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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Ship and Sail

SMS Seeadler 1. 바다독수리 날다.


SMS Seeadler (독일어로 바다 독수리라는 뜻. see eagle) 3돛대 윈드재머로 독일 제2제국에서 순양작전을 수행한 마지막 범선. 1888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의 로버트 던컨 컴퍼니에서 발마하 수로(Pass of Balmaha) 라는 이름으로 건조되었으며 강철선체의 1,571톤의 범선으로 1차대전 때에는 보스톤의 해리스 얼비 면화 회사의 소유인 미국국적 선박으로 되어 있었죠.


 Pass of Balmaha


제아들러의 탄생

1916년 6월 1일, 유틀란트 해전에서 독일 제해함대가 영국의 대함대와 무승부를 기록하고 물러나게 됨에 따라, 육군국인 독일이 해군국가인 영국을 위협할 수단은 많이 제한받게 되었습니다. 잔존함대를 킬 군항에 잔존시키면서 현존함대주의를 유지하는 동안 영국은 해상봉쇄를 통해 독일의 경제력을 소모시키려고 했습니다. 스카파플로의 위치 관계상, 독일 해군이 북해에 걸쳐진 영국의 초계망을 돌파하는 건 대단히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이에 독일은 지속적으로 석탄을 보급받아야 하는 기선으로는 순양작전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범선을 이용해서 통상파괴작전을 수행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오게 됩니다. 또, 구식 범선을 이용한다면 경계심을 상선의 경계심을 풀 수 있다는 이점등도 고려하여 작전은 점점 구체적이 되고 태평양과 대서양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며 범선운용 경험이 있는 폰 루크너 중령(Felix von Luckner)에게 작전을 맡기게 됩니다.



펠릭스 폰 루크너 백작.

그리고 여기에 동원된 것이 목화를 싣고 러시아의 아르항겔스크로 향하던 중 독일 잠수함에 나포되어 [각주:1] 쿡스하벤에 인계된 발마하 호였죠. 이 낡은 범선은 곧 브레머하벤의 게스테뮌데에 있는 테클렌보르크 조선소로 옮겨져 무장상선으로 개조하는 작업이 시작됩니다. 출력 1,000마력의 디젤엔진에 더하여 500마력 엔진을 악천후용 보조기관으로 장비하고 갑판에 돼지우리로 위장한 105mm포와 2문의 중기관포를 설치할 수 있는 즉석 레일을 준비한 외에 위장 무기고와 포로용 특수 선실등을 설치하는 등의 다양한 개조를 실시합니다. 이름도 밋밋한 Pass of Balmaha에서 새로운 이름을 붙이려고 했는데 처음에는 알바트로스(Albatross, 신천옹)로 바꿀 생각이었지만 동명의 함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부하들과 상의해 바다독수리라는 뜻의 제아들러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죠.

그와 함께, 타국적의 상선으로 위장하기 위하여 노르웨이의 범선 마레타(Maleta) 호로 위장하려는 의도에서 루크너가 덴마크의 코펜하겐 항에 들어와있는 마레타호에 잠입해서 항해일지를 훔치고 이에 기초해서 위장하려고 하지만 준비하는 동안에 마레타 호는 출항해 버립니다. 그 대신으로 소재가 불분명한 노르웨이 범선 카레모어 호의 이름을 빌리려고 했지만 이것도 영국에 나포되었다는 정보가 들어오자 결국, 발견되면 적당히 속이기로 하고 말레타 운트 카르모에 호라는 이름으로 출항하게 됩니다. [각주:2]



바다독수리 날다

1916년, 12월의 빌헬름스하펜. 노르웨이 깃발을 게양한 평범해 보이는 3돛대 범선. 노르웨이 마을을 그린 그림과 소속 선박회사를 나타내는 낡은 제복, 수리용 목재 등이 쌓여있는 이 낡은 배에 탑승한 것은 특별히 노르웨이 어에 능통한 이들로 선발한 6명의 사관과 57명의 선원들, 그리고 크누드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루크너 중령이었습니다. 12일, 제아들러는 조용히 공해상으로 진출하여 도버해협을 지나는 대신에 브리튼 제도의 북쪽으로 돌아 가는 루트로 대서양을 향합니다. 도중에 아이슬란드 근해에서 영국해군의 순양함 HMS Avenger에게 입검까지 받았지만 간단히 무사통과한 제아들러 호는 본격적인 통상파괴활동에 들어서게 됩니다.

