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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무라 요시오, 근대 장기의 도래를 알리다

키무라 요시오(木村義雄) (1905년 2월 21일 ~ 1986년 11월 17일) 일본의 장기기사. 기사번호 2. 도쿄 스미다구 출신. 14세 명인. 그가 사망한 11월 17일은 장기의 날로 정해 기리고 있다.

연승 장군

스미다구에서 한 직공의 아이로서 태어나 어릴적부터 장기실력이 뛰어나서 어른에게도 지지 않았다. 아사쿠사의 장기 도장에서 지도하던 세키네 긴지로의 눈에 들어, 극빈한 생활속에서 야나기사와 타모츠헤 백작에게 소개를 받아 허드렛일이나 급사일을 하면서 장기를 배웠다. - 1938년의 제 1기 명인전에서 명인이 된 이래 최강을 자랑했고 당시의 A급 기사들 전부에게 이겨 "연승장군"이라고 불리며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장기계의 제일인자로서 전쟁 기간의 장기계에 이름을 널리 떨쳤고 당시의 일반인에게도 스모에서 불패를 자랑한 후타바야마 사다지와 함께 잘 알려져 있었다.

전후, 신진 기사들은 키무라를 꺽기위하여 제한시간이 있는 짧은 장기에 유리한 급전 정석을 연구해 결국 1947년의 제 6기 명인전에서 츠카타 마사오는 키무라로부터 명인위를 탈취했다. 그러나 키무라는 선수 필승의 각행교환 정석으로 유명한 키무라 정석을 완성해서 1949년 제 8기 명인전(이 때에만 5번 승부)에서는 3승 2패로 츠카다를 물리치고 명인에게 복위하는 기력을 보였다. 그 후에 제9기(1950년), 제 10기(1951) 명인전에서는 각각 오오야마 야스하루, 마쓰다 고조에게 승리를 거두지만 1951년 연말에 행해진 제 1기 왕장전에서 마쓰다 고조에게 3연패를 당하여 향차를 떼고 두게되는 제 6국에서 마쓰다가 대국거부를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키무라는 제 11기 명인전(1952년)에서 결국 오오야마에게 져 "좋은 후계자를 얻었다."라는 명문구를 남기고 은퇴했다.

현재 일본장기연맹의 모체가 된 장기 대성회를 조직하여 장기의 근대화에 힘썻다.

사카구치 분고는 제 8기 명인전 제 5국의 관전기 "승부사"에서 "그(키무라)는 10년 불패의 명인이며, 대성회의 통령으로 명실공히 장기세계의 제1인자로 항상 동분서주 하고 다망한 상황이라 내일 대국이 있는데 오늘밤 대국을 벌이고는 밤중에 이동하여 그 다음날 아침 오사카에 도착해서 다시 대국을 하고 곧 다시 동분서주했다"라고 평하고 있다. 또, "청춘론"에서는 "그는 심신을 반상에 주어버렸다고 할 정도로 독살스럽게 놀라운 투지를 가졌다"라고 칭송하고 있다.

제자로 하나무라 모토지가 있어 만년에는 제자와 함께 사이좋게 경륜장에 지나고 있었다. 하나무라가 먼저 타계하여 키무라는 "(하나무라는) 매우 좋은 제자지만 단 한가지 아쉬운 것은 스승보다 빨리 죽은 것이 안좋았다"고 슬퍼했다고 한다.

3남인 키무라 요시노리도 기사가 되어 8단까지 올랐고, 은퇴한 후에는 9단으로 추종되어 근대 장기 사상 2번째의 부자 9단이 되었다. (2007년 현재, 부모와 자식 구단은 이타야 시로·이타야 스스무와 키무라 부자만. 키무라 부자 간에 사제 관계는 없고, 요시노리는 카토 지로 명예 9단의 제자이다. )

보지신문에 촉탁을 받아 장문의 신문기사를 집필했고 명문가로도 알려져 있다.

여러가지 명승부

난젠사의 결전

사카다 산키치 칸사이 명인, 1937년 2월 5일~11일. 칸사이 명인을 칭하고 있던 사카타를 물리쳐, 동서로 분열되었던 장기계를 통일한 일전으로서 당시의 매스컴에도 선전된 일전이다. 근대 장기의 제일인자 키무라와 칸사이 장기의 제일인자 사카타의 결전이라고 하기도 해, 세간의 화제가 되었고 사카타의 최초 1수가 끝의 보 찌르기인 것도 유명하다. 그러나, 대국 그 자체는 현역에서 멀어진 대전 상대 사카타의 실력이 쇠약해지고 있어 키무라가 시종 우세했고, 키무라는 매우 낙관적으로 수를 이어갈 수 있어 3일째 종료후, 보지신문의 기사를 쓰고 술을 마시고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는데 반대로 사카타는 화로를 휘젓는 등 초조한 기색이 짙고, 시중드는 딸을 끊임없이 보고 있었다고 한다.

사카다의 장기를 잘 알고 있는 후쿠자키 분고에 의하면, 사카다의 장기 인생 중에서도 최고중에 최고의 대국이라고도 할 수 있는 명국이지만, 사카다로 대표되는 힘장기의 시대가 끝나고, 키무라로 대표되는 이론에 근거한 근대장기의 시대가 온 것을 고하는 대국이라고 한다.

죠잔케이의 결전

대 도이시 타로 8단, 1940년 6월 25~27 2회에 이르는 비기기의 끝에 행해진 한 판.

제녕관의 결전

대 쓰카다 마사오 명인, 1949년 5월 24~25( 제8기 명인전 제5국) 일본 왕궁인 제녕관에서 열렸다. 「문예춘추」의 별책부록으로 게재된 사카구치 분고의 관전기 "승부사"로 유명해졌다.

정석의 연구

지금까지의 정석관련 서적이 아마추어들에게는 생소하던 상황에서 명저 "장기대관"을 저술해서 말을 떼고 둘때의 정석을 소개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장기대관"에 게재된 정석은 "대관정석"이라고 불리며 말을 떼고 두는 장기의 기본이 된다. 또, 평수전에서도 수많은 정석을 소개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각행교환 후 봉은에서 선수 필승의 키무라 정석, 불리한 전개라는 것이 통설이던 횡보잡기에서 선수측 정석

명언

- 명인에게 정석 없음

- 부진도 3년되면 실력

http://ja.wikipedia.org/wiki/%E6%9C%A8%E6%9D%91%E7%BE%A9%E9%9B%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