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istory/Ship and Sail

해군 전술 -3

5. 보내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니콜라스 2세. 비운의 황제이며 러시아 정교의 성인.

1904년 10월,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는 심기가 편치 않았다.

거대한 러시아를 어떻게 유럽의 질서에서 자리를 잡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역대의 로마노프 왕가가 고민하고 항상 바래온 부동항의 획득과 동쪽으로의 진출.

그 완결에 가까운 부분에 있어서 몇가지 사소한 장애가 남아있고 그것이 골치였다.

베조라조프. 선제의 총신 비데의 위치에 올라선, 니콜라이 2세의 총신이 열변을 토한 주장, - 만주와 요동을 거쳐 조선까지 점령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전쟁은 필요없고 국책 회사를 진출시켜서 산업 시설과 도시 시설을 건설하고 철도, 항만을 건설해서 러시아 자본을 넉넉히 주입함으로써 이를 바탕으로 일본을 축출한다 - 는 계획에,

그리고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제국주의 국가의 완성과 그 정점에 오를 수 있다는 데에 혹했던 것이 실수였을까?

감히 맞서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일본이 계속 선전을 거듭하고 있고, 어찌된 일인지 태평양 함대는 패배, 여순 요새가 함락되었고 블라디보스토크의 분대도 패배했다.

시종무관 - 그리고 총애하는 로젠스트벤스키의 진언을 돌이켜 보았다

"본국의 발틱 함대에서 일부 병력을 차출하여 제2태평양 함대를 편성, 극동으로 향하는 원대한 대 원정을 감행하여 태평양 함대와 합류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일본 해군을 격멸하는 계획입니다."

구상은 나쁘지 않다... 라고 생각했다. 원대하고 중후장대한. 지극히 러시아인 다운 호쾌한, 그런 계획이었다. 하지만 -  과연 실행해야할 것인가. 실행상의 어려움은 없는가. 유럽에 주둔하는 러시아 군을 대거 이동할 경우 유럽에서의 세력균형은 유지될 수 있는가.

원숭이들.

머리가 아팠다. 문득 25살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가 태자였을 무렵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철도 기공식이 거행되는 중에 그리스의 조지 태자- 그의 조카뻘 -와 함께 일본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진짜로 좀 즐겼던 것 같다. 등에다가 문신을 그려넣었다고 한다. 게다가 일본 전통예술에도 흥미를 보여 머리핀을 사서 게이샤한테 주기도 했다는데, 설마 칼침맞을 줄은 몰랐겠지.

1891년의 그 방문에서 그는 한가로운 기분으로 이국적인 나라에 대한 젊은이 다운 호기심을 갖고, 비와 호 등의 명승지를 구경하고 떠들석한 잔치도 즐기고 한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갑자기 질서를 유지하던 경관중 하나가 칼을 뽑아 황태자인 자신에게 두번이나 내리친 것이다. 상대는 검술에도 능했고 거리가 있어서 본능적으로 피했지만 오른쪽 관자놀이와 후두부를 노리고 내리친 검은 그에게 평생의 상처를 남겼다. 게다가 범인인 츠다 산조는 사형당한 것도 아니었다.

츠다 산조. 좀 돌았다.

쓰다 산조는 법정에서 감히 일왕을 먼저 배알하고 예를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베었다 라는, 터무니 없는 말을 한 것까지는 아무래도 좋았다. 머리를 다쳤기 때문에 피도 엄청나게 나왔지만, 더 불쾌한 것은 그 뒤의 터무니 없는 소란이었다.

온갖 협회, 시회, 학교, 회사 등등에서 문병 전보와 서신이 그가 치료를 받고 있는 도키와 호텔과 러시아 공관에 밀려와 그 수가 1만통이 넘었다.이것은 시작에 불과했고, 27세의 한 일본 여성은 츠다 산조와 아무런 연관도 없는데 사죄를 한다며 교토의 부청 앞에서 자결했다. 일본의 모든 불교 사찰이 건강회복 대기도회를 열었고 도호쿠의 마을에서는 "앞으로 태어나는 모든 아이에게는 '산조'라는 이름을 지어서는 안된다"라고 결의했다.

