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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ships Mary Rose 모형. 좌측 상단은 The Great Harry 호 마리 로즈호는 헨리 8세의 명령으로 건조되었으며 최초로 현측에서 일제사격을 할 수 있도록 건조된 선박이다. 마리 로즈호는 78문의 대포를 장비하고 있었고(1536년 91문을 장비할 수 있도록 개장되었다.) 포츠머스에서 건조되었다. 헨리 8세의 누이동생 마리의 이름과 튜어 왕조의 상징 장미를 따서 이름이 지어졌으며 영국해군을 위한 초기의 군용선박으로 특화된 선박이었다. 500톤의 적재능력을 보유하고 (1536년의 개조로 700톤을 적재할 수 있게 되었다.) 길이 38.5m, 넓이 11.7m에 200명의 선원, 185명의 병사, 30명의 포수가 탑승하였다. 1545년, 프랑스의 프랑소와 1세가 영국침공을 위하여 3만명의 병사와 200척의 .. 더보기
빅토리아 호와 마젤란 빅토리아 호 빅토리아 호는 페르난디드 마젤란이 세계일주여행을 위하여 준비한 함대의 다섯 함선 중 하나로 마젤란이 스페인의 카를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트리아나의 산타마리아 델라 빅토리아(Santamaria de la Victoria) 교회를 따서 이름이 붙여졌다. 다섯 척의 배들 중, 오직 트리니다드 호 만이 카라벨이었고 그 외의 배들은 전부 카락이었으며 마젤란의 긴 세계일주 항해 중에 기함인 트리니다드 호와 산 안토니오, 컨셉시온, 산티아고 호는 행방불명되거나 침몰했다. 1519년, 스페인의 새로운 원정대의 구성에 대한 포르투갈 정보원의 첩보에 의하면, "마젤란의 함대는 5척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직접 승선해본 바에 의하면, 선체가 부싯깃처럼 부식되었고 너무 낡아서 수리된 곳 투성이였다. 제정신인 사람.. 더보기
산타마리아와 콜롬부스 이름의 기원 1492년, 크리스토퍼 콜롬부스가 1차 서인도제도 항해에서 사용했던 탐험대의 기함. 이 배의 소유주였던 후안 델라 코사(Juan de la Cosa)도 일등사관 겸 항해사로 탐험에 참가하였다. 원래의 이름은 라 가예가(La Gallega - "The Gallician")로 아마도 Galicia에서 건조되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하고 있지만 선원 사이에서는 마리갈란테(Marigalante -"Dirty Mary")라고 불리웠다고도 한다. 다만 1552년에 신대륙에서 활약했던 스페인의 사제 바르톨로메오 델라 칸사스의 기록에는 한번도 콜롬부스의 기함을 산타마리아, 마리갈란테, 라 갈레가 라고 호칭을 부르지 않고 그냥 나오, 기함 이라고만 언급하고 있어서 이 배가 콜롬부스의 기함이었다는 것이 의심스럽다는.. 더보기
카락 카락은 3~4개의 마스트를 장비하고 사각돛과 삼각돛을 결합한 형태의 15세기 범선이다. 둥근 고물, 높은 선수루와 선미루가 특징적이며 일반적으로 포어, 메인 마스트에는 사각돛을, 미즌 마스트에는 삼각돛을 장비했다. 카락은 유럽인이 개발한 최초의 원양항해선으로 대양에서도 높은 신뢰성과 항행능력을 보유하고, 다수의 항해자를 유지할 만한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카락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항해자들에게 15, 16세기에 전 세계를 탐험할 수 있게 해주었다. 스페인에서 카락은 Nao라고도 불리웠으며 포르투갈 인들은 이를 Nau라고 불렀다.(둘다 의미는 단순히 "배"를 의미하는 고어이다.), 프랑스에서는 Ner, 영국에서는 great ship이라고도 불렀다. 기원 카락이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로 가벼운, 바.. 더보기
