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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gi

일본장기의 연혁

I. 고대의 장기

1. 일본에의 전래

장기는 고대 인도의 체트란가(샤트란가)에서 시작되어 유라시아 대륙의 각지에 전파되면서 조금씩 다른 유사한 유희로 발달해왔습니다. 일본에서는 쇼기(일본장기)라는 이름으로 독특한 룰이 정착되어 있습니다만, 언제 장기가 일본에 전래된 것인지는 확실하지가 않습니다. 정창원에 바둑의 기판을 납입할 수 있었으므로 바둑이 나라시대를 전후해서 일본에 전래된 것으로 확정할 수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죠.

전해지는 바로, 샹치(중국의 장기)는 주의 무제가 만들었다고 하며 기비노 마키비라는 사람이 당에 다녀오면서 일본에 장기가 전래되었다고 합니다만, 이것은 에도시대 초기에 장기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창작된 설이라는 의혹이 있고, 학자들의 연구로는 몇가지 이견은 있지만 빨라도 6세기 경 이후에 전래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전래될 당시에는 현재처럼 5각형 말이 아니라 고대 인도의 체트랑가를 이어받아 체스에 사용되는 것과 유사한 서 있는 형태의 말이었다고 하는데, 오늘날까지 이런 형태의 일본장기 말은 발견되지 않아서 의문점도 많이 있습니다.

장기의 전래가 훨씬 늦었다는 설에 의하면 헤이안 시대 이후로 까지 늦추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는 중국의 샹치 또는 한국의 장기가 일본에 전래되었다고 합니다만 이들은 일본의 쇼기와 워낙 차이가 크기 때문에 의문이 많습니다. 한편, 동남아시아의 마크룩에 은장과 같은 움직임의 말이 있고, 규칙에서도 유사한 점이 있어서 이 계통의 반상 유희가 영향을 준 것이라는 설도 최근에는 영향력이 큽니다. 당시의 항해기술로 동남아시아에서 직접 일본에 전래되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남중국에서 한번 개량을 거쳐서 전래되었다면 당시, 중국 남부에는 일본과 동남아시아의 중계 무역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느쪽이건 확실한 물적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명확한 점은 알 수 없습니다. [각주:1]

2. 헤이안 장기

일본장기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문헌자료는 후지와라노 유키나리(藤原行成)가 저술한 기린초(麒麟抄)로 이 책의 제7권에는 장기말에 글자의 쓰는 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것은 후세에 첨부된 것이라는 것이 주류 학설이고 학자들은 후지와라노 아키히라(藤原明衡)가 저술했다는 ‘신원각기’(1058~1064)에 있는 장기에 관한 기술이 가장 오래된 문헌자료라고들 합니다.

한편, 고고학 사료로 가장 오래된 것은 나라현의 고후쿠 사에서 천기 6년(1058년)이라고 쓰여진 목간과 함께 출토된 말 16점이 있습니다. 이 시대의 말은 목간을 잘라서 그 위에 문자를 쓴 간략한 구조의 것이지만 벌써 오늘날과 같이 5각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문헌상으로도 신원각기의 기술과 동시대라는 점에서 서로를 보완해주는 중요한 유물입니다.

한편, 미요시노 다메야스가 만들었다는 ‘장중력’과 ‘회중력’을 기초로 1210년 ~ 1221년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풍속관련 사전에서 대소, 2종류의 장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각주:2]

이 시대의 장기에 사용되던 말로, 헤이안 장기에서는 옥-금장-은장-계마-향차-보졸이, 헤이안 대장기에서는 동장-철장-횡행-맹호-비용-분차-주인이 추가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차트랑가에서 사용되는 말인 장, 상, 마, 차, 병에 불교의 5보인 옥, 금, 은, 계, 향을 더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 헤이안 장기가 현재의 일본장기에 원형이 되는 것이지만, 상대를 왕장만 남은 상태로 만들어도 승리라는 기술로 봐서는 이 당시의 장기에는 예비마라는 개념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전쟁을 본떠서 만든 체트랑가의 경우, 말을 바로 제거해 버리는 데 반해 헤이안 장기의 경우에는 예비마의 사용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설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II. 장기의 발전

장기가 전파된 곳에서는 대부분 발견할 수 있는 것이지만, 시대의 진행으로 필승법이 발견되면서 말에 특정한 효과를 더하거나 말의 종류를 늘리고, 룰을 계정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경우가 있는데 일본장기도 예외가 아닙니다.