이해하기 힘든 일들 뿐인 이 나라에서 불쾌한 기억을 갖고 떠난 이후, 그는 일본인을 원숭이라 여기고 있었다.

어떻게 원숭이들이 이렇게 발악 하고 있는 것인가? 그 배후에는 필시, 사촌형의 나라 - 영국이 버티고 있다. 일본이 발행한 막대한 전시공채를 사들이는 것은 물론이고, 함선의 건조와 인도 등, 영일동맹을 바탕으로 러시아의 동진에 대한 진출을 막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전히 꺼림직한 기분이었지만 총애하는 로젠스트벤스키의 발언을 돌이켜보았다.

"이 대 원정은 크나큰 곤란을 수반하게 되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명하신다면, 저는 기꺼이 이 함대를 이끌고 일본과의 전투에 임할 것입니다."

군령부장의 호언장담이 아닌가. 그렇다.

"로젠스트벤스키라면 틀림없이 승전할 것이다."

페트로비치 로젠스트벤스키 소장.(중장으로 승진) 니콜라이 2세와 불꽃관계

1904년 10월, 러시아의 해군 군령부장 로젠스트벤스키 소장은 심기가 편치 않았다.

러시아의 귀족사회에서 평민출신으로 여러번 고난을 겪으면서도, 단정한 용모의 소유자이며 세련된 교양으로 지금껏 승승장구해왔고, 다행하게도 니콜라이 2세의 호감을 얻어 시종무관으로 군령부장으로 승진해왔다.

자신의 관료적 취향도 의전직을 수행하는 데는 적합했고 해전에 있어서는 포술의 권위자로 논문이 어느 정도 인정을 받는 위치지만, 자신은 소장. 상급자가 얼마든지 있으니 누구라도 보내겠지 라고 방심한 것이 화근이었다.

수십척의 증기선을 이끌고 변변한 보급항도 없는 지역을 3만km이상이나 항해를 해야 한다. 범선이라도 힘들만한 거리를, 함대로서 유지하면서 그런 장기항해를 할 수 있을까? 게다가 도착하고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가야할 필요는 확실한 것인가.

실행에 옮기게 되면 끝도없이 귀찮은 문제들이 생겨날 이 계획에 대하여, 군령부장으로서 원론적인 이야기를 꺼냈다가 쓸데없는 크리티컬을 맞게 된 것이다.

발틱함대의 여정. 좀 길다.

그에게는 발트해의 크론슈타트를 출항하여, 도거뱅크를 거쳐 스페인의 비고를 지나, 케이프타운을 돌아 노시베를 들리고, 인도양을 건너 인도차이나의 캄란만에서 마지막으로 쉬고, 여순 또는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해야 하는 기나긴 여행의 길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 와중에 어느 시점에서 일본이나 영국에게 방해를 받게될지는 알 수 없었다.

바로 그렇게,

로젠스트벤스키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6. 쓰시마 해전

 

도고 헤이하치로. 영국에서 좀 놀던 시절.


호비트 족의 용자.

1905년 5월 27일 14시 3분. 일본해군 연합함대의 기함 미카사.

발틱함대와 거리가 1.1km 내로 접근하자 포술장은 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에게 "어느 쪽에서 전투를 하십니까?"라고 큰소리로 속삭였다. 도고는 이에 왼쪽으로 크게 틀을 것을 지시했다. 적전 회두의 시작이었다.

 

큰소리로 속삭였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지만 무례하지는 않게 물으면서도 조바심이 났다는 뜻인 것 같다.

당시, 러일전쟁의 전황은 육지에서건 바다에서건 일본이 승승장구하는 것 처럼 보였으나, 그 현실은 일본으로서는 패망하기 직전이었다고도 볼 수 있었다.

