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메라리가의 역사
초창기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에서 대표팀이 은메달을 획득하면서 스페인에 불어온 축구 붐이 계기가 되어 1927년 4월 아레나스 클럽 데 겟소 구단주 호세 마리아 아카는 스페인에도 국가 수준의 최고리그를 만들자고 제의했다. 리그의 규모와 참가할 팀에 대한 논의 끝에 스페인 왕립 축구협회는 1928년도 스페인 1부 리그에 10개 팀이 참가하기로 결정하면서 프리메라리가가 시작되었다.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AT빌바오, 레알 소시에다드, 아레나스 겟소, 레알 우니온이 역대 코파델레이 우승자 자격으로, AT 마드리드와 에스파뇰, 유로파는 코파델레이 준우승으로 원년멤버로 선정되었으며 마지막으로 라싱 산탄데르가 예선전을 거쳐 1928~29시즌 프리메라리가 멤버로 선발되었다. 첫 시즌에는 바르셀로나가 초대 챔피언을 차지했고 1932년과 33년 레알 마드리드가 2연패를 달성하기는 했지만 1930년대 최강의 팀은 1930, 1931, 1934, 1936년 타이틀을 차지한 어슬레틱 빌바오였다. 프레드 펜틀랜드의 지도아래 숏패스 중심의 플레이를 정착시킨 빌바오는 1931년에는 2년 연속으로 코파델레이와 리그를 동시에 재패하는 등 1930년대 내내 압도적인 역량을 과시하며 최강팀으로 군림했다.
스페인 내전 이후
1936년의 내전은 스페인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고 프리메라리가도 중단되었지만 프랑코 군이 승리한 뒤 1939~40 시즌에는 리그가 재개되었다. 내전으로 많은 팀이 피해를 입은 중에 합병으로 선수층을 강화한 AT 마드리드, 발렌시아, 세비야는 40년대 초기 프리메라리가의 강팀으로 군림했다. AT 마드리드는 1941년 처음으로 리그 우승을 거머쥐었고 내란 이전에 리빌딩에 들어갔던 발렌시아는 42, 44, 47년에 우승하고 48, 49년에 준우승을 이루었다. 세비야도 1940년과 42년의 준우승을 비롯해 1946년에는 우승을 달성하는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정치적인 규제로 사람들은 지역을 대표하는 팀을 통해 자신들의 유대감을 표현하는 통로를 찾았고 프리메라리가의 각팀들은 굳건한 지역연고를 다지며 투우와 함께 스페인의 인기 스포츠로 떠올랐다. 50년대에 접어들면서 프리메라리가는 보다 적극적으로 해외의 선진축구를 받아들이며 세계적인 리그로 급부상하게 된다. AT 마드리드는 카테나치오 전술의 대가 헬레니오 헤레라 감독을 영입해서 1950년과 51년에 리그 2연패를 달성하는 한편으로 바르셀로나는 프랑코 정권의 압력에 시달리면서도 1945, 48, 49년 우승을 거두고 헝가리 출신 라디슬라우 쿠발라의 활약으로 1952, 53년 우승을 거머쥐었다.
