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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note

즐거운 사라를 위한 변명

우리는 포르노그래피에 관한 권리를 갖고 있는가?

한때 엄청난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던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가 출판금지당하고 마광수 교수가 음란죄 위반으로 기소된 지도 10여년이 훌쩍 지났다. p2p를 통해 온갖 음란물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성문화에 관하여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는 어떤 관점을 갖는가?

이제는 포르노그래피라기 보다는 재털이 부인의 사랑 내지는 자유부인 정도의 애교로 보이는 즐거운 사라를 기억하며 제목을 붙여본다.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논쟁의 출발

1859년 밀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한다 "~행동의 자유를 간섭하는데 인류가 정당화될 수 있는 유일한 목적은 개인적으로건 집단적으로건 자기보호이다. 문명화된 공동체의 어느 구성원에 대해서든 그의 의사에 반해서 권력이 올바르게 사용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타인들에 대한 해악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물리적이든 도덕적이든 그 개인의 선이 정당한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이것이 바로 공리주의적 법철학의 기초이며, 성문제, 두발제한 문제등의 출발점이다.

이에 대한 최초의 반박은 제임스 스티븐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는 "타인들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와 자기 자신에게만 해를 끼치는 행위를 명확하게 구분할 기준은 없다."라고 주장하면서 '사회적으로 동의받는 악에 대한 처벌은 입법의 정당한 목적이며 대다수의 시민들은 그것을 제약으로 느끼지 않고 오히려 이와는 반대로 악에 대한 혐오감을 충족시키고 무질서한 보복을 대체하는 적합한 대안이다"라고 주장했다. 이후 영국에서는 약 1세기에 걸쳐서 법과 도덕, 개인의 자유와 국가권력의 권한의 관계가 논의되었다.

올펜덴 보고서

1954년 매춘과 동성애에 관한 형법규정을 재검토하기 위하여 올펜덴 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이 위원회는 1957년 보고서를 제출하여 매춘과 동성애에 관한 규정을 다음과 같이 바꾸도록 권고했다.

- 매춘 그 자체는 처벌되어서는 안되지만 매춘부들이 호객행위를 길거리에서 하는 것은 처벌해야한다.

- 사적으로 은밀히 행해지는 매춘은 당사자 외의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다.

- 상호간의 동의에 의하여 성인간에 사적으로 행해지는 동성애는 형사적 범죄가 아니다.

이 보고서는 다음의 근거에서 이러한 결론을 도출해내었다. "형법은 공공질서와 풍속을 보존하고 시민들을 범죄와 권리침해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며 타인의 착취나 타락에 대해서 충분한 안전을 제공하는 것이다. 특히 미성년자, 심신미약자, 육체적 경제적으로 의존상태에 있는자 등 쉽게 권리를 침해받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다. 법의 작용을 통해서 범죄의 영역과 죄악의 영역을 동일시할 만큼 사회에 의해 신중한 조치가 필요하지 않다면 사적 도덕과 부도덕의 영역이 남아있어야 한다."

이것은 서두에서 거론한 밀의 해악의 원리에 근거한 것으로 이에 의하여 1959년 음란물 출판법에 있어서도 법적 금지를 위해서는 그 출판물에 의해서 누군가가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일반화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이 보고서는 데블린 경에 의하여 전면적으로 반박되었다.

데블린은 "도덕의 강제"라는 주제로 "사회는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의 견해에 비추어 비도덕적인 행위는 어떠한 형태든 처벌할 권한을 갖고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즉, "문제의 행위가 개인이나 집단에 해를 끼쳤다는 입증이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데블린은 올펜덴 위원회가 근거하고 있는 철학적 토대, 특히 해악의 원리에 대해 맹렬한 비판을 하면서 사회의 도덕이 법에 의해 강제될 수 있는 정당화 근거로, '사회 응집력'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데블린 경

그의 주장의 논지는 크게 세가지 물음으로 정리된다.

- 사회는 도덕의 문제들에 대해 판단을 내릴 권리를 갖는가? 다시 말해, 사회는 도덕을 지탱할 책임이 있는가?

- 만일 사회가 판단을 내릴 권한을 갖는다면, 사회는 그 판단을 집행하기 위해 법적 수단을 사용할 권리를 갖는가?

- 만일 그렇다면, 사회는 그 수단을 모든 사안에 적용할 수 있는가 아니면 단지 한정된 사안에만 적용해야 하는가. 그리고 만을 한정된 사안에만 적용할 수 있다면 어떤 원리가 그 사안들을 구분할 것인가?

이에 대한 논증을 상세히 짚어보자.

(첫 질문에 대한 논증)

"사회는 이념의 공동체를 의미하며, 정치, 도덕, 윤리에 대한 공유된 이념없이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각자 어떤 것이 선한것이고, 악한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사적영역으로 격리될 순 없다. 만약 선과 악에 대한 근본적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사람들이 만들어내려고 한다면, 이들은 실패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런 사회가 존재한다면, 그 사회는 붕괴될 것이다.

