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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히후미, 一二三 전설

가토 히후미(加藤一二三) (1940년 1월 1일 - ) 기사 번호 64. 후쿠오카현 카호 출신.

약력

현역 프로기사 생활 57년 이상. 통산 대국수, 통산 패전수 역대 1위.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에 순위전 A급에 등록한 적이 있는 유일한 기사. 사상 최연소(14세)로 프로기사가 된 기록은 50년 동안 깨지지 않았다. 오오야마 야스하루 15세 명인, 나카하라 마코토 16세 명인, 요네나가 쿠니오 영세 기성을 상대로 각각 100번 이상 대국.

인물

후쿠오카 출신으로 천주교 신자이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성 실베스트로 교황 기사단 훈장을 수여받았다. 일본 장기계 내외를 막론하고 강렬한 개성과 언동으로 많은 일화를 남겨 유명하다.

전적

진무 이래의 천재

1954년에 사상 최연소 기사, 사상 최초의 중학생 기사가 되었다. 당시 가토 히후미 4단 (일본어로는 加藤一二三四段)라는 것도 화제거리였다.

같은해부터 순위전에서 4년 연속 승급해 18세에는 A급 8단이 되면서 ‘진무 이래의 천재’ [각주:1] 라고 불리웠다. A급 순위전 1년차에는 성적이 그다지 좋지 못했지만 2년차(1959년)에는 제19기 명인전 도전권을 얻어 불과 20살에 타이틀 전에 첫 도전, 오오야마 야스하루에게 1승 4패로 패했지만 사상 최연소 명인도전 기록이 되었다.

타이틀전에서의 오오야마를 상대로

1960년대에 명인전을 포함해 타이틀전 무대에 7번 섰지만 상대는 모두 오오야마였다. 당시는 오오야마의 전성기로 매년 거의 모든 타이틀을 오오야마가 독점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6번째 도전이 된 1968년의 제7기 십단전에서 오오야마 10단(당시 명인을 포함한 4관왕)을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물리치고 프로 생활 15년만에 마침내 첫 타이틀을 차지했다.

1970년대부터 1982년까지는 오오야마의 시대가 나카하라의 시대가 열리며 나카하라 마코토가 타이틀전의 주 상대자가 된다. 나카하라와의 전적은 한때 1승 19패까지 크게 벌어졌지만 본인은 크게 약하다는 의식은 없었다고 한다. 이 기간 타이틀전에는 총 14번 도전해 그 중에 나카하라와의 대결이 9번으로 1973년 명인전부터 1976년, 1977년 십단전에서 나카하라에게 3연패를 당했다. 하지만 1977년의 제3기 기왕전에서는 그 전해에 오오우치 노부유키에게 얻은 기왕위를 나카하라 5관왕을 상대로 3-0 스트레이트 승을 거두며 방위에 성공, 나카하라의 6관 독점을 저지했다. 1978년에는 왕장전에도 승리해 (그 다음번 기왕전에서 나카하라에게 패해 잠깐뿐이었지만) 처음으로 2관왕에 올랐다.

1982년의 제40기 명인전에서는 4승 3패, 비김 1회 천일수 2회라는 혈투끝에 프로기사가 되고 22년간 염원하던 명인위에 올랐다. 본인의 2번째 2관왕 등극이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나카하라와의 타이틀 전에서는 나카하라 우승이 5회, 가토 우승이 4회로 전성기의 나카하라를 상대해 선전했다. 1984년 제25기 왕위전에서 다카하시 미치오를 꺽었지만 그 이듬해 왕위전에서는 미치오와의 리턴매치에서 패배해 왕위를 내주고, 그 이후로는 타이틀 도전이 없다.

순위전

A급 재적기수 통산 36기로 오오야마의 44기, 나카하라의 29기를 고려해보면 상당한 편이다. 그러나 오오야마와 나카하라는 한번 A급에 오른뒤 연속 재적한 반면, 가토의 경우에는 제16기, 제21기, 제23기, 제51기등 총 4번 B급과 A급을 왕복했다. 이중 첫 3회는 1기만에 A기로 즉각 복귀했다. 그러나 2002년 B급 1조에서 강등되어 명인 경험자로는 사상 최초로 B급 2조까지 떨어졌다. 2006년까지는 B급 1조의 승격권에 있었지만 2007~2008년에는 기사인생 최초로 순위전에서 2년 연속 강등되어 프로데뷔 2년차였던 1955년 이후 53분기 54년만에 C급 1조까지 추락했다.

