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기 불가능한 꿈에 도전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15세기말 부터 유럽의 열강은 흑사병의 공포를 벗어나 자원 고갈로 인한 문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서서히 외부로 눈을 돌리고 있었다. 레콩키스타를 통해 이슬람 세력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축출한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는 이슬람의 발달된 문화를 받아들여 발달된 항해술로 인도로 가는 길을 찾아나섰고 항로의 발견으로 막대한 부를 획득했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해안을 거쳐 인도양 무역에 뛰어들어 향신료와 황금, 노예 무역을 기반으로 했고 에스파냐는 신대륙의 금은을 긁어들이고 있었다. 신흥 강대국으로 급부상한 이들 국가들의 뒤에는 질시의 눈으로 바라보는 경쟁국들이 있었고 그중에 북쪽에는 오랜 전쟁으로 피폐했던 시절을 막 벗어난 잉글랜드가 있었다. 1540년대, 오스만 해적의 활동이 심해지면서 레반트 지역에서의 향료 교역로가 차단되면서 자 영국은 새로운 향신료 무역로 개척에 뛰어들게 된다.
하지만 이미 인도로 가는 동쪽 교역로는 포르투갈이 장악하고 있었고 서쪽은 에스파냐의 통제하에 있어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 항로를 선택할 수 없다면 북쪽으로 돌아서 인도에 가는 길은 없을까?
포르투갈이 희망봉에 도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 뒤로는 비교적 수월하게 진출할 수 있었듯이 북방의 어떠한 지점을 지난다면 동쪽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리스본의 항구에 그득한 육두구와 후추가 런던이나 암스테르담에 쌓일지도 모른다는 상상만으로도, 북방항로를 찾아나서는 도전은 시도할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국가가 탐험항해의 많은 부분을 주도했던 포르투갈이나 에스파니아와 달리 북유럽에서는 왕실의 기여는 남유럽에서 이루어진 것에 비교하면 기여가 미미했다. 이 때문에 영국이나 네덜란드의 모험항해는 열성어린 독지가들과 회사 형태로 구성된 투자자들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이런 투자자들 중에는 항해자는 아니었지만 당대의 수학자이며 석학으로 요술사라고 생각될 정도로 머리가 틔어있던 존 디나 존 데이비스나 세바스티앙 카보트처럼 경험이 풍부한 항해사들, 험프리 길버트경을 비롯한 신흥 젠트리들이 있었다.
이들은 어쩌면 대항해시대의 패권을 뒤바꿀지도 모를 중대한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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