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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예술과 상업

...그렇다고 대중문학을 멸시하거나 폄하하는 것도 아니다. 두 분야는 다른 길이라 생각한다. 다만 본인이 싫어하는 사람은 대중문학을 하면서도 순수하다고, 잘났다고 부르짖는 두얼굴 족속들이다. 아울러 다같은 대중문학이라고 해도, 대중을 위한 작품을 쓰는게 아니라, 대중을 속이거나 이용해 먹는 작품을 쓰는 사람은 싫어한다.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의 관계를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관계에 대입할 수 있을까? 이런 견해는 타당한걸까? 더 나아가서, 예술이라는 것에서 둘을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경계선이 있을까?

대중예술과 순수예술

... 떳떳한 대중문학을 하라. ... 사람들의 인생을 바꾸고 철학을 바꾸고 인간의 생의 가장 깊은 곳을 뚫어보는 통찰은 가지지 못할지 몰라도, 그래도 사람들을 생각하고 애정을 지녀야 한다. 고상하고 깊은 가치는 어렵고 골치 아프며 스치기만 해도 잠이 오는 우매한(?) 중생을 위하여, 비록 깊고 깊은 "진짜"에 비하면 백분지 일도 안되지만 그 백분지 일이나마, 재미라는 수단을 동원하여 조금씩이나마 전달하고자 하는 대중문학을 해야 한다. 대중문학이라고 해서 모두가 돈이나 벌자, 이름이나 날리자, 학교나 들어가자,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당장 그만 둬라.

영화가 하나의 예술 장르로 받아들여진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연극에 비교하면 저런 것은 예술이라고 비교할 수도 없다는건 예술가들이 파트롱에 의존해서 대중이라는 불특정 다수의 인간들의 취향에 영합하지 않아도 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예술(Art)이 장식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영역이 되고, 스스로의 의미와 영역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파트롱을 잃어버린 예술가들은 두가지 부류로 나뉘게 되었다.

하나는 유미주의적으로 아름다움 그 자체에만 봉사하는, 또는 예전과 같이 고상하고 돈많으시며 천한 아랫것들과 다른 우아한 신흥 귀족들의 우월감을 만족시켜드리기 위하여 일하는 순수 예술가, 다른 하나는 새로운 세대의 하부구조를 이루는 계급을 위하여 적절히 아름다우면서도 흥미를 자극하기 위해 쉬운 어법으로 아름다움을 세일하는 대중 예술가로. 내 멋대로 귀동냥으로 들은 것들을 섞어서 정의한 이런 분류가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가질런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오늘날의 순수 예술가들이 갑부들의 애널서킹만 한다는 건 아니지만,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된 계기라고 하면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다는 "밀리언달러 베이비"를 보고 평론가들과 나의 생각은 어떻게 다른걸까를 고민하게 되었을 때 부터이다.

이 영화가 재미있는 건가? 어떤 점에서 칭찬할만 한 걸까. 화끈하게 성공 스토리를 달릴 듯 하면서 이제부터 펼쳐지리라고 예상하던 경로를 확 비틀어서 와장창 무너지는 방향으로 내려갔기 때문일까? 영상미? 음악? 나는 어쩔 수 없이 취향이 천박하게 상업적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에스카르고나 푸와그라를 비롯해서 하다못해 홍어회든 암튼 온갖 비싼 음식을 먹어도 차라리 돼지 족발이 맛있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끄지쉬토프 끼에슬로프스키라던지, 아무튼 평론가들에게 찬사를 받는 영화는 재미없다라는 생각에 동의하는 인간이고 가끔씩은 나의 천박한 내면을 정화하기 위해서 미술관이나 연주회장에 가서 고급 예술문화를 집어넣기는 하지만, 그것도 일종의 별미일 뿐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은 못된다.