1000승 1000패

1989년 8월 21일에 오오야마에 이어 사상 2번째로 통산1000승을 달성했다. 그 뒤로도 계속 승수를 쌓아가 2001년에는 사상 3번째로 통산 1200승을 달성했고 기사 모임에서 자신이 ‘9단 승단 이후 1000승’을 달성했음을 발표하며 타이틀전으로서의 ‘십단’ 외에 단수로서의 10단을 신설하자고 제의했다.

한편 2007년 8월 22일의 아사히 배 장기 오픈전 예선, 대 도베 마코토 4단전에서 공식전 1000패를 기록한다. (당시 1261승 1000패) [각주:2] 프로기사로써 가토의 경력이 길다는 것 이외에도 1번 패하면 끝나는 토너먼트 전 이외의 대국, 즉 타이틀전과 도전자 결정리그에 자주 진출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본인은 이 기록에 대해 TV에서 ‘150국 정도는 역전패였다’고 기록했다. 참고로 당시 통산 패배 횟수의 넘버2는 아리요시 미치오의 955패(1061승)였으며 그 후에 아리요시도 1000패를 기록했다.

1954년 8월 1일 4단이 되고 현역 기사 55년을 넘어 오오야마 (1940년 데뷔, 1992년 현역으로 사망), 세키네 시게루 (1953년 데뷔, 2002년 은퇴), 아리요시 미치오 (가토보다 9개월 늦은 1955년 데뷔 2010년 은퇴)와 사상 최고령 마루타 유우조 (1946년 데뷔, 1996년 은퇴) 등을 제치고 역대 1위에 올랐으며 이 기록은 오늘날까지도 진행중이다.

기풍

반세기 동안 기사경력 내내 앉은비차 파로 수많은 정석 발전에 공헌했다. 좋다고 생각한 전법은 몇번이나 계속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다양한 전법을 추구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본장기계에서는 특이한 취향으로, 하부 요시하루에 의하면 "전략을 세우기는 쉽지만 100% 같은 전법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연구)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한판 한판이 확실하게 다음 판의 밑거름이 되 작전이 된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전략이 읽혀서 상대가 연구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좀처럼 흉내낼 수 없는 방식이다. 그러나 가토 선생님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고 한다.

몰이비차 전법, 특히 오오야마 야스하루와의 대국 경험을 살려 만들어낸 앉은비차 배 울타리 급전에 이용되는 수많은 정석은 가토가 창안한 것이 많다. 대 삼간비차 급전에도 가토가 고안한 기법이 상당수 있다. 기본적으로 몰이비차에는 급전으로 맞서지만 오오야마를 상대로 타이틀전에 도전할 때에는 2번 정도 앉은비차 혈웅을 사용하기도 했다.

서로 앉은비차 전법인 경우의 망루 3七은 전법이나, 중비차에 대항용 세비차 급전은 "가토류"라고 불리우며 많은 기사들이 활용하고 있다. 특히 "가토 봉은"은 유명해서 기사 생활 내내 봉은 전법의 채용비율이 높고 대 사간비차 앉은비차혈웅의 전성기에도, 서로 앉은비차 전법 대항인 경우의 각행교환이 유행하는 시기에도 가토는 항상 봉은을 활용했다.(보통은 서로 걸기를 사용하는 기사들이 많다.)

대항하는 으로 거비차혈웅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는 현대에도 가토는 사간비차에 대해서는 봉은으로 도전한다. 그의 봉은전법 채용율은 프로 중에서 이례적으로 높은 것이 이채롭고 동일한 형태를 계속 추구하는 모습은 신진 기사들 사이에서는 외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거비차 파면서도 가토에 대해서는 봉은 대책을 준비해오는 진비차 기사도 많다. 한편, 나카하라 마코토와의 A급 순위전 최종국에서도 봉은을 통한 가토의 측면공격이 이루어지기 전에 먼저 공격당해 A급에서 떨어졌던 것 처럼 먼저 공격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또, 각행 교환에서도 봉은을 이용하는 일이 많다.

