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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World War

안네의 일기 ; 진위논쟁

안네의 일기

안네 프랑크의 일기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조숙한 소녀의 날카로운 관찰력과 키티라는 제3자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는 독특한 표현 스타일에 있다. 나찌 치하에서 유대인으로 살아가는 삶에 언제 닥칠지 모르는 종말은 모종의 두려움으로 표현될 뿐 생활에 구현되고 있는 것이 아닌, 말하자면 극장의 우상처럼 존재하고 있으며 안네는 그런 삶에서도 희망의 끈을 잃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안네의 일기는 최종적으로 비극으로 끝나버린다. 은신처는 1944년 8월 4일 암스테르담 주둔 보안경찰 SD에 발각되고 은신처의 8명중 7명은 각기 다른 수용소에서 사망했으며 살아남은 것은 아버지 오토 프랑크 뿐이었다.

보안경찰이 은신처를 수색한 뒤 마루 위에 흩어져 있던 문서들을 모아두었던 협조자들은 오토가 전후 암스테르담에 돌아오자 이 문서를 편집, 정리해서 안네 프랑크를 아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1947년 처음으로 안네의 일기는 활자화 되었으며 1952년 6월 안네의 일기는 미국에서 여덟게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긴 했지만 발간되자마자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500만부 이상이 판매되었으며 1959년에는 영화로, 1995년에는 연극으로 제작되었고 오늘날에는 55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총 출판부수는 2,500만부를 넘는다.

진위에 관한 논쟁

안네는 작가를 지망하고 있었으며 자신이 적은 일기도 퇴고해서 새로 적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일기에는 오리지널 일기와 자신이 정서한 개정판 원고의 두 가지가 있다. 이 원고들은 어느쪽이건 완전한 책의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사후에 출간된 책은 아버지 오토 프랑크가 양쪽을 상호 보완하는 형태로 편집하여 만든 것이다.

이 편집의 도중에 안네가 기술한 내용 중, 사춘기 소녀 다운 성적 호기심이나 지루한 에피소드, 어머니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제3자 들에 대한 비판은 일부 삭제나 정정이 있었다. 그런데 안네 프랑크가 유명해 지면서, 홀로코스트 부인론자들은 안네의 일기가 허구이며 안네는 실존하지 않았거나 내용이 부친에 의해서 날조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1958년 홀로코스트 부인론자들의 “안네가 실존했다면 안네를 체포한 인간을 찾아내라”는 부인론자들의 주장에 대하여 나찌 헌터로 유명한 시몬 비젠탈은 게슈타포 출신으로 네덜란드에서 SD  상사였던 카를 질베바우어를 1963년에 찾아내어 안네가 실존했음을 증명하는데 성공한다. 인터뷰에서 실베바우어는 그가 전시중에 SD에서 일했음을 시인했고 안네 프랑크의 사진을 보고 그가 체포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고 인정했으며 체포한 유대인들에게서 압수한 물건을 담는 가방에서 안네의 일기장을 빼내는 것을 보았다고 한 그의 진술은 오토 프랑크의 진술과 합치했다.

1959년 원래는 히틀러 유겐트 출신으로 교사로 근무하던 로저 슈트리외는 안네의 일기가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을 교지에 기고했으며 오토 프랑크가 그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1960년의 재판에서 법정은 일기가 진짜라고 인정했고 슈트리외는 자신의 주장을 철회한다.

일기의 가필문제

이후에도 홀로코스트 부인론자들은 끈질기게 안네의 일기가 허구라는 주장을 계속했으며 1970년대에 영국의 유명한 홀로코스트 부인론자 데이비드 어윙은 일기가 가짜라고 주장했고 1976년에 일기가 허위라는 팜플렛을 프랑크푸르트에서 베포하던 네오나찌주의자 에른스트 뢰머와 에드거 가이스가 체포되었을때 일기의 진위 여부에 대한 논쟁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 재판중에 오토 프랑크의 의뢰를 받은 역사가 팀이 원본을 정밀 조사하여 일기가 진짜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1978년 뢰머와 가이스가 상소하면서 독일 내무성 소속 범죄조사국(Bundes kriminalamt ; BKA)는 원본의 종이와 잉크에 대한 과학분석을 실시해서 “일기를 적을때 사용한 잉크는 전시중의 것이지만 나중에 기입된 정정사항들은 흑, 녹, 청 볼펜으로 기록된 것이다”라는 취지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BKA는 이에 관련된 상세한 내용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일기의 진위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볼펜은 1950년대에나 널리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것이야말로 일기가 다른 허위라는 결정적 증거라고 받아들였다.

1986년 일기의 원본을 보관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전시자료 연구소는 보다 상세한 과학적 조사를 진행하기 위해 BKA에게 볼펜으로 기술된 부분을 지적할 것을 요구했으나  BKA는 그 부분을 지적할 수가 없었다. 추후의 조사를 통해서 볼펜으로 기입된 종이 2장을 발견했으며 1987년 함부르크의 심리학자로 필적 감정 전문가인 한스 오클먼은 그의 어머니인 도로시 오클먼이 미나 베커와 공동으로 일기를 조사했을 때 그 볼펜의 텍스트를 기입했음을 밝혔내어 일기의 진위에 대한 의문점은 해결되었다. 2003년에 출간된 수정판 일기에서는 문제가 된 2장의 종이 사진을 게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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