갤리 3. 마레 노스트룸 Quinquereme 다단선의 발전(개념도) 기원전 4세기, 펠레폰네소스 전쟁이 끝나면서 대규모 해군의 트라이림을 조작할만한 숙련된 노잡이가 부족해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에 맞추어 갤리선의 설계는 점차 노잡이들의 기술보다는 힘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변화되었으며 이를 선도한 것이 시라쿠사의 디오니시우스가 만들기 시작한 4단선(Tetreres=quadriremes)과 5단선 (=penteres =quinquiremes)의 등장이었다. 4단선에 대한 명확한 묘사나 고고학적인 유물들이 부족하기 때문에 4단선의 건조에 대해서는 명확한 자료가 남아있지 않으므로 역사가들은 이들의 형태를 대체로 추정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기원전 413년의 시라쿠사 전투에서 다수의 궁수들과 투석기의 공격으로 트라이림의 가장 윗줄에서.. 더보기
갤리 2. 트라이림 승리의 여신 니케상. 이 아름다운 대리석 여신상은 트라이림에 장식물로 서있었던 것 같다. 승리의 여신상의 섬세한 날개 조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천사의 날개 이미지가 등장하였으며 Nike사의 유명한 마크도 승리의 여신상 날개 모양을 디자인 한 것이다. 이 여신상의 아름다운 포즈는 볼고그라드의 승전기념물, "조국이 부른다!"에 차용되었다. 2단선(Biremes)과 3단선(Triremes) 기원전 6~7세기, 페니키아 인들에 의하여 촉발되었다고 추측되는 새로운 변화가 이루어졌다. 갤리선의 길이를 더이상 늘릴 수 없게 되자, 펜테콘테르스의 노잡이들 위에 두번째 노잡이들을 배치하여 2단선 (Biere, Bireme)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새로운 아이디어는 지중해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고, 이윽고 .. 더보기
갤리 1. 펜테콘테로스 보통의 카누 옆에 수평으로 긴 목재를 연결시키면 카누는 놀라운 내항성을 갖추게 되고 미크로네시아 지역의 원주민들은 이런 간단한 배를 이용하여 놀랄만큼 먼 거리까지 항해할 수 있었다. 이런 배들은 점차 발전되어 쌍동체 카누나, 아웃트리거를 붙인 형태로 발전되었다. 초기의 갤리 인류가 처음으로 수영에서 한계를 느끼고 통나무에 올라타게 된 이래, 물이라는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다. 통나무에서 뗏목으로, 카누에서 폴리네시아의 원주민들이 사용하던 쌍동체 카누(Outrigger canoe)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인류는 노를 추진력으로, 돛을 보조추진력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각지에서 이런 형식의 배들이 발달하였으며 이렇게 인력에 추진력을 의존하는 형식의 배들을 흔히 갤리 라고 부른다... 더보기
[전법] 비차비틀기 비차가 전진해서 옆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횡보잡기에 빗대어 종보잡기라고도 한다. 전법이 고안된 시기는 에도 말기로 추정되고 과거에는 "코다마야 구미"라고도 불렸다. 개요 그 이름대로 종으로 보를 노리는 전법으로 선수 차례라면(보통 선수측에서만 할 수 있다) △3四보를 노리고, 2六의 비차를 3六으로 옮기고 후수가 보를 방어하면 다시 비차를 좌익으로 움직여서 공격해나간다. △3四보를 노리는 수는 그냥 1수 손실같지만 후수는 여기서 △3三금 이외에 적절한 대응책이 없다. 즉, 상대방의 왼쪽 금을 三단까지 끌어올려서 울타리를 만들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3六비의 진정한 목적이다. 과거에는 전법이라기 보다 서투른 장기로 여겨졌지만 마쓰다 고조를 비롯한 프로기사들이 연구를 거듭한 끝에 정석을 정리하고 공식전에서 좋.. 더보기
