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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Arab Israeli conflict

1차 중동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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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부터 1949년에 걸쳐 아랍 제국과 신생 이스라엘 간에 벌어진 전쟁. 1차 중동전쟁, 팔레스타인 전쟁이라고도 하며 이스라엘 측의 호칭은 "독립전쟁", 아랍 측의 호칭은 "알 나크바" 이다. 이 전쟁의 승리로 이스라엘은 독립국으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배경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1차 중동전의 배경 참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팔레스타인에서는 이주해온 유대인들과 거주하던 아랍인의 사이에 통곡의 벽 사건 등, 산발적인 충돌이 계속되었다. 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들은 나찌에 대항해 영국에 협조를 아끼지 않았지만 대전 종결후 약속과는 달리 국가 건설이 부진해지자 유대인은 영국에 대한 무력 투쟁을 개시했다.

유엔 결의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UN총회 분리안 참고.

1945년 후반, 팔레스타인에서는 유대인 무장조직 레히, 이르군, 츠바이 레우미, 파르맛하 등에 의한 무력 투쟁이 활발해졌다. 이에 영국도 육군을 투입하여 치안 유지에 나섰고 1946년 6월 29일, 유대인 지하조직의 일제 검거를 실시해 3천명 이상을 체포했으나 이르군이 이에 반발하여  7월 22일, 영국군 사령부가 있는 예루살렘의 킹 데이비드 호텔을 폭파, 영국군 사령부 요원 상당수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혼란으로 팔레스타인 식민지 통치가 어려워진 영국정부는 1947년 1월에 팔레스타인 통치 문제를 국제 연합에 의뢰한다. 국제연합의 토의에서 소련의 발의가 강하게 작용하여 아랍과 유대인 분할안이 대두되고 11월 29일에 유엔 결의안 181호로 팔레스타인 분할 통치안이 결의되었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글들을 참고.

1차 중동전쟁, 3. 팔레스타인 내전. 개괄

1차 중동전쟁, 4. 국제정세와 전환점

1차 중동전쟁, 5. 하가나의 공세

1차 중동전쟁, 6. 내전에서 전쟁으로

이로써 팔레스타인은 아랍인 지역, 유대인 지역, 유엔 통치지역(예루살렘 지역)으로 분할되게 되었으나 아랍계는 상대적으로 소수인 유대인에게 팔레스타인의 1/3 이상을 양보하게 되자 일제히 반발에 나서 결의안 통과 다음날부터 팔레스타인은 사실상 내전 상태가 되었다. 아랍인들에 의해 습격, 암살등이 빈번해지자 유대인들도 반격에 나섰고 이미 치안 유지 능력을 상실해버린 영국군이 수수방관하는 가운데 내전은 격화일로를 달렸다. 이미 사태를 수습할 수 없다고 판단한 영국군은 1948년 5월 15일까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한다.

전쟁 준비

이 부분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분쟁의 주역들 참고

내전이 심화되자 아랍측은 각국에서 병력을 파견하고 1948냔 2월에는 아민 알 후세이니와 압둘 카델 등이 인솔하는 아랍 의용군이 결성되었으며 파지 알 쿼크지가 인솔하는 아랍 해방군도 결성되었다. 유대계도 민병대 하가나를 중심으로 소집을 실시하고 종군 경력이 있는 유대인에게 권유하여 7만여명의 병력을 동원했다. 무기는 대전 종결 직후인 유럽각지에서 구입함으로써 유대인의 군사조직은 급격히 발전하게 된다. 1948년 3월 경부터 아랍계 부대는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유대인의 수송 트럭을 습격하여 고립시키는 작전을 실시한다. 이에 유대계가 보복에 나서면서 데이르 야신 사건이나 의료 종사자 학살 사건 등, 쌍방에 의한 학살 사건이 발생했고, 이 때문에 아랍인들 사이에 공포감이 증대되어 팔레스타인으로부터 탈출, 난민이 발생하게 된다.

