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전(일본장기) 名人戦 (将棋)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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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전(일본장기) 名人戦 (将棋)

아르미셸 2008.04.02 10:23

일본장기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기전으로, 마이니치 신문사와 아사히 신문사가 공동개최(2007년부터)하며 다이와 증권 그룹이 협찬(2005년부터)한다. 순위전과 연동해서 치루어지며 A급 순위전 우승자는 명인과 "명인전 7번국"을 실시해서 승자는 유서깊은 명인위의 타이틀 보관 유지자가 된다. 에도 시대 이래 명인위는 세습제였지만(혈연제는 아님) 일본장기 연맹은 1935년, 300년간 지속되어온 일세 명인제를 폐지한다고 발표한다. 1937년 13세 명인 세키네 긴지로가 세습제에 반대의견 성명서를 발표하며 명인위를 반납했고 이로써 오오하시 소케이 이래 계속된 일세 명인제는 폐지되고 단기 실력제 명인제가 시작되었다.

방식

A급 순위전 토너먼트의 우승자는 명인전 도전권을 얻고 명인과 명인위를 걸고 7번 대국을 갖는다.

A급 순위전

제한시간은 각 6시간

명인전 7번국

명인과 A급 순위전 우승자가 일본 각지의 여관이나 요정에서 7번 대국을 벌인다. 제한시간은 각 9시간(일본장기계 최대) 2일제로 1일째가 끝날때는 봉수를 실시하여 2일째가 시작되기까지 다음수를 생각해서 유리해지는 일이 없도록 한다. 덧붙여 2일째에도 저녁식사 휴식시간이 있는 것은 명인전 뿐이다. 최근에 명인전 대국은 NHK위성 제2텔레비젼 등에서 중계되고 있다.

도전자 결정전의 역사

실력제 명인전 개시 당초에는 전 8단 기사가 참가한 도전자 결정 리그전을 2년에 걸쳐서 실시했지만 1946년부터는 순위전과 연동되었다.

순위전 창설 이전

제1기(1935~1937)

명인위가 공석이었기 때문에 이 기에는 명인위를 결정하는 기전이 되었다. 8단 전기사(9명. 당시는 8단이 최고단)에 의한 특별 리그전과 그 외 기전의 종합점으로 순위를 산출해서(승패나 단수차이에 의하여 점수가 정해졌다.) 1위와 2위의 기사가 6번 대국을 벌여 이기는 쪽이 명인이 되지만, 1위와 2위의 점수차가 8점을 넘는다면 별도의 대국없이 1위인 기사가 명인이 되며 6번 대국의 결과가 동률일때에도 1위가 명인이 된다.

리그전 결과로 1위인 키무라 요시오가 2위의 하나다 죠타로에게 8.1점의 차이를 내어 6번국 없이 키무라가 명인위를 얻었다.

제2기(1937~1940)

7단인 기사도 도전자 결정전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우선 7단 기사의 리그전을 벌이고 그 승자는 도전자 결정 리그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8단 전기사(사카타 산키치를 포함하여 8명)과 7단 리그전 우승자가 리그전을 벌여 도전자 결정전을 벌였는데 리그는 1차와 2차로 나뉘어 1차리그에서 1승 이상을 거두지 못한 경우에는 2차 리그에 참가할 수 없도록 했다. 여기서 도이 이치타로가 1, 2차 리그에서 모두 전승을 거두어 도전권을 얻었다. 장기 대성회(현재의 일본장기연맹)와 절연상태였던 사카타도 "8단 자격"으로 리그에 참가했지만 합계 7승 8패를 거두었다.

제3기(1940~1942)

8단 기사 10명과 5~7단 예선리그를 통과한 2명을 더한 12명이 모여, 4명씩 3조로 나뉘어 리그전을 실시했다. 1위 3명(도이 이치타로, 칸다 타츠노스케, 와타나베 도이치)와 2위 중 패자부활전을 이긴 1명(쓰카다 마사오)이 도전자 결정리그전을 실시하여 칸다가 도전자가 되었다.

제4기(1942~1944)

참가 기사 16명 (8단 12명과 7단 이하의 예선을 통과한 4명)이 토너먼트를 실시해서 승자가 "예비자격자"로 명인 키무라 요시오와 반향떼기(향차를 떼고두는 대국과 평수대국을 교대로 실시한다.) 대국으로 3번을 겨루어 3번국을 이겼을 때만 명인도전 자격을 얻었다.

이 형식으로 예비 자격자와 명인의 3번 승부를 4번 실시하여, 복수의 도전자격자가 나왔을 때에는 플레이오프를 실시하게 되어 있었지만 4번 모두 키무라가 승리하여 명인도전 자격자가 나오지 않고 키무라가 명인위를 방위하게 되었다.

1. 키무라 요시오 2-0 하기와라 키요시
2. 키무라 요시오 2-1(천일수) 오노 겐이치
3. 키무라 요시오 2-0 하나다 죠타로
3. 키무라 요시오 2-0 사카구치 노부히코

제5기(1944년)

예선을 폐지하고 그동안의 성적으로 7명의 도전자가 결정전을 벌이게 되었지만 2차대전으로 중지되었다.