1917년 1월 9일, 지브랄타 근해에서 영국의 석탄수송선 글래디스 로열(Gladis Royale, 3,268톤)을 발견한 제아들러는 시간을 묻는 신호를 보내고 접근해 왔을때 갑자기 독일국기를 게양하고 위협사격을 가해서 배를 정지시킵니다. 선원들을 위협해서 옮겨타게 하고 배는 침몰시키는 방법으로 첫 작전을 성공시킨 제 아들러는 이후로도 계속 같은 방법으로 방심한 상대방을 간단히 나포하게 되죠. 포로가 된 선원들은 항행을 방해하지 않고 탄약고에 들어가지 않는 한은 행동의 자유를 인정받으면서 선상에서 함께 생활을 합니다.

다음날인 1월 10일, 이번에는 영국의 설탕 수송선 런디 아일런드 호(Rundy Island, 3,095톤)를 나포, 격침합니다. 이 배의 선장은 전에 포로 서약에 서명한 적이 있어서 배를 타는 자체가 전쟁법 위반이었지만 별로 문제삼지는 않았죠.
이후 제아들러 호는 지브랄타 근해를 떠나서 남하를 시작하며 브라질과 서아프리카 사이의 대서양 중간지점에서 무역풍을 타고 이동하는 배들을 노립니다.

1월 21일에는 프랑스의 범선, 샤를 그노 호(Charles Gounod, 2,199톤)를 나포 격침했고, 1월 24일에는 캐나다의 스쿠너 범선 퍼스 호(Perce, 364톤), [각주:3] 2월 3일에는 프랑스의 초석 수송선 앙트낭(Antonin, 3,071톤)호, 2월 9일에는 이탈리아의 초석 수송선 부에노스 아이레스 호(Buenos Ayres, 1,811톤), 2월 19일에는 영국의 곡물 수송선 핀모어 호(Pinmore, 2,141톤) [각주:4] 2월 26일에는 영국의 가축 수송선 브리티쉬 요만 호(British yoeman, 1,953톤) [각주:5]와 프랑스 범선 듀플레(Dupleix, 2,206톤)이 각기 나포 격침되었습니다.

3월 11일, 제아들러 호는 영국의 기선 혼가스호(Horngarth, 3,609톤)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배에는 5인치 포(127mm)와 무선장치가 있어서 직접 싸우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자, 화재를 위장하고 여장한 선원 [각주:6] 을 갑판에 세워 구조를 요청하게 하여 배가 근접했을때, 재빨리 독일국기를 게양하고 무선실에 포격을 가해서 파괴해버렸다. [각주:7] 여기에다가 공포탄을 발사할 수 있는 굴뚝포(낡은 굴뚝에 화약을 채워서 만든 위협용 포)를 사용하였고 도주하려는 혼가스 호를 향하여 (혼가스 호가 더 빨랐다.) 목소리가 큰 선원이 "어뢰 발사 준비"라고 외치게 하여 항복시키는 데 성공했다.(실제로는 어뢰가 없었음)
이 나포로 500상자의 꼬냑과 샴페인 2,300상자, 바이올린과 피아노 등의 악기류, 고가의 회화, 가구 등을 입수하여 최대의 전과를 올리게 되었다.



항해중인 제 아들러.


