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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동항로

북방항로 도전기 11. 바렌츠의 모험 바렌츠의 모험 네덜란드의 탐험 영국인들은 거듭되는 실패로 북방항로 탐사에서 손을 떼었지만 1588년 에스파냐에서 독립한 네덜란드는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동방으로 통하는 새로운 항로를 찾느라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고 북방항로도 그 후보중의 하나였다. 1594년과 1595년, 네덜란드 의회는 "메소포타미아와 타타르(오늘날의 중앙아시아 및 시베리아 지역)? 북부를 따라가는 탐험여행"을 시도하게 된다. 1차 항해에서는 탐험대는 오렌지 군도 일대를 탐사했으며 바다코끼리 떼를 발견하여 상아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에 고무되었지만 북극곰을 만나 생포하려다가 탐험대원 일부가 사망했다. 원하던 목적달성에는 살패했지만 몇가지 새로운 발견에 고무된 네덜란드는 다시금 카타이와의 무역을 희망하면서 탐험대를 파견했다. 불행히도 .. 더보기
북방항로 도전기 3. 북동항로에의 첫도전 북방 진출에 있어서 먼저 시도된 것은 북동항로로, 이 항로는 무엇보다 경제적인 이점을 강조하는 일단의 이론가들에 의해서 지지를 받고 있었고 이들의 필두에는 존 디가 있었다. 당대의 대수학자이며 천문학과 지리학에도 조예가 깊고 메르카토르와 친분이 깊은 존 디는 당시 궁정점성술가로 엘리자베스 1세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에녹어"라고 하는 독특한 언어를 제창하여 대천사장 미카엘과도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바디랭기지의 달인 띠딕 존 디 선생은, 아라비아 지리학자들의 저작을 근거로 타빈곳이라고 하는 지점을 지나면 항로가 남동쪽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일단 이 항로를 통한다면 카타이와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북해안으로 바로 갈 수 있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포르투갈이나 에스파냐가 항로를 발견하여 막대한 부를 쌓아올.. 더보기
북방항로 도전기 4. 북서항로론의 대두 스티븐 버로우 상당한 희생을 치르기는 했지만 이로써 러시아와의 교역로가 개설되었다. 뇌제 이반의 치하였던 당시의 러시아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스웨덴 제국에 의해 서방 진출이 저지되고 있었고 발트해의 교역로는 한자동맹의 통제하에 있었다. 이들의 방해가 없는 신 교역로는 영국과 러시아 모두에게 이익이었고 당시에도 귀중품이었던 모피를 수입하게 되자 이에 고무된 모험회사의 투자가들은 3년뒤인 1556년, 스티븐 버로우(Steven Borough)의 지휘하에 새로운 북방항로 탐험대를 파견한다. 챈슬러의 항해사로 저번 항해에 참가했던 스티븐 버로우가 지휘하는 서치드리프트(Serchthrift) 호를 환송하기 위해 80세의 고령이 된 영국 최고의 도항사 세바스티앙 카보트가 그레이브샌드항까지 찾아와 직접 배를 둘러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