전쟁 추이

이 부분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전쟁의 전개 참고

발발

영국군이 팔레스타인에서 철수한 1948년 5월 4일, 유대 국민 평의회는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언한다. 동시에 이 날 레바논, 시리아, 트렌스요르단, 이라크, 이집트의 아랍 연맹 5개국(나중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 모로코도 부대를 파견했다)은 선전포고를 하고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아랍측의 병력은 15만명, 이에 대항하는 유대인 병력은 합계 3만으로 압도적인 수적 열세에 놓여 있었다. 아랍측의 주력은 ‘아랍 군단’이라는 별명의 정예부대를 보유한 요르단 군과 시나이 반도에서 진격하는 이집트 군이었다. 반면 이스라엘 측은 UN의 금수조치로 무기보관과 구입이 금지되고 있었기에 게릴라 부대인 하가나가 체코슬로바키아 등지에서 밀수해온 소총으로 응전하고 있었다. 5월 18일, 요르단 군은 예루사렘을 포위하고 28일에는 구시가지의 유대인 방어부대가 항복했다. 그러나 예루살렘 신시가지는 이스라엘이 계속 방어하고 텔아비브에서 지원을 받어 철저 항전을 유지했다. 이곳에 대한 보급을 둘러싸고 라트룬 요새등에서 격전이 벌어지게 되어 결국 요새는 아랍측에게 넘어갔지만 6월에 이스라엘은 우회로를 건설, 예루살렘 신시가지로의 보급에 성공한다.

제1차 휴전

이 시점에서 유엔이 정전을 호소하는 결의안을 가결, 쌍방은 이를 수락하고 6월 11일부터 4주간 휴전을 가지게 되었다. 이 기간중에 이스라엘은 부대의 재편을 실시하여 주력인 하가나 외에 슈테른, 레히 등으로 나누어져 있는 지휘계통을 일원화 시키는 작업에 착수했다. 하가나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국방군이 조직되었으나 이르군은 반발하고, 마침내 무기수송선 아르타레나 호를 둘러싸고 6월 21일부터 이스라엘 국방군과 전투가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이르군은 이스라엘 국방군에 제압되고 이스라엘은 지휘 계통을 일원화 시키는 데 성공한다. 이 후에 체코슬로바키아 등지에서 메서슈미트기를 중심으로 하는 무기가 도착하여 반격의 준비를 갖추게 된다. 아랍측도 이 기간에 조정을 실시했지만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조정은 실패한다.

전투 재개

정전이 종료된 7월 9일, 이스라엘 국방군은 아랍군에 반격을 개시, 전투가 재개되었다. 이에 대해 유엔은 다시 정전 결의를 가결하고 7월 18일부터 제2차 휴전을 실시했다. 글나 이 정전은 곧바로 소규모 전투를 계기로 소멸되고 전면전이 재개되었다. 제1차 정전기간 중에 재편성을 실시해서 군비를 강화한 이스라엘 군은 아랍측을 각지에서 격파해 나갔다. 2차 세계대전 참전 경력자인 베테랑 파일럿들로 구성된 공군이 제공권을 확보하여 유리한 상황에 놓인 이스라엘이었지만 9월 17일에 스웨덴 적십자 총재인 폴케 베르나도테 참사관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조직 슈테른에 암살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국제여론은 이스라엘에 비판적이 되었다. 1948년 12월, 이스라엘군은 남부 네게브 사막에서 공세로 전환하여 한때는 시나이 반도에도 침공했지만 여기서 이집트를 영향권에 두고 있던 영국의 경고를 받아 철수한다.

정전

이 부분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전쟁의 결과 참고

1949년 1월부터 전쟁에 지친 각국은 정전교섭을 개시하여 2월 23일에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전전협정을 시작으로 7월까지 각국과 정전협정이 체결되었다.

팔레스타인의 대부분은 이스라엘이 획득했고 정전시에 이집트 군이 주둔한 가자지구는 이집트 령이 되었으며 요르단군이 주둔하던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포함한 요르단 서안지역은 12월에 팔레스타인 일부의 잔성과 트랜스요르단 의회의 결의로 트랜스 요르단에 편입되어 요르단 하시미트로 변경되었다. 이 때 확정한 국경선은 "그린라인"이라고 불리고 지금까지도 이스라엘과 아랍의 경계선으로 국제적인 해석을 받고 있다.

성지 예루살렘은 동쪽을 요르단이 서쪽을 이스라엘이 영유하면서 그 중간지점을 유엔이 감시하는 비무장 중립지대로 설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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