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미셸 2008. 4. 13. 21:43

1945년 2월 3일. 2차대전도 막바지에 달하던 중, 연합군 점령지인 프랑스 콜마르에서 도난사건이 발생했다. 도난품은 군용트럭 1대와 SIGABA.

독일이 이니그마를 만들었듯이 동시대에 제조된 다양한 로터식 암호기계 중에서 스웨덴에서 제조된 로터 머신을 미군이 도입하여 개량한 상위버전이 독일군의 이니그마에 해당하는 SIGABA, 애칭은 ABA라고 하는 암호기계였다.


요렇게 생겼음.

연합군은 자신들이 이니그마를 해독하여 톡톡히 효과를 보았기에 암호기계의 보안에 많은 주의를 기울였고 기계1대당 경비병 2명을 배치할 정도로 용의주도했지만 이 사건에서 28사단 담당지역에서 SIGABA를 운반하던 병사가 운송중에 잠시 “알고 지내는 현지여성의 주택을 방문”하고 나와보니 트럭과 기계가 없어지는 사건이 발생해 버렸다.
트럭이야 전쟁중이라는 점과 토나오는 물량으로 유명한 미군이 관대하게 봐줄 수 있어도, 암호기계가 없어진건 이야기가 틀렸다.
사실 그 시점에서 독일이 뭔 짓을 해도 전세를 뒤엎을 수는 없었고 암호기의 세팅이야 바꾸면 그만이지만, 군대라는건 항시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야 하는 집단.
비록 콜마르는 독일군 점령지에서 어느 정도 거리는 있었지만 영향권에서 완전히 안전하다고 할 수도 없었고, 만에 하나 이게 독일군 손에 넘어가고 해독될 경우 그동안 연합군이 추진해온 작전과 병력배치 등을 기초로 추론해서 앞으로의 작전이 발각될 염려가 있다는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연합군 수뇌부는 '
자신들이 지금까지 누려온 일방적인 우위가 뒤엎어질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에 패닉에 빠져들었다.

연합군 총사령관 아이젠하워는 제6야전군 사령관 제이콥 데비스 장군을 불러서 당장 찾아내라고 닥달했고, 데비스 장군은 다시 보안관련 책임자인 데이빗 어스킨 대령을 순차적으로 닥달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해당 기기를 찾아내라는 명령이 6군에 하달되었다.

SIGABA의 로터

구조도.

어스킨 대령은 먼저 스위스를 통하는 스파이망을 통해서 독일군이 최근에 극비기기를 새로 도입한 적이 없는지에 관해 떠보는 한편 L-5 항공정찰기를 이용해서 해당 지역일대를 공중정찰해서 의심가는 트럭들을 확인하도록 지시하고, 휘하의 모든 지휘관에게 직접 지휘하의 차량번호를 확인해서 보고하도록 시켰으나 이런 대대적인 수색작전이 3주동안 진행되었는데도 아무런 소득이 없자 연합군이 아예 합동으로 전담조사반을 구성했다.
그랜트 테일먼 대위가 지휘를 맡아서 해당지역을 모조리 수색할 전권을 위임받기에 이르렀는데, 며칠동안 헛고생만 하던 중, 콜마르에서 약간 떨어진 셀레스타라는 도시 근처의 기센 강변에서 잃어버린 기계중 2대가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기에
허겁지겁 달려가서 확인해보니까 잃어버린 기기 맞다는 거야.

그래도 남은 1대까지 찾아내야 했던 조사팀은 잠수부까지 동원해서 기센강을 모조리 뒤지라고 명령했는데 그래도 안나오길래 결국에는 공병대를 동원하여 3일내로 둑을 쌓아서 물길을 돌려버리라고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공사를 끝내고 드
디어 강바닥이 말랐는데 정작 기계를 찾을 수는 없었다. 테일먼 대위까지 모든 인원이 투입되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모두 강바닥을 헤집고 다니라고 지시했는데, 갑자기 뭔가 금속제품이 걸려서 꺼내보니 기계의 일부가 나오기 시작했다. 손잡이 부분이 약간 부서진 걸 제외한 전 부품이 발견되었고, 이로써 총 6주에 걸친 수색작전은 종결되었다.


나중에 사건의 전모를 확인한 결과, 프랑스 군에서 트럭 도난사건이 발생하자 하사관이 직업여성을 만나러 간 틈에 병사가 지나가는 미군트럭을 훔쳐놓고, 나중에 사건이 커질 걸 우려해서 암호기는 강에다 버렸는데 그 사건이 커지고 더 커져서 종잡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


http://www.vectorsite.net/ttcode_07.html#m4
코드브레이커 15장.