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ry F. Welsh (1918.09.27 ~ 1995.01.21) 펜실베니아 루제린 카운티 출신으로 1942년 공수부대에 지원했다. 포트배닝의 82공수사단 504연대에서 훈련을 받았으며, 그곳에서 3번이나 부사관으로 진급했다가 병사로 강등되었다고 한다.(원인은 동료와의 싸움.) 그런 그에게서 나름대로의 지도력을 발견한 지휘관 하나가 그를 OCS에 추천해서 장교훈련을 받았다.
World War II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투입되어 카랑탕 점령 임무를 맡은 다음 이지 컴퍼니와 합류했고 리차드 윈터스가 중대의 지휘를 맡게되자 그는 1소대의 소대장이 되었다. 6월 12일, 카랑탕 공격에서 소대를 이끌고 직접돌격을 맡았으나 완강한 저항으로 부대전체의 지원을 받아야했다. Hedgelow(노르망디 지역 특유의 낮은 관목 울타리)에서의 전투에서는 과감하게 노출된 사선으로 진출하여 바주카로 접근해온 독일탱크를 상대하기도 했다.
"보조 낙하산은 실크잖아. 좋은 웨딩드레스 감이지"
영국으로 복귀한 다음에는 이지중대 행정관이 되었으며 마켓가든 작전과 바스토뉴 방어전에도 참가했다. 바스토뉴에서 방어전을 할 시기에는 2대대 본부중대를 담당하고 있었으며 크리스마스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2차대전 이후
웰시는 미국으로 복귀한 이후, 사랑하는 Catherine "Kitty" Grogan과 결혼하였으며 웨딩드레스는 웰시가 간직하던 보조낙하산으로 만들었다고 한다.(실크제) 슬하에 아들 하나를 두었으며 윌크스-바레에서 선생님이 되었다. 그 외에도 루저린 카운티에서 세무공무원이 되기도 하였으며 다시 윌크스-바레에서 교육감이 되었고 1983년 은퇴했다.
웰시는 1995년 1월 21일, 절친한 친구 리처드 윈터스의 77회 생일날 심장병으로 사망했고 그의 아내 케서린도 3년 뒤에 사망했다.
"해리는 윈터스와 아주 빠르게 친구가 되었습니다. 두사람은 리더쉽이 있고 현장지휘관 스타일이라는 공통점이 있거든요. 두려움을 극복할 줄 아는 용기있는 사람이었죠. ... 두 사람은 닉슨과 윈터스가 그랬듯이 평생의 친구가 되었죠. 불행하게도 웰시와 닉슨 둘다 미니시리즈 제작 중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윈터스의 남은 날들이 많이 외로울겁니다."
- Robert C. Richa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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