다카하시 고레키요를 비롯한 자금책들이 영국과 미국을 발벗고 뛰어다니며 어떻게든 전비를 조달해 왔으나 이대로는 전비에 짓눌려 쓰러질 판이었고, 봉천으로, 최종적으로는 하얼빈까지 전장이 길어지면서 계속 러시아 육군의 주력을 제압하지 못한다면 이미 정예전력이 대다수 소모된 일본군의 피로는 한계를 넘을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발틱함대를 상대로, 이기더라도 불과 주력함 2~3척이라도 놓치게 된다면 그 경우에는 동해상의 일본의 해상권이 위협되고, 연합함대는 다시 장기간의 봉쇄에 돌입할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를 포위하고 점령할 새로운 군을 편성할 여유같은 것은 없고, 결국 무슨 일이 있더라도, 상대를 "격멸"해야 했다.

당시 해군에 있어서 전함은 침몰되지 않는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바다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함대를 포착해서 교전에 돌입하는 것도 어렵거니와, 교전을 시작해도 기관이 어디까지 전력으로 움직여 줄 것인지도 문제고, 결정적으로는 아직 철갑탄이 완전히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베이 강을 주요부위에 두르고 있는 전함의 방어력을 공격력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타격을 입히기 위해서는, 최대의 공격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단종진을 형성해서 우세한 함대속도를 최대한 활용, 계속 상대방의 함열 앞을 가로지르며 블라디보스토크 방향으로 도주할 수 없게 하면서, 모든 배를 침몰시켜야만 했고 그런 이유로, 전술적인 면에서는 대단히 위험하게도, 적의 포격 사정범위 내에서 줄줄이 선회를 한다는 위험천만한 행동에 나선 것이었다.

양측 함대의 비교

주력함 - 러시아

전함명 숫자(척) 속도(노트) 함포(구경, 수)

152mm이상

장갑 면적

152mm 이하

장갑 면적

비장갑비율
제 1전대            
보로디노   4   17.8

305(4)

152(12)

75(20)

17% 31%   52%
제 2전대            
오스슬라비야   1 18

254(4)

152(9)

75(20)

15% 29% 56%
시소이베리키 1 16

305(4)

152(6)

20% 16% 54%
나바린 1 15.8

305(4)

152(8)

42% 20% 38%

아드미랄

나히모프

1 17

203(8)

152(10)

16% 9% 75%
제3전대            
니콜라이 1세 1 15.5

305(2)

229(4)

152(8)

8% 23% 69%

아드미랄

셰나빈

1 16

254(4)

120(4)

13% 16% 71%

주력함 - 일본

전함명 숫자(척) 속도(노트) 함포(구경, 수)

152mm이상

장갑 면적

152mm이하

장갑면적

비장갑비율
  제1전대            
후지 1 18 305(4)

152(10)

40% 18% 42%
미카사 3 18

305(4)

152(14)

75(20)

29% 40% 31%

닛신

(장갑순양함)

1 20

203(4)

152(14)

75(10)

31% 34% 35%

가스가

(장갑순양함)

1 20

203(2)

152(14)

75(10)

31% 34% 35%
제2전대            
  6 20

203(4)

152(12)

75(12)

19% 40% 41%

함포의 파괴력 비교

203mm이상 주포의 비교

지표 일본 러시아 비율
총보유 60 42 1.43:1
분당 발사속도 1.0 0.33 3.0:1
분당 총 발사량 60 14 4.29:1
분당 금속 투사량 9,500 3,686 2.51
분당 화약 소모량 1,330 92 14.45:1

152mm~120mm 중구경 포의 비교

지표 일본 러시아 비율
총보유 150 83 1.8:1
분당 발사속도 2.0 1.5 1.33:1
분당 총 발사량 300 125 2.4:1
분당 금속 투사량 12,499 4,504 2.76:1
분당 화약 소모량 1,740 113 15.37:1

