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미우리 신문사 주최. 일본장기의 총 7개의 타이틀전(용왕, 명인, 기성, 왕위, 왕좌, 기왕, 왕장) 중에서 명인과 함께 최고권위의 기전이다. 결승전인 "용왕전 7번국"에서 먼저 4승을 거두는 기사는 "용왕"이라는 칭호를 얻는다. 용왕전의 전신인 10단전과 다시 그것의 전신이 되는 9단전에서 부터 계산하면 1950년부터 이어지는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개요
요미우리 신문사가 1988년까지 주최한 10단전이 모체로 기전의 명칭은 일본장기말 중에서 "용왕"(비차가 승격한 말. 용이라고도 부른다)에서 유래했다. 용왕전으로 명칭을 변경한 이래 타이틀매치 중 가장 상금이 높은 대회로 승자 3,900만엔, 패자 1,500만엔이 걸려있으며 대국료도 용왕 1,450만엔, 도전자 700만엔으로 높다. 도전자 결정전의 대국료만도 350만엔에 달한다.
총 6개조로 나누어 용왕전 순위전을 토너먼트 방식으로 벌인다.
용왕전은 기전 서열상 명인과 동격으로 현역 용왕과 명인이 대국할 경우 기사번호가 빠른쪽이 상석에 앉는다. 혼자서 명인과 용왕위를 모두 보유하고 있으면 ‘용왕 명인’이라고 부르며 용왕(또는 명인)이 다른 5개 타이틀 중 하나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용왕(또는 명인)이라고만 부르는 것이 관례이다. 예컨데 용왕위와 왕장위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어도 용왕 왕장이 아니라 용왕이며, 전 7관을 독점하더라도 ‘용왕 명인’이라고 부른다.
용왕위를 5년 연속 또는 통산 7기 이상 보유한 경우에는 영세용왕 자격을 받을 수 있고 2010년까지 영세용왕의 자격은 와타나베 아키라만 갖고있다.
구조
독자적인 순위전과 본선을 치러 용왕전 도전자를 결정하고, 도전자는 용왕과 7번 시합한다. 소속조의 성적순위가 높고 자신의 조 성적 순위가 높을수록 용왕에게 도전권을 얻기 쉬운 시스템.
순위전
각조 준결승에서 패한 기사는 패자부활전의 승급자 결정전(1조는 본선 진출자 결정전)을 치르고 그중 3위 승급자(1조는 본선진출자 3위 ~ 5위)와 강등 결정자를 가린다.
본선진출자 결정전(1조 한정)
- 1조 3위 : 순위전 준결승의 패자 2명이 겨루어 우승자가 1조 3위가 된다.
- 1조 4위 : 순위전 2회전 패자 4명의 경기에서 이긴 1명이 1조 4위가 된다.
- 1조 5위 : 순위전 1차전 패자 8명에 의한 경기에서 승리한 1명이 1조 5위가 된다.
- 5위 결정전 1차에서 패한 4명은 2조로 강등된다.
승급자 결정전(2조 이하)
- 2조 3위(각조 2명) : 순위전 준결승에서 패한 기사들간의 승급자 결정전에서 선정.
- 2조 및 3조 강등자 4명 : 순위전 1차전에서 패하고 승급자 결정전 1차전에서도 패한 4명
- 4조 및 5조 잔류 결정전 : 순위전 1차전에서 패하고 승급자 결정전 1차전에서 패한 8명이 1:1로 겨루어 그 중에서 패자 4명이 강등
프로기사 이외의 출전권
6조에는 여류기사 (제7기 부터 2명씩 진출, 제22기부터 4명으로 늘었다.)와 아마추어 기사(아마추어 용왕전 4강)이 참가한다. 아마추어의 1회전 상대는 새로 4단이 된 프로기사 중에서 기사번호가 빠른 기사가 맡는다. 여류와 아마추어라 해도 승급조건을 충족하면 5조로 승급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승급에 성공한 아마츄어나 여류 기사는 없다. 지금까지의 최고 성적은 제4기 아마노 코시가 세운 준결승 진출.
제한시간
순위전과 승급자 결정전, 1조 본전 출장자 결정전은 각5시간, 잔류 결정전은 각 3시간으로 행해진다.
인원 과부족 조절
용왕전 7번국의 패자는 과거 재적하던 클래스에 상관없이 1조에 재적하게 된다. 만약 3조 이하의 기사가 도전자가 된 경우에 과거 그 기사가 재적하던 클래스는 정원 미달이 일어나고 1조는 정원초과가 일어나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추가로 잔류결정전을 갖는다. 1조에서 5위 결정전 2차전에서 패한 기사 2명이 1:1로 잔류 결정전을 실시해 패배한 쪽이 5인째의 2조 강등자가 된다. 2조 이하도 같은 방식으로 인원을 조절한다. 2007년 제20기 용왕전에서는 나카하라 마코토의 은퇴로 3조와 4조에서 조정이 이루어졌다.
본선
본전 토너먼트( 제18기)
본전 토너먼트( 제19기 이후)
순위전의 조와 순위에 의하여 위와 같이 위치가 결정된 토너먼트를 실시한다. 도전자가 되기 위해서는 현행 제도상에서는 1조 우승자는 2명을 물리쳐야 하고(도전자 결정전이 3번 승부이므로 3승이 필요) 5조, 6조의 우승자는 6명을 물리쳐야 (7승을 하게) 한다.
도전자 결정전(본선 결승)은 3번이 대국에서 먼저 2승을 거둔 사람이 용왕 도전자가 된다. 제한시간은 각 5시간이고 덧붙여 도전자는 2조 이하의 기사라도 자동으로 1조가 된다.
