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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Drama

Lewis Nixon

1. 대전 이전

Lewis Nixon (1918.09.30 ~ 1995.01.11) 스텐호프 우드 닉슨과 도리스 리어 닉슨의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뉴욕출신으로 동생은 블렌시 닉슨이며, 할아버지가 유명한 조선사이자 소나를 발명한 루이스 닉슨이다(동명이인). 집안이 상당히 부유해서 7살때, 뉴욕 센트럴 파크의 컨서버토리 호수에서 열린 모형 요트 대회에 3번 참가하여 35인치 보트 부문에서 금상과 동상을 획득한바 있다. 어린시절을 뉴욕에서 보낸후, 캘리포니아를 비롯하여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세계 각지를 여행한 경력이 있으며 예일대학교를 다녔다. 1941년 1월에 군에 자원입대하였고 같은해에 OCS과정을 거치면서 공수부대에 지원했다.

2. 2차대전

병사로 군생활을 시작한 닉슨은 OCS(장교지원학교. Officer Candidate School. 우리나라에도 있는데 부사관이나 병사들 중에서 장교가 되고 싶은 이들을 선발하여 교육한 다음 장교로 임관시키는 학교)를 거쳐 미101공수사단 506연대에 임관했다. 닉슨과 윈터스는 이곳에서 처음 만나 조지아의 토코아 캠프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친해졌다.

닉슨은 S-2의 대대 정보장교가 되었으며 카랑탕 점령시에 대대정보장교로서 만족할만한 능력을 발휘했다. 노르망디, 마켓가든, 바스토뉴, 독일에서 종군하면서 항상 참모직에 있었다.

1945년 3월 24일에는 멕스웰 테일러 장군의 지휘하에 17공수사단과 Operation Varsity(플런더 작전의 일환으로 2개사단 1,700대의 항공기를 동원하여 이루어진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공수작전. 웨스트포인트에서는 공수작전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 가의 표본으로 가르친다. 전쟁이 끝나간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서 과시용으로 실시한 작전에 가깝지만.)에 참가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 대위로 전역했다.

3. 대전이후

전쟁이 끝난 이후, 닉슨은 뉴저지의 닉슨에 있는 Nixon Nitration 공장의 아버지 밑에서 일을 했다. 닉슨의 절친한 친구인 윈터스도 이 공장에서 매니저 역할로 일을 한 적도 있었다. (1954년, 라리탄 마을에서는 마을 이름인 "닉슨"을 "에디슨"으로 변경하는 투표에 관해서 의견을 모으고 있었다. 루이스 닉슨의 할아버지는 이 마을에 1913년 정착하여 이곳에 공장을 지었고 그의 성을 따서 이 마을의 이름이 붙여진 것이며 닉슨은 엘리자베스에 크레센트 해군조선소를 건설하여 미국 최초의 현대식 잠수함을 개발한 경력이 있는 유명인이었다. 1954.11.02 투표로 닉슨 마을은 에디슨으로 이름이 개칭되었지만 오늘날에도 닉슨 구역이 우드브리지 거리 남쪽에 있으며, 우체국 이름도 닉슨 우체국이다.)

전쟁이 끝나기 전 첫번째 아내와 이혼한 닉슨은 한동안 술로 (특히 Vat 96) 방황의 시기를 보냈으며 세번째 아내 그레이스와 결혼하기 전까지 두번 이혼한 경력이 있다. 닉슨은 여생을 아내와 세계를 여행하며 살았고 1995년 로스앤젤리스에서 당뇨로 사망했다.

http://www.506pireasyco.com/lewis_nixon.htm

http://en.wikipedia.org/wiki/Lewis_Nix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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