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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우치 토시유키, 철판류의 서러브레드

森內俊之, (1970.10.10 ~ ) 기사번호 183, 가나카와 요코하마 출신. 마츠우라 오사무 9단 문하. 18세 명인 자격자.

전적

프로입단까지

초등학생 시절부터 이미 하부 요시하루와 라이벌 관계였다. 1982년 제7회 초등학생 일본장기명인전에서 3위. 이때의 우승자는 하부 요시하루로 같은해 12월에 장려회에 입문했을 때에도 동기였다. 장려회 3단이던 시절에 시마 아키라가 주재하던 연구회에서 하부 요시하루, 사토 야스미츠와 함께 실력을 닦았다. 1987년 05월 13일 프로에 입문, 3단리그가 창설되기 전의 장려회 제도로 4단이 된 마지막 기사다. 제22기 신인왕전(1987)에 장려회 3단으로 출전해서 도중에 4단으로 승단하고 우승.

타이틀

프로에서도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어 1988년, 제7회 전일본 프로 토너먼트에서 타니가와 코지를 상대로 우승. 같은해에 조지명 신예전에서 우승하여 1988년 장기대상의 신인상을 수상했다.

순위전에서의 승률도 높아 C급 2조에서 3기, C급 1조에서 1기, B급 2조에서 2기, B급 1조에서는 1기로 승급해 총7기 만에 A급까지 올라 첫 참가한 1995년의 A급 순위전에서 1위의 성적을 거두며 1996년 제54기 명인전 도전자가 되었다. 처음으로 도전한 타이틀전의 상대는 당시 7관왕이던 하부 요시하루였는데 첫대국은 두가지 면에서 화제가 되었다. 우선 서로 망루 전법을 사용한 장기에서 ‘벽은’을 마다하지 않고 3三에 있던 은을 △2二은(40 수)으로 끌어들이는 작전에 나선 것. 또 한가지는 첫날 저녁 입회한 이가라시 9단이 ‘시간되었습니다.’라고 말하자 ‘지금 두겠다’면서 하부에게 봉수 차례를 넘겨버린 것이었다. 모리우치가 첫 대국에 패하는 것을 시작으로 연속 3패를 당하고 제4국에서는 승리했으나 제5국에서 패해 결과적으로는 1승 4패였지만 내용면에서는 호각으로 평가되었다.

1996년의 NHK배에서는 결승에서 야시키 노부유키를 꺽고 첫 우승. 2002년 05월 17일, 제60기 명인전에서 마루야마 타다히사에게 4연승을 거두고 첫타이틀로 명인위를 획득, 9단이 된다. 비록 바로 이듬해의 제61기 명인전에서 하부에게 4연패를 당하고 명인위를 빼앗겼다. 그러나 그해의 용왕, 왕장을 모두 하부에게서 뺏아내고 순위전 A급 리그에서는 사상 최초 9전 전승으로 명인위에 대한 리턴매치권리를 얻어내었다는, 확실히 최강임을 보여주는 활약으로 2003년 장기대상의 최우수 기사상을 수상했다. 획득상금도 1억엔 돌파.

영세명인으로

2004년 6월 11일, 하부에게서 명인위를 탈환, 이 시점에서 사상 7번째 3관왕(용왕, 명인, 왕장)에 오르며 하부를 대신해 다관왕 선두에 나선다. 그 해에 3관왕 중 용왕위를 와타나베 아키라에게, 왕장을 하부에게 각각 빼앗겼지만 2005년의 제63기 명인전에서 첫대국에서 역전패를 당해 대 하부전 8연패의 치욕을 당했다. 하지만 제2국에서는 종반에서 하부가 남은 16분 중 12분을 소비해서 사용한 △4五보에 ▲4八금이라는 절묘한 수로 역전승을 거두었다. 그 결과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끝에 4승 3패로 도전자 하부를 꺽고 다시 명인위를 2년 연속으로 하부의 영세명인위 획득을 저지했다.