다만, 기존 용왕이 없던 1기에서는 각 조를 통과한 11명에 더하여 배정자로, 10단전의 마지막 타이틀 보관자인 타카하시 미치오 10단, 영세 10단 보관 유지자인 오오야마 야스하루 15세 명인, 나카하라 마코토 영세 10단 총 3명을 더해 14명이 토너먼트를 실시했다. 본전 토너먼트 준결승 3번국에서 타카하시 미치오 10단과 1조를 2위로 통과한 요네나가 쿠니오 9단, 나카하라 마코토 영세 10단과 3조 2위로 승리한 시마 아키라 6단까지 총 4명이 겨루어 3번씩 대국을 치러 각각의 승자인 요네나가 9단과 시마 6단이 용왕전 7번국을 실시해서 승리한 시마 6단이 초대 용왕이 되었다.(단수, 칭호는 모두 대국 당시의 것)
용왕전 7번국
용왕과 본선을 통과한 기사는 7번의 대국을 갖고 먼저 4승을 거두는 쪽이 새로운 용왕이 된다. 7번 국은 전국 각지의 여관이나 호텔에서 개최되며 특히 제 1국은 일본외에서 대국을 하기도 한다.(다음과 같이)
제한시간은 각 8시간으로 1국을 2일에 걸쳐서 실시힌다. 1일째의 마지막 날에는 봉수를 실시하며 2일째 개시까지는 공정한 승부가 되도록 한다.
일본 외에서의 대국
1990년의 제3기부터 1998년의 제 11기까지는 매년 행해지고 있었지만, 그 이후로는 2년마다로 변경되었다.
제3기(1990년) 프랑크푸르트
제4기(1991년) 방콕
제5기(1992년) 런던
제6기(1993년) 싱가폴
제7기(1994년) 파리
제8기(1995년) 베이징
제9기(1996년) 로스앤젤레스
제10기(1997년) 골드 비치(오스트레일리아)
제11기(1998년) 뉴욕
제13기(2000년) 상하이
제15기(2002년) 타이베이
제17기(2004년) 서울
제19기(2006년) 샌프란시스코
제21기(2008년) 프랑스
바둑의 타이틀전도 그렇지만 최근에는 대국자의 체력적 부담이나 경비 문제 등으로 일본의 3대 일간지 중, 마이니치, 아사히 신문은 해외에서의 대국에 소극적인데 반하여 요미우리 신문은 바둑, 일본장기의 국제적 보급이라는 관점에서 해외 대국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승단 기준
용왕전에 의한 승단 기준은 이하와 같다.
9단 - 2기 획득
8단 - 1기 획득(급수 추월 가능)
7단 - 용왕 도전(급수 추월 가능, 1조 승급
6단 - 2조 승급(급스 추월 가능)
그 외의 승단(7단까지) - 2기 연속 승급, 통산 3회 순위전 우승
6단 이하의 기사가 용왕이 되었을 경우, 바로 8단으로 승급할 수 있다. 이 제도는 2005년에 결정되었기 때문에 2004년 5단으로 용왕에 도전하여 용왕위를 획득한 와타나베 아키라 용왕은 2004년의 용왕 도전에서 6단으로 승급했고 2005년의 용왕전 출장을 도전이라고 보아 7단, 동년, 본제도 결정에 의하여 8단, 용왕 방위에 의하여 9단으로 승단했다.
그에 더하여 2006년 2월에 순위전 1조 승급자, 용왕 도전자에게는 7단, 2조 승급자에게는 6단, 연속 승급, 통산 3회 우승한 기사에게는 1단씩 승단(최대로 7단까지)할 것을 결정했다.(그 전에는 "순위전 연속 우승" 또는 "통산 3회 우승"이었다.)
에피소드
용왕의 꿈
일본장기 최고권위의 기전이지만 신예기사와 아마추어, 여류 기사까지 모두 참가할 수 있다. 실제로 시마 아키라, 하부 요시하루, 후지이 타케시, 와타나베 아키라 처럼 젊은시절에 갑자기 용왕위에 올라 주목을 받게되는 경우가 있다. 최소 클래스 용왕도전기록 보유자는 4조에서 본선에 진출한 사나다 케이이치, 후지이 타케시, 와타나베 아키라로 이중에서 와타나베 아키라는 용왕에 등극했다.
1조 우승자 징크스
1조 우승자가 가장 도전에 유리한 위치(18기 까지는 8장, 19기 부터는 4강)에 있지만 1조 우승자가 용왕에 도전한 적이 없다. 17기 까지는 도전자 결정전에도 못간다는 징크스가 있었지만 18기에 미우라 히로유키가 도전자 결정전까지 진출했다. 그 후 19기 부터는 1조 우승자에게 유리한 토너먼트 형식으로 변경되었지만 여전히 도전자가 되지 못했다. 일본장기계 불가사의 중 하나.
신인기사가 도전자 결정전 진출
제7기(1994년)에 전년도에 4단으로 승단한 직후에 가장 클래스가 낮은 6조에서 우승한 나메카와 히사시가 도전자 결정전까지 진출하여 어쩌면 4단에 승단하자마자 6조에서 도전자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 화제가 되었다.(결과적으로는 하부 요시하루에게 0-2로 패배).
초대 영세용왕 결정전
제21기(2008년) 4연패중인 와타나베 아키라 용왕에게 통산 6기 우승을 달성한 하부 요시하루가 도전해 누가 이기더라도 초대 영세용왕 자격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영세칭호 결정전은 전 타이틀 전을 통해 최초로, 결과적으로 하부가 3연승을 거둔 뒤에 와타나베가 4연승하면서 초대 영세용왕자격을 획득했다. 3연패뒤 4연승도 장기계에서는 최초의 사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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