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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Arab Israeli conflict

샬롬 파 갈릴리

중동에서 가장 아름답고 살기좋다고 손꼽히던 레바논은 기독교 계와 이슬람 계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어 발전해나가고 있었으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유입과 이들의 정치세력화로 인하여 균형은 무너지고 결국 레바논은 내전으로 황폐해지기 시작했다.

1975년부터 레바논은 내전에 휩싸였고 예측하던 대로 피로 피를 씻는 복수는 여기서도 이어진다.

이스라엘은 거듭되는 테러의 근원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PLO사령부가 있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를 침공하는 "샬롬 파 갈릴리(갈릴리의 평화)"작전을 실시해버린다. 이 전쟁의 결과로 PLO와 이스라엘은 모두 국제적인 고립에 시달리게 되었으며 잠시 평화 공존을 추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미 서구화가 진행되어서 출산율이 낮은데다가 사회적으로도 젊은층의 염증이 점차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다.(우리나라는 50년 전에 전쟁을 한번 치렀을 뿐이다. 그걸 4번-레바논 침공까지 5번, 쿠웨이트 전의 불똥까지 고려하면 6번-이나 치른 상황에서 사회 분위기가 경직되고 반전론이 없을 수는 없다.)

게다가 원래 이스라엘이라는 지역이 생활에 적합한 환경도 아닌데다가 키브츠의 고된 생활도 문제라서 이스라엘의 입지는 좁아지는 반면에 동정여론이 점차 확산된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통합움직임에 위협을 느낀 이스라엘은 나름대로의 타협안을 제시하게 된다.

이제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이제 세 지역에 고립되어 살아간다. 가자지구, 요르단 강 서안, 예루살렘 일부. 세지역은 모두 장벽으로 고립되어 물자의 운반이 불가능하게 되어가고 있으며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어렵게 되었다.

가자지구나 웨스트뱅크에서 농산물을 생산해도 시장에 내다 팔려면 장벽을 통과해야 하고, 그러려면 수많은 검문소들을 지나쳐야 하기에 물자의 유통이 불가능하다.

동예루살렘에 거주하는 23만명의 팔레스타인 인들은 6만여 웨스트뱅크 거주자와 고립되어 "게토"에 갇혀버린 것이다. 실제로 독일군이 2차대전때 자행하던 일을 이제는 '테러방지'의 명목으로 이스라엘이 그대로 이어받는 듯하다.

지속적인 테러와 보복으로 인하여 어린아이들도 자동소총을 능숙하게 다루는 상황에서 미래가 없어진 팔레스타인 난민들과 이스라엘은 아직도 피로 피를 씻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이 테러를 자행하기 때문에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

지금의 팔레스타인 독립 운동은 이제 과거와는 성격 자체가 달라졌다. 2차 중동전쟁 이후로 이어진 팔레스타인 탄압정책이 민들레 홀씨처럼 새로운 복수의 씨앗을 잉태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 비극의 씨앗은 서방제국들이 뿌린 것이다. 분란의 씨앗을 뿌리고,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서 이용하고, 혹은 헌신짝 처럼 버리고. 그리하여 모두가 눈을 돌린 곳에 이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남았다.

언제쯤 이들은 아라파트가 말했던 것처럼 총을 내려놓고 올리브 묘목을 심을 수 있을까.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팔레스타인의 평화공존에 따르는 수많은 희생을 감당할 기분이 아니고,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는 이대로 있으면 모두 죽을 수 밖에 없다. 서방 각국에서는 자기들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외면하고, 아랍 각국은 정치적 이유, 종파적 차이를 이유로 외면하고.

최근에는 이스라엘이 나쁘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으로 등장하고 있다. 사실 그렇긴하다. 지금 이루어지는 폭력행동을 보면 이스라엘은 재앙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50년간 이미 존재해왔고 자국민의 피로 존재를 증명해온 나라를 없애버리는 것 또한 불가능한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스라엘 쪽에서 물러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했지만 역시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의 희망의 메세지를 담은 기사를 인용해보고자 한다.

올해 25세로 동갑인 자타르와 아비사르는 예루살렘 인근의 동물보호소에서 직장 동료로 만나 사랑에 빠져 2004년 결혼했다.  아비사르는 자타르와 결혼하기 위해 이슬람으로 개종할 정도로 남편에 대한 사랑이 깊다. 그러나 결혼 3년째가 됐지만 부부와 아내로 함께 살지 못하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갈라놓고 있는 제도적 장벽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국민은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 보안 상의 이유로 당국의 허가 없이는 들어갈 수 없고, 특히 2003년 만들어진 이스라엘 국적ㆍ귀화법은 이스라엘인과 결혼하는 점령지내의 팔레스타인에게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주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이스라엘 인권단체가 제기한 국적, 귀화법의 위헌 심판 소송에 한가닥 기대를 걸었지만 이스라엘 대법원은 최근 이 법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 법은 35세 이상 남자나 25세 이상의 팔레스타인 여자에 한해 배우자를 만나는 목적의 이스라엘 단기방문을 허용하는 조항을 지난해 새로 담았다.

이 조항으로 자타르가 아비사르를 만나러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열렸지만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방문신청 자격을 얻는 데만도 10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이스라엘에선 모든 것이 안보의 틀로 규정된다.  ... 부부가 함께 사는 것은 기본적 인권이지만 존중되지 않는다. ... 군복무 같은 국민의 의무를 다한 모범적인 이스라엘 국민이었으나 오사마와 결혼한 순간 나는 내동댕이쳐졌다"

발레를 전공한 아비사르의 꿈은 조각가인 남편과 함께 라말라에 살면서 발레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아비사르는 대법원에 관련 소송을 제기해 놓았다. 지난 3월 어렵사리 3개월 짜리 라말라 방문 허가를 얻어 남편과 오랜 만의 귀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비사르는 "법이 언젠가는 바뀔 것"이라며 남편과 온전한 가정을 이룰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