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매 떼기
"차포 떼고 두는 장기"라는 관용구로 잘 알려져 있듯이 장기에는 기력의 차이로 말을 떼고 두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본장기에도 다양한 핸디캡 매치가 있습니다. 향차떼기, 각떼기, 차떼기, 등등 1매 떼기부터 4매떼기 9매떼기(왕이랑 보만 있다.) 등등의 다양한 떼고두기의 궁극에 해당하는 것이 나왕(裸王), 19개 떼고 왕만으로 두는 장기입니다.
아무리 실력이 낮아도 20:1 상황에서 질까 하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의외로 이런 상황에서도 집니다. 2006년 8월 20일에 TV프로그램 전파소년에서는 사상최강의 기사 하부 요시하루에게 공개적으로 19매 떼고두기를 요청했습니다. 당황할만도 하지만 하부 씨는 당연하다는 듯이 응해서 이겨버립니다.(d.hatena.ne.jp/YOSHIO/20060820) 대단하죠?
의외로 프로기사들은 가끔 경험하는 듯한데 81다이버에서 처럼 감수나 지도를 맡는 기사들과 생초보 배우들이 만나서 협력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이런 것도 시도해보는 모양입니다.
81다이버에서 무구루마 리카를 연기하는 야스다 마사코 씨는 중학생 시절에 부친에게 장기를 배운적이 있으시다는 군요. 극중에서 장기를 두는 씬은 아직 없었지만 메인 감수를 맡고 있는 스즈키 8단에게 말 움직이는 법을 배우거나 관련 대담을 맡고있는 스즈키 칸나 여류 프로의 지도를 받기도 하는데, 기획으로 스즈키 칸나 여류프로와 19매 떼기 대국에 도전했다고 합니다. 모처럼 1시간이나 지도를 받고 대국을 했는데 5분만에 패했다고 하네요. 기력차이가 심하다보면 '이 정도 여유가 있으니까'라고 생각하다가 어이없이 져버리는 경우가 있죠.
제 경우에는 아무리 저보다 잘하는 사람이라도 가능하면 말을 떼고 두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더라도 같은 수준에서 싸워보지 않으면 내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타입인데 K-Shogi에 처음 장기를 배울 무렵에는 9매떼기로도 진적이 있지요. 기본 정석이나 행마의 개념을 모르면 순식간에 외통으로 몰리게 됩니다. 하지만 조금만 익숙하다면 이길 수 있는 선이라는 게 있는데 19매 때기 수준이면 "필승법"이라는 게 있지 않을까요?
1도
대 나왕전은 이런 상태의 시작이 됩니다.
왕 하나만 있는 쪽이 고수가 되고 초보자는 하수가 됩니다. 장기의 핸디캡 매치에서는 고수 쪾이 선수이므로 최초의 수는 ▼5二옥 정도가 되겠죠. 여기에 대응하는 첫수는 △7六보로 각행의 움직임을 살려줍니다. △2六보로 비차를 살리는 수도 생각할 수 있지만 △7六보 쪽이 각행을 단번에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낫겠죠.
2도
제1도에서 ▼5二옥 △7六보로 제2도.
이동가능(공격가능)범위를 색을 칠해서 알기 쉽게 표현해 보겠습니다. 붉은색으로 푸른색을 둘러싸면 승리가 됩니다. 여기서 하수쪽이 △7六보로 각행의 이동경로를 살렸기 때문에 △3三각成이나 △2二각 승격이 나온다면 고수는 이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일단 ▼6三옥으로 하수의 △7六의 보를 잡으러 갑니다. 하수는 여기서 △3三으로 각행을 승격. 이처럼 큰말(비차나 각행)을 빠르게 적진으로 집어넣어 승격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3도
제2도에서 ▼6三옥 △3三각成으로 제3도. 하수쪽이 제4수에서 이미 각행을 마로 승격시켰습니다. 이로써 보시다시피 반의 우측은 거의 제압되어버렸습니다. 옥장의 움직임은 좌측만으로 제한되어 버렸죠. 이미 곤란해진 상황에 몰린 하수 쪽은 어찌되었건 △7六의 보를 노려서 ▼6四옥으로 전진하는 것 뿐이지만 이번에는 비차를 활용해 나갑니다. △7八비로 비차를 좌익에 돌리면서 다음으로,
4도
고수쪽의 유일한 표적이 되는 △7六의 보를 지키는 동시에 마와 비차의 협공태세를 맞추고 나머지는 비차앞의 보를 계속 전진시켜나가는 것 뿐입니다.
초보자가 옥1개에도 패하는 기본적인 이유는 조심성없이 전진시킨 보를 계속 빼앗기고 이 보가 토금이 되어 지는 것이므로 보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라는 것을 아는 시점에서 19매 떼기에 패하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5四옥 △7五보 ▼6五옥 △7四보 ▼6五옥 △7三보 승격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5도
이 시점에서 이미 고수 쪽은 둘 수 있는 수가 없으므로 하수쪽은 계속 보를 전진시켜 토금으로 승격해버립니다. △7三보成으로 이미 고수쪽의 옥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3군데 뿐. 여기서 ▼6五옥으로 전진하면 △7四토금으로 내려버립니다. ▼5三옥으로 후퇴하는 수에도 △7四비로 고수는 ▼5二옥 외에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고 △5四비~△5一비成으로 외통으로 몰립니다.
6도
△7四비는 장군은 아니지만 더 이상 움직일 곳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으니까 한수 그냥 넘긴다는 안됩니다. 우리나라 장기와 달리 일본장기에서 패스라는 없으므로 고수 쪽은 투료.
다시 5도로 돌아가서 ▼5四옥으로 물러나는 수에는 △7四비로 장군! 여기서 7도로
왕이 도망칠 곳은 이제 3군데. ▼6五옥이라면 △7七계나 △6六마로 외통. 다음에 ▼4五옥이나 △4四마로 외통이므로 ▼5三옥으로 끌어들이는 수 뿐이지만 하수는 △4四비로 추격해옵니다.
8도
고수는 ▼5二옥이 있지만 △4二비成 ▼6一옥 △6二용으로 외통이죠.
9도
끝났습니다. 간단하죠? 포인트는 말 1매로 쫓아다니지 않는 것, 말로 위협하면서 다른 말의 협력으로 감싸듯이 몰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