순위전 창설 이후

제6기(1947)

전년도부터 순위전이 개시되어 A급 순위전 우승자가 명인 도전 자격을 얻게 되었다. 그 해의 A급 순위전은 8단 이하 기사 14명에 의한 리그전에서, 순위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동률 선두가 된 쓰카다 마사오, 오노 겐이치, 하기와라 키요시 3명이 플레이오프를 벌여 츠카다가 도전 자격을 얻었다.

제7기(1948년) ~ 제9기(1950년)

A급 순위전의 상위 3명과 B급 우승자를 포함한 4명이 토너먼트를 실시하여 (A급 3위와 B급 우승자가 대국해서 승자가 A급 2위와 그 승자가 A급 1위와 대국을 하게 된다.) 토너먼트 우승자는 명인 도전자격을 얻게 된다. 제 7기의 우승자는 제2기 순위전에서 B급 7단이었던 오오야마 야스하루가 토너먼트를 통과하고 도전자격을 얻어 명인전 사상 유일한 7단 도전자가 되었다.

제10기(1951년) 이후

A급 순위전 우승자가 도전 자격을 얻게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영세 명인

명인위를 통산 5기 이상 획득한 기사는, 은퇴 후에 영세 명인을 자칭할 수 있다. 1952년, 일본장기연맹은 다른 타이틀의 영세칭호와는 달리 "O세 명인"이라는 칭호가 되도록 결정했는데 세습제 시절의 숫자를 계승했기 때문에 14세부터 이어지고 있다.

이 규정에 의해 영세 명인의 자격을 얻은 기사는 키무라 요시오(14세 명인), 오오야마 야스하루(15세 명인), 나카하라 마코토(16세 명인), 타니가와 코지(은퇴후에 17세 명인을 습위할 예정), 모리우치 토시유키(은퇴후에 18세 명인 습위할 예정), 하부 요시하루(은퇴후에 19세 명인을 습위할 예정)의 6명이다. 키무라는 1952년 명인위를 잃으면서 은퇴해 14세 명인을 자칭했다. 오오야마는 명인위 13연패 등 수많은 위업을 달성한 공으로 특례로서 현역인채로 "15세 명인"을 자칭하는 것이 용인되었다. 2007년 11월, 나카하라도 영세명인위 자격을 얻은지 15년이 지나 현역인채로 16세 명인에 추대되었다.

기록

최연소 - 타니가와 코지 21세
최연장 - 요네나가 쿠니오 49세
최장기간우승 - 오오야마 야스하루 13연패
획득기수 - 오오야마 야스하루 18기
최연소 도전 - 가토 히후미 20세
최연장 도전 - 오오야마 야스하루 63세

명인전의 주최자

당초에는 주최가 도쿄 일일신문(현재의 마이니치 신문)이었지만 제9기91950년)부터 제 35기(1976년) 아사히 신문사의 주최로 바뀌었다. 제36기(1977년)부터 마이니치 신문사의 주최로 복귀했고 제66기(2008년)부터 마이니치 신문사와 아사히 신문사의 공동주최가 되었다.

1950년

명인전 계약이 마이니치 신문사에서 아사히 신문사로 이전되었다. 명인전을 일게된 마이니치는 왕장전을 창설했고 다시 명인전의 주최를 맡은 이후에도 왕장전의 주최(스포츠 니혼 신문과 공동개최)를 계속 맡고 있다.

1976년

일본 장기연맹은 명인전에 계약금으로 전년도의 1억 1천만엔에서 3억엔(명인전 2억엔, 순위전 1억엔)으로 대폭적인 증액을 요구했다. 대폭적인 가격인상 요구의 배경으로는 바둑계 서열 1위의 기전인 기성전의 상금액이 1억 6천만엔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항으로 그 이상의 금액으로 계약을 성립하겠다는 의도가 있었으나 아사히는 이를 거부하고 전년과 같은 1억 1천만엔과 일시금 1천만엔 합계 1억 2천만엔 안을 제시했다. 연맹은 요구액을 1억 6천만으로 인하했지만 양자간의 입장차이는 메워지지 않고, 동년 7월에 계약은 중지되었다.

그 후 마이니치 신문사가 교섭에 참가하여, 9월에는 계약금 2억엔이 되어 다음해인 1977년부터 명인전의 주최를 담당하게 되었다.(1976년 순위전과 1977년 명인전은 중지) 직후에 행해진 임시기사 총회에서 마이니치로 이적하는 결정에 대한 가부를 묻는 투표를 실시하여 2표차이라는 근소한 차이로 이적이 결정되었다. 반대표가 당초의 예상보다 크게 많아진 것은 이 투표전에 순위전(당해년도에는 중지)을 대신하여 임시 승급기전을 요구한 젊은 기사들이 임시기전의 실시가 부결된 데 반발한 결과였다.