1. 발전 형태

13세기경, 헤이안 대장기에 말의 수를 늘렸지만 이것으로는 큰 효과가 없어서 대장기에 비차와 각행, 취상을 도입하고 소장기도 고안했으며 15세기경에는 너무 복잡해진 대장기의 룰을 간략화한 중장기가 고안되어 오늘날까지 일본에 남아있습니다.

16세기 경에는 소장기로부터 취상이 제거되어 오늘날의 일본장기와 같은 ‘본장기’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만, [각주:3] 16세기 후반에 들어서 전국시대의 것으로 여겨지는 이치조다니 아사쿠라가의 유적에서 174매의 말이 출토되었으며 그 대부분은 보졸이지만 1매는 취상으로, 이 시기까지는 취상을 포함한 장기와 포함하지 않는 장기가 혼재하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2. 예비마 도입

이후에 일본장기의 최대 특징이 되는, 잡은 말을 재활용할 수 있다는 규칙, 즉 예비마의 사용이 가능해졌습니다.

예비마의 기원에 대해서, 소장기 또는 본장기에서 말이 서로를 제거해 나가 쌍방이 말을 서로 소모하고 나면 말이 모두 줄어들어 승패가 결정되지 않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상대의 말을 잡았을 때, 자신의 예비마로 사용할 수 있게 해서 승패를 결정하기 쉽도록 했다는 설이 일반적입니다. 이 개념이 도입된 것은 본장기가 고안된 16세기 경인걸로 생각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 헤이안 소장기의 무렵에도 예비마 규칙이 있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한편, 1300년경에 쓰여진 ‘보통창도집’에 장기 기사에 대한 추도문으로, 계마를 날려 은을 얻었다라는 말의 교환손해를 의미하는 글이 있는 것으로 볼때, 이 시기에는 예비마의 개념이 있었다는 설도 유력합니다.

에도시대에는 더 한층 말의 종류를 늘린 장기가 고안되어 천축대장기, 대대장기, 큰 대대장기, 태장기, 대국장기 등등이 나왔지만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중화된 적은 없는 듯 하고, 에도시대에는 이미 서민들의 게임으로 일본장기가 널리 보급되어 애호되고 있었던 것이 다른 종류가 보편화되지 못한 원인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 시대에 오면 일본장기를 소재로 한 센류우가 많아서 그 사료로 보건데 현재보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장기를 일상적으로 즐겼었고 이것이 메이지 이후의 발전으로 연결되었다고들 합니다.

III. 본장기

1. 성장기와 당주

일본장기는 바둑과 함께 에도시대에 막부에 공인을 받았습니다. 게이초 17년(1612년)에 막부는 장기의 카노우 산사(혼인보 산사), 오오하시 소케이들에게 녹봉을 지급하겠다고 결정했고 이윽고 이들 당주는 기소, 장기소를 자칭했습니다. 초대명인 오오하시 소케이는 50석의 녹봉을 받았으며 에도 초기에 연호연간(1630년)에 장군 어전에서 "성장기"를 했습니다.

한편 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의 시대에는 매년마다 11월 17일에는 성장기를 쇼군의 어전에서 실시하기로 제도화했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일본에서는 11월 17일이 ‘장기의 날’입니다.

일본장기의 당주를 맡는 명인들에게는 녹봉이 지불되었는데 에도시대에 명인은 오오하시가, 오오하시 분가, 이토가가 세습해서 물려받는 제도였으며 오늘날에도 명인 칭호가 ‘명인전’에 남아있습니다. 세습받은 명인들은 관례적으로 막부에 지도 장기의 작품집을 헌상했습니다.

이 시대에 세습명인은 아니지만 묘수풀이의 천재, 이토 간수가 등장해서 [각주:4] ‘장기도교’라는 오늘날까지도 손꼽히는 우수한 작품집을 남겼고 에도 말기에는 일본장기의 기성이라고 불리우며 오늘날까지도 사상 최고의 기사중 한명으로 손꼽히는 아마노 소호 가 나타났지만 그도 재야의 기객이었기 때문에 세습제인 시대에 기사의 최고봉인 명인위에는 오를 수 없었습니다.

