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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World War

2차대전에서 유대인 희생자의 수

아르미셸 2009.01.04 02:11

홀로코스트 희생자가 600만명에 이른다는 주장은 1945년 뉘른베르크에서 제국보안국 소속의 빌헬름 회틀의 증언, 즉, 1944년 8월말 부다페스트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이 그때까지 살해된 유대인 수가 600만에 달한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는 데서 시작된다. 회틀은 이 가운데 400만은 수용소에서 희생되었고 나머지 200만은 소련에서 총살되었다고 기억했으며 뉘른베르크는 이 증언을 바탕으로 1946년 9월의 선고 공판에서 유대인 희생자가 600만명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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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제회담에서 추정한 유럽의 유대인 수. 총 1천1백만으로 산정하고 있다.

당시에는 희생자 수가 600만인 근거를 명확히 할 수 없었지만 1950년대 이후에는 유대인 희생자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다.

영국의 라이틀링어는 1945년 뉘른베르크에 제출되었던 검찰 기소장(총 추산 5,721,800명)과 이듬해 4월 런던에서 간행된 "유럽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한 영, 미 조사위원회 보고서"를 자세하게 검토한 후, 주요 항목별로 최저치를 채택하는 방법으로 피해자 수를 산출했다.

그는 반유대주의 집단에 꼬투리가 잡히지 않도록 아우슈비츠 수용소 희생자 수를 계산할 때에도 초대 수용소 소장 루돌프 회스가 제시했던 250만~113만 5천이라는 수치보다 훨씬 축소된 75만을 잡았고 최종적으로 전체 유대인 희생자 수가 최소 419만에 최대 458만 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분야에 기념비적 연구 결과를 제시한 것은 미국의 라울 힐버그로 그가 "유럽 유대인의 절멸"에서 밝힌 유대인 희생자의 수는 510만 명이었다. 힐버그는 게토 안팎에서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은 사람이 80만, 아인자츠그루펜을 비롯한 학살전담 인력에 의해 총살당한 사람이 130만, 수용소에서 살해된 사람이 최대 300만명으로 추정했으며 이후에도 다양한 연구가 나왔다.

1990년 홀로코스트 백과사전은 유럽 전역에서 살해된 유대인 수는 560만 내지 586만으로 추정했고 최근에 독일에서 유대인 학살연구의 권위자인 볼프강 벤츠는 공동연구에서 희생자 수를 620만 이상으로 파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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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어에 기록된 국가별 유대인 희생자 수

이러한 수치는 무엇을 근거로 추산한 것일까

유대인 "살인"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은

1) 게토 안에서 결핍으로 사망, 2) 마을단위의 집단 총살, 3) 절멸수용소 이송을 전후한 죽음 으로,

첫째, 결핍으로 인한 사망자는 독일 관료들이 남긴 게토 자료를 이용하면 판단하기 쉽다. 다만, 소규모 게토나 게토 밖에서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간 사람들은 제외될 수 밖에 없다.

둘째, 총살인 경우에 작전에 투입된 단위 부대별 희생자 수를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각 부대는 1941년 6월부터 1943년 5월까지 상세한 작전 활동 보고서를 베를린으로 제출해왔으므로 중앙에서 다시 작성한 친위대와 경찰 자료를 분석하면 대략의 희생자 수를 파악할 수 있다. 다만, 세밀한 계획 없이 국지적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학살 희생자는 자료에 누락되어 있으므로 이 경우는 희생을 가까스로 모면한 생존자들의 증언으로 보완된다.

셋째, 강제 수용소에 이송되어 희생당한 유대인들은 명부 작성과정을 걸치지 않고 살해된 경우가 너무 많아서 수용소 자료만으로는 정확한 수치를 파악할 수 없다. 다만 서유럽과 독일, 슬로바키아에서는 강제 이송전에 먼저 이송대상자 명단을 작성했고 폴란드에서는 철도청 직원들이 이송 업무를 주관하는 보안경찰에게 운송경비수납확인용 영수증을 발급하기에 앞서 이송대상자 명단을 작성했다.

따라서 이 두 종류의 문서들을 통해 피해자 수를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다.

친위대 소속의 통계학자 리하르트 코어헤어 박사가 남긴 유대인 학살에 관한 요약 자료도 희생자 수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상의 자료를 검토해서 중첩부분을 빼고 나머지를 합하면 희생자 총수가 나온다.

여기까지가 유대인 희생자를 산정하는 직접적 방법에 해당된다.

한편 이렇게 직접적 방법으로 얻은 수치는 다시 국가별로 나뉘어 재검토 되는데, 이것은 2차대전 종전 직후 실시한 인구통계에서 유대인 수를 확인하여 전쟁 발발 직전에 파악된 유대인 수를 빼는 방식이다.

전쟁기간의 출생율과 사망율 변화 및 국외 이주자의 파악이 포함되는 복잡한 산정을 통해서 보정한 "간접적 방법"을 거쳐서 비교 대조한 끝에 산출된 것이 위에 나온 전문가들의 유대인 희생자 추정수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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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 프로필사진 궁금한데 2010.09.17 15:35 신고 전쟁 발발전의 유대인 수와 종전 후의 유대인 수를 비교해 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동유럽에 통계에 잡히지 않은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고 그들이 죽었다고 주장하면 개소리라는 거 아시죠?
    유대인들은 워낙 거짓말을 잘하고
    자신들이 행한 악행은 악착같이 은폐/축소하고 자신들이 입은 피해는 워낙 침소봉대하여 믿을 수가 있어야죠.

    자신들이 팔레스타인의 마을을 초토화 시키고 아이들이 죽어 가는 것은 군사 작전이여서 괜찮고
    팔레스타인 유격대에 의해 유대인 몇 명이 죽으면 인류에 대한 범죄라고 주장하는 철면피들이라서
    그들의 주장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 프로필사진 아르미셸 2016.09.04 07:44 신고 한국인도 성격이 다양히듯 유대인도 성격이 다양하죠.
    글 끝부분에 보면 전쟁전 유대인 인구와 전쟁후 유대인 인구를 비교해서 그 차이를 낸 값과
    수용소 등에서의 '처리'기록을 비교해서 내어놓았다고 되어있습니다.

    그건 그렇다치고 지금 이스라엘에서 문제되는 행동을 많이하긴하죠.
    그러나 그걸 과거사에 비추어서 저들은 믿을 수 없다라고 하기에는 이 문제를 다루는 사람들이 유대인들만이 아니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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