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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Arab Israeli conflict

에레즈 이스라엘

이스라엘을 지형적으로 분석하면, 북부의 고지대와 남부의 황무지까지 다양한 기후가 나타나는 폭이 좁고 길이가 긴 형태의 국가이다. 특히, 요르단강 서안, 웨스트 뱅크 지역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던 과거에는 폭이 겨우 20km에 불과하여 종심방어 전술을 펼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대표적인 반이스라엘 국가인 이집트와 시리아를 양쪽으로 맞이해야 하는, 그야말로 수비에는 절망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이스라엘은 1~4차 중동전을 모두 승리로 이끈다.

1차 중동전쟁은 일반적으로 팔레스타인 전쟁으로 불리우며 이스라엘의 독립전쟁이기도 하다.

당시에 군대 조직 자체도 존재하지 않던 이스라엘은 국가설립 이전에 존재하던 자경단 조직을 급히 군대형태로 격상하고 해외 각지에서 무기를 끌어들여 다급하게 무장을 갖추었다. 2차대전때 사용되던 고철까지도 수입하여 재활용하는 등 이스라엘 군의 특징을 이루는 요소는 대부분 이 시기에 갖추어졌다. 전쟁은 거의 2년간에 걸쳐서 이루어졌지만 아랍제국이 강한 전쟁수행의지를 갖지 않은관계로 지지부진하면서도 이스라엘에게 군조직을 정비하는 기회를 제공하였고 물러날 곳이 없던 이스라엘은 아랍 각국을 개별적으로 타격하는 방법으로 휴전을 도출해낸다. 이와 동시에 지금까지 공존관계에 있던 팔레스타인 인들은 주거지에서 강제로 쫓겨나는 비극을 맞이하기 시작하고 현대의 팔레스타인 비극은 이 시기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2차 중동전쟁은 수에즈 전쟁이라고도 불리운다. 52년 쿠데타로 집권한 나세르는 아랍민족주의의 기수로 입지를 굳혀갔으며 이로 인하여 아프리카 식민지에 여전히 관여하고 있던 영-프와 갈등을 형성하면서 점차 소련에 접근하기 시작한다. 1차 중동전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되던 이스라엘과 아랍제국과의 마찰은 나세르가 이집트군을 소련제 무기로 무장시키고, 알제리의 독립운동을 지원함에 반감을 품은 영국과 프랑스가 이스라엘에 무기를 대량으로 공급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었고 수에즈 운하의 국유선언으로 사태는 전쟁으로 치닫게 된다.

이스라엘은 56년 10월 이집트에 기습공격을 가하여 9일만에 이집트의 공군력을 궤멸시키고, 수에즈 운하를 점령하는 성과를 거두지만, 영-프-이 연합군은 국제적인 여론의 악화로 인하여 전쟁에서 이기고 외교적으로는 실패하는 상황에 처하여 결국 수에즈 운하에 대한 이집트의 권리를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부터 이 문제에 대하여 미국의 입김이 강해지기 시작한다.

사실 현대 이스라엘을 미국의 세계전략과 분리시켜서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미국은 전략적 우위를 위하여 호르무즈만의 석유자원에 대한 지배권을 중시하고 있는데, 현대 산업사회의 총아인 석유자원이 매장량의 40%이상이 중동에 존재하며 세계 유가의 기준점인 중동 두바이유, 텍사스 중질유, 북해산 브렌트 유에서도 그 중에서 중동 두바이 유는 국제유가 시장에서 최대의 영향력을 가진다는 점(가장 저가) 때문에 석유자원의 효과적인 통제를 위하여 미국은 2차대전을 전후해서 이 지역에 강력하고 안정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초기에 미국의 중동전략은 크게 중동지역을 동과 서에서 축으로 강력하게 압박하는 구조를 원했다. 따라서, 사우디아라비아를 서쪽 축으로, 이란을 동쪽 축으로 하여 이 지역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를 원했다. 그러다가 70년대 호메이니가 이란의 팔레비 왕조를 축축하고 반 미국정권을 축출하게 되면서 미국의 국제전략은 크게 흔들리는 시기를 맞이한다. 이 후에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등 영향력 강화를 지속적으로 모색해왔으나 구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나서면서 미국의 호르무즈 연안의 전략적 우위는 크게 흔들리는 상황까지 가고 있었다.

냉전시대의 종말과 함께, 미국은 새롭게 이 지역의 지배권을 강화할 수 있게 되어 이제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라는 커다른 축을 한꺼번에 장악하여 아랍에 친미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60년대 부터 70년대 중. 후반까지 이스라엘은 이러한 미국의 중동전략에 있어서 특히 중동제국이 친소련적 분위기에 대한 대항마로써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중동 바로 북쪽에 위치한 소련의 영향이 강해지자 이스라엘은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고 이집트의 나세르는 독재자의 전형적 수순이라고 할 수 있는 군사대국화와 그에 따르는 경제악화라는 국내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국외의 적을 찾기 시작한다.

