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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American Civil War

남북전쟁 외전 4. Marching through Georgia

남북전쟁 관련 포스팅이 점점 늦어지고 있는 중에 곁가지를 끄적거려 봅니다.

1절
Bring the good old bugle, boys, we'll sing another song
Sing it with a spirit that will start the world along
Sing it as we used to sing it, 50,000 strong[4]
While we were marching through Georgia.

옛 나팔을 가져오게 전우여. 함께 노래하리라.
세상을 뒤흔들 혼으로 부른다.
5만 전우가 함께 부르던 그때처럼.
우리가 조지아를 행진할 때에.

후렴
Hurrah! Hurrah! we bring the jubilee!
Hurrah! Hurrah! the flag that makes you free!
So we sang the chorus from Atlanta to the sea
While we were marching through Georgia.

만세! 만세! 해방을 선포하리라.
만세! 만세! 우리 깃발이 자유케 하리라!
아틀랜타 부터 바다까지 합창을 부른다.
우리가 조지아를 행진할 때에.

2절
How the darkeys shouted when they heard the joyful sound
How the turkeys gobbled which our commissary found
How the sweet potatoes even started from the ground
While we were marching through Georgia.

환희의 노래소리에 흑인 노예들이 응답했었다
병참장교가 찾아온 칠면조도 울었다.
갖캐낸 고구마는 달콤했었다
우리가 조지아를 행진할 때에.

3절
Yes and there were Union men who wept with joyful tears,
When they saw the honored flag they had not seen for years;
Hardly could they be restrained from breaking forth in cheers,
While we were marching through Georgia.

수년간 보지 못했던 명예로운 깃발을 보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북군도 있었지. 그랬지
넘쳐흐르는 즐거움을 참을 수 없었지
우리가 조지아를 행진할 때에.

4절
"Sherman's dashing Yankee boys will never reach the coast!"
So the saucy rebels said and 'twas a handsome boast
Had they not forgot, alas! to reckon with the Host
While we were marching through Georgia.

'셔면의 양키들은 해변에 도달할 수 없다'고
겁장이 반란군들이 좋아했었지
그들은 우리의 공포를 잊지 못하리.
우리가 조지아를 행진할 때에.

5절
So we made a thoroughfare for freedom and her train,
Sixty miles in latitude, three hundred to the main;
Treason fled before us, for resistance was in vain
While we were marching through Georgia.

그렇게 우리는 자유의 길을 닦았다.
폭 60마일에 길이 300마일로.
반군들은 도망쳤고 저항은 헛되었다.
우리가 조지아를 행진할 때에

http://en.wikipedia.org/wiki/Marching_Through_Georgia


이 곡은 윌리엄 테쿰셰 셔먼 소장이 지휘한 '바다로의 행군'을 기념하기 위해 1865년에 헨리 클레이 워크 (H. C. Work)가 작곡했습니다. 활기찬 멜로디가 특징인 이 곡은 남북전쟁이 끝난 이후 북군 참전병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미국 외에도 영국 군에 전파되어 인도나 보아 전쟁 시기에도 인기 군가가 되었고 일설에 의하면 일본군이 여순 요새를 점령할 때에도 군가일 정도로 남부를 제외하고는 당대에 세계구급 인기를 끌은 명곡입니다. 여담이지만 셔먼 본인은 공식 석상에 나올 때마다 똑같은 곡이 연주된다고 지겨워했다네요.

이 곡의 가사를 잘 모르시더라도 곡조 자체는 한번 들어보면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는 분들이 있으실 겁니다. 우선은 크라잉넛이 부른 '신독립군가'의 원곡이며, 동시에 기독교 구 찬송가 제 393장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의외의 장소에서 만나는 남북전쟁 당시의 군가죠. 사실 오늘날까지 알려져있는 3종의 광복군가 중에 일본 곡이 아닌 것은 이 곡 하나 뿐입니다. 그럼에도 한편에서는 찬송가라는 점에서 거부감을 보이기도 하더군요.

한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도 이 곡의 원곡이 나옵니다. 영화상에서 전쟁이 끝나고 남부로 양키들이 몰려오는 와중에 남군의 부상병들을 모멸차게 대하는 '카펫베거'가 부르는 곡이죠. 승자의 해방가는 패자에게는 상처에 재를 뿌리는 행동이되는 법. 흑인 노예는 그렇다치고 농작물과 가축들을 징발이라는 이름으로 약탈당한 남부인들에게 이 곡은 모멸감과 함께 폭도들에게 고향이 짓밟히던 괴로운 시절의 기억을 되살렸기에 결코 용납될 수 없었습니다. 노예제라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야만적이고 부도덕한 행동과 전쟁을 먼저 시작했고 결국 패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남북전쟁의 그림자를 벗어난 다는 것은 남부인들에게 쉬운일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전쟁이 있었고 오늘날까지도 끝이나지 않았습니다. 가끔 이 곡이 우리나라 사람들에 의해 북한에서 울려퍼지는 그런 장면을 간혹 생각해 볼때에 한편으로는 통쾌하고 한편으로는 말하기 힘든 씁쓸함이 남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