지표 일본 러시아 비율
총보유 210 125 1.7:1
분당 발사속도 2.0 1.5 1.33:1
분당 총 발사량 210 125 2.66:1
분당 금속 투사량 21,949 8,190 1.96:1
분당 화약 소모량 3,070 205

관통력 비교

함대

포탄중량

(kg)

포구 초속

(m/sec)

관통력(mm)

1해리에서

관통력(mm)

2해리에서

관통력(mm)

3해리에서

관통력(mm)

4해리에서

관통력(mm)

5해리에서

관통력(mm)

6해리에서

관통력(mm)

7해리에서

12인치
러시아 331.7 792.5 381 311 251 201 159 131 92
일본 385.4 762 369 306 254 218 170 140 104
8인치                  
러시아 87.9 899.1 252 182 126 88 64 50 46
일본 113.4 756 206 176 136 97 71 56 56

양측의 비교

러시아 함대의 우세한 조건.

- 보로디노 타입 4척은 당시의 최신예 함으로 일본해군의 주력함에는 없는 신기술(원거리 거리측정기)가 도입되어 있기도 하다.

- 전함 전력의 숫자(러시아가 8척 일본은 4척)와 12인치 주포의 숫자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다.

- 여순함대와 일본함대의 교전결과를 검토해 볼때, 실제로 침몰된 함은 없었다. 러시아 함대는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도착하기만 하면 일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침몰되지 않는다면 유리하다고도 볼 수 있다.(실제로는 일본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수리시설이 미비하므로 좋은 조건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공작함을 대동하고 있으므로 도착한다면 응급수리 정도는 할 수 있다.)

일본 함대의 우세한 조건

- 전체 함대가 일정한 건함 방침에 의하여 구입, 건조되었기 때문에 함대가 통일된 운동성을 가지고 있다.

- 발틱함대는 굴뚝을 전부 시인성이 좋은 노란색과 검은색의 조합으로 하고 있다. 왜 이렇게 해야 했는지 이유는 불분명하다.

- 장기간 원양항해를 거치면서 수중생물들이 달라붙어있어 제 속도를 내지 못하는 발틱함대에 반해 일본측은 전 함정을 여순항 봉쇄가 끝난 이후 도크에서 수리를 완비했기 때문에 최대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

- 러시아 측의 함선은 블라디보스토크로의 항해를 해야 했기 때문에 석탄을 과적한 상태로, 이 때문에 함선의 무게중심이 높아진 상태가 되었음.

보로디노 타입. 이것은 오렐이다. 이 패전으로 사상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의외로 재평가 되는 부분도 있다.

- 결전 당일 전투 해역의 파고가 높으면서도 맑은 상태가 되었으며 이 것이 보로디노 타입의 약점으로 지적된 부분, 수평방어는 충분히 고려되어 있으나 그외 부분에 대한 방어가 약하고 상부구조물의 무게가 무거운 이유로 메타센터가 높아진 것을 보조하기 위한 선체 하부구조의 문제로 발생한 복원력 문제가 드러남.

- 영일동맹의 혜택으로 전세계에 펼쳐져 있는 영국의 방대한 통신, 첩보망을 통해 발틱함대의 항로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입수할 수 있었고, 영국의 최신사격통제 시스템, 무전기기 등을 제공받음.

- 프랑스가 개발한 피크린산을 이용한 메리닛트 화약을 카피 생산한 시모세 화약의 위력으로 단위 투사량을 대폭 증가시킬 수 있었음. 종래의 흑색화약에 비교해서 엄청난 폭발력으로 고온을 발하는 까닭에 관통되지는 않으나 철과 반응해서 유독가스를 내는 등 파괴효과가 뛰어난 화약. 이 화약은 불안정하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사용하지 않았으나 이주인 고로 기사가 옻나무 수액을 바르면 철과 피크린산의 반응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음을 확인하여 일본은 이를 채용, 실용화 할 수 있었으나 전후에도 미카사 호의 폭발 침몰사고를 비롯하여 다수의 사고를 내고 있기 때문에 결국 주류가 되지는 못함.

