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 크로스 위원회
더블크로스
2차대전 기간에 영국이 독일의 암호체계를 해독하기 위해 브래츨리 파크를 운영하고 이곳에서 독일의 암호기 이니그마를 해독해 낸 것은 유명하다. 독일은 그렇다면 영국측의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서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았을까? 독일의 첩보망은 주로 인적 자원에 의존하고 있었고 그 방면에는 상당한 규모의 첩보망을 수립해두었다. 더블크로스라고 불리운 이 첩보망은 영국에만 국한된 체제가 아니라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등의 중립국가를 비롯하여 독일 본토에도 결부되어 있는 복잡한 첩보망으로 전설적인 활약을 보인 첩보요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TRICYCLE이라는 암호명으로 알려져 있는 두스코 포포프(그의 암호명은 3some을 즐기는 독특한 성적취향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호색한 스파이 신화에 기여한 인물이기도 하다.)는 주로 포르투갈에서 활약한 유고출신 은행가로 주로 중립국가에서의 활약을 담당했다. 암호명 GARBO로 통하는 에스파냐 출신 사업가 후안 푸홀은 영국 산업계를 총망라하는 정보망을 구성한 유능한 스파이로 인정받았으며 그의 정력적이고 다방면에 걸친 정보망은 독일측의 감탄을 자아내었다.
그 외에도, 암호명 BRUTUS로 알려져 있는 전 폴란드군 대위 로만 가르비 체르니아보스키는 오마 브래들리 장군의 연락병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고, TREASURE로 알려진 프랑스 출신의 미녀 릴리 세르게예프는 영국 정치가들 사이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암호명 Tate, Tate는 당시 유명한 코미디 배우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독일의 수퍼 스파이지만 …
이들을 총괄하는 인물은 TATE라는 인물은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출신의 인물로, 덴마크 군에서 잠시 일했으며 아르헨티나와 카메룬에서 목장을 경영하기도 했다가 전쟁중 독일 첩보부 아프베르가 포섭해낸 인물 중 가장 유능한 수퍼 스파이였다. 그는 1940년 영국에 낙하산으로 잠입한 이후, 사회 각층에 대대적인 스파이 조직을 구성했으며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여 독일로 전송했고, 그 활약과 전체적인 스파이 조직의 방대함에 만족한 아프베르는 1942년 이후 더 이상 영국에 첩보요원의 수를 늘리지 않아도 된다고 보고 이들의 첩보망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야 밝혀진 것은 사실은 위에 나오는 이들은 모두 2중첩자로 영국에 포섭되어 가공의 첩보망을 구성해놓고 독일 첩보부를 농락한 것이었다. 더블 크로스 위원회(The Double Cross System or XX System)라고 알려져 있는 이 첩보망은 토마스 A로버트슨을 정점으로 하여 독일이 영국에 침투시킨 138명과 포섭된 인원 20명 중 선발한 40여명의 2중첩자를 바탕으로 구성된 역사상 최대의 2중스파이 집단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진실은?
전쟁 초기 MI5는 독일이 침투시킨 스파이들을 색출하느라 고심하고 있었다. 당시 영국 내부에도 국가사회주의에 동조하는 이들이 있었던 데다가 2차대전으로 인하여 난민이 대량발생하면서 그에 섞여서 침투한 독일의 첩자들을 색출하는 것이 곤란했기 때문이다. 당시 MI5의 함호해독국 MI8-C에서 근무하던 휴 트레버스는 독일 첩보집단이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암호코드의 해독에 골몰했고, 마침내 그 코드가 이니그마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북코드(미리 정해놓은 책을 공유하고, 그 책의 단어위치를 암호화한 것) 체계를 통한 것이고, 당시 유행하던 “우리 마음은 젊고도 활기찼다”라는 소설을 사용해서 해독하는 것임을 알아내었다. 이 성과로 MI5는 자신들의 정보와 ULTRA를 통해서 수집한 정보를 통해 독일이 영국에 잠입시키고 있는 첩보망의 기본을 파악할 수 있게 되자 당시 독일 첩보국 아프베르가 항공기나 잠수함을 통해, 또는 주로 이용되는 방법으로 중립국(포르투갈 같은)을 거치거나 난민으로 위장해서 영국에 첩보요원을 침투시키고 있었는데 그 중 침투내역을 확실히 파악할 수 있었거나 첩보를 수행하는 단계에서 실수를 저지른 이들을 체포했다.
그런데 이들을 체포하고 처리하려는 시점에서 휴 트레버스와 토마스 로버트슨, 데렉 화이트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이들을 단순히 처형하는 것이 아니라 2중첩자로 포섭하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이 의견이 채택되어 세심하게 진실과 허위를 조합한 가공의 정보를 역첩보 망을 이용하게 되었고 그 통제는 존 세실 마스터맨 경이 의장으로 있는 20인 위원회가 담당하게 되었으며 20이라는 숫자의 로마자 표현 XX에서 더블 크로스라는 이름이 나왔다.(double cross는 이중첩자를 의미하는 뜻이기도 하다.)