유쾌한 제아들러

술과 악기를 얻은 것이 기분을 유쾌하게 만드는 데는 도움이 되었는지 나포된 배들의 선원들은 제아들러 선상에서 국제오케스트라를 만들어 3월 14일에는 "불어라 남풍이여"를 연주하기도 했고, 근처에 적선이 없다면 선상에서도 행동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었고 샴페인을 마시는 것도 허용되었지만 이 시점에서 제아들러호의 선원은 포로와 승무원을 합하여 300여명이 넘고 있었고 수용능력에 한계에 달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3월 20일, 프랑스의 범선 캉브론(Canbronne, 1,833톤)을 나포했을 때, 루크너는 포로를 이 배들에 옮겨서 육지로 갈 수 있도록 허가했으며 대신에 마스트는 반으로 해서 속력을 내지 못하도록 하는 한편, 포로들에게 날짜분의 급료를 지불하고 그림이나 샴페인 등을 전별금으로 보내주는 등 나름대로 예의를 갖춥니다. 캉브론 호의 지휘는 최선임자인 핀모어 호의 선장 뮤렌이 맡았고, 육지에 도착하기 까지 타 선박과 연락을 않겠다는 약속을 지켜, 도중에 만난 기선을 그냥 엇갈려 보내면서 리오데 자네이루에 도착하고, 포로들은 전원 석방되었습니다.

훗날 2차대전에서 그라프 쉬페 호에도 이어지는 "현대의 해적"이라는 묘한 낭만과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각주:8]는 부분에서 이슈가 되었고 바다 신사들의 기사도는 존중받을 만한 것이었지만 결국 이들이 제공한 정보 때문에 꼬리를 잡힌 제아들러 호에는 "바다의 악마"(Seeteufel)라는 별명이 붙게 되고 연합국 측이 이 지역에서 독일이 통상파괴를 실시하고 있음을 알게 되어 추격대가 조직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스콜 속의 제아들러

영국은 혼곶에 세척의 순양함으로 구성된 함대를 파견하여 추적에 나섰지만 제아들러는 이 추격망을 빠져나가기 위하여 가능한 한 남쪽으로 이동해서 혼곶을 넘었고 4월 18일 영국의 순양함 오란토 호(Oranto, 30,099톤)를 발견한 루크너 함장은 스콜 속으로 제아들러호를 몰아가서 적함의 감시망을 빠져나가는 데 성공하고, 봉쇄망을 돌파한 다음에는 예비 구명보트에 제아들러 라는 이름을 적고 바다에 띄워보내서 이것을 발견한 영국측은 제아들러가 침몰했다고 발표하고, 당분간 제아들러 추격을 중단합니다.



http://en.wikipedia.org/wiki/SMS_Seeadler_%28Windjammer%29
http://ja.wikipedia.org/wiki/%E3%82%BC%E3%83%BC%E3%82%A2%E3%83%89%E3%83%A9%E3%83%BC_%28%E5%B8%86%E8%88%B9%29
http://www.goldship.co.kr/board/board.html?code=goldship_board2&page=1&type=v&num1=999958&num2=00000&lock=N
http://combat.maru.net/bbs/view.php?id=article&no=31
클라시커 50, 역사와 배. 루츠 붕크.

  1. 영국군함에게 저지되어 스코틀랜드의 커크힐로 향하던 중에 다시 독일에 나포됨. [본문으로]
  2. 나중에는 약혼자의 이름을 빌어 이르마라고 바꿉니다. [본문으로]
  3. 이 배의 선장은 아내를 동반한 신혼여행 중 이었음. [본문으로]
  4. 과거에 이 배에 승선해서 285일이라는 장기간의 항해를 경험하면서 폭풍우, 병, 식량문제, 물 부족 등을 경험한 적이 있던 로크너 선장은 핀모어 호를 침몰시키기 전에 홀로 선내를 거닐으며 추억을 회상했다고 함. [본문으로]
  5. 이 배에는 여성이 1명 탑승하고 있어서 퍼스 호의 신부와 함께 지냄. [본문으로]
  6. 수병중에 휴고 슈미트는 여장을 하고 크누드센 함장의 아내 "자네트"역을 맡게 되어 있었다. [본문으로]
  7. 이때, 더글러스 페이지라는 선원이 무너진 증기 파이프에 깔려서 사망했고, 제아들러 호의 해적행위에 의한 사망자로는 확인된 유일한 케이스가 되었다. [본문으로]
  8. 나중에도 이 부분을 루크너가 자랑하긴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1명이 사망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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