2006년에는 하부에게서 기왕을 탈취하여 2관(명인, 기왕)이 된다. (기왕은 다음해 사토 야스미츠에게 빼앗겼다.) 그 해의 제64기 명인전에서 17세 명인의 자격을 가진 타니가와 코지의 도전을 4승 2패로 물리치고 명인위 3연패(통산 4기째)를 달성. 2007년 6월 29일, 제65기 명인전에서는 고다 마사타카의 도전을 4승 3패로 물리치고 통산 5기 획득으로, 18세 명인의 자격을 획득했다.

영세명인 이후

2008년 3월 25일 제21기 용왕전 5위 결정전에서 1차저에서 나카하라 마코토 16세 명인에게 패배 2조에서 내리 강급했을 때, 타이틀 홀더의 연속 강등은 1991년의 하부 기왕(당시)이후 두번째 있는 사건으로 화제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같은해 제66기 명인전 제6국에서 하부 요시하루에게 패하며 무관으로 후퇴, 하부는 제19세 명인의 자격을 얻었다. 영세명인이 2년 연속으로 탄생한 것도 최초. 이후 명인전 이외의 타이틀에서는 멀어지고 있지만 제69기 명인전에서 우승해 하부 명인에 대한 도전권을 획득했다.

기풍

강인한 수비에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어서 때로는 상대의 공격을 일부러 유도할 때도 있다. 통칭 "철판류"

후수 차례일때 망루 울타리를 형성하면서 "모리우치류"라고 불리는 방식으로 전개하는 경우가 있으며 이것은 현대 망루 전법에서 주요 변화로 손꼽힌다.

좋아하는 말은 비차로 공격 이외에도 방어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점이 특징. 마루야마와 함께 ‘진에 있는 비차가 어울리는 기사’로 꼽혔다.

인물

외조부가 고 케이슈 유키오 8단(전 일본장기연맹이사, 장려회 간사)으로, 일본장기계의 서러브래드(Thorough-Bred)라고 하여 "철판류"외에 "준마류"라는 별칭도 있다.

샬레시오 고등학교 졸업(재학중에 프로 기사가 되었다).

첫 명인위에 오른 다음달 (2002년 6월)에 전격적인 약혼 발표. 상대는 가쿠슈인대학 문학부 강사인 국문학자 미하라 마키. 그해 10월에 결혼했다.

합리주의

명인전이나 왕장전 등 2일제 대국에서 정석이나 연구단계라면 별로 시간을 쓰지 않고 2일차부터 시간을 들여서 접전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공식대국에서의 에피소드

초등학교시절부터 하부 요시하루와 라이벌 관계였다. 초등부 장기대회 기보중에 모리우치 소년의 최초 ▲5八비에 대해, 하부 소년의 ▽5二비로 이어지는 기보가 있다.

대국을 시작할 때의 ‘부탁드립니다.’와 투료시의 ‘졌습니다’라는 인사말이 다른 기사들에 비해서 명료하다.

사전에 대국상대가 정해져 있는 순위전에서는 막강한 기력을 자랑해서 제68기 시점까지 1990년도 (당시 C급 2조)부터 1992년(B급 2조)까지 26연승을 거두기도 했다. 순위전에서의 승률은 통산 80%가 넘는다.(114승 28패 .803)

취미 등

취미는 퀴즈, 체스, 마작, 마술, 스포츠 관전.

특히 퀴즈실력이 대단해서 패널퀴즈어택 25, 1500회 기념 "지성파 텔런트 퀴즈 정상 결전"에서 마루야마 카즈야마, 타카다 마유코 등을 꺽고 우승해서 프랑스 종단여행 권을 획득했다. 호놀룰루 클럽 회원

기타

좌우명은 좌우명은 ‘바로 지금을 산다’ ‘일회일기’

젊은 시절에는 마라톤을 뛸 수도 있을 정도의 체력이었다. 건강법은 산책.

http://ja.wikipedia.org/wiki/%E6%A3%AE%E5%86%85%E4%BF%8A%E4%B9%8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