초기에 MI5의 정보담당자들은 이 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지켜야 하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었으며, 실제로 이 조직이 활약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정보가 제공되어야 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사소한 진짜 정보와 중요한 가짜 정보를 혼합해서 흘려 넣음으로써 첩보망이 역작용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예를 들어, 테이트에게 영국 전함이 지브랄타에 도착하는 지에 대한 정보를 알려달라는 요청을 받자 영국 정보부는 브레츨리 파크를 통해서 해당 지역 근처에 U보트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실제 정보를 전달했으며 스페인에 있는 별개의 첩보망을 통해서 정확한 정보임을 확인함으로써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보다 대담한 방법도 사용했는데 GARBO는 북아프리카에서 토치 작전이 일어날 것이라는 정보를 실제로 일어날 시간 보다 훨씬 전에 독일에 제공했다. 시기가 너무 빨랐기 때문에 독일입장에서 보면 군사적으로는 중요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어도 빠르게 정보가 도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더블크로스위원회는 정보를 세심하게 가공해서 진실과 허위를 혼합하는데 더해,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스파이 망에 나름대로의 개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보았고, 한번은 독일측에서 배급표를 이용해서 얼마 정도의 식량을 얻을 수 있는 지 알려달라고 하자 테이트는 “거참 되게 할 짓 없네”라고 퉁명스러운 회신을 보내기도 했다.
이들의 통신수단은 초기에는 비밀 서신을 이용하고 있었고 전쟁 후기에는 무선을 이용하게 되었으며, 영국은 이들을 추적해서 독일 내부까지 이어지는 인적 첩보조직의 그물망을 어렵지 않게 파악해 낼 수 있었다. 이 첩보조직을 MI5는 적절하게 이용하여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독일측의 신뢰를 얻었고 역으로 아프베어와 SD측의 암호코드망을 파악해 ULTRA에 제공, 이니그마 해독의 정밀도를 높이는데 도움을 주었고, 브래츨리 파크에서는 통신정보를 분석함으로써 인적조직망이 정상적으로 2중첩보 임무를 수행하는 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1941년 초에 세실경은 더블크로스의 효율성에 대해서 “우리(MI5)는 실질적으로 독일 첨보부를 (영국에서) 운영하고 통제하고 있다.”고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오버로드
영국이 이 이중첩보망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한 것은 오버로드 작전(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위장하기 위한 포티튜드 작전에서였다. 첩자를 통해서 대규모 침공작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알리고, 남-중부 영국에서는 정확한 부대 배치 및 병사의 제복이나 차량 장비들에 대한 정보를 알리고 북부와 동부지역에서는 가공의 대규모 작전에 투입될 병력에 대해서 보고했다. 실제로 오버로드 작전에 투입될 병력이 존재하는 영국 남서부에 대해서는 병력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보고를 했으며, 이를 통해서 누구라도 눈치챌만한 프랑스 방면에의 대규모 침공작전을 다른 작전으로 위장해서 실질적인 상륙지점을 속이는데 성공했다.(포티튜드 기만작전을 위해서 영국은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어 북아프리카에서 포로가 된 독일군 고위 장교를 포로 교환으로 돌려보내는 과정에서 영국은 일부러 그에게 오버로드 작전의 실제 준비가 이루어지는 지역을 지나면서 그에게 의도적으로 병력의 배치상황을 보여주는 대신 위치를 허위로 알려주기도 했다. 이 대담한 연출을 위해서 이동중의 도로표지판은 모조리 제거한 상태였으며 그는 돌아가자 마자 대규모 상륙작전이 준비되고 있다는 걸 보고 했으나 위치가 결정적으로 틀려 있었다.)
결국 독일첩보부는 연합군의 주공이 영국과 가장 가까운 지점이니 파드칼레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판단했으며 이 때문에 독일군 18개 사단이 노르망디에서 연합군 주력이 줄줄이 상륙하는 동안 파드칼레에서 허송세월을 보내며 “연합군의 주공”을 대비하고 있었다. 연합군은 노르망디를 침공함으로써 더블크로스 조직망 자체가 노출되는 위험도 각오할만하다고 생각했지만 독일군과 상륙한 연합군이 교전을 벌이는 중에도 여전히 더블크로스의 정보는 신뢰를 받고 있었다.
이들에 대한 신뢰는 전쟁이 끝날 때 까지도 끝나지 않았으며 독일이 V-2로켓을 발사하기 시작한 1944년 9월에도 빛을 발했는데, 당시 독일은 로켓의 탄착점을 보고하도록 지시했고, 더블크로스는 이 방어 불가능한 로켓을 막아내기 위하여 탄착점을 엉뚱한 공터로 유도했다. 독일은 전쟁이 끝나갈때까지도 2중첩보망을 의심하지 않았으며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이루어지기 얼마 전에는 테이트에게 공로를 치하하며 십자훈장 수여가 결정되었으나 전쟁이 끝나면 공로를 치하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전쟁이 끝난 후, MI5는 독일에서 그에게 수여한 십자훈장을 찾아내어 자기들 사무실에 전리품으로 전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