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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아키라, 마왕의 블로그

와타나베 아키라(渡辺明, 1984.04.23. ~ ) 기사 번호 235번. 영세용왕자격자. 도쿄 카츠시카 출신, 쇼시 카즈하루 문하.

기력

15세에 프로 데뷔

초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아마 5단이던 아버지에게 일본장기를 배웠다. 1994년 초등학교 4학년의 나이로 "초등학생 명인전"에서 우승(기록상으로는 3학년) 하면서 장려회에 6급으로 입문해 매년마다 승급하는 빠른 속도로 순위를 올리고 2000년 3월, 제26회 3단 리그에서 13승 5패로 1위를 차지해, 같은해 4월, 프로에 입문하면서 사상 4번째 중학생 기사가 되었다. 2003년 9월, 사상 3번째로 어린 나이에(19세) 타이틀 전에 첫도전. (제51기 왕좌전) 일본장기계의 최고봉 하부 요시하루에게 도전해 한때는 2-1로 앞섰지만 여기서 2연패를 당해 패배. 이 활약으로 장기대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20세 용왕

2004년 제17기 용왕전 본선 토너먼트에서 모리 게지, 타니가와 코지, 야시키 노부유키등을 격파하고 도전자 결정전에서는 모리시타 타쿠를, 꺽으며 10연승으로 파란을 일으키며 용왕 도전권을 얻었다. 그리고 모리우치 토시유키와 제17기 용왕전 7번국에서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해, 불과 20세의 나이로 일본장기계의 양대 타이틀 중 하나인 용왕위에 올랐다. 4조에서 용왕이 된 것은 후지이 타케시에 이어 2번째이며 야시키 노부유키(18세에 기성), 하부 요시하루(19세에 용왕)에 이어 사상 3번째로 어린 나이에 타이틀을 획득했다.

2005년 11월 30일, 키무라 카즈키를 4-0으로 일축하고 용왕위를 첫방어, 사상 최연소 9단이 되었다.(21세 7개월) 에 승단했다. 같은해 제13기 은하전에서는 모리우치를 꺽고 타이틀 전 이외에 전기사 참가 기전에서 첫우승을 거머쥐었고 제36기 신인왕전 결승에서도 치바 사치오를 2-0으로 꺽고 우승. 한해동안 총 41승을 거두어 장기대상 다승상을 수상했다.

2006년 3월에는 처음으로 NHK배 결승까지 진출했는데 마루야마 타다히사를 상대로 아깝게 패배했다. 이때 와타나베가 선수를 잡고 첫수로 매우 드문 ▲3六보(소매비차)를 사용했는데 대국 후의 인터뷰에서 "결승전이므로 한번쯤 화려한 수법을 사용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또, 63수 째에서 기습적인 ▲3三계 불성을 사용한 것에 대해서는 ‘매료시키는 수를 두고 싶었다’고. 덧붙여서 이 수는 계를 승격하는 것과 승격하지 않는 것에 큰 차이가 있었는데 와타나베가 두기 전에 해설을 맡은 치바 료코가 발견했서 같이 해설하던 요네나가 쿠니오는 "이거다 바로 이거야"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수가 나오자 요네나가는 치바에게 박수를 쳐주면서 "좋은 수를 두거나 감동을 주면 NHK가 상을 주나?"라고 묻자 치바는 "유감스럽지만 나오지 않네요~"라고 대답했다.

한편 2006년의 제19기 용왕전에서도 풀세트 끝에 사토 야스미츠를 물리치고 3연패에 성공, 후지이 다케시와 동률을 이루었다. 1국과 2국을 내주고 3국도 중반까지 열세에 몰려있다가 종반에서 그림같은 반전을 나와서 (124수의 ▽7九) 승부의 ㅡ흐름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제6국에서는 와타나베의 첫수 ▲7六보에 대해, 사토가 기습적인 ▽3二금을 사용해 "몰이비차로 나와라"고 도발하는 듯한 수로 나왔다. 이 도발에 와타나베가 넘어가서 서투른 몰이비차로 싸우다 패해 3:3으로 최종국을 맞이하고 사토는 다시 2수째에 기습적인 ▽3二금을 사용하자 이번에는 망루 울타리로 이어나가 승리를 거두었다.

2007년 3월 21일, 다이와증권배 인터넷 장기의 특별 대국으로, 당시 최강을 자랑하던 프로그램, Bonanza와 대국해서 112수만에 승리를 거두었다.

2007년의 제20기 용왕전에서도 작년에 이어 사토 야스미츠를 꺽고 용왕전 신기록인 4연패를 달성

초대 영세 용왕

해가 바뀌어 2008년의 제21기 용왕전에서 마주한 것은 용왕 통산 6기 재위를 기록하고 있는 하부 요시하루. 영세 용왕의 자격 조건은 5기 연속 또는 통산 7회 우승이므로 두 사람 중 어느쪽이 이기더라도 초대 영세 용왕에 오르는 진기한 대국이 되었다. 이 7번의 대국에서 와타나베는 1국부터 3연패를 당했지만 제4국에서 양쪽 모두 입옥하는 처절한 종반전을 제압하고 분위기를 반전시키더니 제6국에서는 급전 망루에서 새로운 수를 선보이고 완승을 거두어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운명의 제7국에서 와타나베는 후수차례 급전 망루를 채용해 종반까지 이어지는 난전끝에 서로가 제한시간을 다쓰고 1분 장기에 돌입한 상황에서 승리, 3패후 4연승으로 용왕전 5연패를 달성했다. 이는 일본장기계 최초의 사건으로(9개월 후 후카우라 코이치도 달성) 와타나베 아키라는 영세 용왕 자격을 획득 순위전 3단 리그에 속한 상태에서는 최초로 영세 칭호를 받았다.