봉은 이외에는 횡보잡기, 3三계 같은 공중전도 특기이고 후수일 때에는 망루 울타리나 종보잡기 3三계 전법도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장고파 1분장기의 신

항상 최선의 수를 찾는 타입이라서 초반부터 장고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대표적으로 1968년의 10단전 제 4국에서는 한수에 7시간 동안 (소비시간 이외도 포함) 장고한 적도 있다. 이 때문에 종반에는 제한시간이 다 되어 초읽기에 몰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 상황에 특히 강해서 "초읽기의 신", “1분 장기의 신” [각주:3]  이라는 별명도 있다. 이런 속기 실력 덕분에 소비시간이 적은 기전에 강하고 NHK배에서는 하부, 오오야마에 뒤이어 3위인 통산 7회 우승을 달성했다. 그 외에도 속기일본장기선수권, JT장기 일본시리즈, 속기왕위결정전 등에서 수많은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가토 전설

일본장기 외적인 면에서 에피소드가 많은 기사로 2006년 5월, ‘Big lobe 스트림’의 ‘장기 뉴스 플러스’에서 The 가토 히후미 전설이라는 제목을 기사를 게재했고 2007년의 자서전에서도 가토 본인이 일화의 몇가지를 들어 해설하고 있다.

대국방식

- 오른손으로 말을 잡고 왼손에 바꿔쥔 다음 반상에 올리기 전에 움직일 말을 오른손으로 반에 ‘파삭’하고 부딪히는 것이 가토의 독특한 버릇이다. 기합을 넣어 강하게 내려놓기도 해서 반상의 다른 말을 날려버리거나 말이 쪼개진 적도 있다.

- 넥타이를 지나칠 정도로 길게 묶는 버릇이 있다. 대국 중 가끔 무릎을 꿇은채로 몸을 일으켜 길게 묶은 넥타이를 매만지는 것도 특징

- 대국시의 요리배달에 "장어도시락"을 비롯하여 마음이 드는 식사는 매번 장기를 둘때마다 계속 먹는다. 장어도시락을 먹는 이유는

1. 도착즉시 빨리 먹을 수 있다. (냄비 우동 같은 경우에는 식는데 10분 가까이 걸리고, 튀김 정식도 두번다시 주문하지 않았다.)
2. 대국 중에 다른 것에 신경쓰고 싶지 않다. 또, NHK에서 장어는 단시간에 스태미너를 붙여준다고 소개된 것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

- 단 것을 좋아해서 대국 중에 초콜릿을 열심히 먹는다. NHK BS2에서 방송한 ‘대역전장기 2007’에서 대국 도중에 요네나가의 ‘가위 장기 명인전, 최종장’에서 가토가 언제나처럼 대국 장에서 가져온 초콜렛을 먹기 시작하자 (동시에 코믹한 BGM이 나왔다.) 스튜디오에서 VTR를 보던 출연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덧붙여서 대국은 가토가 절대 유리의 국면이었다가 요네나가가 '수렁류'로 무승부를 만들어 내고 재경기를 치른 끝에 요네나가가 이겨서 ‘가위 장기 명인’을 방어했다.

- 1981년의 10단전에서 카토는 오후의 간식으로 ‘케이크에 핫 밀크, 거기에 사과’를 주문했다. 도전자인 요네나가 쿠니오는 이에 대항해서 "귤을 반함에 수북하게" 보내달라고 주문해서 성대하게 간식을 먹어갔고, 간식경쟁에서 이긴 가토가 요네나가를 격파했다.

- NHK배 토너먼트에서 우승했을 때에, 우승 세레모니의 축사로 후타카미 타츠야 일본장기연맹회장이, ‘아마추어들이 흉내내면 곤란하므로 매너에 조심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니코가미는 본인의 저서에서 가토의 기행은 스스로 불리한 국면이라고 생각했을 때 나오기 때문에 대국상대에게는 좋은 징조였다고 적었다.

- 하코네의 여관에서 타이틀 전 도중에 인공폭포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고 폭포를 멈추게 했고 텐도 여관에서는 정원의 수레바퀴를 멈추게 했다. 하부가 타이틀 전으로 지방을 돌 때 가토가 폭포를 멈추게했다는 곳에서 자신도 폭포를 멈추게 했다는 말을 하부에게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덧붙여서 하부는 가토가 5번은 폭포나 수레바퀴 같은 정원 조경물을 멈추게 했다고 들은적이 있다지만 가토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위의 2번 뿐이다.