시모세 화약으로 두들겨 맞으면 배가 움직이기는 하는데 상부구조물은 걸래가 된다.

- 이쥬인 신관이라는 당시로서는 대단히 민감한 신관을 독자 개발했다.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기 때문에 불발탄은 별로 나오지 않더라도 관통력은 낮아지는 결과를 낳았지만 시모세 화약과 잘 어울려서 상대 함선의 함상 건조물을 파괴해서 무력화 한다는 전술 목표 달성에 크게 기여했다. 다만, 지나치게 예민한 점이 문제가 되어 포강 내부에서 자폭하는 사고가 가끔 발생했다.

-36식 무전기를 전 함정에 도입하여 사령탑이 일제히 전 함대의 예하 함선을 통제할 수 있도록 했다. 러시아 측에서는 이보다 더 강력한 무전설비를 확보하고 있었으나 어째서인지 내내 사용하지 않았음.

- 일제사격통제 방식을 최초로 도입했다. 기존에는 각 포대가 독자적인 방법으로 거리를 측정하던 것을 바꾸어 함교가 각 포대 전체를 통제해서 오차를 식별하고 명중탄을 내는 식으로 일괄 통제했으며 당시 세계에서 이를 도입한 것은 영국해군과 일본해군 뿐이었다. 이후 이것이 드레드노트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 야마모토 곤노효에의 주도로 실력위주로 해군을 개편하고 통일된 교육을 받은 이들을 참모로 삼아 전체적인 지휘체계가 일관되도록 구성함. 지휘관-참모의 체계가 원활하게 기능하였고 일본이 이후로도 이상적인 체계로 삼게되는 구조, 듬직한 지휘관과 명민한 참모가 콤비를 이루면서 참모는 최선을 다해 계획을 작성하고 지휘관은 한번 신뢰한 참모를 끝까지 믿으며 결과에 책임을 주는 형식의 모범을 보였다. 여기서 아키야마 사네유키, 사토 데츠타로, 시마무라 하야오,가토 도모자부로 등의 명참모들을 기용하여 전체의 함대가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일 수 있었음.

반면에 발틱함대의 경우 제2태평양 함대 부사령관으로 2전대의 사령관을 담당해야할 페리케르잠 제독이 항해 도중 병사했음에도 그것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만약 사령관 로젠스트벤스키가 지휘권을 상실했을 경우 제3서열인 네보가토프 소장에게로 지휘권이 위임되지 않고 지휘권의 공백이 생겨날 위험이 있었음.

- 블라디보스토크로 도주하느냐 싸우느냐를 놓고 목적이 통일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정쩡하게 해전해역에 돌입한 발틱함대에 비해 목적이 다일화 되어 있었다.(마한의 분석)

일본함대의 초계망. 대한해협쪽으로 이동할 것을 예측하고 전지역에 초계망을 깔아둠.

진주만의 암호가 도도도도 였다면 여기서는 타타타타

- 전함 전력에서 열세인데 반해서 장갑순양함을 비롯한 순양함 전력, 즉 고속 타격부대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유하고 있다. 초기에는 각국에서 이상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전후에는 이것의 유효성이 확실히 드러났다. 특히 해전 도중에 제1함대가 수바로프의 파손으로 인한 침로 이탈을 러시아 함대 전체의 침로 변경으로 오인하여 해전해역에서 떨어져 버린 상황에서 장갑순양함 전대가 기민하게 상대의 앞을 가로막고 나옴으로써 그 위력을 입증하고 결과적으로는 전체를 포위하는 형태를 만들어 내었다. 이 유효성을 바탕으로 순양전함이 개발되었음.