2. 신문 장기·장기 연맹의 결성

에도 막부가 붕괴하면서 도쿠가와 쇼군의 녹봉이 사라지자 당주제는 급격히 힘을 잃었습니다. 쇼군가의 권위가 사라지면서 명인위는 추천제로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메이지 시대에도 여전히 장기는 인기있는 유희로써 일본 각지에서 장기대회 등이 개최되어 대중목용탕, 이발관 처럼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서의 평상 장기도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만 19세기 말이 되어서 극소수의 고단자를 제외하고는 전업 프로로 장기만 하는 생활을 할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899년부터 신문에 장기의 실전기보가 게재되면서 고단자들은 신문에 게재를 목적으로 협력하게 되었고, 1909년에는 장기 동맹사가 결성되어 1924년, 세키네 긴지로 13세 명인 밑에 장기 3파가 합동해서 도쿄 장기 연맹이 결성됩니다. 오늘날의 일본장기연맹의 전신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IV. 현대 일본장기계의 동향

연맹 결성되고 1937년 명인전을 시작으로 7개 타이틀을 필두로 10개 이상의 기전이 만들어졌습니다. 여류기사도 탄생해서 1974년에는 최초의 여류명인위전이 개최되었고 현재는 5개 타이틀전과 몇개의 공식전이 있습니다.

이런 외형적 발전에 맞추어 정석도 정비되고 프로레벨에서는 서반전의 전략이 고도로 정밀화되어 일본장기 자체도 도박의 대상에서 순수한 멘탈 스포츠로 바뀌었습니다. 아마추어 기전도 정비되어 일본 전국의 강호 선수가 모이는 대회가 연간 수차례 개최되고 있습니다.

1. 인공지능

또, 장기는 유한확정완전정보 게임으로 분류되어 인공지능 작성의 대상이 되었으며 컴퓨터의 장기실력은 나날이 발전해서 2007년 현재, 컴퓨터 장기의 실력은 아마 톱클래스에 달해있다고들 합니다. 아마추어 장기 프로그램의 최강자라는 Bonanza는 프로초단 수준에도 필적한다고 하고, 최근에는 인공지능의 발전이 점차 가속화되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서는 언젠가 인공지능이 사람의 수준을 넘어서, 일본장기 그 자체의 규칙 변화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합니다.

2. 일본외에의 보급

일본장기는 일본에서만 독자적인 발전을 이룬 유희로, 우선 장기계의 챔피언이라 할만한 체스가 널리 보급되어 있고, 말의 종류는 한자로 씌여있다는 등의 이유로 일본 외에는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바둑은 국제적으로 다소의 차이는 있어도 같은 룰을 따르고, 흑백의 색으로만 구분되는 돌로 게임을 실시한다는 점, 타국의 고유 게임과는 상이하다(체스와 비슷한 종류의 게임들)는 점에 기인하여 세계적으로 보급되었다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장기의 일본외부에 대한 보급이 본격적으로 행해지고, 중국에도 상당히 보급되어서, 일본의 장기잡지 "근대장기" 2006년 1월호에 의하면 샹하이의 일본장기 인구는 12만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비한자 문화권과의 보급은 비교적 늦지만, 말의 이름 대신 방향 부호를 쓴 말을 사용하는 등의 방책으로 어떻게든 세계적으로도 일본장기를 즐기는 인구를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체스를 모방한 듯한 모양. 체스와 유사한 말은 그대로 도입하고

(계마는 Knight, 비차는 Look. 승격시의 표시가 궁금하다) 금, 은장의 경우는 이동방향을 표시

http://ja.wikipedia.org/wiki/%E6%89%93%E3%81%A1%E6%AD%A9%E8%A9%B0%E3%82%81

  1. 한편, 신안 무역선에서 일본장기의 원형에 해당되는 물품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그 시기에 일본인이 무역에 참여하고 있었고, 일본장기를 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문으로]
  2. 후세의 장기와 혼동하지 않게, 이것은 현재의 헤이안 장기(또는 헤이안 소장기) 및 헤이안 대장기로 불리고 있다. [본문으로]
  3. 겐로쿠 시대인 1696년에 출판된 "제상희도식"에 의하면 천문 시대(1532~1555)인 후기 나라 (後奈良) 시대에 후지와라 세이코(藤原晴光)가 이세 정효에게 명해 소장기로부터 취상을 제외하게 했다고 하지만 진위는 확실하지 않다. [본문으로]
  4. 에도시대 중기에 이토가로 태어나 명인 후보로서 기대되었지만 단명했기 때문에 명인을 세습할 수는 없었다. 사후에 명인위가 추증되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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