와타나베가 영세 용왕 자격을 얻기까지 획득한 타이틀은 용왕위 뿐으로 다른 타이틀없이 영세 칭호를 얻은 것은 명인전 이외에 타이틀 매치 자체가 없었던 키무라 요시오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2009년의 제22기 용왕전에서는 영세 명인 자격자인 모리우치 토시요키가 도전자가 되어 타이틀 전 사상 최초로 영세 용왕 대 영세 명인의 대국이 되었지만 와타나베가 4-0 스트레이트 승을 거두면서 다소 싱겁게 방위에 성공했다. 2010년의 제23기 용왕전에서도 2년만에 만난 하부 요시하루를 4-2로 꺽고 용왕전 7연패를 달성, 더불어 통산 우승 횟수에서도 6회 우승의 하부를 완전히 누르고 1위로 뛰어 올랐다.

기풍

앉은비차 파로 앉은비차 혈웅을 중심으로 하는 견고한 울타리에서 공격하는 전법의 전문가. 망루, 대 몰이비차, 각행교환 등의 전형에서 말을 수습해 혈웅 울타리에 의지하며 싸우는 경우가 많고 특히 선수차례에서 망루 혈웅을 구축했을때는 승률이 높다. 조금 무리한 공격을 하더라도 수비가 견고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공격이 성공했다는, 이른바 Z패턴에서의 공격이 ‘현대적인 실전 감각’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제21기 용왕전의 경우에는 제1국에서 자신있는 혈웅 울타리를 채택했지만 제2국 이후에는 굳이 이를 고집하지 않고 서로 걸기 등 적극적인 급전형 전법을 주로 사용해서 용왕위 5연패를 달성했다.

2004년의 용왕위 획득까지는 후수 차례에서 횡보잡기 8五비를 자주 사용하고 있었지만 2005년 이후에는 채용하는 일이 극단적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대하여 본인은 "횡보잡기만 하고 있으면 진보가 없다"라고 말했지만 그 외에도 연구가 진행되어 후수가 이기기 힘들어 진 것도 횡보잡기를 하지 않는 이유로 들 수 있다. 이런 기풍변경으로, 후수차례에서 현재는 소수파에 불과한 ‘정통파 앉은비차’ 기사로는 대책이 부족하다고 인정하기도 했으나 제21기 용왕전에서 후수차례에 급전 망루를 비롯한 새로운 전법을 선보이면서 그동안 전법의 단조로움을 지적하던 타니가와 코지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4단 시절부터 오오야마의 재래라고 불릴 정도로 막판 역전에 뛰어나다. 프로가 된 현재에도 타니가와 코지와 나란히 존경하는 기사라고 인정하는데, 타니가와의 이른바 ‘광속류’로 최단 승부를 노리기 보다는 막판에 끈기를 보이며 난전을 통해 반전을 꾀하는 전법에 능하다.

인물

‘마타로’, ‘마왕’이라는 별명이 있다. 후지코 후지유우 작 "마타로가 온다"의 캐릭터와 닮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본인도 인정하고 있다.

체스를 두지는 않지만 국제 체스연맹의 일본 레이팅 상위권에 (Habu, Yoshiharu), (Watanabe, Akira), (Moriuchi, Toshiyuki)가 있기 때문에 체스에도 능숙하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하부와 모리우치는 장기기사 본인이지만 와타나베는 동명이인) 기록(역대 최상위권)

하부 요시하루는 30대에 접어들면서 종반전에서 우세해지면 손이 심하게 떨리는 일이 잦아지고 있는데 2003년 왕좌전에서 와타나베와 대국할 때 종반에 접어든 상황에서 하부는 말을 제대로 집어들 수 없을 정도로 손이 떨려서 이 사건으로 와타나베는 ‘하부를 떨게 한 기사’로 유명해졌다.

동문으로 마츠오 아유무, 미야타 아츠시와 함께 쇼오지 문하 슈퍼 트리오로 불린다.

2004년에 이나 메구미(기사인 이나 유스케의 여동생으로 전 여류 육성회원. 묘수풀이 작가)와 결혼했다. 같은해에 장남 출생.

용왕전에 도전할 때 기념부채를 만들었는데 서예에 대단히 서툴러서 장기계에서는 서예의 달인으로 알려져있고 구면인 이시바시 사치오에게 지도를 받았다.

취미는 게임 (특히 모모타로 전철 시리즈)와 경마. G1 레이스의 텔레비전 게스트가 된 적도 있다. 2006년 용왕전의 코멘트로 "하마평에 어긋날 것이다"라고 한 것도 경마팬으로서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블로그가 있어서 활발히 활동하며 goo블로그에서는 접속수 베스트 10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있다. 이 블로그는 2007년 6월 25일부로 goo의 오피셜 블로그가 되었다. 같은 해 7월 19일에는 담당 관리인이 붙어서 코멘트 기입은 goo ID를 가진 사람으로 한정되게 되었다. 제19회 장기 펜클럽대상, 화제상을 수상.

최연소 9단 (21세 7개월)이 되기전까지 최연소 기록은, 1983년의 타니가와 코지였다. 명인위 획득시(21세 2개월)에 9단 자격을 얻었지만 당시의 규정으로 실제 승단한 것은 다음해 4월 1일(21세 11개월)이 되었다. 와타나베가 첫방위전중이던 18기 용왕전 중에 승단규정이 개정되었다.

http://ja.wikipedia.org/wiki/%E6%B8%A1%E8%BE%BA%E6%98%8E_%28%E6%A3%8B%E5%A3%AB%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