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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의 역사 : 2. 일화의 시대

1. 새로운 시작

89년, 축구협회장으로 재취임한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은 2년전에 만들었던 한국프로축구위원회를 해체하고 협회직영제로 다시 바꾸었다. 당시에는 그것이 큰 변화가 아니었지만 K리그와 한국축구계는 90년 월드컵과 함께 새로운 바람을 맞이하고 있었다.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한국은 1차예선에서 6전 전승을 거두었고 최종예선에서도 3승1무의 성적으로 월드컵 2회연속 진출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비록 이탈리아에서 열린 월드컵 본선에서 한국은 벨기에, 스페인, 우루과이를 상대로 3연패를 당했지만 이회택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에는 대학에 갓 입학한 신인 홍명보와 황선홍의 얼굴이 있었다.

K리그에서는 6번째 프로팀 일화가 제6구단으로 정식 출범하면서 84년 청소년 축구 4강신화의 주역 박종환 감독을 국내최고 대우로 영입했고 대형 신인으로 데뷰 첫해에 4골 8어시를 기록한 고정운을 창단멤버로 맞이했다. 89년 일화의 가세로 럭키금성, 대우, 포항제철, 유공, 현대를 더해 총 6개 프로팀이 갖춰지자 이제야 진정한 프로리그가 시작되었고 90년에는 도시연고제 도입, 2군리그 도입, 축구전용구장(포철)의 건설 등등 굵직한 이슈가 연이어 터지면서 한국프로축구는 그동안의 관중수 감소추세를 반전시키며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다.

2. 변화의 흐름

그동안 광역 연고제로 실질적으로는 집없는 떠돌이 신세나 마찬가지였던 프로축구팀들은 각기 홈구장을 선정하고 어설프게나마 연고의 기틀을 다졌다. 포항은 88년부터 미리 이 제도를 받아들여 포항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면서 부동의 관중동원력 1위를 유지하고 있었고 신생팀 일화는 서울의 강북을 연고지로 삼았다. 럭키금성은 충청도에서 서울 강남으로 옮겨갔고 현대는 강원도에서 울산으로 연고지를 이전했고 이러한 연고제 정착의 노력은 금방 관중수 증가로 이어졌다.

경기 내적인 면에서도 국가대표팀이나 프로팀에 외국인 감독을 유치해서 선진축구의 기술을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대우는 성적부진을 이유로 이차만 감독을 해임하고 후임으로 동독 출신의 프랭크 엥겔 감독을 영입했으나 핵심멤버들의 대표팀 차출로 준우승에 머무르자 다시 과감하게 감독을 경질하고 비츠케이 감독을 영입해서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그동안 럭키 금성의 피아퐁 외에는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던 용병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게되었으니 일화는 러시아 출신의 사리체프를 영입해서 외국인 GK붐을 일으키게 된다.

3. 변화의 바람

그러나 90년대 초반 한국축구는 아시아 축구판도의 변화에 직면하면서 최강의 자리를 위협받기 시작했다.

94년 월드컵 예선에 '도하의 기적'을 통해 구사일생으로 간신히 진출한 월드컵 본선에서는 2무 1패라는 역대최고의 성적을 올렸지만 일본의 발전, 중동세의 성장, 중앙아시아의 도전이라는 격변 앞에서 한국은 구태의연한 정신론에 묶여 있었고 국대의 성적 부진과 함께 프로축구의 부진이 직접적인 문제점으로 거론되면서 프로축구계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창단 10년째를 맞이한 프로축구팀들은 각기 세대교체를 선언했고 91년 현대의 차범근 감독을 시작으로 포철의 허정무, 유공의 박성화, 대우의 조광래 등등 오늘날까지 감독으로 이름을 날리게 될 30대 스타감독들을 대거 영입해 4백에 기초한 유럽식 압박축구를 어설프게 나마 도입하는 등 변화의 몸부림을 계속했고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었다.

또 선수 측면에서도 드래프트 1순위 5천만원으로 한정되어 있던 연봉제약도 풀리면서 이임생, 유상철, 조진호, 김현석, 하석주 등등 한국 축구계의 거성들이 줄줄이 발을 들여놓으며 프로축구는 경기 내-외적인 부분에서 어느정도 발전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고질적인 문제, 예를 들어 도시연고제의 완전 정착이나 유소년 육성, 심판 판정문제 등등은 해결되지 않고 남은채로 93년 김우중 회장의 뒤를 이어 새로 축구협회장에 임명된 정몽준 회장에게 넘겨지게 된다.

4. 일화의 시대

1990년대 초 변화의 바람을 맞으며 처음으로 1백만 관중시대를 연 한국 프로축구계는 일화의 돌풍을 맞이한다. 93년 창단 3년째를 맞이한 일화는 프로축구 시작 10년째를 맞아서 다른 팀이 세대교체에 들어간 상황에서 사리체프를 버팀목으로 지난 5년간 다져온 팀웍을 바탕으로 박종환 감독의 용병술에 힘입어 명문 일화의 시대를 개막했다.

당시 K리그는 승리팀에게는 승점 4점, 승부차기 승은 2점, 승부차기 패는 1점, 패배 0점이라는 이상한 제도를 도입해서 반드시 승패가 갈여야 하고, 이겨야만 하는 제도를 도입해서 공격축구를 추구하도록 유도했는데 지게 되면 승점이 4점차이가 난다는 부담감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어일으켜서 다들 수비축구를 하게 되자 '신의손' 사리체프의 무시무시한 방어력에 덕을 보게 된다.

일화는 이후 탄탄한 팀웍을 바탕으로 K리그 최초로 3연패의 위업을 달성하는 등, 창단 3년만에 일화의 시대를 열었으며 1996년에는  아시안클럽챔피언쉽, 아프로-아시안챔피언쉽, 아시안 수퍼컵을 모조리 쓸면서 명실상부한 아시아 클럽축구의 최정상자리를 차지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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