사회는 보이지 않는 공통된 사고의 결합에 의해서 유지되며 결합이 지나치게 느슨하다면 구성원은 뿔뿔이 흩어지게 될 것이다. 공통의 도덕은 예속의 일부이며, 그러한 예속은 사회가 치뤄야할 대가의 일부이고, 사회를 필요로 하는 인류가 반드시 지불해야할 대가이다. ~ 안락사, 동의에 의한 살인, 자살, 자살미수, 자살동맹, 결투, 낙태, 형제자매간의 근친상간 등은 모두 타인에 대한 침해없이 사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행위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사적 도덕의 문제이기 때문에 형법에서 배재되어야 하는 것인가?"

결국 데블린은 공동체주의와 공리성을 결합하여 사회는 무엇이 선하고 악한지에 대하여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정의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도덕적 원칙들은 그것이 보다 좋은 삶을 제공한다는 이유를 들어 사회가 준수하도록 요구하는 행동의 기준, 도덕원리들이 존재하며 이러한 기준에 대한 위반은 단지 침해를 받은 개인에 대한 범죄를 넘어서, 사회 전체에 대한 범죄"라고 결론짓는다.

(둘째 질문에 대한 논증)

두번째 질문에 대하여 그러한 사회적 도덕의 문제에 있어서 도덕을 법률로 강제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올펜덴 위원회 보고서가 주장하는 "윤락업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윤락녀를 착취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이다. 이들이 착취하는 것은 윤락녀와 소비자간의 복합적 관계 전체이며 결과적으로 이들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윤락녀를 구하게 하고 윤락녀로 하여금 그러한 요구에 응하게 하는, 인간의 유약함 그 자체를 착취하고 있다"는 것을 반박함으로서 논증한다. "모든 성적 부도덕은 인간의 유약함을 악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유약함을 착취하는 사태가

특수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법을 배척하는 한정된 도덕의 영역이 따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보다 쉽게 말하자면, 데블린은 첫번째 물음에서 사회의 도덕적 영역과 법적 영역의 경계선 상의 문제들을 부각시킴으로써 양자를 모호하게 하고 다시 반박을 통해서 선을 구분지어가는 전략을 두번째 물음에도 원용하여, 사회는 법적수단을 통해서 외적 내적으로 그 자체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권한이 있다는 논거를 확장해나간다.

(셋째 질문에 대한 논증)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의 개인적 영역에 대한 간섭의 한계는 어디까지 가능할 것인가? "다수가 어떤 행위를 싫어한다는 것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다. 진정한 비난의 감정이 있어야 한다."

~동성애에 대해 일반적 혐오감이 있다고 하자. 우리는 먼저 그것을 조용하고 냉정하게 바라보며 과연 그것이 너무 혐오스럽기 때문에  그것의 존재 자체를 침해가 되는 악으로 간주할 것인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 만일 그것이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의 진정한 정서라면 그것(해당되는 악)을 뿌리뽑을 수 있는 사회의 권리가 어째서 거부되어야 한다는 것인가?

우리는 동성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느낄 수도 있다. 만일 그것이 제한된다면, 관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동성애가 확산된다면 그것은 대단히 위해로울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회는 간통을 이러한 방식으로 생각한다. 간통이란 일정한 경계 내에 제한되어야 하지만, 뿌리뽑을 수 없는 자연적 유약함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데블린은 법은 사회의 보호,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 사회가 공동적으로 인정하는 가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주정하면서 상해, 부패, 공포, 악용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것만으로 법의 기능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법은 정치적, 도덕적 이념의 공동체와 제도들을 보호하는 것이며 사람은 이러한 것들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하트

하트는 자신의 논문에서 이러한 데블린 경의 주장에 대한 반박을 전개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도덕의 붕괴는 사회를 붕괴시키는 것이라기 보다, 하나의 변화이다. 이러한 도덕의 변화가 가능한 것은 개인에게 충분한 자유가 주어졌을 때, 적어도 도덕의 영역에서 자율적인 판단과 개인의 자유로운 실험정신이 최대한 허용되고,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행동으로 인해 사회는 새로운 사회로 탄생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트는 "의심할 여지없이 관습적인 성도덕으로부터의 일탈이 법에 의해서 관대하게 취급된다면, 동성애가 법적으로 처벌되지 않는 유럽국가들의 경우와 같지는 않겠지만

관습적인 도덕은 동성애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변화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방향이 변화된다 해도, 사회는 붕괴되거나 전복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발전을 정부의 폭력적 발전이 아닌 평화적인 변화로, 또한 사회의 보전일 뿐 아니라 진보로 비유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드워킨

여기에 매우 추상적인 권리인 "도덕적 독립권(도덕적 자기결정권이라고 할 수도 있다.)이 있다고 하자. 어떤 사람이 동성애를 즐기고자 할때, 다른 이들이 그를 비난하는 상황에서

그는 '네 일이나 신경쓰세요'라고 할 수도 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사람들이 사적으로 자유롭게 동성애를 즐긴다고 해서 그 공동체가 장기적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 가정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인류의 번영에 적합하지 않은 권리들은 존중될 가치가 있는가? 존중받아야 한다면 어떠한 이유로 존중받아야 하며, 그 권리를 언제 사회에 의해 침해받는가?