떳떳한 싸구려

대중문학을 하는 사람은 잘난 척 해서는 안된다. 대중문학이 지닐 수 있는 유일한 가치는 독자를 사랑하는 데에 있다. 허나 그렇다고 못났다고 생각해도 안된다. 스스로를 정말 경멸하면 그걸 보는 독자는 뭔가? 스스로와, 이 분야와, 독자를 사랑하고 존중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대중문학이 아니라 진짜 쓰레기일 뿐이다. 그냥 쓰레기라고 해 두자. 그러나 잘 생각하자. 대중문학 = 쓰레기는 아니다. 대중문학 중에 쓰레기가 99.99%라고 해도, 대중문학 = 쓰레기라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런 고상한 취향을 가진 분들이 스스로를 포장하기 위해서 팔딱거리는 속물이라는 게 아니라, 내 취향과는 안맞는 다는 것이다. 아주 말랑말랑한 감수성과 애들 보라고 만든 트랜스포머에 탄성을 내지르며 좋아하는 수준인데 피카소를 가져다 놓고 이게 뭐가 좋다고 한참 설명해 봐야 르누아르 이후의 그림은 그림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내게는 의미가 없는 것일 뿐.

이런 대중적인 취향의 눈으로 바라본, 예술영화와 그걸 음미할 수 있는 계층은(찬사를 보내는 평론가 포함) 뭔가 나랑은 잘 맞지 않는, 때로는 나를 무시하는 이들이다. 불행하게도 그렇게 취향이 고급이신 분들께 대중적인 취향은 어처구니 없이 천박한 수준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사촌동생은 귀하게 크신 몸이라 어른들에게 "맛을 안다"는 평을 듣는데 걔는 홍어회가 맛이 있다고 한다. 나는 줘도 안먹는다고 말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했더니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오빠는 입이 싸구려야"라고 말을 하더라. 그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걸 내가 말하는 것과 남이 말하는 것은 좀 다른 문제다. 서로가 다른 것은 다른 것이되 상대방을 인정하고 교류를 해서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간다는 것은 말로는 쉽지만 머리가 커진 인간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문제다.

디워의 논리

... 다 읽고 난 다음 한참 세월이 지난 후에도 " 그땐 왜 이런거 봤는지 몰라. 뭐 하긴. 그래도 그땐 재미있었는데, 그래도 나쁘진 않았어" 정도라면 최대의 찬사라고 본다. ... 모든 것은 애정 문제다. 모두가 다 독자에 대한 애정이 있다고 말이야 할테지만, 실제 행동을 보면 그게 정말인지 아닌지 딱 표나는 법이다. 거기에 만족할 수 없다면, 순수 문학을 하든지, 쓰레기를 양산하든지 해라.

심형래는 과거에 우리나라에서 우뢰매라던지 영구 씨리즈 등으로 나름대로 영화를 시작했다. 그런 영화가 좋은가 나쁜가를 말 할 수는 없다. 그런게 없으면 꼬맹이들 손잡고 극장에 데려가서 보여줄 것은 몇년에 한번 나올지 안나올지 모를 트랜스 포머나 쉬렉 밖에 없을 거다. 매일같이 푸와그라만 먹다가도 한번쯤은 햄버거나 라면 같은 것도 먹어보고 싶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타임킬링용 영화를 만드는 것은 나름대로 시장성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의미도 있다. 하지만, 취향이 고상하신 분들께는 그걸 보고나서 감상평을 쓰라고 한다면 그 자체가 고문일 수 밖에 없다. 서로가 다른 것은 다른 것이다. 나의 취향을 남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법.

디워는 어떨까. 디워의 스토리 라인은 기본적으로 우뢰매 수준을 못벗어나고 있다. 여기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트랜스포머와 비교 문제가 나오는데 트랜스포머라고 스토리가 우뢰매 수준인 게 다를 건 하나도 없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건 그 빈약한 서사구조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복잡하고 배배꼬인 스토리 라인이라고 좋은것도 아니고 스토리가 간단명료하다고 나쁠 것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스토리를 얼마나 잘 다루고 있느냐에 있다. 요리로 말하자면 이 요리에 쓰인 XO 소스는 뭐가 어쩌구 저쩌구 한참을 떠들어댄다 해도 소스의 완성도가 요리의 완성도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듯이 하다못해 소금이라도 잘 사용하면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법이다.

디워는 스토리를 대략 버리고 특수효과로 승부를 봐서 "볼거리"가 있는 영화를 제공하겠다는 걸 처음부터 컨셉으로 잡았다. 특수효과와 영상미 내지는 음악등을 개선한 우뢰매에서 특수효과가 멋있어 지면 타임킬링 영화가 블록버스터가 되는걸까?