카라벨 카라벨의 등장 14세기, 십자군 원정이 이루어지던 시대에 북유럽과 남유럽의 항해기술 교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바이킹선, 코그 등으로 대표되는 대형 사각돛에 선미키, 클링커 빌드가 특징이 되는 북해의 건함 방식과 갤리선들로 대표되는 삼각돛에 카벨 빌드, 복수의 마스트가 특징적인 지중해식 건함 방식이 결합되어 2~3개의 마스트에 사각돛과 삼각돛을 혼합하여 장비하는 것이 15세기, 중세후기의 새로운 선박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이런 교류의 영향으로 15세기에는 대항해시대의 서막을 알리게 될 유용한 범선 두 종류가이베리아 반도 국가들에서 였고 카라벨과 카락은 모험항해 시대의 주역을 맡게 된다. 카라벨은 조종성이 높고 작은, 2~3개의 마스트를 가진 범선으로 15세기 초 포르투갈에서 발명되어 포르투갈이나 에.. 더보기
History of Battleship, 전함의 역사 전함(The battleship)은 대구경포와 두터운 장갑으로 보호되는 포함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전함은 동급 전함을 상대하기 위해 대포와 장갑을 경쟁적으로 강화시키면서 발전되었다. 군비경쟁중인 국가들 중 하나가 사정거리가 더 길고, 대형화된 대포를 장비한 군함을 만들면 반대쪽에서는 더 강력한 장갑을 장비하는 식으로 경쟁적인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발전에는 국가의 공업력이 집약되었다. 전함들은 국력의 상징이었으며 20세기 초, 대함거포주의 시대에 이르러 전함의 보유는 국가위신의 상징으로, 오늘날의 핵무기들 처럼 전략무기로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강력한 전함이 없는 나라는 다른 나라의 해상작전을 방해할 수 없었기에 주요 군사국가로 취급되지 않았고 가장 강력한 전함을 보유한 나라(대체로 영국)는 자.. 더보기
Battle of Khalkhin gol(노몬한 사건) 개전 이전 일본과 소련간의 최초의 주요국경분쟁은 1938년 7월의 하아샨호 전투(장고봉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이 사건에서 양측 모두 확전을 원하지 않아 상황은 일단 소강상태로 들어섰고 서방측에서는 큰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분쟁의 해석은 애매하다. 중앙에 의해서 통제를 받지 않고 있는 관동군이 멋대로 전투를 결정하고 분쟁을 확대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점과 장고봉 지역에서 물러나야 했다는 점이 일본군의 패배를 인정하는 요소로 볼 수도 있으며 일본군이 열차를 이용한 신속한 병력전개로 31일 새벽에 경전차를 동원한 야습으로 소련군의 방어진지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는 점 소련군의 사령관인 블뤼헤르가 지휘력 문제를 빌미로 NKVD에 숙청당한 점을 고려하면 전략적으로 유리한데 완승을 거두지 못한 소련군의 마이너스 요.. 더보기
츠지 마사노부, 작전의 신 유년시절과 성장기 일본의 이시가와 현 에누마 군, 히가시타니 오쿠무라(현재는 카가시 야마나카 온천)에서 4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숯을 파는 일을 했고 부락에서는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나 야마나카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고야 육군 유년학교에 입학하여 수석졸업한 후, 중양 유년학교를 거쳐 육사에 입학했다. 예과 2년을 마치고 사관후보생으로 카나자와에 주둔하는 보병 제 7연대에 약 6개월간 배속되었고, 그 후에 본과를 거쳐 다이쇼 13(1924년)년 7월에 육사를 졸업했다. 유년학교와 사관학교 모두 수석졸업으로 일왕이 하사한 은시계를 받은 바 있고, 견습 사관으로 예의 보병 제 7연대에 배속되어 3개월 후 소위로 임관했다. 1927년에는 중위로 승진했고 그 다음해에 일본육군대학에 입학하여 .. 더보기
