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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Ship and Sail

빅토리아 호와 마젤란

빅토리아 호

빅토리아 호는 페르난디드 마젤란이 세계일주여행을 위하여 준비한 함대의 다섯 함선 중 하나로 마젤란이 스페인의 카를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트리아나의 산타마리아 델라 빅토리아(Santamaria de la Victoria) 교회를 따서 이름이 붙여졌다.

다섯 척의 배들 중, 오직 트리니다드 호 만이 카라벨이었고 그 외의 배들은 전부 카락이었으며 마젤란의 긴 세계일주 항해 중에 기함인 트리니다드 호와 산 안토니오, 컨셉시온, 산티아고 호는 행방불명되거나 침몰했다. 1519년, 스페인의 새로운 원정대의 구성에 대한 포르투갈 정보원의 첩보에 의하면, "마젤란의 함대는 5척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직접 승선해본 바에 의하면, 선체가 부싯깃처럼 부식되었고 너무 낡아서 수리된 곳 투성이였다.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그런 낡은 배를 타고 카나리아 제도까지의 항해도 강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마젤란의 터무니 없어 보이는 모험계획에 큰 돈을 투자할 생각이 별로 없었던 스페인이 마젤란에게 낡고 못쓰는 배 몇척을 양도한 것으로 본다.

1517년 포르투갈 국왕 마누엘 1세와의 불화로 스페인으로 오게 된 마젤란은 할 수 없이 이 다섯척의 배를 세비야 근처, 과달키비르 강의 기슭에 끌어올려서 선판, 버팀목, 돛대를 모조리 교체하는 대규모 수리작업을 18개월동안 진행하였다. 낡은 배들이었지만 마젤란은 가장 작은 빅토리아호의 구입에만도 24만 마라베디스라는 거금을 투자해야 했고 수리비용은 32만 마라베디스나 들었다(약96,000유로). 마젤란은 이런 낡은 배를 사용하는 대신에 배를 새로 건조하고 싶어하였지만 그의 제안은 거부당했다.

빅토리아 호의 항해

마젤란의 항해중 1520년 8월 말, 산티아고 호가 침몰되었으며 산 안토니오 호는 함대를 이탈하여 스페인으로 도망쳤다. 불행한 마젤란은 아무런 정보도 없이 전혀 보급할 지점이 없는 항로를 정처없이 전진했고 해안을 따라서 1,600km가량 신대륙 서해안에 관한 정보를 모은 뒤에 동쪽으로 부는 무역풍을 타고 물이 새는 배를 서쪽으로 몰아갔다. 이미 식량이 떨어져 가고 있던 상황에서 조금만 더 남쪽으로 갔으면 타히티, 사모아, 피지를 만났을 수도 있었지만 그의 항로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유일하게 접한 군도는 완전한 불모지였다.(마젤란은 비관주의적인 발언을 하는 선원은 엄벌에 처하겠다고 했지만 여기서는 그 자신도 심각하게 낙담했는지 절망적인 이름을 붙여버렸다)

1520년 11월 28일부터 98일 후, 괌에서 간신히 식량을 보급할 수 있었고, 다시 필리핀에 도착할 때까지 함대는 끔찍한 기아와 질병에 시달렸다. 1521년 4월 27일, 마젤란이 원주민들과의 전투에서 사망하였으며 남은 선원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컨셉시온 호를 불태우고 남은 선원들은 트리니다드 호와 빅토리아 호에 각각 나누어 승선하였다. 트리니다드 호는 상태가 좋지 않아 도저히 희망봉을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 선장은 다시 파나마로(!) 가려고 시도하였으나 역풍에 밀려 실패했고 몰료카에서 적대적인 포르투갈 인들에 의하여 선장과 승무원 모두가 포로가 되었다. 결국 마젤란의 함대 중, 가장 작았던 빅토리아 호만이 1519~1522동안의 기나긴 세계일주여행에서 살아남았다.

1522년 9월 6일, 빅토리아호는 스페인의 바라메다 산루카에 후안 세바스티안 델 카노가 이끄는 18명의 생존자들을 태우고 도착하였다. 265명의 선원 중, 살아남은 18명의 생환자들 중에는 순전히 호기심에 탑승했던 항해일지 기록자 안토니오 피가페타가 포함되어 있었으며 그들은 최초로 세계일주를 달성한 유럽인이 되었고 마젤란의 탐험에 들어간 경비는 빅토리아 호가 싣고 온 정향유로 충당되었지만 생환자들 중 아무도 약속받았던 미지급 급료를 지불받지 못했다. 빅토리아 호는 이 후에도 대서양을 세 차례 더 횡단하였으나 마지막으로 아아티에서 돌아오던 중 폭풍을 만나 승무원 전원과 함께 침몰했다.

마젤란

페르낭 드 마갈량이스 가 본명인 이 위대한 항해자는 1480년 경, 포르투갈 북부의 거친 산지인 트라스우스 몬테스의 소도시 사르보사에서 태어났다. 1492년 리스본에서 레오노레 왕비의 시동이 되었으며 천문학과 항해술을 공부하였고 포르투갈의 해양탐험에 관한 모든 비밀 보고서를 접했다. 그는 포르투갈의 비밀 문서 보관소에서 서회항로를 이용한 세계일주 가능성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토니오 피가페타의 1520년 10월 23일자 기록에 의하면 "마젤란은 아주 외진 해협을 통과하는 항로를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뛰어난 지리학자인 마르틴 베하임이 지도에 표시한 이 해협을 본 적이 있기때문이다." 라고 한다. (16세기 초, 유럽인들이 가본적이 없는 지역들이 표시된 정밀한 세계지도들이 등장하였으며 이 지도들 중에는 아메리카 대륙의 서해안, 남극의 퀸 모트랜드 들이 묘사되어 있었으며 중국인들의 탐험성과 일부가 전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주장들도 있으나 누가 남극대륙을 탐험할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이다.)

1505년 마젤란은 해군으로서 인도로 갔고 두번째 항해에서 그는 좌초한 2척의 배를 구조했는게 그 후 처음으로 배의 지휘권을 얻었다. 1514년 몰루카 제도에서 다리에 중상을 입은 뒤로 다리를 절었으며 그의 전도유망한 출세코스는 사령관이었던 페드루 데 소사가 그에게 적과의 내통혐의를 뒤집어 씌움으로써 끝장났다.

http://blog.naver.com/mdkdk?Redirect=Log&logNo=140019310954
http://www.greatgridlock.net/Sqrigg/squrig2.html
http://en.wikipedia.org/wiki/Victoria_%28ship%29
클라시커 50, 역사와 배. 루츠 붕크 지음, 안성찬 옮김. 해냄.
탐험시대, 타임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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