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사회적 측면
1. 범죄원인론의 고전주의
인간은 존엄하다라고 우리는 어릴적부터 배워왔습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이 존엄하다 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중세시대에 보편화된 기독교적 사고관에서 모든 인간은 신의 모습을 따라서 태어났기 때문에 존엄하다라는 아주 간단한 해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르네상스를 지나고 사회적으로 종교가 가지는 의미가 후퇴하기 시작한 서구에서는 대체 인간은 왜 존엄한지에 대해서 철학적인 연구가 이어졌고 그에 따른 수많은 토론들은 점차 발전하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성, 자유의지'라는 부분에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칸트가 주장한 것으로 인간은 이성에 의해 정언명령에 따르는 과정에서 본능에 의존하는 동물과 달리 스스로의 목적을 창조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부분입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이성적 존재는 아닐지라도 이성능력이 부과되어 있는 존재이며 이를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 '타인에 대한 존중'이라는 윤리적 의무를 받아들여 나간다는 점에서 존엄과 가치를 갖는다 라는 것이 칸트가 말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해설이 되겠습니다.
뭐, 철학자 답게 알송달송한 소리이긴 하지만 그 후대의 철학자들이 내놓은 다양한 해석들보다는 그나마 이해하기가 쉬운편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생각이 보편화되고 인간은 존엄하다 라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사회의 형벌정책에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유럽사회를 비롯한 대부분의 인간사회에서는 형벌은 대단히 엄격하고 잔인해서 사형이 공개적인 볼거리가 될정도였습니다. '사형'이라는 것을 일반인에게 노출시킴으로써 악행은 처벌한다 라는 것을 보여주어 범죄를 막겠다라는 취지였고, 그 이외에도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자면 끔찍하다 싶을 정도의 처벌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의 재래가 필요하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1738년 베카리아라는 한 이탈리아 사람은 26세의 나이로 후세의 형사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범죄와 형벌'이라는 논문을 작성합니다.
이 논문을 통해서 베카리아는 처벌은 공정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지며 그 강도는 범죄에 비례해야 하고 법에 규정된 것이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면서 형법체계가 궁극적인 목표로 해야 하는 것은 처벌이 아니라 범죄의 예방이어야 한다라는 급진적인 (당시로는) 이론을 주장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행동에 결정권을 갖는 인간을 모델 삼는 형사정책의 고전학파가 일세를 풍미했습니다만 19세기에 넘어서면서 자연과학의 발달이 사회과학에도 영향을 주어 사변적인 토론을 넘어서서 엄밀한 논리와 객관적인 자료에 의거하는 방법으로 범죄를 하나의 현상으로써 탐구해야 한다고 주장한 '실증주의' 학파가 등장해서 맹위를 떨치게 됩니다.
2. 범죄원인론의 실증주의
다윈주의(Darwinism, 다원론 아님)의 열풍과 지연과학의 혁신에 힘입어 지극히 철학적이고 종교적이며 사변적으로 다가오는 인간의 존엄성이나 고전주의가 주장하는 자유의지에 기초한 인간 개념을 다 건너뛰고, 순수하게 '털없는 원숭이'들의 행동방식을 연구해서 '범죄'라고 일컫고 있는 사회현상 그 자체의 발생원인, 발생구조 등을 알아내고 그 정보를 이용해서 어떻게 하면 범죄를 줄여낼 수 있는지를 연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형사적 정책에 영향을 주게 된 것이죠.
그 이후 100년이 넘는 기간동안 학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의 활동을 연구했습니다.
초기에는 '관상을 보아하니 범죄자'라는 식의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생물학적,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서 범죄자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연구였는데 이런 것들은 나중에 히틀러나 무솔리니 등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예를 들어서 유대인은 원래 사악하고 돈을 밝힌다는 것이죠.
이 계통의 대표적 연구자인 롬브로조 같은 사람은 '생래적 범죄인'이라는 개념을 만들어서 범죄자들의 신체적 특징과 공통점을 연구해서 '도둑놈 발'같은 몇가지 공통적 신체특징 목록을 뽑고는 일치하는 항목이 많을 수록 그 사람은 범죄자로의 소질을 타고났다고 규정하기에 이릅니다.
얼핏보면 그럴듯하고 오늘날까지도 알게모르게 영향을 주고 있는 생각이긴 하지만, 이미 당대에 수많은 비판을 받아서 이런 생물학적인 원인론은 금방 환경적 원인론으로 바뀌었습니다. 강수량, 기후, 농산물 생산량, 정부구조, 종교 등등이 범죄 발생에 영향을 준다는 건데, 이것도 오늘날 고담xx, 마계xx 등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범죄지리학'이라는 엄연한 학문적 체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실증주의에 의거하면 인간은 자유의지에 의거해서 환경을 변화시키고 무언가를 창조하는 능력이 있는 존엄한 존재라기 보다는 그냥 환경의 영향에 따라서 미리 주어진 대로 활동하는 동물의 일종입니다. 그 말은, 바꾸어 말하자면 범죄가 일어나는 것은 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 환경의 문제라는 것이죠. 따라서 논리적으로, 실증주의의 논리는 '범죄자를 탓해봐야 소용없고 구조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방향으로 발전해 갑니다. 그러다보니 이쪽 학자들 중에는 그야말로 깨는 사고들이 다수 튀어나옵니다.
1835년 벨기에의 물리학자(!)인 케틀레는 실증주의적 방법으로 유럽 각국이 발간한 사회통계자료를 실험자료로 활용해서 각국의 사회와 자연적 환경과 범죄발생의 정도를 분석한 끝에, '사회는 범죄를 예비하고 범죄자는 그것을 실현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합니다.