일면 맞는 거 같기도 하다. 그런데 특촬광이 아니고서야 특수효과만으로 사람이 흥분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 발리우드 슈퍼맨 영화에도 특수효과가 있고 나름대로 어우러지는 면도 있지만 그게 블록버스터도 타임킬링도 못되는 아스트랄 영화가 되는 이유는 나로서는 그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감수성에 있다.(물론 그게 좋을 수도 있다. 주성치 영화의 팬도 있을 수 있는데 뭐가 문제인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는 건 대체로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화려한 영상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것이고 관객들은 거기에 만족하고 돈을 낸다. 그걸 우리도 시도했다는 그 자체는 좋다 나쁘다 말하기가 좀 애매한 문제같다. 우리나라도 이런 것을 만들 수 있어... 라고 하는 것은 박수를 쳐줄 만한 문제지만,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이런 것을 만들었으니 너도 돈 내고 봐라 라고 말한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우리 아이가 일어나서 걸었어요! 라고 말한다면 박수를 쳐줄 수 있지만 우리 아이가 일어나서 걷는 걸 돈내고 보러 오세요 라고 말하면 그 아이가 얼마나 신기한 걸음마를 보여주는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내가 애국자가 아니라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나는 우리나라 자본과 기술(외국 기술에 영향을 받았지만)로 만들어낸 우리(것을 가미한 헐리우드식 영화)를 "우리 것"이라는 이유만으로는 보지 않는다.

그런데 디워에 관련된 내용들을 읽다보면 좀 희한한 생각이 든다. 물론, 심형래 씨의 그 열정은 정말 대단하다. 무엇보다 400억이간 700억이건 그 돈을 모아서 무언가를 한다는게 어딘가. 나로서는 못할 노릇이다. 그 돈있으면 차라리 땅을 사지. 꿈이 있고 그 꿈을 실현하려고 노력했다는 건 정말 대단하다. 근데, 그렇다고 그 영화를 봐야 하는 건 아니다. 꿈이 크고 아름답다고 작품도 훌륭하리라는 법 또한 없다. 그것만 인정한다면 나는 그 열정에 대해서 아낌없이 박수를 쳐줄 수 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말 좀 많이 하지 마라. ... "내 글은 어디가 어떻고 어디가 뭐한 것이고…. 아,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걸 몰라? 응?" ... 그런 말 할 시간 있으면 올릴 글을 한 번 다듬어라. 글쓰는 사람은 글로 말하면 되는 것이지, 뒤에 변명하려고 글쓰는게 아니다. 변명할게 있으면 애당초에 글에 넣고, 못 넣겠으면 넣을 수 있을 때까지 애를 써라. ... 할말이 있으면 그걸 작품속에 넣어라.

감독이 편지를 쓸 수 있다. DVD특전이라면. 근데 영화관에서 관객들에게 이런 점에 주의해서 봐주세요 라고 말한다면? 무슨 사용설명서인가?

작품이라는 건 일단 창작이 끝나서 공개되면 그걸 향유하는 사람들의 몫이지 제작자의 손을 떠난 것이다. 우리 아이 잘 봐주세요 라고 유치원에 편지 보내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런데 바꾸어 생각해보자면, 정말 아마추어적인 관점에서, 대중적인 시선에서 그러면 안되나? 라는 생각도 조금은 든다. 저런 걸 시도할 생각을 했다는 건 좋게 생각하면 아주 신선한 발상인 것 같다. 는 건 훼이크고 작품 만들고 나서 방송출현하면서 이러쿵 저러쿵 말하고 다니고 하는 건 그리 좋게 보이지 않는다. 말하자면, 일종의 마케팅이랄까? 사업의 방법으로는 괜찮은데 예술가가 할 짓은 못된다고 생각한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거지만, 디워의 마케팅은 정말 훌륭하다. 한국 최초의 SF! 한국형 블록버스터! 아리랑! 개그맨 출신으로 우리나라에서 설움을 딛고 일어선 신 지식인 감독! 이게 역겨운 사람도 있겠지만 정말 대단한 거다. 물론 여기에는 수많은 뒷소리가 나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이건 아무리 좋게 봐도 괴수물 또는 크리쳐물이거나 특수효과 SFX 물이지 Science Fiction 은 아니라는 걸 비롯해서 나처럼 궁싯거리는 스타일의 사람들에게는 할말이 참 많은 부분이지만 논란을 일으키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오는데 성공했으면 마케팅은 성공한거다. 하다못해 너겟까지 망한 용가리와 비교해보면 마케팅면에서는 장족의 발전을 했다.

