버지니아 호는 북군의 강력한 목조 전함들을 손쉽게 침몰시켜 버리자 전열함은 철갑선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이후 유탄포는 전열함 시대의 방어력에 종언을 고했으며 그 방어력을 능가하기 위한 대구경포를 배치하기에 전열함은 시대에 뒤쳐지는 디자인이었다.
함대전술
에스파냐, 네덜란드, 프랑스도 대함대를 건설했으며 프랑스는 함선의 질적인 측면에서 더 뛰어났음에도 영국 해군은 전열함 시대의 패자였다. 영국해군의 숙련된 포수들은 훨씬 더 잘 대접받았고 숙련도에서도 특출나게 뛰어난 데다가 지리적인 이점을 살려서 육군보다 많은 지원을 받고 있었기에 다른 대륙 국가들 처럼 해군 자원이 육군에게 우선권을 뺏기는 일이 없었다. 영국은 북해와 북대서양에서 다른 국가들과 수차례 해전을 벌여 육군을 지원하고 적군이 통상로에 접근하는 것을 방해했으며 발틱해에서는 스웨덴과 덴마크 네덜란드 러시아가 재해권을 다투었고 지중해에서는 러시아와 오스만 투르크, 베네치아와 포르투갈, 영국, 프랑스가 제해권을 다투었다.
나폴레옹 전쟁중에 영국은 코펜하겐 해전, 성빈센트 곶 해전, 아부키르만 해전, 트라팔가르 해전 등에서 유럽의 모든 주요 해군을 격파하고 압도적인 제해권을 달성했다. 이후 스페인, 덴마크, 포르투갈은 더이상 대규모 해군을 건설하는 것보다는 영국과 친선관계를 유지하는 정책으로 나섰고 1815년의 나폴레옹 전쟁은 영국을 명실상부한 세계최강의 해군국으로 만들어 수백척의 전열함으로 1850년대의 크림전쟁까지 바다의 패자로서 위치를 굳히게 했다.
그러나 나폴레옹 전쟁이나 미국 독립전쟁 기간에 전열함의 전통적인 전술로 싸워서는 도저히 영국과 겨룰 수 없다고 판단한 프랑스나 미국은 전열함 대신 슬루프나 스쿠너 같은 소형 경무장 선박을 이용해서 영국의 경제적인 생명선이나 다름없는 상선대를 공격했다. 전열함은 이들을 상대하기에는 수가 부족한 데다가 너무 둔중했다. 전열함의 화력은 압도적이지만 속도면의 열세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자 영국해군은 나폴레옹 시대의 사력선에 맞서 동인도회사의 상선처럼 가볍고 경쾌한 선박들을 무장시켜서 상선대를 호위하도록 하는 대응책을 강구했다.
복원선과 복제품
현존하는 유일한 전열함은 HMS 빅토리 호로 트라팔가르에서 호레이쇼 넬슨 제독이 지휘하던 때와 같은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비록 빅토리호는 드라이도크에 있지만 여전히 영국 해군 명부에 올라있는 현역함이며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역 군함이기도 하다.1628년 발트해에서 침몰한 바사 호는 1956년에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인양되어 1961년 보존작업을 마치고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바사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 1982년에는 영국의 그레이트 쉽 마리 로즈호가 인양되었다. 비록 남은 선체는 절반정도에 불과하지만 튜더 시대 영국선의 중요한 표본을 제시하며 당시의 선상 생활에 대한 중요한 자료들도 대량으로 발굴되었다. 포트머스에는 이와 함께 1860년에 건조된 빅토리아 여왕시대의 흑해함대 소속 군함중 유일한 생존함인 최초의 철재 증기추진 전함 HMS 워리어 호도 전시되어 있다.
1997년에는 프랑스의 유명한 프리깃함 레르미온느(L’Hermione)호의 복원계획이 시작되었다. 레르미온느 호는 미국독립전쟁때 라파예트 백작이 타고간 배로 진짜 레르미온느 호는 1793년 프랑스 해안에서 침몰했지만 1992년 인양되었으며 나폴레옹 전쟁중에 자매함을 입수한 영국해군이 설계와 구조에 대한 상세한 문서들을 남겼기 때문에 복원이 용이했다. 복재함은 원형함과 거의 모든면에서 동일하게 56m 길이에 26문의 12파운드 포를 장비하고 2998년 여름에 일반에 공개되었다.
연관링크
'History > Ship and Sail'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이킹 (6) | 2009.04.30 |
---|---|
철갑선의 기술과 전술 (2) | 2009.04.23 |
마법사인가 수학자인가, 존 디의 삶 (0) | 2009.04.23 |
갤리 6. 갤리선 시대의 종말 (0) | 2009.03.29 |
갤리 5. 중세의 갤리 (0) | 2009.03.28 |
북방항로 도전기 8-1. 혼란의 북방항로 (0) | 2009.03.18 |
코그 Cog (0) | 2009.02.02 |
컨셉시온 호와 윌리엄 핍스 (0) | 2009.01.03 |
루땡호의 종 (0) | 2009.01.02 |
북방항로 도전기 12. 테라 인코그니타 (1) | 2009.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