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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gi

왕장전 王将戦

스포츠 니혼과 마이니치 신문사가 주최하는 일본장기의 기전. 7대 타이틀의 하나로, "왕장전 7번국"의 승자는 "왕장"이라고 불리운다. 1950년에 창설

구조

1차 예선, 2차 예선, 도전자 결정 리그를 통해 도전자를 결정한다. 도전자는 왕장과 7번 대국해서 먼저 4승을 거둔 기사가 새로운 왕장이 된다.

1차 예선

시드 배정자와 2차 예선에 출전하는 기사를 제외한 순위전 B급 1조 이상의 기사들이 토너먼트 형식으로 겨루어 각조의 토너먼트 승자는 2차 예선에 진출한다. 1차 예선과 2차 예선의 제한시간은 각 3시간.

2차 예선

1차 예선 통과자와 2차예선에 출장하는 기사(전기 도전자 결정 리그 통과자, 타이틀 보관 유지자, 순위전 A급 기사 및 영세 칭호자)를 합한 18명에 의하여 토너먼트 형식으로 치르게 된다. 3명이 도전자 결정 리그로 진출한다.

도전자 결정 리그

2차 예선 통과자 3명과 배정자(전기 도전자 결정 리그 잔류자와 왕장 패전자) 4명을 포함한 합계 7명이 전원 리그전을 실시하며 성적 최상위자가 복수 나오게 될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시드순서에 따라 최상위 2명이 플레이오프를 벌인다. 또, 성적 상위자 4명은 다음번 왕장전의 도전자 결정 리그 시드권을 얻는다. 같은 승점이 여럿 있다면 전기 도전자 결정 리그 잔류자를 우선시 한다. 제한시간은 각 4시간.

왕장전 7번국

왕장과 도전자가 7번 대국을 벌이며 전국 각지의 여관이나 요정에서 실시된다. 제한시간은 각 8시간, 2일제로 1일째의 마지막 날에는 봉수를 실시하여 중단한 측 기사가 다음 수를 다음날까지 생각하여 공정함을 기했다. 1993년도의 제 43기 5번국에서는 대국자나 부 입회인을 태운 비행기가 기후 불량으로 회항했기 때문에 2일제가 시간적으로 불가능해져서 제한시간 각 5시간의 1일제로 행해진 적이 있다.

상금

왕장전의 상금은 공개되지 않는다. 용왕전을 비롯한 일부 기전 이외에는 일본장기계 기전의 상금은 대부분 공개되지 않는다.

영세 칭호

영세왕장

영세 칭호인 "영세 왕장"은 왕장위를 통산 10기 이상 보관 유지한 기사에게 수여된다. 2007년 3월 현재 영세 왕장의 자격이 있는 기사는 오오야마 야스하루하부 요시하루.

추증왕장

세키네 긴지로 13세 명인과 격전을 반복한 것으로 유명한 사카타 산키치는 "왕장"이라는 타이틀로 수많은 연극과 영화 노래의 모델이 되었으며 사후인 1955년, 일본 장기 연맹에 의하여 "명인위"와 함께 "왕장위"를 추증받았다.

에피소드

왕장전은 일본장기계의 대표적인 에피소드가 태어난 기전이기도 하다.

핸디 제도

창설 당시에는 "3승차 핸디" 제도를 채용했는데, 이는 결승전의 당사자 간에 3승의 격차가 생기면 다음번 대국부터는 향차를 떼고 두는 대국과 평수로 두는 대국을 교대로 하게 되어 7국까지 승부가 계속되게 유도하는 시스템이었다. 창설 당시에는 일본장기연맹 내에서 마쓰다 고조를 필두로, 명인에게 모욕적인 대결이 될 수 있다는 신중론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주최측의 제안에 따라 이 제도를 시행하게 되었다. 이 결정에는 "명인이 불리해 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라는 키무라 요시오 명인의 발언도 기여했다고 한다

그러나 짓궂게도, 1951년의 제1기 왕장전에서 마쓰다 (당시) 8단이 키무라 왕장, 명인에게 4승 1패를 거두었다. 마쓰다는 향차를 떼고 두는 제 6국을 거부했고 이 사태를 중시한 연맹의 결정에 따라 한때는 1년간 대국 금지라는 처분을 받기도 했다. 이 "진가게 사건"은 일본장기계를 떠나 세간에서 주목을 받았으며 1955년에는 마쓰다가 오오야마 야스하루 왕장, 명인에게 3승 0패를 거두었고 56년 1월 20일에 향차를 떼고 마쓰다가 오오야마 명인에게 이겨 "명인이 향차를 뗀 상대에게 패하다"라는 사태가 일어난다.

이 제도는 1959년의 9기 부터 향차를 떼고 두는 것은 1국으로 제한하게 되었으며 1965년의 15기 부터는 제도 자체를 변경하여 어느쪽이건 4승한 시점에서 대전이 종료하게 되었기 때문에 향차를 떼고 두는 것은 없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사문화 되었더라도 왕장전의 핸디캡 제도 자체는 현재에도 규칙에 남아있다. 즉, 왕장전에서 4승차가 붙으면 실제로 향차 떼고 두기를 하게 되지는 않지만 기록상에는 남는다.

피도전자 결정전

창설 당초, 명인은 도전자 결정전에 참가하지 않고 대신에 전년도의 왕장과 "피도전자 결정전" 3번국을 실시하게 되어 있었다. 이 제도는 1953년의 제3기 이후로 폐지되어 4기 부터는 명인도 도전자 결정전에 참가하게 되었다.

1951년:명인, 왕장이 모두 키무라 요시오 였으므로 실시되지 않음
1952년:오오야마 야스하루 명인 2-1 마스다 고조 왕장
1953년:명인, 왕장이 모두 오오야마 야스하루 였으므로 실시되지 않음

기록

최연소 나카무라 오사무 23세
최연장 오오야마 야스하루 59세
최장기간연속우승 오오야마 야스하루 9연패
최다획득기수 오오야마 야스하루 20기

http://ja.wikipedia.org/wiki/%E7%8E%8B%E5%B0%86%E6%88%A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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