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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World War

히틀러에 관한 소소한 사실

히틀러는 비트겐슈타인과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실업학교를 졸업한 후에 히틀러는 미대 입시에 두번 실패했다.
미대 입시에 실패한 유명 예술가는 꽤 있으므로 그다지 수치스러운 경력은 아니지만 본인은 크게 낙담했다.
히틀러는 당시 현대예술의 새로운 조류가 막 태동하던 시기의 예술동향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고전적인 작풍만을 탐닉하고 있다보니 예술가로서 대성하는데 필요한 독창성이 부족하게 보인 것이 큰 이유였다.

이 미대의 학장은 유대인이었는데 히틀러에게 건축가가 되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친절히 조언을 해주었다고 한다. 이것은 무명의 학생에게는 꽤 호의적인 대우였지만 히틀러는 이 사건을 자신이 유대인에 의해서 부당하게 예술가의 꿈을 접어야 했던 것으로 묘사했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국적으로 1913년 병역을 회피하기 위해 뮌헨으로 이주했다. 그는 국경만 벗어나 있으면 오스트리아 병역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확인도 안해보고 착각하고 있다가 병역 기피 문제로 1914년 체포되었지만 신체검사를 받은 뒤 “신체가 허약하여 현역은 물론이고 보충역으로도 병역을 이행할 수 없다”고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다민족 국가인 오스트리아에서 국민개병제를  그다지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았던 까닭도 있다.

1차대전이 발발하자 생활문제의 해결의 목적을 겸해서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국적인 채로 바이에른에서 독일군에 지원 입대했다. 전쟁중에 히틀러는 하사 대우 상병이 되었지만 성실하게 병역을 수행했고, 당시에는 전쟁으로 빠르게 진급하는 경우가 많았던 걸 고려하면 끝내 부사관이 되지 못한 것은 대인관계에 문제가 많고 혼자있기를 좋아해서 다른 사람을 지휘하는 임무에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1932년에야 독일국적을 취득했다.

히틀러는 1918년 8월에 1급 철십자장을 받았다. 훈장수여를 상신한 것은 그의 상관이었던 유대인 대위였다.

히틀러는 권총으로 자살했고 같이 죽은 에바 브라운은 음독자살했다. 사후에 가솔린을 붓고 소각시켰기 때문에 시신의 상태는 안좋았지만 소련군은 치아를 조사해서 히틀러 본인임을 확인했다. 자살에 사용한 것은 본인 소유의 PPK 라고 하지만 사체에 남은 탄흔은 보다 대형인 9mm라서 암살당했다는 설도 있다.

히틀러는 1914년 오스트리아 군에서 징병검사를 했을 때 허약체질 판정을 받은 바 있다. 그때의 기록으로는 신장 175cm로 오늘날보다 영양상태가 안 좋았던 그 시절에는 그다지 작은 키가 아니었다. 히틀러가 키가 작다는 이미지는 찰리 채플린의 "독재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사체 검사시에 추정 신장 163으로 기록한 것도 작은 체격이라는 이미지가 퍼지는데 기여한 듯.

히틀러는 고환이 하나밖에 없다는 설이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몇가지 설이 있으며 소련군의 사체 검증에서 왼쪽 고환이 없었다고 한다. 복부에 삽입된 상태인지도 조사했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히틀러의 주치의는 이 설을 부인했지만 실제로 확인된 것은 아닌 것 같다.

히틀러는 눈동자가 청색이고 모발은 금색이지만 성장하면서 검은색이 되었다.

히틀러는 어머니가 흡연을 싫어했고 부친은 음주 때문에 뇌졸증으로 죽은 것 때문인지 술과 담배를 싫어했다. 발지 대 전투 초기에 와인을 한잔하는 걸 보고 측근들이 놀랐다는 기록이 있으며 빈에서 지내던 시기에도 담배나 술은 일절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하지만 지인들의 증언중에는 밤중에 거리를 배회하다가 직업여성과 성관계를 가진적도 있다는 것이 있다.

보르만에 의하면 히틀러는 빈에서 지내던 시절에는 담배를 피웠지만 돈이 없어서 담배를 끊기로 했다고 한다.

질녀 게리가 죽은 뒤에는 금주, 금연에 더해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건강을 굉장히 중시해서 독일민족의 건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정책에도 반영했다. 식품 안전기준 강화, 금주 금연 홍보, 여성 보건체육 강조 등등 공공보건을 주요 정책으로 삼았다.

대화를 할때 어린 시절부터 죽기까지 "자화자찬 하는 성향이 강하다"라는 것이 공통된 평. 자기 자랑을 하지 않고서는 대화가 불가능했다고도 한다. 기분이 안좋을 때에는 소아기적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로 자기 중심적인 성향이 강해서 비판하는 말을 견딜수 없어했다고 한다.

지식인들에 대해서는 "지식은 있지만 감정이 없다"라고 굉장히 싫어했다.

주변에 영리한 발언을 하는 사람을 두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점점 주변에 예스맨만 남게된 원인이 된 것 같다.

히틀러는 자신의 본질은 정치가 라기 보다는 예술가라고 생각해서 우수하다고 평가한 예술가들에게는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괴벨스 같은 경우에도 주변에서는 예술에 관련된 화제를 주로 했다고 한다.

슈페어와 함께 있을때에는 정치 문제를 뒷전에 두고 예술 이야기만 몇시간씩 해서 측근을 곤란하게 한적도 있다고 한다.

여성이나 아이들에게는 상당히 너그럽고 친절하게 대했다. 비서들에게 화를 내거나 하는 적이 없었고 요리사에게도 친절했다. 처칠이 사용인들에게 대단히 거칠게 대했던 것과는 좋은 대조가 된다.

늦게자고 늦게 일어나는 야간형 인간이었다.

1936년 부터 무리한 채식주의 식습관 때문이었는지 위경련, 불면증 등으로 고생했다. 1942년 부터는 왼손이 떨리는 수전증이 심해졌다. 1944년에 들어서는 등이 굽어서 걸음 걸이도 둔해졌다. 전국의 악화에 따라 불면증도 심해져서 거동이 불편했다고 한다. 이러한 증세들과 당시의 기록영화 주변인들의 증언으로 보건데 치매증세였다는 의견이 있다.

말년에는 시력감퇴도 현저해서 문자를 일부러 크게 한 문서도 확대경으로 들여다 보아야 했다고 한다.

다한증이 있어서 젊은 시절부터 암내가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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