이 질문들은 매우 복잡하다. 드워킨은, 이 물음들에 대해서

1. 단기적으로 우리에게 내키지 않는 일이라 하더라도 받아들인 다면 장기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가치관들이 있다. 예를 들어보자.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을 옹호하는 발언, 나찌의 유태인 학살을 옹호하는 발언, 북한의 독재체제를 옹호하는 발언들을 담은 출판물이 배포되는 것을 금지해야 하는가?

이러한 혐오스러운 정치적 표현을 관용함으로써 정신적 고통을 받거나 그러한 정치적 주장에 다른 사람들이 설득 당하는 경우가 발생함으로써 단기적으로는 더욱 사태가 악화될 수도 있지만, 우리들이 그러한 담론을 허용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사회가 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충분한 이유들이 있다.

2. 외설물에 표현되거나 조장된 성에 대한 태도가 비열하거나 추잡하다거나 혹은 인류의 최상의 조건에 부적합하다는 가설이 비록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가설들이 외설물 출판 규제의 근거가 될 때에 사회는 개인의 '도덕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 보다 나아가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가설을 받아들이며, 공동체의 일부 구성원들이 추잡한 책을 읽거나 추한 그림들을 볼때 이들이 고통을 받거나 혐오감을 느끼는 경우라 할지라도, 그것이 일반적인 금지의 근거로 작용된다면 사회는 역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약간 논의를 극단적으로 진행해 보자.

포르노의 사적 소비가 일반적인 폭력범죄나, 보다 구체적으로 성범죄를 눈에 띄게 증가시킨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고 가정해보자. 혹은 포르노의 소비가 일반경제에 보다 구체적이고 해로운 효과를 가져온다고 가정해보자.

예를 들어서, 음주나 아침텔레비전 드라마에 대한 일부 비판처럼 포르노가 만연하여 엄청난 직장 결근사태를 초래함으로써 경제에 해로운 효과를 가져온다고 하자. 정부는 이러한 사실들 중에서 포르노를 제한하거나 금지시키기 위한 정당화를 확보하려 할 것이다. 어떻게 본다면 성경책이나 셰익스피어 또한 이러한 불행한 결과들을 낳을 수도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보다 미묘한 쟁점을 제기한다. 셰익스피어나 성경책 그리고 많은 형태의 포르노를 포함하여 정서적으로 강력한 힘을 지니는 문헌들이 범죄에 기여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증거들을 선별적으로 채택한다.

많은 사회들은 대부분의 포르노와 정부가 가치없는 것이라고 여기는 문헌들은 금지시키면서 셰익스피어나 성경은 허용한다. 셰익스피어나 성경은 문학적, 문화적 가치가 있기 때문에 이것들이 야기하는 범죄에도 불구하고 보존할 가치가 있다는 근거로. 이러한 차별은 어떤 기준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가?

사회의 규제를 중시하는 이들은 "포르노는 일반적으로 그것이 공공연하게 전시된다면 그것을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상하게 하며, 그러한 결과는 다른 사람들의 권리와의 충돌을 일으킨다. 따라서 포르노를 허용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적으로만 이용할 수 있도록 제한되어야 하며, 일반대중이 일상생활에서 접하지 않도록 규제해야 한다"고 개인적 윤리관을 사회가 관여하고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드워킨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지적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광고판에서 적나라한 누드사진을 보고서 갖게 되는 불쾌감은 이들의 도덕적 신념과 거의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포르노를, 동성애를 제한해야 한다는 논거들의 다양한 동기들을 접할 수 있지만, 그러한 동기들에 내재해 있는 도덕적 동기의 실질적인 영향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성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의 자식들에게 권하고 싶은 성관념에 대한 그의 태도들은, 넓은 의미에서 그의 도덕적 관점에 의해서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그 자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결국 포르노 규제의 논거에는 성에 대한 태도, 신념, 취향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개인의 도덕적 독립이라는 추상적 권리를 방어하고 보존하려는 사회는 적어도 두가지 선택을 해야 한다

하나는 만일 소수, 혹은 소수의 행동에 대한 대중의 태도가 대단히 복잡하게 혼합되어 있고 상반되는 도덕적 신념들의 영향력을 배제하거나 측적할 수 없다면 대중의 태도는 특정한 신념에 의하여 좌우되고 있으므로 어떠한 규제도 허용할 수 없다.

또 하나는 대중의 태도가 혼재되어 있는 경우는 추상적 권리의 집행에 있어서 특수한 경우이므로, 추상적 권리의 집행하에서 사람들은 어떠한 권한을 가질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보다 구체적 진술을 통하여 대중의 혼재된 태도를 신중하게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보다 구체적 차원에서 어떠한 누구도 법적 제약에 의해서 심각한 손상을 입지 않아야 한다.

축약한다면, 공적 관리는 포르노그라피를 출판하거나 즐기는 것과 그것이 광범위하게 허용될 경우 다른 사람들에 대한 침해 중 어느 것이 심각한 것인지 혹은 사소한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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