명인전을 잃은 아사히 신문은 1977년부터 "아사히 아마 명인전"을, 1982년부터는 "전일본 프로 토너먼트(2000년 이후에는 아사히 오픈 장기 선수권, 2006년부터는 종료)를 주최하고 있다.

2006년

2006년 3월, 일본장기연맹 이사회는 제66기 (2008년) 이후의 주최를 아사히 신문으로 이관한다는 방침을 결정하고, 그 당시의 주최사인 마이니치 신문사에 계약을 갱신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통지서를 송부했다. 사전에 아무런 상담없이 내려진 이사회의 결정에 오랜 시간동안 명인전으로 일본장기계를 후원해온 마아니치 신문사가 반발하여 큰 문제가 되었다.

마이니치 신문사와 이 문제에 대한 교섭을 담당한 나카하라 마코토 전무이사의 설명이 부족하여 이 때문에 대화도 없이 일방적으로 해제 통지를 보냈다는 오해가 생겼다는 취지의 발언을 요네나가 쿠니오는 자신의 스포츠지 칼럼에 기재했다. "마이니치 신문사에 통지서를 보낸 것은 현재의 계약조건을 변경하고 싶은 경우에도 통지서를 보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고, 아사히 신문사에 이관된 것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설명을 하고 있다. 또, 요네나가는 동칼럼에서 "일본장기연맹의 예산은 현재 매년 약 1억 정도의 적자가 나고 있어 재무 체질의 개선을 위해서도 계약의 재검토는 필요했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마이니치 신문사측은 이 주장에 대하여 "돈이 부족해서 신의를 버리고 전통을 파는 것인가"라고 비판하고 있다.

2006년도 명인전에 계약액은 3억 3400만엔이었고 아사히는 3억 5천100만엔, 그 외의 임시기전에 4천만엔, 보급협력금 1억 5천만엔으로 5년계약을 제시하고 있었다고 한다.

통지의 철회를 요구하는 마이니치에 대하여 연맹은 한때, 마아니치, 아사히의 공동개최를 제안하는 등의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5월이 되어 보충 설명서를 마이니치에 보냈고 마이니치 측은 이를 통지의 철회라고 보아 계약 재검토 협의에 응한다고 발표한다. 그 후에 행해진 기사총회에서 "1. 마이니치가 단독 계약을 바라는 경우, 마이니치가 제시한 계약 조건을 수락할지를 기사의 표결로 결정, 2. 마이니치가 아사히와 공동개최를 바라는 경우 교섭은 이사회에 일임한다"라는 안을 체결했다.

7월 10일, 마이니치 단독주최로 7년계약(첫해에 3억 3천5백만엔, 2년째부터는 매년 협의. 그 외 장기 진흥금으로 연간 3천만엔)을 제시했다. 기전의 계약은 통상 3년 계약으로 하게 되어 있으며 이례적인 제안이 되었다. 한편, 하부 요시하루(당시 왕위, 왕좌, 왕장)의 대국 종료후 인터뷰, 모리우치 토시유키(당시 명인, 기왕)의 명인 취임사, 와타나베 아키라(당시 용왕)은 블로그에서 각자 마이니치 안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8월 1일, 임시 기사총회가 개최되어 마이니치 안을 찬반투표에 부쳐 찬성 90표, 반대 101표가 되면서 마이니치 안을 수락하지 않게 되었지만 찬반의 차이가 소수였기 때문에 아사히와 마이니치의 공동개최가 제안되었다. 9월 19일, 마이니치는 공동개최에 대한 협의를 개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11월 1일에 공동개최에 관한 기본사항에 합의했다고 발표한다.

12월 27일, 마이니치-아사히 양 신문사와 일본 장기 연맹 사이에 계약금 등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명인전, 순위전은 5년 계약이 되어 계약금은 양 회사의 합의로 연간 3억 6천만엔, 별도 기준의 장기 보급 협력금이 연간 1억 1천2백만엔이 되었다. 또, 아사히 신문사가 주최하고 있는 아사히 오픈 선수권은 아사히 신문사의 신기전이 되어 (계약금은 연간 8천만엔), "아사히 배 장기 오픈전"으로 개명되었다. 마이니치 신문사가 주최하는 왕장전(계약금 7천8백만엔)은 계속되게 되었다. 관전기에 대해서는 두 신문사가 독자적인 취재를 실시하고 명인전에 대해서는 쌍방이 1명씩 부입회인을 내게 된다.

이런 일련의 소동에서 마이니치에 비밀을 지속하던 일본장기연맹, 아사히 신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나 장기연맹이 만성적인 적자를 안고 있던 것을 알면서도 상금 증액등의 조치를 게을리한 마이니치의 태만"등을 지적하는 소리도 있었으며 일련의 소동에서 마이니치 측의 노골적인 항의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

http://ja.wikipedia.org/wiki/%E5%90%8D%E4%BA%BA%E6%88%A6_%28%E5%B0%86%E6%A3%8B%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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