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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사카타 산키치, 이단아의 끝보찌르기 阪田三吉 (1870.07.01~1946.07.23) 오사카 근교 마츠무라 현 사카이 쿄와 마치 출신. 구 호적으로는 坂田三吉. (읽는 방법은 같다.) 인물 천민부락 출신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천민부락, 부라쿠민이란 일본 사회에서 최하층민으로 차별받고 있던 사람들이 모여살던 곳을 말한다.) 가업인 짚신 만들기를 도우면서 장기를 배웠다. 1886년에 니혼바시의 신발 도매상에 견습생으로 들어갔는데, 길가에서 이루어지는 장기에서 곧잘 어른을 이겨 조숙한 천재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장기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다른 사람을 부상시켜 해고당했다고 한다. 그 후에는 친가로 돌아가서 가업을 도우며 내기 장기로 솜씨를 연마했고, 아마츄어 기사로써 오사카에서는 유명해졌다. 1899년 경에 세키네 긴지로와 첫대결을 벌여.. 더보기
후지이 타케시, 시스템 혁명가 藤井猛 (1970.09.29 ~ ) 기사 번호 198. 일본의 군마현 누마타 출신. 니시무라 카즈요시 9단 문하. 전적 일본장기를 처음 배운 것이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고 재미를 붙인 것은 초등학교 6학년 1학기의 일이라고 한다. 장려회 시험에 한번 떨어졌지만 연수회에서 편입하는 형식으로 1986년 장려회에 가입했다. 가입후 6년만인 1991년 4단으로 프로기사가 된 소위 하부 세대의 한명이다. 하부 요시하루, 사토 야스미츠, 모리우치 토시유키, 무라야마 사토시 등의 조숙한 기사들 (당시는 차일드 브랜드라고 불렸다.)과는 달리 마루야마 타다히사 등과 함께 약간 나중에 합류한 그룹에 속한다. 1995년 12월 22일, 제54기 B급 순위전에서 이노우에 케이를 상대로 대 앉은비차 혈웅 후지이 시스템을 처음으.. 더보기
마쓰다 고조, 新手一生 升田幸三 (1918.03.21 ~ 1991.04.05) 기사번호 18. 히로시마 현 후타미 군 마리사카 쵸 출신. 실력제 4대 명인, 이름을 정확히 읽으려면 고소(こうそう, 일본어 표기법에 따르면 고소 지만 발음은 코오소오에 가깝다.)라고 해야 하지만 보통은 당대의 유명인이던 사람의 이름을 따서 고조라고들 읽었고 이것이 굳어졌다. 기미 킨지로 9단 문하. 3관왕 독점 등의 화려한 전적은 물론 그 독창적인 전법, 성격, 다양한 일화 등으로 일본장기계의 역사를 말할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인물 부친 마쓰다 에이치와 모친 가츠노의 사이에서 4남(이름을 보면 3남일 것 같지만 4남이다.)으로 태어났다. 1932년 7월에 일본 최고의 장기기사를 목표로 가출하면서 사랑하는 어머니가 사용하는 자의 뒷면에 먹물로 "이.. 더보기
오오야마 야스하루, 사상최강의 명인 오오야마 야스하루(大山康晴) 기사번호 26. 15세 명인. 영세 10단, 영세 기성, 영세 왕위, 영세 왕장. 일본장기기사로 수많은 대기록(공식 타이틀 획득 80기, 기전우승 44회, 통산 1433승 등등)을 수립했다. 일본장기연맹회장으로써 장기의 보급과 연맹의 운영에 많은 실적을 남긴바 있다. 1990년에는 장기계 최초로 문화공로자로 인정받아 정4위 훈2등훈장을 받았다. 제자로 아리요시 미치요, 나카다 이사오, 나메카와 히사시 가 있다. 생애 성장기 1923년 3월 13일, 오카야마 현 아사구치 군 가와우치죠 니시아치에서 태어났다. 5살부터 장기를 배우기 시작해 금방 두각을 나타내 1935년에는 오사카에서 기미 킨지로 9단의 직속제자로 입문했다. 순조롭게 승단을 거듭했으나 흔치 않은 중장기 기사이기도 .. 더보기
코이케 쥬메이, 최강의 진검사 코이케 쥬메이(小池重明) 본명은 코이케 시게아키(1947년 12월 24일 - 1992년 5월 1일) 아이치현 나고야 출신의 아마츄어 장기기사. 아마츄어 최강의 기사로 불리며 내기장기를 전문으로 하는 진검사로 전설적인 기력을 자랑했다. "신주쿠의 살인청부업자", "최후의 진검사", "프로 죽이기"등등 수많은 별명으로도 유명하다. 인물 출생 1947년, 나고야에서 태어났다. 말년의 기억에 의하면 부친은 건강한 신체가 있으면서도 상이군인을 가장해 구걸을 하거나 도박을 일삼았고 모친은 집에서 손님을 상대하는 창녀였다고 한다. 어느날 "남자라면 도박도 하나는 알아둬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장기에 열중하게 되면서 10대에 이미 근방에는 적이 없다고 할 정도 능숙해졌다. 진검사의 길로 코이케는 "장기로 생계를 꾸려.. 더보기