카미카제, Kamikaze, 特別攻擊隊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군이 편성한 부대중, 연합군 함정에 대한 ‘직접동체충돌 공격’을 실행할 목적으로 주로 항공기에 의해 생환의 가능성이 없는 작전을 시행하기 위한 부대, 작전의 통칭. 항공기 이외에도 인간폭탄, 인간어뢰 등 다양한 형태의 자살공격이 감행되었으며 공격이 성공했을 경우 승무원이 생환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돌입실패로 바다에 충돌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거나 기체 고장에 의한 불시착등을 이유로 승무원이 생환한 예도 극히 드물게 있지만 확률적으로는 출격이 곧 죽음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극단적인 행동이 이루어지게 된 이유는, 1. VT신관을 대표로 하는 연합군 대공능력의 비약적인 향상 2. 미드웨이 패전이래 지속적인 조종요원 손실로 숙련된 조종사의 보충이 어려웠던 점 3. 항공.. 더보기
히로히토, 평화의 상징 또는 특A급 전범 히로히토 (1901.04.29 ~ 1989.01.07) 일본의 제124대 국왕. 이름은 히로히토. 1926.12.25 ~ 1989.01.07까지 제위. 그의 연호는 64년간(엄밀히는 62년 2주 동안) 지속되었으며 이는 일본역사상 최장기록. I. 약력1901년 도쿄의 아오야마 궁에서 출생했으며 요시히토 태자(후일의 다이쇼 일왕)와 사다꼬 공주(후일의 정명왕후)의 의 맏아들로 아명은 미찌 왕자. 생후70 일에 추밀고문관의 백작 카와무라에게 맡겨져 누마즈 별채에서 양육되었다. 1908 ~ 1914 동안 가쿠슈인(학습원) 초등과에서 학습원장 노기 마레스케(러일전쟁에서 여순요새를 함락시킨 바로 그 인물)에게 엄격한 교육을 받았으며 1912년에는 육-해군에서 소위로 임명되어 근위보병 제1연대, 제1함대부에 임관한.. 더보기
일본장기의 격언 일본장기의 격언(將棋の格言) 일본장기에 관한 훈계나 교훈의 의미를 짧게 집약한 것을 말한다. 대부분 작자불명이지만 장기 보급에 열심이었던 하라다 야스시(原田泰夫)가 창작한 것도 많다. 또, 새로운 장기 전술이 개발됨에 따라 현재는 통용되지 않는 격언도 있다. * 주 : 격언들은 일본어의 50음도에 맞춰서 배열되어 있습니다. 아 아 노는말을 활용하라(遊び駒は活用せよ【あそびごまはかつようせよ】 ) 노는말이란, 현재의 전선에서 고립된 말을 의미한다. 고립되어서 활용할 수 없는 말 때문에 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런 말을 활용해 자신의 전력을 높여야 한다는 의미. 상혈웅에서는 각보다 금 (相穴熊では角より金【あいあなぐまではかくよりきん】 ) 서로 혈웅 울타리인 경우, 금장은 공수 양면에서 활약하는데다가 특히 종반.. 더보기
일본장기의 규칙 초기배치 경기자와 가장 가까운 줄 - 왕은 중간에 위치한다. - 금장은 둘다 왕의 바로 옆에 위치한다. - 은장은 금장의 옆에 위치한다. - 계마는 은장의 옆에 위치한다. - 향차는 계마 옆 맨 끝에 위치한다. 경기자 위치에서 두번째 줄 - 각행은 왼쪽 계마 앞에 위치한다. - 비차는 오른쪽 계마 앞에 위치한다. 경기자 위치에서 세번째 줄 - 보졸이 일렬로 위치한다. 이 부분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배열 순서 참고 영문 사용권의 판 표기. 일본에서는 a~i의 자리가 一, 二, 三... 九가 된다. 기본규칙 - 가로세로 각 9칸의 장기판에서 시행한다(우리나라나 중국의 장기와 달리 체스처럼 칸 안쪽에서 이동한다) - 경기자 양측은 교대로 1번씩 자신의 말을 움직이거나 잡은 상대편의 말 1개를 반상에 올려놓는다.. 더보기
일본장기의 연혁 I. 고대의 장기 1. 일본에의 전래 장기는 고대 인도의 체트란가(샤트란가)에서 시작되어 유라시아 대륙의 각지에 전파되면서 조금씩 다른 유사한 유희로 발달해왔습니다. 일본에서는 쇼기(일본장기)라는 이름으로 독특한 룰이 정착되어 있습니다만, 언제 장기가 일본에 전래된 것인지는 확실하지가 않습니다. 정창원에 바둑의 기판을 납입할 수 있었으므로 바둑이 나라시대를 전후해서 일본에 전래된 것으로 확정할 수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죠. 전해지는 바로, 샹치(중국의 장기)는 주의 무제가 만들었다고 하며 기비노 마키비라는 사람이 당에 다녀오면서 일본에 장기가 전래되었다고 합니다만, 이것은 에도시대 초기에 장기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창작된 설이라는 의혹이 있고, 학자들의 연구로는 몇가지 이견은 있지만 빨라도 6세기 경 이.. 더보기