- 전체적으로는 다단계의 요격계획을 세우고, 제1, 제2 전대를 비롯한 주력함대의 교전과 이를 서포트하는 제3~6함대의 구형전함들이 결전을 담당하고, 다시 구축함을 비롯한 구축함대가 어뢰공격을 실시하는 것과 초계임무 등을 짜임새 있게 미리 작성하여 그 시간계획에 따라서 명확히 행동하여 전체적인 목표가 조화를 이루고 있음.

발틱함대와 일본연합함대의 첫교전 3시간만에 발틱함대는 함대의 통일성을 상실하고 시종일관 주도권을 상실한채 난타당했다. 일본함대가 적전회두에 들어간 상황에서 40여발의 명중탄을 내며 선전하기는 했으나 회두를 완료한 다음에는 러시아 측의 함대는 선두의 4~6척만이 실제로 교전을 벌이는 데 반해 일본측은 전화력을 활용함으로써 주력함의 거의 모두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러시아 측도 장기간의 항해와 훈련이 부족한 것을 고려한다면 분투했다고는 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세계 해전에 길이남을 기록적인 대패가 되었다.

발틱함대의 마지막 항로.

주력함 중 5척은 함포에 침몰, 1척은 어뢰에 침몰, 2척은 나포되었고 그 외에도 거의 모든 함선이

침몰, 자침, 억류, 항복하여 결과적으로는 50척이 넘는 대 함대가 동해상에서 눈녹듯이 녹아버렸고, 이 충격으로 러시아는 국내사정이 악화된 것과 함께해서 종전협정에 조인하게 된다.

난 이런 사람이야.

7. 쓰시마 해전의 난자 전법

전체적인 결전에 있어서는 7단계로 나뉘어서 다단계에 걸쳐서 발틱함대를 철저히 분쇄할 것이 목표이고, 약 10번에 걸쳐서 크고 작은 교전이 있었으나 핵심은 처음 맞부딪힌 순간의 3시간에 결정된 것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일본측의 이른바 "정자전법"은 오랫동안 군사학계에서 연구되었으며, Crossing the T라고 불리우며 함대함 포격전에서 승리하기 위한 방법으로 여겨졌다.

먼저 이것이 어떻게 의미가 있는지를 살펴보자.

군함은 고속을 내면서 최대한의 화력을 확보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유선형의 함체에 포를 길게 늘어놓아야 한다. 전열함 시대에는 양 현측에 대포를 늘어놓을 뿐이었지만 근대 장갑함 시대로 오면서 주포의 대구경화 대형화가 이루어지자, 양쪽에 배치하는 것으로는 무게균형을 맞추기가 어려워지고 대형의 함포를 선회포탑으로, 중앙선쪽에 배치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점차 일반화되었다.

이것이 최대의 화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현측으로 사격을 하는 것이 적합하다.

전방으로도 포격을 할 수는 있지만 그런 식으로 사격을 하면 후폭풍에 의하여 함상 구조물의 예민한 부분들이 파괴될 우려가 있으며 사각이 제한될 수 있으므로 가능하면 현측으로 사격한다.

하지만, 이것이 이상적이라 해도 양측 모두가 이 진형의 위험성을 알고 있고 서로가 고속으로 기동하고 있는 중인데다가, 이 상태가 유지되다가는 접근하는 쪽이 함열을 돌파해서 오히려 함열을 분단시켜버릴 수 있으므로, 현실적으로는 이처럼 형성되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개념이T나 丁인 것이고, 실제로는 필기체 대문자 T나 イ 처럼 되는 것이다.

정자의 편모운동을 살펴보자.

이런 식으로 기동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은 전체적인 함대 속도가 러시아 측보다 빠르기 때문이며, 조함능력이 대단히 뛰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최초의 180도 선회(U턴, 알파 턴 등이라고 불린다)에서, 사정거리 내에 무방비 상태로 내던져지는 위험을 감수 할 수 있었다는 것인데, 당시에는 조준장비에 자이로 시스템이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동중인 함선에게 저 정도 위치에서 명중탄을 퍼붓기는 쉽지 않고, 철갑탄의 위력도 최대한 발휘되지는 않는다.

