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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World War

대서양 전쟁과 U-boat

"전쟁 중에 나를 정말로 놀라게 한 것은 오직 U보트의 위험이었다.

U보트 전투가 우리의 수입과 수송을 얼마나 감소 시킬 것인가?

결국 우리의 삶을 파괴시킬 지점까지 도달할까?

여기에는 제스처를 취하거나 흥분할 여유가 없다.

해도 위에 냉정하게 천천히 선을 긋는 작업은

장차 교살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었다."

- 윈스턴 처칠

U보트는 1차대전과 2차대전에 걸쳐서 독일의 영국의 해상지배를 흔들기 위한 유효한 수단 중 하나로 활용되었다. 근본적으로 해양국가인 영국은

원양을 항해하는 3,000척의 선박과 1,700만 톤의 운송능력을 지닌 세계에서 단연 최대 규모의 영국 상선대를 이용하여 식량의 1/3 이상과 석탄을 제외한 원료의 대부분을 수입하고 있었다.

1939년 매년 수입은 총 5,500만 톤에 달했고 영국은 주요 열강들 가운데 유일하게 내외의 해상무역 의존 국가였다.

대영제국 내의 모든 조선소가 생산할 수 있는 함선은 연간 100만톤에 달하였으나 이는 평균 규모의 상선이나 유조선으로는 200척으로 환산될 수 있었다. 만약 이를 웃도는 침몰을 달성할 수 있다면 영국은 그대로 교살당할 것이었다.

잠수함은 1차대전 당시에는 대함거포주의에 상반되는 무기인 데다가 본질적으로 1907년의 헤이그 협정, 즉 군함이 적국의 상선을 격침시키고자 할 때에는 정선시킨 뒤 경고를 하고 승무원을 안전하게 대피시킨 이후 격침시키게 하고 있는 국제적인 협약에 위배되는 무기였다. 잠수함이 상선을 나포할 수도 없으며, 나포된 인원을 승선시킬 공간도 없었으므로 이 협정상으로는 잠수함은 무용지물이었다.

그럼에도 1차대전의 발발과 함께 잠수함은 전장에 투입되었다.

1914년 9월 5일 영국의 대함대 사령관 젤리코 제독은 제2전투전대만 스카파 플로로 입항시키고 함대를 스코트랜드 서해안에 있는 로취유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때 독일의 오토 헤르싱 소령이 지휘하는 U-21이 접촉 추적하여 에딘버러 외해에서 순양함 '패스파인더'를 어뢰로 공격하여 승조원 296명 중 259명과 함께 침몰시켰다. 영국의 함대는 해상 상태 불량으로 최초에는 어뢰에 의한 공격임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였다.

이 영국의 순양함 패쓰파인더의 침몰은 잠수함 탄생 이래 움직이는 표적에 대한 최초의 공격 성공 사례이자 잠수함의 어뢰 공격에 의한 최초의 전투함 침몰 기록이 되었다. 보름 후인 9월 22일에 오토 베다겐 대위가 지휘하는 U-9은 1시간 만에 영국의 순양함 3척을 침몰시킴으로 승조원 2,200명 중 1,459명이 사망하는 전과를 올리고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1914년 10월 글리트라 격침으로 잠수함에 의한 통상파괴의 효용에 눈을 뜬 독일에 의하여 이루어진 1915년 2월 이후의 무제한 침몰 작전이었다. U보트는 1915년 한해동안만 무려 748,000톤의 영국선박을 격침시켰다. 1917년에 이 작전의 최대의 성과를 올리고 있었고 독일의 U보트 150여척은 8월 한달에만 444척, 90만 톤의 선박을 수장시키고 있었다. 영국은 해상교통로가 차단당했고 본국에 남은 연류는 8주 분에 불과했다.

그 이후 ASDIC, 현대에는 소나로 잘 알려진 잠수함을 발견할 수 있는 음파탐지기가 개발되고, 미국이 참천하면서 대책이라고는 트롤어선단의 그물로 잠수함을 낚을 수 밖에 없던 (실제로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영국은 아사상태에서 기사회생했다.

독일의 U보트는 각종함청 5천여척, 항공기 2,000대에 총 70만 명의 대잠 병력을 투입하고서야 물리칠 수 있는 위협이었고 1915년부터 1918년 사이에 격침시킨 선박은 12,185,832톤에 달했다. 반면에 독일의 피해는 총 365척 가운데 178척에 달했으나 양자의 차이는 확연한 것이었다. 불행히도 영국이 커버해야 하는 바다는 너무 넓었고 구축함 128척과 포함 35척으로 구성된 1939년의 영국 호위함대로는 호송선단을 효율적으로 방어할 수 없었다.