일본장기의 말. 2. 움직임 말 움직임 승격후 움직임 왕, 왕장, 옥 모든 방향으로 1칸식 움직일 수 있다. - - 비차, 비 직선상에서는 원하는 만큼 움직일 수 있다. 말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용왕, 용 비차와 왕을 합친 것처럼 움직일 수 있다 각행, 각 대각선으로는 원하는 만큼 움직일 수 있다 말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용마, 마 각행과 왕을 합친 것처럼 움직일 수 있다 금장, 금 전후좌우나 앞방향 대각선으로 1칸씩만 움직일 수 있다 - - 은장, 은 전방 또는 대각선으로 1칸씩만 움직일 수 있다 성은 금장과 움직임이 같다 계마, 계 앞으로 2칸 이동하고 그 양 옆으로 1칸 움직일 수 있다 이동중에는 말을 뛰어넘을 수 있다 성계 금장과 움직임이 같다 향차, 향 앞으로는 원하는 만큼 움직일 수 있다 말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성향 금.. 더보기
사카타 산키치, 이단아의 끝보찌르기 阪田三吉 (1870.07.01~1946.07.23) 오사카 근교 마츠무라 현 사카이 쿄와 마치 출신. 구 호적으로는 坂田三吉. (읽는 방법은 같다.) 인물 천민부락 출신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천민부락, 부라쿠민이란 일본 사회에서 최하층민으로 차별받고 있던 사람들이 모여살던 곳을 말한다.) 가업인 짚신 만들기를 도우면서 장기를 배웠다. 1886년에 니혼바시의 신발 도매상에 견습생으로 들어갔는데, 길가에서 이루어지는 장기에서 곧잘 어른을 이겨 조숙한 천재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장기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다른 사람을 부상시켜 해고당했다고 한다. 그 후에는 친가로 돌아가서 가업을 도우며 내기 장기로 솜씨를 연마했고, 아마츄어 기사로써 오사카에서는 유명해졌다. 1899년 경에 세키네 긴지로와 첫대결을 벌여.. 더보기
후지이 타케시, 시스템 혁명가 藤井猛 (1970.09.29 ~ ) 기사 번호 198. 일본의 군마현 누마타 출신. 니시무라 카즈요시 9단 문하. 전적 일본장기를 처음 배운 것이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고 재미를 붙인 것은 초등학교 6학년 1학기의 일이라고 한다. 장려회 시험에 한번 떨어졌지만 연수회에서 편입하는 형식으로 1986년 장려회에 가입했다. 가입후 6년만인 1991년 4단으로 프로기사가 된 소위 하부 세대의 한명이다. 하부 요시하루, 사토 야스미츠, 모리우치 토시유키, 무라야마 사토시 등의 조숙한 기사들 (당시는 차일드 브랜드라고 불렸다.)과는 달리 마루야마 타다히사 등과 함께 약간 나중에 합류한 그룹에 속한다. 1995년 12월 22일, 제54기 B급 순위전에서 이노우에 케이를 상대로 대 앉은비차 혈웅 후지이 시스템을 처음으.. 더보기
마쓰다 고조, 新手一生 升田幸三 (1918.03.21 ~ 1991.04.05) 기사번호 18. 히로시마 현 후타미 군 마리사카 쵸 출신. 실력제 4대 명인, 이름을 정확히 읽으려면 고소(こうそう, 일본어 표기법에 따르면 고소 지만 발음은 코오소오에 가깝다.)라고 해야 하지만 보통은 당대의 유명인이던 사람의 이름을 따서 고조라고들 읽었고 이것이 굳어졌다. 기미 킨지로 9단 문하. 3관왕 독점 등의 화려한 전적은 물론 그 독창적인 전법, 성격, 다양한 일화 등으로 일본장기계의 역사를 말할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인물 부친 마쓰다 에이치와 모친 가츠노의 사이에서 4남(이름을 보면 3남일 것 같지만 4남이다.)으로 태어났다. 1932년 7월에 일본 최고의 장기기사를 목표로 가출하면서 사랑하는 어머니가 사용하는 자의 뒷면에 먹물로 "이.. 더보기
