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버로우
상당한 희생을 치르기는 했지만 이로써 러시아와의 교역로가 개설되었다. 뇌제 이반의 치하였던 당시의 러시아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스웨덴 제국에 의해 서방 진출이 저지되고 있었고 발트해의 교역로는 한자동맹의 통제하에 있었다. 이들의 방해가 없는 신 교역로는 영국과 러시아 모두에게 이익이었고 당시에도 귀중품이었던 모피를 수입하게 되자 이에 고무된 모험회사의 투자가들은 3년뒤인 1556년, 스티븐 버로우(Steven Borough)의 지휘하에 새로운 북방항로 탐험대를 파견한다.
챈슬러의 항해사로 저번 항해에 참가했던 스티븐 버로우가 지휘하는 서치드리프트(Serchthrift) 호를 환송하기 위해 80세의 고령이 된 영국 최고의 도항사 세바스티앙 카보트가 그레이브샌드항까지 찾아와 직접 배를 둘러보고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 3년전처럼 이번에도 험난한 항해가 예상되었지만 서치드리프트호는 활기차게 빙해를 뚫으며 노바야젬랴로 나아갔다.
지나쳐가는 고래가 배보다 클 때도 있을 정도로 작은 서치드리프트 호에게는 험난한 항해였지만 버로우는 노바야젬랴와 러시아 본토 사이를 징검다리처럼 연결하고 있는 바이가치 섬을 발견했고 이곳을 통해 얼음으로 갇혀있는 카라 해로 들어설 수 있음을 확인했다. 북극권에서 항해가 가능한 시간은 너무 짧았기에 그 시점에서 주변을 탐사하고 있던 탐험대는 우연히 사모예드 인들과 접촉하게 된다.
시베리아의 툰드라 지대에 거주하는 사모예드족은 호전적인 부족은 아니었지만 버로우는 이들의 생활과 종교를 관찰하고는 의식에 사용되는 우상이 "일찌기 본적이 없을 정도로 최악"이며 야만적이라고 보고 교역의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다. 이미 겨울이 다가오기 시작하여 유빙이 밀어닥치기 시작하자 버로우는 뱃머리를 돌려 아르항겔스크 부근의 북해에서 겨울을 보냈고 이듬해 봄에 영국으로 돌아왔다. 버로우의 보고는 스폰서들에게는 실망스러운 것으로 더 이상 전진한다 해도 교역이 가능할지는 의문이었다. 백해를 경유하는 러시아와의 교역이 순조로운 상황에서 상인들은 일단 더이상의 모험에 나서는 대신에 모험회사(Company of Merchant Adventurers to New Lands)를 모스크비 회사(Company of Moskvy)로 바꾸어 러시아와의 교역권을 독점한데 만족하면서 북동항로파와 북서항로파의 논쟁을 관망하기로 한다. 1
1582년경 영국에서 만들어진 북극지도 카타이로의 항로가 뚜렷하게 그려져 있다. 지도 제작자들은 북극 주변의 바다에서 항해가 가능하며 북아메리카 상단(왼쪽)에서 태평양까지 항해가 가능하다고 보았던 것 같다.
북동항로 대 북서항로
북동항로파의 대표가 존 디라면 북서항로파에서 가장 열성적이었던 인물은 월러 톨리의 이부형제 험프리 길버트 경이었다.
대담성과 학력, 천부적인 기민성을 겸비한 젠트리의 기수, 험프리 길버트는 북동항로 파에 대항하여 물샐틈없는 논전을 벌이며 북서항로의 가능성을 옹호했다. 당시 길버트가 주장한 북서항로론의 주요 논지는 이러했다.
1. 북동항로의 존재는 인정할 수 있지만 항해가 곤란하고 북방 깊숙히까지 진출하지 않으면 안된다.?
2. 반면에 북서항로는 일단 래브라도를 우회하기만 하면 해안선은 남쪽으로 뻗어있고 태평양으로 이어지는 아니안 해협이라는 수로로 나갈 수 있다.
그가 제시하는 항로는 오늘날의 허드슨 해협을 지나 허드슨 만을 통해 내륙 수로로 진출하여 시애틀까지 간다는 것으로 이렇게 항해할 수 있다면 여정은 대부분 영국과 같은 위도대의 해상을 지나는 것이 된다. 그의 최대 논적은 러시아까지 도항하고 육상으로 카스피해까지 횡단했던 엔소니 젠킨슨으로 1565년 겨울 두사람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어전에서 극지항로 문제를 둘러싼 논전을 벌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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