2차대전 초기에 독일의 잠수함대는 귄터 프린이 스카파 플로에서 로열오크 호를 격침시키는 전과를 올림으로써 주목받기는 하였으나 본질적으로 절대적인 가용 잠수함 수의 부족과 작전을 위해서 유용한 작전기지의 부족으로 큰 효율을 보이지는 못했다. 그러나 프랑스 함락 이후에 되니츠의 잠수함대는 프랑스의 비스케이만 항구들, 로리앙 브레스트, 라파이스, 생나제르, 보르도를 활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비약적으로 작전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처칠은 U보트 전쟁에 계속 저항해야 하느니 차라리 독일이 영국을 침략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게 낫겠다고 고백했다. 침략은 시간과 장소와 행동이 명확한 사건이지만 U보트 전쟁은 특별한 유형도 없이 언제나 파괴적이며 끊이지 않는 위협이었기 때문이다.

크게 다섯시기로 나누어지는 대서양 전쟁은 초기의 두단계를 지나서 보다 본격적인 시기 1941년 4월에 접어들고 있었다. 주로 대서양 중앙의 항공기들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에서 잠수함대는 늑대떼 전술을 활용하여 침몰선박을 늘리기 시작했다.

그 다음 단계인 1942년 1월에 들어서면서 네번째 단계에서 되니츠는 잠수함대를 미국 동해안으로 직접 파견했다. 6개월간은 잠수함대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1월에만 미국 근해에서 잠수함대는 피해없이 40만 톤이 넘는 함정을 격침시켰다.

2월에는 34만톤, 3월에는 다시 40만톤, 4월에는 무려 64만톤을 격침시켰다.

미국이 적절한 대잠수함 조치를 취한 8월말까지 총 3,122,456톤의 선박 609척이 침몰되었으며 U보트 손실은 184척 중 22척에 불과했다.

잠수함대에 의한 영국교살의 위협은 다시 시작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에서 되니츠는 승리를 거머쥐는데 실패한다.

영국과 미국은 잠수함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책을 수립하였고 항공기를 이용하여 연안지역에서 경계를 강화하는 한편, 잠수함의 프로펠러에 의한 캐비테이션을 추적하는 어뢰등에 의하여 구조적인 방어력을 강화한다.

동시에 이 시기는 브레츨리 파크와 베 딘스트의 정보전쟁에서 브레츨리 파크가 최종적 승리를 거둔 시기에 해당한다. "행복한 시기" 동안, 브레츨리 파크는 1941년 8월 이후에 독일의 에니그마 코드를 빠르게 해석해 내는데 성공하고 있었으나 1942년 2월 이후 새로운 에니그마 키를 채택한 독일의 암호를 12월까지 해독하지 못하였다. 1943년에 이르러 영국은 에니그마의 실시간 해독을 성공시켰다.

독일의 베 딘스트는 1935년 경부터 영국이 사용하던 해군의 암호3번코드를 해독하는데 성공하였으나 1940년 8월, 1941년 6월, 1942년 12월 지속적으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결국 해독에 성공하지 못하게 된다.

초기에 연합군의 수송선단에 대한 방어는 구축함, 슬루프 포함, 프리깃, 코르벳, 호위항공모함 등에 의하여 점차 강화되었고 탐지장비도 소나에서

센티미터 레이더, 고주파 탐지, 폭뢰의 발전, 캐비테이션 어뢰 등으로 급속히 발전했다. 반면에 독일의 잠수함대는 실질적인 개량은 자운쾨니히(지빠귀) 청음어뢰를 제외하고 39년부터 45년까지 본질적으로 없었다.

마지막 단계에서 U보트들은 대량학살을 성공하고 있었지만 자체손실도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결국 견딜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잠수함대는 북대서양에서 철수하게 된다.

미국은 1941년 12월 7일 이후, 톤수 경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유했고, 평균 42일만에 표준화된 화물선을 건조했으며 표준모델 화물선 2,710여척이 진수되었다. 후버 댐과 주요 건설공사에 기여했던 미국의 헨리 카이저가 수립한 T2 화물선 T3 유조선, 다수의 호위항모들은 1442년 1006척, 1944 31척에 달하는 북대서양의 U보트 선단의 격침양을 압도했고 비록 많은 손실이 있기는 하였으나 영-미동맹의 해상권 우위는 뒤집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U보트 전쟁사가인 클레이 블레어는 통계를 분석하여 처칠의 두려움은 과장된 것이고 되니츠가 U보트 300척을 거느리고 있을 때조차 1917년의 영국이 겪었던 위험이 재현되지는 않았다고 결론짓고 있다.

http://www.greatwar.pe.kr/gnuboard4/bbs/tb.php/battles_sea/4

존 키건 "정보와 전쟁" 7장에서 요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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