기독교인으로

- 자서전 '기독교에 대해서'가 있을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근엄한 이미지가 강하다. "장기 세계"의 연재 칼럼에는 모든 부분을 기독교의 화제와 연결하고 있다. (대국의 내용과는 관찰기와 관계없을 정도로)

- 대국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발랄하고 맑게 하기 위해서 또는 적극적이며 긍정적이고 용기있게 하기 위해서 찬송가를 부르기도 한다. [각주:4]

TV 해설역으로

- 기본적으로 하이톤이고 NHK의 장기 프로그램 해설을 할때, 입이 사고를 필사적으로 뒤쫓고 있는 것 처럼 속사포처럼 빨리 말했다. 나중에 장기강좌를 할 때에도 역시 이 빠른 말하기는 변하지 않았다. 사회자로부터 배려를 구할 수 있을 때에도 전혀 변하지 않는다.

- 양손으로 제스처를 쓰는 경우가 많다. 일단 올린 손을 내릴 때에는 둥글게 원을 그리면서 내린다.

- 2007년의 NHK배에서 해설을 맡았을 때 하부 대 나카가와 다이스케 대국에서 나카가와의 옥이 외통이 되자 ‘어라! 아니 저건, 저건, 저건, 잠깐, 어, 어, 어, 이상하네요, 혹시 외통? 자 이렇게 해서, 어라, 이상해요, 어라, 어, 어, 보가 셋이니 외통일까요? 넷이어야 하나? 외통이군요? (중략) 대역전이네요. 아마도 이것은 외통입니다. 분명하군요, 하’라면서 방송중에 탄성을 거듭했다.

문제를 일으킨 경우

- 원래는 미나미구치 시게카츠 9단 문하였지만 1998년에 아라마키 산지 9단 문하로 바꾸었다. 아라마키와는 과거부터 친분이 있었고 선친 시절부터 가족이 아는 사이였다는 인연이 있지만 미나미구치에 대해서, 가토는 ‘내가 장려회에 들어갈 때에 사제관계는 부모가 마음대로 결정한 것에 불과하고 스승에게 신세를 진 적은 전혀 없다. 그런데도 사제관계가 있는 것처럼 취급되는 것에 대해서 불명예스럽다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다’고 말한적이 있다. 현재 미나미구치의 프로필에는 가토 히후미의 스승이라는 부분이 삭제되어 있다. [각주:5]

- 제13기 은하전의 아베 타카시와의 대국에서 종반에 들어섰는데 계마를 승격하지 않고 두었다가 나중에 승격해서 다시 두어버렸다. 이때의 승부 자체는 카토의 승리였지만 나중에 반칙으로 인정되었다. 다만, 벌써 타이틀 전 이전에 패하고 있어서 결과는 변경되지 않았다. 그 처분으로 다음번 은하전 대국에 참가하지 못했다.

- 일본장기회관의 난방소리가 신경쓰인다고 전기 난로의 사용을 선호한다. 이 때는 상대방도 추워하지 않도록 같은 거리에 배치하지만 얼굴이 붉게 비춰지는 것 때문에 성희롱이라는 오해를 받아서 위치를 바꾸었다.

- 기록원이 적은 상석과 하석의 자리를 바꾸려고 옥신각신하는 경우가 있다. 가토는 제비뽑기로 결정하자고 제안했지만 상대가 반대해서 기록원의 중재로 선배인 가토의 체면을 세워주는 쪽으로 합의가 되었고 가토가 위치에 집착하는 이유(방 중앙에 있는 것이 기분상 안심된다.)는 설명에 상대가 납득하기는 했으나 ‘대국장에서는 4단이건 명인이건 진검승부의 장소이므로 선배의 체면을 세워줄 필요도 없고 서로 참는 것도 좋지 않다’고 하여 결국에는 제비뽑기로 원래의 장소에 앉게된 적이 있다.