디워를 둘러싼 스토리들을 보고 결국 내가 하게된 생각은, 심형래씨는 감독이라기 보다는 제작자의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누구라도 그렇겠지만) 꿈이 있고 열정이 있는 사람이 좋다.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는 성공스토리도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과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창의력은 좀처럼 함께있지 않을때가 많다. 실제 작품을 보고 난 다음에야 더 말을 하겠지만 앞으로 다른 작품을 낸다면(손익분기점은 넘길듯 하니) 그때는 지금 도출된 문제점들을 잘 해결해서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주기 바란다.

다양성과 권위

나 자신을 비롯해서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하는 태도와 남에 대한 태도를 일치시켜 주는게 참 어렵다. 자신의 행동에는 관대한데 남에게는 칼날 선 태도로 말하기가 비일비재하고, 남에게 이러쿵 저러쿵 하고 남을 평가한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생각해본다면 인생의 문제 자체로 확대될 수 있지 않을까? 이쯤되면 처음의 주제를 벗어나서 글 가는대로 멋대로 끄적거리게 되는데 이런 식으로는 한이 없으니 다시 원래의 문제로 돌아와서, 평론가를 비롯해서 좀더 소수자를 위하여 열정만으로 작품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대중들을 비웃을 권리는 없다는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다.

는 건 훼이크고, 그에 관해서는 감정이 한가득 실린 글이기는 해도 인터넷에 폭발할 정도로 글이 넘쳐나고 있는데 더 끄적거릴 필요가 없지 않나. 지금의 사회현상을 분석하고 이런 저런 자신의 이론을 끌어내는 것도 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내가 느끼는 것은 하나의 변화의 조짐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평론을 쓰는게 어려운 사회에 살아왔다. 남을 평한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기준과 자가 세워져 있지 않으면 공정하고 옳바른 판단을 세워낼 수가 없다. 자신의 주관을 확고부동하게 세워가려면(객관은 어림없는 소리고) 그만큼의 자기수양과 넓은 식견을 통해서 흔들리지 않는 "나"를 만들어야 남을 평가할 수 있고 우리 사회는 지금껏 그런 것이 쉽지는 않은 시대를 살아왔다. 그런데, 문화의 영역이 확장되고 인터넷을 통해서, 삶의 여유들을 통해서 커피 한잔을 마셔도 자판기나 다방커피가 아닌 테이크아웃 커피라는 제3의 선택지가 생겨난 이 사회에서 문화의 다양성은 확대되어 가는데 그 기준을 가지는 사람들은 쉽게 찾아볼 수 없게 되자 평론이라는 것이 선택되고 갈고닦은 소수에게서 무수한 대중들에게로 옮겨가고 있는건 아닐까?

인터넷 사회에서 권위란 얼마나 많은 이들이 링크되고 클릭하느냐에 달려있는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는 대중적인 취향을 반영할 수 있는 평론가가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역설적으로 평론가가 왜 필요한가. 자신의 수준에 맞는 평론은 누구라도 쓸 수 있는 건데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예술의 기준도 변하게 되고 취향의 권력이동이 발생할까?

p.s. 이번에는 이송희일 이라는 감독에게 초점을 돌려보자. 그는 동성애 영화를 비롯해서 몇몇 소수자들을 위한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다. 나는 그의 열정과 심형래씨의 열정이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두 사람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들이 만들고 있는 작품이 소수를 위한 것이냐 다수를 위한 것이냐 라는 문제에 있다. 이건 다른거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이 블로그에 올린 글에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도 우습지만, 나한테 700억을 주면 내 영화 350편을 찍을 수 있다고 할게 아니라 지금의 내 영화 방식으로는 100억도 끌어모으기 힘들다는 걸 생각하고 그 방면에 들어간 열정을 고려해주면 더 좋았으리라.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어지는 성적 취향의 문제를 비롯하여 불특정 다수에 의한 언어폭력은 더더욱 문제겠지만 말이다.  문제는 그의 영화사 대표라는 김조광수 씨에 가면 더더욱 복잡해진다. 여전히 글은 블로그에 남긴 개인 글이지만 자신이 한 앞선 행동과 상반되는 행동이 나오게 되기 때문이다.

이우혁 님 개인홈피 http://www.hyou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