1950년대까지 프리메라리가는 팀당 3명의 용병보유 제한과 프랑코 정권의 독재로 세계 정상급 선수들에게 그다지 선호되는 리그가 아니었지만 바르셀로나가 보여준 용병의 성공적 활용은 경쟁팀 레알 마드리드에게도 강한 영향을 주었다. 산티아고 베르나비우 구단주의 주도하에 팀을 전반적으로 개편하고 있던 레알 마드리드는 1953년 디 스테프나오와 푸스카스 프란시스코 젠토 같은 세계 최고수준의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면서 세계적인 클럽으로 급부상했다. 1954년 레알 마드리드로 이름을 바꾼 뒤 (공화국 시절에는 왕립이라는 의미의 레알을 사용하지 않도록 권고받았었다.)처음으로 우승을 거머쥔뒤 55년에 2연패를 달성한 레알 마드리드는 57년과 58년에도 2연패를 달성하면서 리그 최강의 팀으로 떠올랐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시대
1961년부터 1980년까지 AT 마드리드가 같은 기간 동안 4번 우승했고 바르셀로나는 59년과 60년에 헤레라 감독의 지휘로 2연패를 달성하고 74년에는 수퍼스타 요한 크루이프의 활약에 힘입어 우승했지만 이 시대는 5연패 1번, 3연패 2번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낸 레알 마드리드의 전성기였다. 1981년에 레알 소시에다드가 우승하고 이듬해에 2연패를 달성하고, 빌바오가 83년과 84년에 리그 2연패를 달성했으며 85년에는 테리 베나블레의 바르셀로나가 우승하는 등, 레알 마드리드의 위세는 80년대 초반에 한풀 꺽이는 것 같았지만 후반에 들어서면서 레알 마드리드는 86년부터 90년까지 다시 5연패를 달성하며 최강팀의 위상을 다시금 과시했다. 특히 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용병 덕에 우승한다는 그동안의 비난을 잠재우듯 에밀리오 부트라게피오, 마놀로 산치스, 마틴 바스케즈, 미켈과 미구엘 파데자 같은 팀의 유소년 풀 출신 선수가 팀의 핵심으로 ‘다섯 독수리’라고 불리며 팀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80년대 후반 라 리가에 군림했다.
한편 1960년대에 라이벌에 눌려지내던 바르셀로나는 1978년 루이즈 누네즈 구단주가 취임한 이래 점차 안정적인 팀으로 발전했다. 1988년 감독으로 취임한 요한 크루이프가 선수 9명을 제외한 전원을 교체하는 대대적인 리빌딩의 여파로 한동안 침체기에 빠졌지만 90년대에는 구아르디올라, 호세 마리 바케로, 치키 베히리스타인, 고이코에체아, 쾨만, 라우드럽, 호마리오, 스토이치코프 등 쟁쟁한 선수들로 ‘드림팀’을 구성해 1981년부터 1984년까지 프리메라리가 4연패를 달성하고 1992년에는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며 황금기를 맞이했다. 크루이프 감독과의 불화로 라우드럽에 최대 라이벌인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면서 바르셀로나는 5연패 달성에 실패했지만 크루이프에 이어 같은 네덜란드 출신의 루이스 감독이 바르셀로나의 지휘봉을 맡으면서 바르셀로나는 특색있는 포제션 축구를 더욱 발전시켜 나갔다. 루이스 피구, 루이스 엔리케, 히바우도 등 쟁쟁한 선수들의 활약으로 1998년, 99년 2연패를 달성하는 등 1990년대는 그동안 레알의 그늘에 눌려있던 바르셀로나의 약진이 눈부셨다.
21세기의 프리메라리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프리메라리가는 중하위권 팀들의 약진으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양강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1993년부터 2004년까지 10년연속으로 3위권에 들었던 데포르티보 라 코루나는 2000년 하비에르 이루레타의 지휘아래 우승을 거두며 오래간만에 레알과 바르샤 외의 팀이 프리메라리가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발렌시아도 헥터 쿠버 감독의 지휘로 2000년과 2001년에 챔스에서 준우승을 달성했으며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이 지휘한 2002년에 리가 우승을 거머쥐고 2004년에는 프리메라리가와 UEFA 컵을 동시에 우승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2000년 7월 취임한 플로렌티노 페레즈 구단주의 주도로 갈락티코 정책을 실시해 최고의 인기팀으로서 유럽을 넘어 전세계적인 인기구단으로 입지를 다졌다. 바르셀로나는 2000년 누네즈 구단주와 반 갈 감독이 사임하면서 한동안 성적이 저조했지만 프랑크 레이카르트 감독의 지휘로 팀을 리빌딩하면서 네덜란드 커넥션을 청산하고 2004~05 시즌에 외계인 호나우딩요의 활약으로 21세기 첫번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2005~06에는 적극적인 스쿼드 강화에 힘입어 리가와 챔스를 동시에 우승하는 위업을 달성했으며 2009년에는 팀의 레전드 펩 구아르디올라 감독의 지휘로 프리메라리가 사상 최초의 트레블을 포함해 연간 6관왕이라는 대 기록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