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note

미수다의 루저의 난

아르미셸 2009. 11. 13. 22:03

그간 루저의 난으로 논란이 많았던 미수다 제작진은 공개사과로도 문제가 가라앉지 않자 선임 PD 및 작가진 교체를 들고 나왔다. 프로그램 폐지에는 못미쳐도 제법 강수를 둔 셈이다.

원래 추석 특집으로 시작했던 미수다도 150회를 넘어서 상당히 롱런했지만 이미 방향성 문제로 고민하고 있던 미수다에게는 최대의 타격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돌이켜보면 100회를 맞이한 이후 미수다는 그동안 지적되던 문제점들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는 속에서도 월요일 심야 예능 프로그램 3파전을 잘도 해쳐나온 셈이다. 국민MC 유재석이 나오는 놀러와나 야심만만 등을 상대로 비교적 한수 처지는 MC에 일반인을 데리고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했다고 봐야할까. 하지만 최근에는 놀러와에게 상당히 밀리고 있던 상황에서 시청율을 의식한 가을특집을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된서리를 맞은 셈이다.

시청율이 이런 상황에서 문제가 된 152화는 그 전의 151화가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신변잡기적인 방송이 되면서 그에 대한 대책으로 어느 정도 이슈를 만들기 위해서 계획되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동안 미수다는 외국인 미녀 출연진을 다수 섭외하고 이들에게 작가들이 작성한 주제를 놓고 설문지를 돌려서 그 결과를 취합해 대본을 작성하고 이를 가이드라인으로 5시간 정도를 촬영한 다음 그 일부를 편집해서 방송하는 포맷을 유지해왔다. 따라서 논란의 핵심에 있는 loser대본 문제에 관해서는 어느 한쪽의 말이 옳다기 보다는 아무래도 양쪽 다 말이 옳았다고 봐야할 것이다.

제작진은 그동안 수차례 우려먹었던 '한국 20대 여성의 남성 의존성'을 놓고 외국인과 비교하겠다는 컨셉을 잡고 설문지를 돌리면서 미녀 출연진을 의도적으로 맞추었거나 그에 대해서 선명한 입장을 밝히던 이들을 출연시켰다. (한동안 출연이 뜸하던 메자나 허이령 미르야 등의 출연진 면모를 보면 대체로 추측이 가능하다.)  그리고 여기에 대조군으로 선정한 것이 여대생 출연진으로 이들은 작가들이 제시한 떡밥에 맞추어 평소에 자신들이 갖고있던 소신대로 '데이트 비용은 남자가 내는 것이 당연하다' '180이하는 루저' '대학교 수업료는 부모가 내는 것이 일반적' 등등의 생각을 말했을 것이고 여대생 중 다수가 정통으로 걸려들어 제작진이 의도한대로 명확한 대립구도를 그려내었다.

이 와중에 가장 문제시된 180이하 루저 발언에서 해당 단어를 출연자가 설문지에 낸 것으로 대본을 만들었건 작가가 충격효과를 노리고 고의로 집어넣은 것이건, 출연자의 애드립이건 그런 부분은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 생각이 좋건 나쁘건 180이하는 루저라는 개인의 생각을 가지고 마녀사냥을 하기도 뭣하거니와 그게 꼭 그 출연자만의 생각도 아니고 누가 말하더라도 술자리에서라면 어느 무개념한 여자가 충분히 말할법한 내용들이다. 진짜 문제는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이미 그렇게 잡아놓았고 그걸 위해서 충격효과를 노리고 신체를 놓고 다수의 사람들을 비하하는 내용을 방송하면서 PD가 편집하지도 않았고 진행하는 MC도 주의를 주지 않았으며 자막까지 만들어서 강조를 했다는데 있다.

설령 그 발언이 프로그램의 의도에 맞았거나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면이 있었다거나 또는 사회적인 이슈가 될 만한 발언이더라도 프로그램을 책임지는 PD는 그 파급효과를 생각해서 최소한 편집으로 처리했어야 했다. 더더군다나 국영방송인 KBS는 가이드라인에서 이런 차별적인 발언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번의  PD와 작가 징계는 오히려 약간 부족한 감이 있다.

기실, 이번에 불거진 문제는 미수다가 그동안 표류해오면서 보여주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150화가 넘는 동안 미수다는 외국인들과 한국인의 다른 점을 바탕으로 낯설게 하기라는 코드를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10년도 전에 이다도씨를 비롯해서 한국어 잘하는 외국인들이 붐을 일으켰었던 걸 바탕으로 기껏해야 술마시는 이야기 나이트에서 부팅하는 이야기, 연예인 누구 좋다 등등 일반인 누구를 데려다 놓더라도 별 다를 것이 없는 내용으로 그동안의 방송분 약 70% 이상을 떼워왔다. 식상한 주제들 때문에 시청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지자 제작진은 채리나와 비앙카 등으로 대표되는 막말 컨셉이 꾸준하게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었다. 게다가 방송이 오래되면서 출연진의 방송경험이 차이가 커지게 되자 처음에는 다들 비슷비슷하게 한국어에 어색하고 서툴렀던 상황에서 방송을 익숙하게 끌고나가는 네임드 출연진이 고정을 꽂으면서 외모나 배경 면에서 이슈가 될만한 뉴페이스를 간간히 투입하기는 했어도 대대적인 출연자 물갈이가 이루어지지 않게되자 식상하다는 의견이 점점 커졌던 것도 이러한 시청율 끌어올리기를 부추킨 감이 있다. 최근에는 기믹 논란, 기존 출연자와 신규 출연자의 경쟁 논란 등등 미수다를 둘러싼 잡음들이 계속 불거지고 있었던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수다의 문제점들은 폐지 이외에는 답이 없는 것일까.

하지만 처음부터 천천히 돌이켜보면 크게 또는 작게나마 미수다가 거둔 성과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흐엉의 베트남 여자들은 상품이 아니라는 지적이나 윈터가 겪은 외국인 여자는 창녀라는 시선의 아픔, 메자가 교수임용에서 겪었던 흑인 차별 논란 등등 우리사회의 '외국인'에 대한 시각을 꼬집어 주는 부분에서 미수다는 작게나마 변화를 가져왔고 그런 면에서 아직 효용성이 남아있다.

150화를 진행하는 동안 본론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겉껍질에서만 뱅글뱅글 돌던 것을 이제 과감하게 파고들면서 계속 부딪혀 나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동안 시청율 위기 때문에 그런 진지한 문제를 파고들지 못하고 정말 시시콜콜한 수다만 늘어놓던 것에서 탈피해 좀더 과감하게 정말로 해야 할 이야기들을, 비록 재미가 없더라도, 토크쇼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고 비난을 받을 여지가 있더라도 물러날 곳이 없는 지금에 와서는 충분히 해볼만한 시도가 아닐까 싶다.

미수다는 이제 150화를 넘기면서 진정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지금까지 처럼 신변잡기적인 내용들도 대충 넘어가면서 이대로 모험도를 낮추어 외국과 한국의 차이점을 비교토크하면서 흐려져 버리느냐,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모조리 쏟아부어서 보다 본격적이고 심도있는 토크로 변하느냐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미수다가 순간적인 재미에만 연연하기 보다는 공영방송 답게 정말로 의미있는 방송을 위해서 노력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