하부 요시하루, 최강의 기사 하부 요시하루(羽生善治) (1970년 9월 27일 ~ ) 후타카미 타츠야 9단 문하. 기사 번호 175. 1996년 일본장기계 최초로 7관왕에 올랐다. 개요 사이타마현 토코로자와 출생 (출신지는 도쿄 하치오지). 통산 타이틀 획득수는 오오야마 야스하루에 이어 역대 2위. 총 7개 타이틀 중 사상 최초의 영세 6관 칭호 자격 보유자. 하부 본인 외에도 비슷한 연배의 기사들 중에 실력자들이 집중되어 있어 이들을 ‘하부 세대’ 라고도 부른다. 프로 데뷔까지의 이력 초등학교 1학년 때 장기를 배워 그 이후에 하치오지의 장기 도장에 다니면서 실력이 부쩍 자랐다. 부모가 쇼핑을 할 때에는 장기 도장을 탁아소로 이용했다고. 초등학교 3학년때 아마 초단, 4학년에 4단, 5학년에 5단으로 장기실력이 급상승해 이때 이미.. 더보기
가토 히후미, 一二三 전설 가토 히후미(加藤一二三) (1940년 1월 1일 - ) 기사 번호 64. 후쿠오카현 카호 출신. 약력 현역 프로기사 생활 57년 이상. 통산 대국수, 통산 패전수 역대 1위.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에 순위전 A급에 등록한 적이 있는 유일한 기사. 사상 최연소(14세)로 프로기사가 된 기록은 50년 동안 깨지지 않았다. 오오야마 야스하루 15세 명인, 나카하라 마코토 16세 명인, 요네나가 쿠니오 영세 기성을 상대로 각각 100번 이상 대국. 인물 후쿠오카 출신으로 천주교 신자이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성 실베스트로 교황 기사단 훈장을 수여받았다. 일본 장기계 내외를 막론하고 강렬한 개성과 언동으로 많은 일화를 남겨 유명하다. 전적 진무 이.. 더보기
무라야마 사토시, 일본장기에 생명을 걸다 무라야마 사토시(村山聖) (1969년 6월 15일 - 1998년 8월 8일) 장기 기사. 혈액형 AB, 기사 번호180. 히로시마 현 아키 군 후츄우 출신. 모리 노부오 7단 문하. 하부 세대라고 불리는 기사들 중 한명. 인물 3남매 중 차남으로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다. 5살에 히로시마 시민병원에서 ‘네프로제’라는 신장계통 난치병에 걸린 것이 발견되어 죽기까지 병마와 싸웠다. 당시에는 이 병의 치료법이 안정을 취하는 것 뿐이라 소아병동에 입원해 이곳에서 친구들이 사망하기도 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입원중에 아버지에게 장기를 배웠고 몸에 지장을 준다는 주의를 받으면서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몰두했다. 이후에 눈에 띄게 두각을 드러내어, 쥬고쿠 어린이 명인전에서 4년 연속 우승, 타이틀 보유자인 모리야스 히로미츠(.. 더보기
사토 야스미츠, 1억3수의 天馬行空 사토 야스미츠 (佐藤康光) (1969년 10월 1일 - ), 장기기사. 기사번호 182. 교토 야와타시 출신, 고쿠가이인 고교 졸업. 다나카 가이슈 9단 문하. 통산 타이틀 획득수 6위. 통칭 하부 세대의 한명. 기력 프로입단이전 1981년 봄 6학년때 초등학교 장기 명인전에 출전해 3위를 차지했다. 이 대회에서 무라야마 사토시를 상대로 승리했으며 이 대회의 준우승은 나카이 히로에였고 하부 요시하루도 이 대회에 출전했다.(당시 5학년) 1982년 12월, 6급으로 오사카 장려회에 입회했다. 반년후 타니가와 코지가 사상 최연소로 명인이 되었다. 장려회원들과 머리를 싸매고 어려워하던 묘수풀이를 몇 초만에 해결해서 어린 마음에 ‘A급의 무서움’을 알았다고. 장려회에서는 입회 1년만에 2급으로 승급했으나 아버지.. 더보기
시마 아키라, 디지털 파이오니어 시마 아키라(島朗) (1963.02.19 ~ ) 기사번호 146. 도쿄 세타가야 타카야나기 토시오 명예 9단 문하 인물 - 1980년에 4단으로 승단한, "55년 동기"의 한명. - 젊은이들과의 연구회, PC에 의한 데이터 관리를 비롯하여 장기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고 평가된다. 그 중에서도 하부 요시하루, 사토 야스미츠, 모리우치 토시유키가 장려회 재적시에 시작한 "시마 연구회"는 전설적인 연구회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 일본 전통복장으로 임하는 것이 상식이었던 타이틀전에 브랜드 수트(아르마니)를 입고 나타나서 매스컴에 화제를 일으켰다. - 1988년에는 요네나가 쿠니오에게 4-0 스트레이트 승을 거두며 초대 용왕이 되었다. 장기계에서는 시마가 용왕이 되리라고는 거의 예상치 못했기에 "신데렐라.. 더보기