프랑스 리용대학의 의학교수(!)였던 라까사뉴는 물가변동과 범죄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끝에 행위자 각각의 특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처해있는 사회환경이 범죄발생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확인하고, "사회환경은 범죄의 배양기이며 범죄자는 미생물에 해당하므로, 벌해야 할 것은 범죄자가 아니라 사회이다"라고 주장하기에 이릅니다.
3. 처벌의 범죄억제효과의 범죄원인론적 분석
실증주의 이후 많은 형사정책학자들은 사변적이고 철학적인 방법이 아니라 보다 자연과학적인 연구방법을 통해서 범죄의 매커니즘에서 여러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밝혀내었고 그 결과들은 다양하지만 아직도 '범죄를 유발하는 원인은 무엇인가"에 대한 궁극적인 답변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처벌이나 단속이 충분하지 않아서 범죄의 엄중함을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고,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처럼 범죄자는 태어나면서부터 범죄적 소질을 갖고 있다고,
또는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말처럼 주변환경에 영향을 받아서 범죄자가 되는 것이라던지 '급격한 사회변화', '선정적인 대중매체' 등등을 범죄가 일어나는 주 원인으로 지목하는 사람 등등 대답은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하지만 크게 구분짓자면 범죄의 발생은 무엇 때문인가에 대해서는 두가지로 나뉩니다.
첫번째는 인간은 동물과 달리 지능과 합리적 판단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기 운명의 지배자가 될 수 있으므로,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서 자기 생활을 영위하는 존재이다라는 입장인데, 이것이 앞에서 설명했던 고전학파와 신고전학파의 입장이 됩니다.
두번째는 인간의 행동은 이성적인 판단에 따라서 자족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이미 정해진 대로 행동하는 존재로써, 환경 등의 요인에 의해서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입장입니다. 여기에는 앞에서 설명한 실증주의를 비롯한 결정론적 시각을 따르는 학설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면 실제로 범죄가 줄어들게 되는 효과가 입증되었느냐는 부분이 됩니다만 실증주의는 원래 범죄자는 처벌같은걸 생각해서 이익과 손실을 계산해서 범죄를 저지르기 보다는 원래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므로 처벌을 강화해도 범죄 억제의 효과가 낮다는 입장입니다.
실증주의적 입장에서 범죄를 없애려면 경제를 호황으로 만들고 범죄자를 사회에서 '격리'시키고 급격한 사회변화에 의한 인간관계의 혼란을 줄이고, 선정적인 대중매체를 건전하게 만드는 것을 중요하지요. 따라서, 범죄자에 대한 처벌 강화로 범죄가 줄어드는 지에 대한 연구는 신고전주의 학파의 연구에 의존하게 됩니다.
다시말해,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이들의 행동을 범죄에서 멀어지게 하려면 형벌은 확실하게, 엄격하게, 신속하게 집행되어야 하고, 그것을 통해서 범죄 억제라는 결과를 끌어내겠다는 고전주의를 실증적인 방법을 거쳐서 형벌을 어떻게 처리해야 범죄예방에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지를 알아내자는 주장이 신고전주의라는 이름으로 1960년대에 대두되었습니다.
1968년에 깁스라는 학자는 미국의 50개주를 대상으로 각주의 범죄발생율, 검거율, 평균형량등을 분석해서 그 관계를 조사했는데 이 연구에서 형벌의 집행이 확실하고 엄격하게 이루어질 수록
살인사건의 발생율은 낮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즉, 사람이 형벌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가 범죄발생의 빈도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1969년에 티틀이라는 학자가 이런 연구를 보다 확대해서 살인사건 이외에 다른 범죄까지 모두 포함해서 형벌이 갖는 범죄억제효과를 검증해보자 살인사건에서는 형벌의 엄격성이 높을수록 발생율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의외로 그 외의 범죄에서는 딱히 이런 관계를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반면에 형벌의 '확실성'은 모든 범죄에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즉, 살인사건 이외에는 처벌의 강도를 높이는 것보다 '범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처벌을 당한다'라는 인식, 형벌의 확실성이 중요한 요소라는 연구결과가 나왔고 그 이후에 이루어진 연구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한편 실제로 이루어진 형벌이 아니라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형벌에 대한 인상이 어떻게 작용하는 가에 대해서도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글라스미크나 홀링거 등의 조사에 따르면
각 개인에게 '지난 달에 있었던 100건의 살인사건 중에서 몇건이 체포되었다고 생각하는가' '특정범죄에 대해서 각자가 추정하는 형량'등을 질문해서 처벌의 확실성과 엄격성에 대한 개인의 인지정도를 직접 측정해서 그것과 범죄발생 빈도의 관계를 확인해보았습니다.
그 결과 처벌의 엄격성은 주목할만한 관계를 주지 못하는 반면에 처벌의 확실성을 강하게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범죄를 자제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4. 결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사변적 고찰을 별론으로 취급하고도 성립하는 형사정책적 이론은 이미 오래전부터 도입되어 있으며 범죄자에 대한 처벌의 엄격성과 범죄의 발생빈도에 대한 연구는 실증주의 보다는 고전주의에 가까운 연구를 통해서 이루어졌으며 처벌의 엄격성보다는 확실성이 범죄 억제에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적습니다.
관련내용
http://puzzlet.org/archive/angelhalo/view/로리콘
http://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8/27/200908270080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