오오야마 야스하루, 사상최강의 명인 오오야마 야스하루(大山康晴) 기사번호 26. 15세 명인. 영세 10단, 영세 기성, 영세 왕위, 영세 왕장. 일본장기기사로 수많은 대기록(공식 타이틀 획득 80기, 기전우승 44회, 통산 1433승 등등)을 수립했다. 일본장기연맹회장으로써 장기의 보급과 연맹의 운영에 많은 실적을 남긴바 있다. 1990년에는 장기계 최초로 문화공로자로 인정받아 정4위 훈2등훈장을 받았다. 제자로 아리요시 미치요, 나카다 이사오, 나메카와 히사시 가 있다. 생애 성장기 1923년 3월 13일, 오카야마 현 아사구치 군 가와우치죠 니시아치에서 태어났다. 5살부터 장기를 배우기 시작해 금방 두각을 나타내 1935년에는 오사카에서 기미 킨지로 9단의 직속제자로 입문했다. 순조롭게 승단을 거듭했으나 흔치 않은 중장기 기사이기도 .. 더보기
코이케 쥬메이, 최강의 진검사 코이케 쥬메이(小池重明) 본명은 코이케 시게아키(1947년 12월 24일 - 1992년 5월 1일) 아이치현 나고야 출신의 아마츄어 장기기사. 아마츄어 최강의 기사로 불리며 내기장기를 전문으로 하는 진검사로 전설적인 기력을 자랑했다. "신주쿠의 살인청부업자", "최후의 진검사", "프로 죽이기"등등 수많은 별명으로도 유명하다. 인물 출생 1947년, 나고야에서 태어났다. 말년의 기억에 의하면 부친은 건강한 신체가 있으면서도 상이군인을 가장해 구걸을 하거나 도박을 일삼았고 모친은 집에서 손님을 상대하는 창녀였다고 한다. 어느날 "남자라면 도박도 하나는 알아둬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장기에 열중하게 되면서 10대에 이미 근방에는 적이 없다고 할 정도 능숙해졌다. 진검사의 길로 코이케는 "장기로 생계를 꾸려.. 더보기
하부 요시하루, 최강의 기사 하부 요시하루(羽生善治) (1970년 9월 27일 ~ ) 후타카미 타츠야 9단 문하. 기사 번호 175. 1996년 일본장기계 최초로 7관왕에 올랐다. 개요 사이타마현 토코로자와 출생 (출신지는 도쿄 하치오지). 통산 타이틀 획득수는 오오야마 야스하루에 이어 역대 2위. 총 7개 타이틀 중 사상 최초의 영세 6관 칭호 자격 보유자. 하부 본인 외에도 비슷한 연배의 기사들 중에 실력자들이 집중되어 있어 이들을 ‘하부 세대’ 라고도 부른다. 프로 데뷔까지의 이력 초등학교 1학년 때 장기를 배워 그 이후에 하치오지의 장기 도장에 다니면서 실력이 부쩍 자랐다. 부모가 쇼핑을 할 때에는 장기 도장을 탁아소로 이용했다고. 초등학교 3학년때 아마 초단, 4학년에 4단, 5학년에 5단으로 장기실력이 급상승해 이때 이미.. 더보기
일본장기의 전법 대국의 전략 개요 일본장기의 대국은 보통 100수(선수와 후수가 말을 움직일 때마다 1수로 센다) 안밖으로 승패가 결정된다. 이때 전체적인 수순은 크게 서반, 중반 종반의 3단계로 구분된다. 몇수까지는 서반이라는 식으로 명확하게 구분하지는 않는다. 서반 - 시작해서 말을 움직여 진형을 갖추는 수순. 중반 - 진형이 완성되고 접전을 벌여 서로의 말을 잡으면서 어느 쪽이건 울타리가 무너지기 까지의 수순. 종반 – 열세인 측 또는 양측의 울타리가 무너지기 시작한 후부터 투료까지의 기간. 서반전 초반전은 우선 목표하는 진형을 선택하고 각행이나 비차처럼 중요한 말을 어떻게 다룰까 부터 시작된다. 첫수는 각행의 움직임을 살리기 위해 7六보를 밀거나 비차 앞 2六보를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단, 선수가 고키겐 중비.. 더보기
가토 히후미, 一二三 전설 가토 히후미(加藤一二三) (1940년 1월 1일 - ) 기사 번호 64. 후쿠오카현 카호 출신. 약력 현역 프로기사 생활 57년 이상. 통산 대국수, 통산 패전수 역대 1위.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에 순위전 A급에 등록한 적이 있는 유일한 기사. 사상 최연소(14세)로 프로기사가 된 기록은 50년 동안 깨지지 않았다. 오오야마 야스하루 15세 명인, 나카하라 마코토 16세 명인, 요네나가 쿠니오 영세 기성을 상대로 각각 100번 이상 대국. 인물 후쿠오카 출신으로 천주교 신자이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성 실베스트로 교황 기사단 훈장을 수여받았다. 일본 장기계 내외를 막론하고 강렬한 개성과 언동으로 많은 일화를 남겨 유명하다. 전적 진무 이.. 더보기