키무라 요시오, 근대 장기의 도래를 알리다 키무라 요시오(木村義雄) (1905년 2월 21일 ~ 1986년 11월 17일) 일본의 장기기사. 기사번호 2. 도쿄 스미다구 출신. 14세 명인. 그가 사망한 11월 17일은 장기의 날로 정해 기리고 있다. 연승 장군 스미다구에서 한 직공의 아이로서 태어나 어릴적부터 장기실력이 뛰어나서 어른에게도 지지 않았다. 아사쿠사의 장기 도장에서 지도하던 세키네 긴지로의 눈에 들어, 극빈한 생활속에서 야나기사와 타모츠헤 백작에게 소개를 받아 허드렛일이나 급사일을 하면서 장기를 배웠다. - 1938년의 제 1기 명인전에서 명인이 된 이래 최강을 자랑했고 당시의 A급 기사들 전부에게 이겨 "연승장군"이라고 불리며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장기계의 제일인자로서 전쟁 기간의 장기계에 이름을 널리 떨쳤고 당시의 일반인에게.. 더보기
센자키 마나부, 수필가 기사는 무뢰류 센자키 마나부(先崎学) (1970년 6월 22일 ~ ) 기사 번호185. 아오모리 출신. 요네나가 쿠니오 영세기성 문하. 하부 세대의 한명. 타이틀 전의 경험은 없지만 모든 기사가 참가하는 대회에서의 우승 경력은 하부 요시하루, 모리우치 토시유키 다음이다. 기력 프로 입문 이전 1981년 가을 장려회에 입회했다. 장기계에는 어릴적부터 정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초등학교 5학년 입회는 빠른편. 게다가 6급이 아니라 5급 신인으로 입회 이전부터 요네나가 쿠니오 문하에서 하야시바 나오코 등과 더부살이 직속제자로 사사받고 있었다. 하야시바와 둘이서 신주쿠 장기센터에 다니곤 했는데 둘다 놀기 좋아하는 성격이었던 듯. 동년배인 하부 요시하루, 모리우치 토시유키, 고다 마사타카 등은 센자키 보다 1년 뒤에.. 더보기
나카하라 마코토, 일본장기계의 태양 나카하라 마코토(中原誠) (1947년 9월 2일 ~ ) 16세 명인. 기사번호 92번. 다카야나기 토시오 명예 9단 문하. 영세 10단, 영세 기성, 영세 왕위, 명예 왕좌 타이틀 획득 수 역대 3위. 돗토리 현 태생. 생후 1개월에 미야기의 시오가마로 이사했다. 전적 약관 24세에 오오야마 야스하루 에게서 명인위를 획득하고 그 후로도 9연패를 달성, 일본장기계의 태양 이라고 불리웠다. 오오야마의 후계자로서 장기계에 한시대를 쌓아올렸고 요네나가 쿠니오, 가토 히후미 등과 수많은 명승부를 펼쳤다. 데뷔에서 첫 타이틀까지 장려회 시절부터 미래의 명인후보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3단 리그를 좀처럼 통과히지 못하고 6기 3년간 제자리 걸음을 반복해 인간적으로 많은 고뇌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러나 1965년 가을.. 더보기
요네나가 쿠니오, 상쾌한 수렁류 요네나가 쿠니오(米長邦雄) (1943년 6월 10일~) 2003년 은퇴후 현 일본장연맹 회장(2005~). 기사번호 85. 사세 휴우지 명예9단 문하. 영세기성. 타이틀 획득수 19회. 야마나시 현 출신. 나가노 구립 8중, 도쿄도립 사기노미야 고교 졸업, 중앙대 경제학부 중퇴(대학원). 기사로서 전적이 훌륭할 뿐 아니라 캐릭터성, 사상이나 언동, 유머 등으로 일본장기계 밖에서도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인물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주위의 어른들을 이길 수 있게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때, 스승인 사세 휴우지가 생가를 방문해 프로기사가 될 것을 권유하면서 ‘아드님은 명인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8단은 될 수 있습니다.’라 했다고. 형 셋이 모두 도쿄대에 진학했는데 그중 한명인 전일본학생명인전에서 우승하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