- 기성전에서 상대 기사가 헛기침을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본인은 헛기침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 대국에 입회하고 있다가 대기실의 툇마루에 들어온 고양이에게 ‘헬로! 장기에 흥미 있니?’라고 질문했을 정도로 고양이를 좋아하는데, 2008년에는 자택 근처에서 길냥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 때문에 고양이들이 몰려들어 이웃들과 관리조합에서 먹이제공 중단 및 위자료를 포함해 645만엔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당했다. 지방법원에서는 먹이제공 중단과 204만엔 지불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기타

- 톱클래스 아마 기사와의 접장기에서는 높은 승률을 자랑하고 있고, 코이케 시게아키에게도 승리했다. 금은의 사용법이 능숙하기 때문에 하수죽이기로도 유명하다.

- 1998년 11월 6일의 대 타니가와 코지 전부터 1999년의 마루야마 타다히사 전까지 21연패를 당했다. A급 기사의 21연패러 화제거리가 되었다.

- 마쓰다 고조를 실질적인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고, 마쓰다도 자주 카토의 기행을 감싸주었다. 가토가 명인이 되었을 때, 마쓰다는 명인이 되는 것이 너무 늦었다고 코멘트했다. 또, 가토가 제자를 취하지 않는 것은 마쓰다의 조언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 침체기에는 "누구라도 초반전에 이길 수 있다"라는 험담을 들은 적도 있었지만 스스로의 신념을 계속 관철해서 보기좋게 부활, A급 복귀, NHK배 우승을 거머쥐었다.

- 파도나 자동차 소리가 시끄럽다고 생각하면 숙소를 바꿔버린다. 하지만 찬송가에는 불평하지 않는다.

- 대국중, 자신의 것이나 상대방의 말이건 상관없이 조금씩 만지거나 하기 때문에 대국상대가 화를 낸 적도 있다.

- 대국장의 장기판, 기록계 책상 위치등을 세세하게 신경쓰고, 사람이 보지 않는 동안 움직여 버리기도 한다.

- 신진기사와의 검토중에 왜 대 진비차용으로 봉은을 실시하지 않느냐고 묻는데, "급전에서는 승률이 나쁘다"라는 대답에 대하여, "급전에서는 그럴지도 모르지만 봉은은 다르다"라고 말했다.[각주:6]

- 천정의 텔레비전 카메라를 가끔 찾아낸다.

- 대국중에 갑자기 대국 상대의 뒤로 돌아가서, 상대측으로부터 반면을 보려고 한다 (반칙은 아니지만 매너가 나쁘다). 센자키 마나부에 의하면 선후수 동형 때도 상대측이 보고 있었던 적이 있던 것 같다.

- 기록계에게 시간을 들은 직후에 다시 "앞으로 (남은 시간) 몇분?"이라고 계속해서 묻기도 한다. 초읽기에 몰리는 중이라도 물어보기도 한다.

기록(역대 최고수준)

최연소 프로 기사 14세7개월

최연소 A급 18세

최연소 명인 도전 20세

최연소 A급 탈락 21세

최연소 A급 복귀 22세(A급 승급 기록 전체로 봐도 3위 정도)

최다 A급 승급(강급) 5회

A급 순위전 최다승 (149승)

통산 최다 대국 2358국(2011년 3월 31일 현재, 역대 1위)

통산 최다 패전 1065패(2011년 3월 31일 현재, 1000패는 사상최초)

순위전에서의 데뷔로부터의 4기 연속 승급(카토외에는 나카하라 마코토 뿐)

또한 현역 승리수 1위(1292승)

http://ja.wikipedia.org/wiki/%E5%8A%A0%E8%97%A4%E4%B8%80%E4%BA%8C%E4%B8%89

  1. 전설적 인물인 진무 천황 이래이므로 일본 역사상 최고 라는 의미. [본문으로]
  2. 나이토 쿠니오나 와타나베 아키라의 말로는 필요한 대국수, 기간은 물론이고, 1000패를 당하기 전에 은퇴하게 되는 기사가 대부분인점을 고려하면 1000패는 1000승보다 아득하게 난이도가 높다. [본문으로]
  3. 본인은 크리스찬이라서 "신"이라고 불리는 데에 거부감이 있다. [본문으로]
  4. 그럴때는 특히 강하다고 한다. [본문으로]
  5. 번잡함을 피하기 위해 대 스승인 겐모치 쇼지 8단으로 적기도 한다. [본문으로]
  6. 일반적으로 봉은은 급전의 일종으로 분류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