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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gi

쇼기 금지의 위기

2차대전때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군이 연합군 포로를 학대한 사건은 꽤 알려져 있습니다. 파고 들어가다보면 일본측이 꼭 포로를 학대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문화적 차이 때문에 오해가 일어난 것에 불과하다는 등 반론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일본군은 포로가 되는 것을 엄청난 수치로 여겨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사건이 많았죠.[각주:1] 이 정도로 포로가 되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포로로 잡힌 적을 잘대해주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고요.

아무튼,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연합군이 진주하여 일본에는 미군정(이하 GHQ)가 통치를 담당하게 됩니다. GHQ는 일본사회가 지극히 군국주의적인 체제이고, 이것을 "수정"해야 한다고 판단을 내리면서 교육을 비롯한 사회 각 분야를 검토하게 되었고 그 대상 중에 일본장기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GHQ가 주목한 부분은 일본장기 최대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잡은 말을 다시 활용한다"라는 점이고, 장기의 말만 봐도 체스 계열의 말들은 인형처럼 되어 있고, 중국이나 우리나라 장기말은 글씨가 씌여진 가로세로 대칭형이지만 일본장기 말은 앞과 뒤가 분명한 오각형으로 이루어져서 방향만 돌리면 바로 자신의 말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죠. 그런 말이 쓰이게 되자마자 잡은 말을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규칙이 생겼다고 명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14~15세기 부터는 계속 그런 룰이 이어져 왔다는 것이고, 바로 이런 특이한 점이 미국인들에게 카미카제로 대표되는 문화적 쇼크를 가져온, 일본문화의 극단적인 면의 원형에 닿아있지 않는가 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 자체는 전부터 들어온 것이지만(월하의 기사에서도 이를 모티브로 하는 내용이 나오고 있다.) 내용의 출전을 쉽게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쓰다 고조의 자서전적인 글들에 나오는 듯 하더군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일본장기연맹이 위세가 하늘을 찌르는 GHQ에게 해명의 사자로 파견한 것이 마쓰다 고조 였죠. 지위로 보면 "일본장기연맹간사이본부장대리" 정도였지만 당시 견식이나 기지, 담력 등등 여러면에서 일본장기금지의 위기에서 해결사롸 담판을 짓게 되었죠.

 

GHQ를 찾아가니 맥주를 내어주길래 [각주:2] 태연하게 한잔 하고는 "뭐냐 이거 겨우 맥주를 주는건가!"라고 되려 화를 냅니다.

GHQ쪽에서는 "그렇다면 나폴레옹이 있는데 괜찮겠나?"라는데, 마쓰다 고조는 양주가 뭔지도 잘 모르고

"나폴레옹처럼 겨울이 오면 져버리는 술은 필요없다"라고 거절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의에 대하여

"쇼와 시대의 전쟁에서는 포로라고 하면 때리거나 차던지 해도 좋다는 것이 되었지만 옛날 (일본 남북조 시대) 쿠스노키 마사시게는 적병이 강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이것을 구해내었다. 원래는 그냥 죽도록 내버려 두어도 되는 적군을 구해내었고 살아난 적병들이 감격해서 '당신 밑에서 일하겠습니다'라며 같은 편이 되어 싸워주었다. 이것이 일본 본래의 정신인 것이다. 장기는 쿠즈노키 마사시게 들이 활약할 무렵에 생겨난 것으로 이러한 취지에 따르는 것이다. 오히려 체스처럼 잡은 말을 죽여버리는 것이 포로의 학대다."

"일본장기에서는 적의 말을 잡았을 때에도 금이라면 금으로, 은이라면 은으로 사용하지 계급을 강등시켜서 졸로 사용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뜻에 따르는 것은 모두 우리와 같은 편이라는 견해다."

"무도의 武란 창을 멈춘다는 뜻이다. 힘을 밖으로 향하게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수양하기 위해서 무예를 닦는것이다."

"교양을 닦기 위해서 말에도 이름을 글로 적었다.(체스에서는 모양으로 표시한다.) 즉, 장기를 두는 것은 교양의 일부인 것이다."

"체스에는 여왕이 있으므로 남녀가 참여하여 민주적인 듯 하지만 레이디퍼스트라고 하면서 왕을 살리기 위해 여왕을 희생시키기고 있다. 일본에서는 전쟁터에 여자를 데려가지 않으며 성이 함락될때에도 여자는 놓아준다던지 여러가지로 감싸주어왔고 뒷길을 열어주거나 한다. [각주:3]"

라는 날카로운 논리로 GHQ를 설득해서 오히려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내었습니다.

GHQ측의 문서 등으로 검증할 수는 없는 듯 하지만 마쓰다 고조 본인의 자서전 "보를 금으로 만드는 방법', "명인에게 향차를 떼고 둔 남자" 등등에 기록되고 나름대로 알려진 에피소드로군요. 재미도 있고 마쓰다 고조라는 사람의 성격이 재미있게 드러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과연  GHQ 정도의 기관이 일개 프로기사와의 대담만으로 정책을 바꿀 것인지가 의문스러운 면도 있습니다. 게다가 내용중에 살이 붙으면 맥아더와 직접 대담하여 장기는 남긴다고 확약을 받아내었다던지 하는 수준까지 확대되고 있지만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들 때문에 어디까지 신뢰할 내용인지는 의문도 있습니다만, 마쓰다 고조 라는 사람의 유쾌함이 잘 드러나는 이야기이며 일본장기의 독특함에 대한 문화적 차이를 생각해볼 수 있겠죠.

  1. 1941년 일본군 야전복무 규율은 포로로 생포되지 말라고 하였으며 1908년의 일본군법은 최후의 1인까지 싸우지 않고 항복한 부대의 지휘관은 사형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타라와에서 콰젤린에 이르는 전투에서 일본군의 사망율을 98%에 이르러 '포로가 되느니 자살하라'는 규율이 이행되고 있었음을 단적으로 증명해준다. [본문으로]
  2. 위스키나 맥주 중 어느 것을 마시겠느냐는 물음에 말문이 막히거나 하면 화장실에 갈 핑계를 찾기 위하여 맥주를 달라고 했다는 말도 있다. [본문으로]
  3. 오다 노부나가의 동생 노히메는 첫남편 아사이 나가마사나 둘째 남편 시바타 가쓰이에 모두 성이 함락될때 생명을 보존받았다. 하지만 정략결혼의 대상으로 이리저리 끌려다닌 운명을 고려하면 도저히 존중한다고 까지 말하기는 힘들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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