월하의 기사, 달빛아래 일본장기를 말하다 ‘빅 코믹 스피릿’에 연재되었던 노죠 쥰이치의 만화. 장기관련 감수는 가와구치 토시히코. 아사히 텔레비젼에서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국내에는 대원씨아이에서 출간한 적이 있는데, 생소한 소재를 관계로 일본과 달리 빛을 보지 못했다. 상대방과 대국하면서 최종국도를 의도적으로 그림처럼 만든다던지 하는 황당무계한 면이 많다. 특징 대국 도중에 피를 토하거나 실금, 심지어 사망하는 등 실의 장기계에서는 볼 수 없는 강렬한 묘사와, 여러가지 자료와 실제의 에피소드를 토대로 만든 내용의 충실함이 균형을 잡으면서 강렬하고 개성적인 기사들을 그려내었다. 일본장기판을 뒤쪽에서 바라본 독자적인 앵글, 말이 빛나거나 말하는 등의 표현들도 당시로서는 상당히 혁신적인 기법이 사용되어 독창적이고 역동적인 묘사를 하기 위한 작가.. 더보기
81다이버, 장기 배틀로 모에 주간 영점프 2006년 41호부터 연재중인 일본장기 배틀 만화. 장려회 출신의 청년 스가타가 "아키하바라의 접수사"에게 이끌려서 진검사들과 대결을 벌어나간다. 시바타 요쿠사루 원작. 장기 내용 감수는 스즈키 다이스케 8단 다카라지마 사의 "이 만화에 주목!" 2008년판 남자부 1위 작품 작가가 에어마스터로 유명한 시바타이다 보니 표지가 그렇듯 메이드 모에 속성의 폭력물을 연상케 하지만, 실제로 들어가면 제법 진지한 장기 대결이 주제다. 일반인(?)들을 낚기 위해 메이드 모에, 안경 모에라는 황금의 모에요소를 도입한 것이 작가의 특기를 잘 살렸다. 여기에 진검사라는 요소를 더하여 작가의 주요 테마라고 할 수 있는 대결 요소를 적절히 배합하고, 장기의 진형에 대한 연구가 의외로 잘 녹아들어 있다.(니코가미.. 더보기
무라야마 사토시, 일본장기에 생명을 걸다 무라야마 사토시(村山聖) (1969년 6월 15일 - 1998년 8월 8일) 장기 기사. 혈액형 AB, 기사 번호180. 히로시마 현 아키 군 후츄우 출신. 모리 노부오 7단 문하. 하부 세대라고 불리는 기사들 중 한명. 인물 3남매 중 차남으로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다. 5살에 히로시마 시민병원에서 ‘네프로제’라는 신장계통 난치병에 걸린 것이 발견되어 죽기까지 병마와 싸웠다. 당시에는 이 병의 치료법이 안정을 취하는 것 뿐이라 소아병동에 입원해 이곳에서 친구들이 사망하기도 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입원중에 아버지에게 장기를 배웠고 몸에 지장을 준다는 주의를 받으면서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몰두했다. 이후에 눈에 띄게 두각을 드러내어, 쥬고쿠 어린이 명인전에서 4년 연속 우승, 타이틀 보유자인 모리야스 히로미츠(.. 더보기
사토 야스미츠, 1억3수의 天馬行空 사토 야스미츠 (佐藤康光) (1969년 10월 1일 - ), 장기기사. 기사번호 182. 교토 야와타시 출신, 고쿠가이인 고교 졸업. 다나카 가이슈 9단 문하. 통산 타이틀 획득수 6위. 통칭 하부 세대의 한명. 기력 프로입단이전 1981년 봄 6학년때 초등학교 장기 명인전에 출전해 3위를 차지했다. 이 대회에서 무라야마 사토시를 상대로 승리했으며 이 대회의 준우승은 나카이 히로에였고 하부 요시하루도 이 대회에 출전했다.(당시 5학년) 1982년 12월, 6급으로 오사카 장려회에 입회했다. 반년후 타니가와 코지가 사상 최연소로 명인이 되었다. 장려회원들과 머리를 싸매고 어려워하던 묘수풀이를 몇 초만에 해결해서 어린 마음에 ‘A급의 무서움’을 알았다고. 장려회에서는 입회 1년만에 2급으로 승급했으나 아버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