이리하여 미-소 냉전의 대리전으로써 이스라엘-아랍에 전운은 더욱 짙어지기 시작한다.

3차 중동전쟁, 6일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이 전쟁은 두말할 것 없는 이스라엘의 완승이다.

요르단강의 상류에 위치한 요르단에서 이스라엘의 생활용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요르단 강의 수량을 줄여버릴 수 있는 댐을 건설하겠다고 함으로써 촉발된 아랍제국과 이스라엘의 갈등은 전쟁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군사력만을 비교해도 전차 2.6:1 병력 1.8:1 전투기 1.5:1로 명백한 열세였던 이스라엘 군이

기습작전으로 이집트-시리아-요르단의 공군력을 궤멸시킨뒤, 지상군에서 먼저 이집트 군을 제거하고 단숨에 군을 되돌려 시리아를 격파하는 각개격파 작전으로 기적같은 완승을 거두는데 성공한다. 이스라엘은 전쟁이전 본토 면적의 6배에 달하는 4만 7천 평방마일의 새로운 영토를 획득했고 무력을 통한 영토점령이라는 지극히 구시대적인 행동을 저지르고도 아랍제국의 회유와 협박에 눈하나 꿈쩍하지 않고 골란고원, 시나이 반도, 웨스트 뱅크에 정착촌을 건설하고 자국민을 대거 이주시키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잠시 이스라엘의 점령지를 전술적 가치로 분석하자면 이스라엘 북부의 골란고원은 그 생활환경이 적합하며 동시에 시리아군의 기동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라는 점, 시나이 반도는 이집트 군의 기동을 봉쇄하는 완충장치로 기능한다는 점, 요르단강 서안(웨스트뱅크)는 방어에 불리한 종심을 강화하는 완충지로써 모두 전략적 가치가 높은 지역이다.

이런 전략적 이점을 획득한 이스라엘은 총참모장 모세 다얀 장군이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이전에는 예루살렘을 완전히 점령하지 못하고 있었다) 말했듯이 "다시는 이곳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식으로 배짱을 튕겼고 이미 이 시점에서 아랍제국은 복수의 칼날을 갈기 시작했다.

이후, 이집트에서 나세르가 사망하고 안와르 사다트가 대통령직을 이어가면서 중동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다. 아랍과 이스라엘의 군비경쟁은 지속적으로 이어졌지만 아랍국가들도 엉망인 군기로 대표되던 과거와는 달리 치밀한 준비를 통하여 이스라엘에 복수를 노렸고 이것이 다시 4차 중동전쟁. 이른바 욤키푸르 전쟁으로 이어진다.

4차 중동전쟁의 특징은 초반에 이루어진 이집트군의 대승에 있다. 이집트 군은 대전차미사일과 대공미사일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이스라엘군의 기갑부대를 철저하게 공략했고 이로 인하여 전쟁 초반에 엄청난 전과를 거두는 데 성공하였다. 반대편이 시리아군도 골란고원을 효과적으로 공략하였고 이스라엘 군은 전면적인 붕괴에 직면하는 위기상황까지 갔으나 베카계곡에서 처절한 혈투를 통하여 수적으로 5배 이상 우위에 있는 시리아군 전차대를 후퇴시키는 데 성공하여 어렵게 전투의 승기를 잡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동시에 아랍제국은, 석유를 전략무기로 사용하여 석유공시를 1배럴당 3달러 2센트(현재의 석유가와 비교해 보라)에서 17%상승시키기로 하였으며 이스라엘이 점령지역에서 철수하고 팔레스타인이 권리가 회복될 때까지 매월 원유생산을 5%씩 감소시키겠다는 선언을 한다. 이것이 바로 1차 석유파동이다.

서방 제국은 이로 인하여 지금까지의 친이스라엘 정책에서 180도 선회, 친아랍정책으로 바꾸었고, 우리나라도 대사급 외교관계에서 대사관을 이 시기에 철수시키는 등 아랍과의 친분을 쌓는데 주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후에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고 현실적이고 평화적인 공존이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중동의 긴장은 크게 완화되었다. (그 대가로 아랍 근본주의자에게 암살당했다.)

이 후 이스라엘은 아랍각국과 관계를 개선해 나가는데 성공하였으나 동시에,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처지는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그들은 아랍국가들에게도 버림받은 상태로 이스라엘의 탄압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http://kuic.kyonggi.ac.kr/%7Eladas/mid.htm

http://airwar.hihome.com/airwar/mid-east/airwar-mideast1.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