이를 알더라도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특히 선두에 서 있는 기함 미카사의 경우에는 명중탄이 집중되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것이 성공했기 때문에 격멸이라는 중대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고 봐야한다.

이것이 이후 대함거포시대를 대표하는 전술로 자리를 잡게된다.

이런 식으로 고속기동이 가능해진 것은 동력선의 기술적인 발달과 함대가 통일된 운동을 할 수 있는 통신장비의 발달로 가능해 진 것이며 리사해전에서 최초로 선보인 이래, 쓰시마 해전, 엘리 해전, 유틀란트 해전, 자바해 해전, 에스페란스 곶 해전, 수리가오 해협 해전 등에서 계속 시도된다.

사상최대의 함대함 포격전이라고 할 유틀란트 해전에서도 영국함대는 두번이나 이 형태를 만들려고 시도했지만, 독일함대가 이를 파악했기 때문에 결정적인 승기를 잡지는 못했다.

또 한가지 쓰시마 해전의 전훈이 된 것은 함교가 전체 포탑의 사격을 통제하는 일괄통제방식을 취해서 명중도와 사정거리를 늘렸다는 것이다. 수km거리에서 명중탄을 내는 것은 그 이전에는 상상하기도 어려웠던 것이고 이것이 가능해짐을 입증함으로써 All-big gun, 즉 대구경포를 통일해서 갖추는 것이 함교가 사격을 통제하기에 적합하다는 이론이 확인되었다.

그 이전에는 청일전쟁의 전훈으로 중구경 속사포를 중시하던 것을 탈피해서 각국이 단일거포함의 건조경쟁에 돌입했고 그 결과물이 영국에서 등장한 전함의 혁명, 드레드노트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이런 개념의 함을 연구했지만 기술부족으로 실패했고, 영국이 성공함으로써 그 이전의 모든 군함은 프리드레드노트로 분류되어 전부 구식으로 되었다.

이후에도 단일거포함 경쟁은 박차를 가해서 전함의 주포구경은 12인치에서 나중에는 야마토의 18인치까지 확대되었고, 영국은 역설적으로 그때까지의 우위를 거의 상실한채 독일과 새로운 건함경쟁에 돌입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장갑순양함으로 대표되는 고속타격부대의 유용성에 있다. 청일전쟁의 전훈으로 등장학 시작한 장갑순양함이 필요시에는 전함을 대체할 수 있으며, 속도의 우위를 살려서 보다 다양한 방면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 영국의 피셔 경은, 이를 한단계 발전시킨 순양전함을 개발하게 된다.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 투입할 수 있고, 자신보다 대형함에게는 속도의 우위를 이용해서 싸울 공간을 결정할 수 있으며, 자신보다 소형함에게는 화력의 우위를 이용한다는 개념으로, 궁극의 군함이라고 칭송되었지만 유틀란트 해전에서 무더기로 떡실신 당했다.

이후 전함의 속도가 전체적으로 향상되자 이 개념은 고속전함 개념으로 옮겨졌고, 이제는 우주로 발을 옮겨 테란 연방의 최강함으로 가끔 얼굴을 내비치는 중이다. 


'History > Ship and Sail'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방항로 도전기 1. 북방으로  (0) 2008.09.04
전열함 -1  (1) 2008.07.22
갈레온 갤리온  (0) 2008.05.10
SMS Seeadler 2. 황제폐하의 해적단  (1) 2008.04.24
SMS Seeadler 1. 바다독수리 날다.  (0) 2008.04.23
해군 전술 -2  (0) 2008.03.23
해군 전술 -1  (1) 2008.03.23
CSS Stonewall  (0) 2008.03.23
철갑선, ironclad의 역사  (0) 2008.03.23
Clipper  (0) 2008.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